르호봇 구약성경 말씀

[입관 장례 예배 설교] 아브라함의 죽음(창 25:1-34)

르호봇 2024. 1. 2.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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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입관 장례 예배 설교 중에서 창세기 25장에 아브라함의 죽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죽음과 동시에 야곱과 에서의 출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때에 따라서 살다가 죽게 됩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뜻을 모두 이루니 하나님께서 하늘로 불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나라로 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죽음(창 25:1-34)

 

아브라함의 후처와 서자들(1-4)

25:1 아브라함이 후처를 취하였으니 그 이름은 그두라라

아브라함이 그두라를 후처로 취하였다. 역대상1:32에는 그두라를 첩이라고 하였으나 사라가 죽은 후에 취한 것이다.

25:2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았고

사라가 127세에 별세하였으므로 그때에 아브라함은 137세였을 것이다. 히브리서 11:12에는 아브라함이 100세 때에 자기 몸이 죽은 것 같았다고 했는데 137세 이후에 어떻게 자녀를 많이 생산하였을까 하는 것이 문제이나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이삭을 낳을 때에 하나님이 주신 정력(생산능력)이 후에도 계속되었으므로 많은 아들을 생산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에 주신 힘은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지 않으시므로 자기의 실력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셔서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도 할 수 있게 하신다. 우리가 힘이 없고 부족해도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서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하시고 그 힘을 거두어 가지 않고 그 사람의 실력이 되게 해 주신다. 그러므로 나이가 많아서 모든 소망이 끊어지고 진보할 수 없다고 절망할 것이 아니라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자(4:13).

25:3-4 욕산은 스바와 드단을 낳았으며 드단의 자손은 앗수르 족속과 르두시 족속과 르움미 족속이며 미디안의 아들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니 다 그두라의 자손이었더라

앗수르 족속과 미디안의 자손도 아브라함의 후처의 자손들이다.

서자들을 이삭과 멀리 떠나게 함(5-6)

25:5-6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 모든 소유를 주었고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물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국으로 가게 하였더라

자기 모든 소유를 주었고 아브라함은 서자인 이스마엘과 후처 그두라에게서 낳은 아들들이 있었으나 약속의 말씀으로 낳은 아들 이삭에게 거의 모든 소유를 주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한 것은 이삭이 다른 아들들보다 특별히 나아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이 이삭을 통해 이루어져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여러 가지 다른 일보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모든 물질과 정력을 사용해야 한다.

동국으로 가게 하였더라 아브라함이 서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재물을 나눠주어 자기가 살아 있을 때에 그들이 이삭을 떠나 멀리 동방으로 가게 하였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별세한 후에 그들이 이삭을 시기하거나 다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가나안 땅을 약속의 아들 이삭과 그 후손에게 주기 위함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통하여 이루어 나가는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미리 모든 일을 잘 처리하였다. 모든 일을 미리 바로 처리하고 준비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장차 일어날 일을 예견치 못하여 장애가 될 만한 요소를 남겨 두면 나중에 그 일을 바로 잡기는 매우 힘이 든다. 그러므로 사전에 일을 바로 처리하여 구원 운동에 손해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브라함의 별세와 이삭의 복 받음(7-11)

25:7-8 아브라함의 향년이 일백 칠십 오 세라 그가 수가 높고 나이 많아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아브라함이 175세에 세상을 떠나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다. 아브라함은 사라보다 48세를 더 살았다(23:1).

25:9-10 그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

이스마엘이 딴 곳에서 살았으나 그때에 아브라함을 장사하기 위해 와서 이삭과 함께 장사하였다. 그들이 아브라함을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그곳은 전에 사라를 장사한 곳이었다.

25:11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 라해로이 근처에 거하였더라

부친이 별세하매 이삭이 부친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아 지켰으며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셔서 창성케 되었다.

이스마엘의 후예(12-18)

25:12-16 사라의 여종 애굽인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은 아들 이스마엘의 후예는 이러하고 이스마엘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 이름과 그 세대대로 이와 같으니라 이스마엘의 장자는 느바욧이요 그 다음은 게달과 앗브엘과 밉삼과 미스마와 두마와 맛사와 하닷과 데마와 여둘과 나비스와 게드마니 이들은 이스마엘의 아들들이요 그 촌과 부락대로 된 이름이며 그 족속대로는 십 이 방백이었더라

이스마엘의 아들은 열 둘이며 그들이 각각 한 촌을 건설하였고, 열 두 방백이 되었다(17:20). 이스마엘이 세상과 육신적으로는 창성하였다.

25:17-18 이스마엘은 향년이 일백 삼십 칠 세에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 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하였더라

이스마엘이 137세에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으며 그의 후손은 애굽 동쪽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16:7)까지 이르러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하였다.

아브라함의 아들로서 육에 속한 아들 이스마엘의 기록은 짧다. 별로 한 일도 없이 자녀만 낳고 137세까지 살다가 죽은 것뿐이다. 육으로 사는 사람들은 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없다.

이삭이 두 아들을 낳음(19-26)

25:19-21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

이삭이 믿음으로 리브가를 아내로 맞아 들였다. 리브가가 오랫동안 잉태하지 못하였으나 이삭이 아들을 낳기 위해서 첩을 얻거나 양자를 들이지 않았다. 이삭이 하나님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시고 결혼한 지 20년 만에 리브가에게 두 아들을 잉태케 하셨다. 육체를 따라 난 이스마엘은 열 두 아들을 낳고 12방백이 되어 큰 세력이 되었으나 이삭은 60세에 비로소 두 아들을 얻게 되었다. 약속으로 말미암아 낳은 아들은 육으로 낳은 아들처럼 숫자적으로는 많지 않은 것이다.

25:22-23 아이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가로되 이 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리브가가 쌍둥이를 잉태했는데, 그들이 태 안에서부터 서로 싸우고 있었다. 그러므로 리브가가 근심이 되어 여호와께 여쭈어 보았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두 국민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일 것이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하셨다. 이것은 복중에 있는 두 아이가 앞으로 장성하여 두 나라가 될 것과 하나님께서 장자인 에서는 택하지 않고 야곱을 택했다는 것을 말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한 데 대하여 몇 가지 상고하고자 한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을 알게 해 준다.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야곱 족속이 에서 족속보다 강하여 장차 이스라엘 자손이 에서의 후손을 정복할 것을 뜻한다.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에서가 야곱을 섬기며 살게 될 것을 알게 해 주는 것이다. 복중에 있는 아이들이 아직 나지도 않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할 줄 알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정하셨다(롬9:10-12). 국가와 민족이 나뉘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되어지고 강하고 큰 자가 되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동생인 야곱에게 있다는 것이다. 에서는 육신적으로 강하였으나 그것으로 잘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잘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자에게 축복을 주시는가? 택한 백성, 즉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축복을 주신다. 사람이 아무리 약하고 부족해도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의 축복으로 강하게 해 주시고 잘되게 해 주신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 스스로 높아지거나 강한 자가 되려고 수단과 방법을 쓰지 말고 겸손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전심전력을 다하여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이 높여 주시고 형통하게 하여 주신다.

25:24-26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갖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이었더라

갖옷은 털옷이란 뜻이다. 먼저 나온 아들이 털이 많은 자이므로 이름을 에서라고 지었다. 에서의 뜻은 털이 많다이다. 야곱은 발꿈치를 잡은 자라는 뜻으로 야곱이 출생할 때 먼저 나오는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으므로 이름을 야곱이라고 지었다.

야곱과 에서는 모태에서도 싸웠고, 장성한 후에도 장자의 명분을 빼앗은 문제로 서로 대적이 되었다. 이것은 육에 속한 자와 영에 속한 자의 싸움이다. 야곱은 영에 속한 사람이고 에서는 육에 속한 사람이다. 육에 속한 사람이 육신적인 면에서는 크고 강한 면이 있으나, 최후 승리는 영에 속한 자에게 있다.

장자의 명분을 매매함(27-34)

25:27-28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인 고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 고로 장막에 거하니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에서는 장성하여 사냥꾼이 되었고 야곱은 종용히 장막에 거하기를 좋아하였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에서를 사랑하였고, 어머니 리브가는 집에서 자기를 잘 도와주는 야곱을 사랑하였다. 부모가 자녀를 편애하면 그로 인하여 자녀들 간에 불화가 생기기 쉽다.

25:29-30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부터 돌아 와서 심히 곤비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곤비하니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에서가 들에 나갔다가 배가 고파 곤비하여 지친 몸으로 돌아왔을 때에 동생 야곱이 팥죽 끓이는 것을 보고 그 팥죽을 조금 달라고 간청하였다.

별명은 에돔이더라 에돔붉음이라는 뜻인데, 에서는 붉은 팥죽을 좋아했기 때문에 이 별명이 생긴 것이다. 이것을 보면 야곱이 장자의 명분을 사기 위해 계획적으로 팥죽을 쑤고 있었던 것 같다.

25:31 야곱이 가로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

장자의 명분은 아버지의 계대를 이어 가족을 지배하는 권리이다(27:29). 두 몫을 받는 권리이다(21:17).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물려받을 권리이다(12:3; 15:5; 22:18; 26:3, 4, 24; 28:4). , 장차 오실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신령한 축복에 참여할 권한이다. 야곱은 이 축복에 참여하기 위해 장자의 명분을 귀중히 여겨 사모하고 그것을 자기가 받기 위하여 노력을 많이 했다. 팥 죽을 쑨 것도 그 명분을 사기 위함이었다.

야곱이 장자의 명분을 받고자 애쓴 신앙은 첫째, 그리스도에 참여하고자 하는 신앙이요, 둘째, 현세의 것보다 장래의 축복을 더 귀히 여기는 신앙이요, 셋째, 물질보다 신령한 것을 귀중히 여기며 받고자 하는 신앙이다. 에서는 이렇게 귀중한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먹었다. 이것이 망령된 행동이다(12:16).

그러나 야곱이 형 에서가 배가 고파 곤비할 때에 그 약점을 이용하여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으로 산 행동은 아주 잘못한 것이다. 그 이유는 인륜에 어긋난다. 형제지간에 형의 약점을 이용해서 장자의 명분을 빼앗는 것은 아주 야비한 행동이다. 하나님의 축복은 이런 야비한 방법으로 받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고 한 것이 잘못이다. 하나님의 축복을 물질로 살 줄 안 것이 잘못이다.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이 돌아간 것은 야곱의 수단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며, 팥죽으로 샀기 때문도 아니다. 그 형제가 모태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미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예정해 놓았기 때문에 야곱이 축복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팥죽으로 사지 않았어도 장자의 축복을 다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했더라면 자기 형과도 원수가 되지 않았을 것이며 형을 피하여 도망가는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또 평생에 양심이 편안하고 떳떳하게 살았을 것이다. 남의 것을 빼앗는다고 잘되는 것이 아니고 믿음을 잘 지켜 하나님의 형상을 잘 이루어 나가야 잘된다. 사람이 수단을 써서 남의 것을 빼앗고 남에게 손해 주면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며 반드시 그 벌을 받는다.

25:32-34 에서가 가로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가로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겼다(34). 에서가 왜 이러한 태도를 취하였는가?

신령한 것보다 물질을 더 중히 여긴 때문이다.

장래의 것보다 현세의 것을 더 중히 여긴 때문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축복을 경히 여긴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나중에 눈물을 흘리며 축복을 받고자 하였으나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히12:17). 그는 한 그릇 식물에 장자의 명분을 판 망령되고 미련한 자가 되었다. 오늘날도 물질만 좋아하고 현재에 잘되는 것으로 만족하고 영적인 면보다 육적인 면에 관심을 갖고 힘쓰는 자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은 사람이다.

[창세기 9장 설교 말씀] 하나님이 노아에게 무지개 언약(창 9:1-29)

 

[창세기 9장 설교 말씀] 하나님이 노아에게 무지개 언약(창 9:1-29)

창세기 9장에서는 하나님이 노아에게 무지개 언약을 했다. 다시는 홍수로 이 세상을 심판하지 않는다고 했다. 무지개 언약을 통해서 인간은 하나님이 홍수로 이 세상을 다시는 심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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