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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성경문화] 물고기를 잡은 베드로는 죄인이라고 고백했을까?

르호봇 2021. 10. 9.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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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말씀을 전할 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말씀을 전하실 때 배 두척이 있는 것을 보시고 그 배에 올랐습니다. 그 배는 시몬 베드로의 배였습니다. 베드로는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배를 빌려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말씀을 모두 마친 후에 시몬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간다고 말합니다. 누가복음 성경 문화배경을 통해서 베드로가 고기를 많이 잡고 와서 갑자기 예수님 앞에서 죄인이라고 고백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물고기를 많이 잡은 베드로는 죄인이라고 고백했을까?

 

6절 카이 투토 포이에산테스 쉬네클레이산 이크뒤온 플레도스 폴뤼 디에르레그뉘토 데 토 딕튀온 아우톤

7절 카이 카테뉴산 토이스 메토코이스 토이스 엔 토 헤테로 플로이오 투 엘돈타스 쉴라베스다이 아우토이스 카이 엘돈 카이 에플레산 암포테라 타 플로이아 호스테 뷔디제스다이 아우타

8절 이돈 데 시몬 페트로스 프로세페센 토이스 고나신 투 이에수 레곤 엑셀데 아프 에무 호티 아네르 하마르톨로스 에이미 퀴리에

눅5:6-8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베드로는 왜 물고기를 잡은 기쁨을 뒤로한 채 별안간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말했을까? 물고기를 많이 잡은 것과 죄인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을까? 내가 물고기를 너무 많이 잡아 남에게 지장을 주었기 때문일까? 성서 시대 갈릴리 호수 변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들의 일상으로 가보자.

 

성경 시대의 어부란 무척이나 힘들고 고된 직업이었다. 어부들은 주로 밤에 고기를 잡았는데 이는 당시 고기 잡는 그물이 세마포로 만들어져서 아침에 해가 뜨고 나면 그물이 물속에서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물고기가 아무리 머리가 나빠도 아침에 그물을 쳐 놓으면 그물 안으로 돌진하는 자살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어부들은 주로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물고기를 잡았는데 성경 시대 어부들은 요즘 말로 하면 낮과 밤이 바뀐 올빼미형인간이었다. 요즘 같이 엔진이 달린 동력선이 없던 성경 시대에 어부들은 호수의 중앙까지 열심히 노를 저어서 가야 했다. 갈릴리 호수가 남북 길이가 21Km, 동서 길이가 12Km이므로 아무리 짧은 단거리로 노를 젓는다 해도 6Km를 저어야 했다.

 

우기인 겨울에 물고기가 많이 잡혔기 때문에 오늘날처럼 우비가 없던 시대에 갈릴리 어부들은 늘 상 비로 흠뻑 젖어 있었을 것이다. 또한 어부들은 물속에 던진 그물이 엉키지 않도록 수시로 물속으로 다이빙해 들어가 그물을 정리해야 했다. 낮과 밤의 온도차가 극심한 광야의 날씨에 온몸이 비에 흠뻑 젖은 것도 모자라 수시로 물속에 들어가야 했으니 어부들은 밤새 몸을 떨어야 했을 것이다.

 

밤새 중노동에 시달린 갈릴리 어부들은 낮에 깊은 잠으로 피로를 풀어야 했다. 누가복음 5장의 배경이 되는 시간은 이른 아침이다. 허다한 무리는 말씀을 사모해서 이른 아침부터 갈릴리 호숫가에 몰려들었고 예수님은 몰려드는 무리 때문에 점점 호숫가로 밀리셨다. 그러나 밤새 칠흑 같은 어둠과 혹독한 추위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물고기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베드로의 귀에 예수님의 말씀이 들어올 리 만무했다. 그는 허탈한 심정으로 예수님 옆에서 그물을 씻고, 말리고 있었다. 당시 세마포로 된 그물은 바로 씻어서 말리지 않으면 금방 썩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말씀을 듣는 청중에게 관심을 가지시지 않고 특별히 베드로의 배를 호숫가에 띄워 말씀하심으로써 베드로에게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셨다. 무리를 향해 말씀을 다하신 예수님은 드디어 베드로에게 명령하셨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이에 베드로는 주저 없이 순종한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베드로의 순종은 두 배 가득 물고기를 잡는 만선의 복을 가져왔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는 것은 이런 복을 가져온 베드로의 순종이 얼마나 위대하고 또 얼마나 어려운 순종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첫째, 베드로는 육신의 피로를 극복했다. 베드로는 밤이 새도록 수고했다. 수고에 대한 아무런 보람과 소득이 없었기 때문에 베드로의 허탈감과 피로감은 더욱 심했을 것이다. 예수님이 무리를 향해 말씀하시는 동안 베드로는 세마로 그물을 깨끗이 씻어서 다 말렸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 모든 실패를 잊고 쉬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극도의 허탈감과 피로감으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순간에 다시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명령하셨다. 명령을 하려면 차라리 그물을 씻고 말리기 전에 할 것이지, 그물을 깨끗이 씻어서 말리고 난 다음에 명령할 것은 뭐란 말인가? 게다가 베드로에게는 다시 호수 중앙의 깊은데 까지 노를 저어서 갈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호수 중앙까지 몇 시간에 걸쳐 노를 젓고 그물을 내리고 다시 호숫가로 돌아온다면 이미 해가 중천에 뜨고 하루가 지나고 말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낮과 밤이 바뀐 올빼미형 인간으로 바이오리듬이 맞춰진 베드로에게는 극심하게 피로한 시간들이었다. 베드로는 이처럼 육신의 극한적인 피로와 내면의 허탈감을 뒤로한 채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한 것이다.

 

둘째, 베드로는 경험과 상식의 세계를 극복했다. 예수님이 다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명령한 시간은 아침이었다. 이미 해가 뜨고 나면 세마포 그물을 내려 보았자 물고기들이 멍청하게 그물 안으로 달려들 리 없었다. 이는 갈릴리에서 수십 년간 잔뼈가 굵은 베테랑 어부 베드로에게는 경험과 상식에 기초한 기본적 진리였다. 피곤한 몸을 간신히 이끌고 깊은 데까지 가 보았자 물고기가 걸려들 리 없는 시간에 예수님은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베드로는 자존심을 극복했다. 베드로는 물고기 잡는 데 이골이 난 베테랑 어부였다. 다른 분야에서라면 몰라도 물고기 잡는데서 만큼은 베드로도 전문가로서의 소신과 자존심이 있지 않았겠는가? 이런 갈릴리의 어부 베드로에게 물고기 잡는 데는 완전 비전문가인 목수 예수님께서 밤새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해 허탈해진 베드로에게 훈수를 두고 코치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힘겨운 순종의 결과 베드로는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가득 걷어 올린 물고기는 한 배로 충분하지 않아 두 배로 나누어 실어야 했다. 베드로가 두 배에 가득 실은 어획량은 성경 시대 배의 크기를 기준으로 4분의 3톤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이는 2주간의 어획량으로서 갈릴리를 주름잡던 베드로의 인생에서 처음 경험하는 최고의 대박이 나는 순간이었다.

베드로가 만선을 하고 와서 예수님께 고백한 말은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고백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부들의 생활에서 바다는 바다를 주관하는 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각 나라와 문화마다 고유한 바다의 신이 있는데 그리스는 이를 포세이돈이라 불렀고 로마는 넵튠이라고 불렀다. 성경 시대 이스라엘에서는 바다의 신으로 이 있었다. 많은 나라에서 어부들은 출항에 앞서 바다의 신에게 제사를 드렸다. 이는 바다의 신을 기쁘게 해 주어야 고기들을 많이 몰아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베드로의 활동 무대인 갈릴리 호수는 물고기반 고기 반으로 불릴 정도로 물고기가 잘 잡히기로 유명했다. 그렇다면 본문에 나오는 밤이 새도록 수고했는데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한 상황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실 이것은 물고기 가 많은 갈릴리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밤새 그물을 내렸는데 한 마리의 물고기도 걸리지 않았다는 것은 베드로의 어부 생활에서 좀처럼 경험하지 못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이러한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순간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베드로를 소스라치며 놀라게 했다. 이것은 바다의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혹시 내 앞에 서 있던 분은 신이 아닐까? 혹시 지난밤에 한 마리도 못 잡고 허탕을 치게 한 것도 저분이 부린 마술 때문이 아닐까? 이런 모든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자 베드로는 자신이 단순한 선생이 아닌 신적인 존재 앞에 서 있음을 인식한 것이다. 베드로는 자신에게 명령을 내린 예수님을 신과 같은 신적인 존재, 최소한 신이 보낸 대리자, 즉 신인으로 인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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