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9장에서는 하나님이 노아에게 무지개 언약을 했다. 다시는 홍수로 이 세상을 심판하지 않는다고 했다. 무지개 언약을 통해서 인간은 하나님이 홍수로 이 세상을 다시는 심판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무지개 언약(창 9:1-29)
득구자의 복(1-3)
• 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구원받은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다. 이렇게 생명 있는 믿음의 후예들은 번성하고 창성하여 땅에 충만케 되어 나간다. 우리도 영이 자라나고 신앙 인격이 자라나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면 점점 창성하여 땅을 정복하게 된다.
• 9:2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땅위의 모든 것을 주시고(고전 3:21-23 참조), 만물이 복종하고 두려워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 9:3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하나님께서 홍수 후에 사람에게 산 동물을 식물로 주셨다. 노아 홍수 전에는 사람들이 채식을 했으나 홍수 후부터 육식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악해짐에 따라서 식물(食物)도 달라졌다. 에덴 동산에서는 과일만 먹고살았으나 범죄하여 쫓겨난 다음에는 농사하여 채소와 씨 맺는 열매를 먹도록 하셨고, 홍수 후에는 동물까지 식물(食物)로 주셨다. 사람들이 에덴 동산에서는 실과만 먹었어도 건강이 유지되었으나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는 곡식과 채소를 먹어야 건강이 유지되었고, 홍수 이후부터는 동물까지 식물로 먹어야 했다. 홍수 이후부터 사람의 마음이 더욱 악해졌고, 육체도 허약해 졌으므로 그때부터 사람의 수명이 짧아졌다. 그러므로 사람의 상태를 참작하여 하나님께서 짐승을 식물로 허락하셨다.
이와 같이 우리의 영적 양식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신앙이 어렸을 때에는 젖(초보적 진리)을 먹다가 신앙이 자라나면 단단한 식물(깊은 진리)을 먹어야 하고, 좀더 자라나면 좀 더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힘을 얻을 수 있다. 또 시대에 따라서 그 시대에 필요한 양식(진리)이 있다. 악한 세대에는 거기에 대항하여 이길 만한 진리를 먹어야 신앙이 유지된다.
초대 교회 때에는 율법주의에 대항하여 이신득구(以信得救)의 진리가 필요했고, 종교개혁 시대에는 천주교의 교권주의와 의식주의에 대항하여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진리를 깨달아 그 진리 안에서 살므로 승리할 수 있었다. 이단과 해방신학과 신비주의와 현실주의가 횡행하는 말세에는 거기에 대항할 만한 진리를 깨달아야 마귀의 궤계와 시험을 이기고 참 신앙을 지킬 수가 있다.
어느 시대에나 마귀의 술수와 체계를 능가할 만한 진리를 붙들고 있어야 마귀를 이길 수 있다. 그뿐 아니라 마귀의 힘과 실력을 능가할 수 있는 영적 실력이 있어야 이긴다. 선지자 엘리야 때보다 엘리사 때는 세상이 더욱 악해졌기 때문에 갑절의 영감이 있어야만 그 시대를 이길 수 있었다. 그러므로 엘리사가 갑절의 영감을 구했다.
피를 귀중히 여길 것(4-7)
• 9:4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 것이니라
짐승의 고기는 먹되 피채 먹지 말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이다(레 17:11,14, 신 12:23). 이것은 하나님께서 내신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파괴하지 말라는 뜻이다.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은 그 생명을 먹고 마시는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동물을 식물(食物: 먹을 것)로 주실 때에 피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은 그 육체는 먹되 그 생명은 존중히 여기라는 것이며, 사람의 생명을 존중히 여겨 살인하지 말라는 뜻이 있다. 또 장래에 그리스도가 오셔서 구속해 주실 피를 존귀하게 여기며, 그 피에 생명이 있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다.
• 9:5-6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생명은 생명으로 갚으리라는 뜻이다. 남의 짐승을 죽인 자는 자기 짐승으로 그 주인에게 갚아 주어야 하며 사람을 죽인 자는 자기 생명으로 갚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사람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한 것이다(마 16:26).
• 9:7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번성의 복과 편만하는 복을 주셨다(1:28 참조). 마태복음 28:19-20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복음을 힘써 전파하는 교회는 창성하게 된다.
언약을 세움(8-17)
• 8:8-1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다시는 홍수로 인류를 심판하지 않겠다고 언약을 세웠다. 이 언약에는 모든 짐승까지 포함시켰다. 이 언약은 사람의 협조를 요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독자적으로 세우시고 독자적으로 실천하신다. 이 언약은 사랑의 언약이요 은혜의 언약이다.
이 언약은 홍수의 심판으로 다 멸망하여 두려워하는 노아와 그 후손들에게 참으로 안위와 큰 소망을 주었다. 그 때에는 이 언약을 믿고 소망 가운데 믿음으로 걸어가는 것이 필요하였다. 만일 이 은혜 언약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심판의 두려움으로 인하여 안정된 마음으로 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언약을 주심으로 모든 사람이 믿음 안에서 안식을 누리며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 9:12-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하나님께서 그 언약의 증표로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셨다. 그 무지개는 홍수 후에 새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이전에 창조되어 있었던 것을 그때에 언약의 표준으로 사용하신 것뿐이다. 지금도 우리가 비 온 후에 구름 속에 무지개가 나타나는 것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 다시는 이 세상을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고 하신 그 약속을 믿고 살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인류와 여러 가지 언약을 세우셨으니
첫째, 자연 계약이다. 춘하추동과 사시(四時)와 해(年)와 달과 날과 밤과 낮과 시간 이 모두 자연계약에 속한다.
둘째, 행위 계약이다. 이 계약은 인류의 대표인 아담과 세우신 언약인데 선악과를 두고 하신 것이다. 사람이 그 금단의 명령을 지키면 살고, 지키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이다(2:17). 아담은 이 계약을 어겼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계약대로 영혼을 즉시 죽이셨고, 육신도 후에 죽게 하셨다.
세째, 은혜 계약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그를 믿는 모든 자를 구원해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과(3:15),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신 것과(3:21), 무지개 언약을 세우신 것과 그리스도가 와서 구속해 주시겠다는 약속은 다 은혜 계약이다. 또 모세의 율법도 행위 계약이 아니라 은혜 계약의 기초이다. 모세 율법은 사람이 죄를 깨닫게 해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는 역할을 한다(롬 3:20; 갈 3:24).
네째, 평화 계약이다. 이 계약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한 후에 세상을 심판하시고, 마귀를 무저갱에 가두고 천년 왕국을 건설할 것을 가리킨다(사 2:4; 65:17-25).
다섯째, 영원 계약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원한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과 더불어 영생 복락을 누릴 것을 약속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계약을 세우시고 그 계약대로 실천하신다. “여호와”라는 이름도 “계약대로 구원하시는 신”이라는 뜻이다. 천지는 없어지고 변할지언정 하나님의 언약은 일점 일획도 변함없이 그대로 다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환난과 핍박이 닥쳐와도 그 언약의 말씀을 믿고 담대히 걸어갈 수 있다.
• 9:14-17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하나님께서 구름 속에 나타나는 무지개를 언약의 증거로 삼으신 것은
① 구름이 뜰 때마다 이 언약을 믿고 다시 홍수가 날까봐 두려워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② 사람이나 짐승이나 눈을 들어보면 잘 보이게 하기 위함이다.
③ 하나님은 진노 중에도 긍휼과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합 3:2).
하나님은 언제나 그때에 합당한 진리를 주시며 그 진리를 누구나 다 알 수 있게 하시며 그 말씀을 순종하여 구원받도록 하신다. 또 하나님께서 신령한 진리를 알게 하기 위하여 보이는 물질을 이용하여 가르쳐 주시기도 한다.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 만드신 일과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서 많은 물고기를 잡게 하신 일과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일 등도 다 신령한 진리를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성도는 확신과 소망을 가지고 모든 두려움과 불안을 떨쳐 버리고 힘있게 주의 말씀을 따라갈 수 있다.
저주받은 자와 축복 받은 자(18-29)
• 9:18-19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홍수로 모든 사람이 멸절하였고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세 아들들로 말미암아 후손이 땅에 퍼지기 시작했다. 장자 셈(황인종)의 자손은 동방에 거하였고, 셋째 아들 야벳(백인종)의 자손은 서방에 거하였고, 둘째 아들 함의 자손은 흑인종이 되었다.
• 9:20-23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홍수 후에 농사를 하였으며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벗고 자고 있었다. 이것은 노아의 큰 실수였다. 노아는 당시의 선지자로서 중대한 책임이 있는데, 술에 취하여 자신의 수치를 드러낸 것은 구원 운동에 큰 지장을 준 것이다. 그때에 둘째 아들 함이 벌거벗고 자는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형제들에게 가서 폭로하였다. 그 말을 들은 셈과 야벳은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질 쳐들어가서 아비의 하체를 덮었는데, 그 때까지 그들이 얼굴을 돌이켜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다.
이것은 참으로 복 받을 일이다. 그들이 옷으로 아비의 하체를 덮은 것은 아버지 노아의 허물이 드러나면 다른 사람들이 구원받는데 큰 손해가 되겠기 때문이요, 자기들도 보지 않은 것은 아버지의 허물을 보게 되면 아버지를 통해서 은혜받는데 손해가 나겠기 때문이다.
• 9:24-25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아버지가 깨어나서 그 사실을 알고 함을 저주했다. 부친이 자녀에 대해 저주하는 기도를 할 수 없으나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한 것이다. 성령의 감동과 인도대로 하는 기도가 참된 기도이다. 함이 왜 저주를 받게 되었는가? 함이 부친에 대하여 사실대로 말했으나 그것은 저주받을 만한 행동이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하여 이루어 나가는 구원운동에 큰 손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그를 통하여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중이었고 그러므로 노아는 당시의 선지자요 구원 운동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구원의 기관으로 사용하는 노아의 허물을 함이 드러냄으로 다른 사람들이 은혜받는데 큰 손해를 주었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막대한 지장을 주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을 저주하게 하신 것이다. 누구나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손해를 주면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저주하신다. 반대로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도움을 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을 주신다.
출애굽 시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실 때에 아말렉이 길을 막고 통과하지 못하게 하며 싸우려고 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천하에서 도말하여 기억함이 없게 하시겠다고 하셨고(출 17:14-16), 약 400년 후에 사울왕을 시켜서 아말렉을 진멸하셨다(삼상 15:2-3).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협력하고 돕는 자가 될지언정, 방해하고 손해 주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사실대로 하는 말이라 해도 구원 운동에 손해가 되면 하지 않아야 한다.
사실이라 하여 함처럼 교회에 손해 주는 말이나 일을 하면 저주를 받게 된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고전 10:23). 잘못하고 망하는 자보다 잘하고 망하는 자가 많이 있다(교만하거나 구원 운동에 손해 주는 때). 함이 전체면을 생각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생각지 않고, 사실대로 말하다가 그러한 죄를 범하게 되었다. 언제나 표준을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이 잘 되도록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이 쓰시는 종들에게 비록 허물이 있더라도 진리만 바로 전하면 하나님이 그를 들어 사용하시고 구원운동을 해 나가시는 것이니 주의 사랑으로 덮어주고 가려주어야 한다. 그것이 자신과 자신의 후손이 복 받는 길이다. 교역자의 잘못이나 죄를 발견하면 사랑하는 마음과 온유한 마음으로 직접 충고하고, 듣지 않으면 하나님께 맡기고 위해서 기도해 줄뿐이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친히 심판하시고 처리하신다. 그러나 교역자가 성경에 어긋나는 교훈을 할 때는 용납지 말고 한 번, 두 번 충고하고 그래도 안 들으면 떠나야 한다. 진리에서 탈선된 교역자를 용납하는 것은 이세벨을 용납하는 것이며 반드시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된다(계 2:20-23).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하나님께서 함을 저주함에 있어서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하신 것은 함이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폭로시킬 때에 그 아들 가나안과 같이 한 것 같다. 가나안이 먼저 보고 나와서 그 아버지 함에게 말하므로 함이 같이 들어가서 보고 나와서 폭로한 것 같다. 이 예언대로 함은 흑인으로서 대대손손이 종노릇 하게 되었다.
• 9:26-27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아버지의 허물을 가리워 주고 아버지를 위해 좋은 일을 한 셈과 야벳에게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하여 축복해 주셨다.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는 셈의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셈의 후손에게서 나신다는 예언이다. 이 예언대로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을 택하여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시고 그 후손에게서 그리스도가 나게 하셨다. 또 셈의 후손인 황인종에게서부터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야벳의 후손은 백인종이며 그들에게 하나님이 창성하는 복을 주셨다. 이 예언대로 백인종은 창성하여 셈의 장막(황인종의 나라)까지 퍼져서 살게 되었다. 야벳의 자손(백인종)이 셈의 후손(황인종)의 나라에까지 와서 황인종의 나라를 관할하고 혹은 통치하며 도와주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아메리카 대륙도 본래는 인디언들(황인종)의 나라인데 백인종인 영국 사람들이 건너가 정복했기 때문에 야벳의 후예의 땅이 되었다.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함의 아들 가나안 민족(흑인종)은 셈과 야벳의 종살이를 하고 살게 하셨다. 그것은 함과 가나안이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손해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 예언대로 셈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족속을 멸하고 가나안땅을 차지하였다. 그때 살아남은 가나안 사람들은 종살이를 하였다.
• 9:28-29 홍수 후엔 노아가 삼백 오십 년을 지내었고 향년이 구백 오십 세에 죽었더라
노아가 홍수 후에 350년을 더 살며 그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역사와 하나님을 섬기는 법과 하나님의 계약과 신앙에 대하여 많이 가르쳐 주고, 950세에 별세하였다.
[사무엘상 설교말씀] 한나의 감사 기도와 엘리 가문의 멸망 예언(삼상 2:1-36)
'르호봇 구약성경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사야 12장 설교 말씀] 여호와 구원에 대한 성도들의 감사 찬양(사 12:1-6) (0) | 2023.08.07 |
---|---|
[민수기 8장 설교 말씀] 성소의 등잔대와 레위인의 정결 예식(민 8:1-26) (0) | 2023.08.06 |
[잠언 8장 성경 말씀] 생명이 되는 지혜를 추구(잠 8:1-36) (0) | 2023.08.01 |
[열왕기상 9장 설교 말씀] 성전에 관한 하나님의 언약(왕상 9:1-28) (0) | 2023.07.31 |
[사무엘상 8장 설교 말씀] 이스라엘이 인간의 왕을 요구(삼상 8:1-22) (0) | 2023.07.26 |
[사사기 9장 설교 말씀] 기드온 서자 아비멜렉의 반역과 죽음(삿 9:1-57) (0) | 2023.07.20 |
[창세기 4장 설교 말씀] 가인과 아벨의 제사와 셋의 출생(창 4:1-26) (0) | 2023.07.19 |
[레위기 5장 성경 말씀] 속죄제와 속건제의 규례(레 5:1-19) (0) | 2023.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