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고라신과 벳새다에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해주었는데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저주가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 행하였으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서 회개하였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두로와 시돈은 이세벨의 고향으로 우상을 섬기는 곳인데도 고라신과 벳새다는 더 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회개하라고 외쳤지만 강퍅하여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고라신 Chorazin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눅10:13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미국의 복음 전도자인 드와이트 무디는 "믿음은 최대의 것을 얻고, 사랑은 위대한 역사를 만들며, 겸손은 가장 좋은 것을 보장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을 영접한 자들이 누릴 최대한의 행복을 말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가 된다면 얼마나 비참한 지경에 이를 것인지 생각해 봅시다. 본문의 고라신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예수님으로부터 책망받은 성읍입니다.
1. 복음에 대해 무관심했습니다
1)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음
고라신은 가버나움 북쪽 약 3Km 지점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동안에 종종 설교하시고 많은 이적을 베푸신 곳입니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은 완악하여 주님의 가르침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아이들이 장터에서 하는 놀이를 비유로 들어 책망하셨습니다. 친구가 피리를 불어도 다른 친구들이 춤을 추지 않습니다. 이는 결혼식 놀이에서 가져온 비유인데, 결혼식의 기쁨을 보고도 같이 즐거워하지 않는 무감각한 태도를 꼬집은 비유입니다. 또 한 친구가 애곡 하는 흉내를 내어도 동료들이 가슴을 치며 슬퍼하지 않습니다. 이는 장례식을 흉내 낸 놀이에서 가져온 비유로, 장례식의 슬픔에 대해서도 동료들이 무감각하게 쳐다보기만 하는 것을 꼬집고 있습니다. 고라신의 무감각한 영적 상태가 바로 이와 같았습니다.
2) 세례 요한의 선포에도 귀 기울이지 않음
결혼식이나 장례식에서 무감각하게 아무런 동조를 보이지 않는 태도는 복음에 무감각했던 고라신 사람들의 완악함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미 세례 요한의 회개 선포와 복음 전도를 들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의 선포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영적으로 무디어진 고라신 사람들은 세례 요한의 선포에 대해 무덤덤하게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더구나 세례 요한의 선포는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었기에 오히려 요한의 선포를 멀리하려 들었습니다. 이들이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 사역에 무감각했던 것은 그들의 완악함으로 볼 때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2. 이적만 좇는 무리들이었습니다
1) 갈릴리에서 행해진 많은 이적을 봄
예수님께서는 고라신에서 약 3Km 떨어진 가버나움에서 많은 이적을 베푸셨습니다. 문둥병자를 치유하셨고(마8:1-4), 백부장의 하인의 중풍병을 고치셨으며(마 8:5-13),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낫게 하셨습니다(마 8:14-15). 이 소문은 가버나움에서 갈릴리 전역에 퍼졌습니다. 고라신 사람들도 가버나움에서 일어난 많은 이적에 대해 들었습니다. 이들은 곧장 그리스도의 이적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지만 이적을 보고 겸손하게 자기 죄를 인정하기보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이적만을 좇았습니다. 마음을 열지 않는 자들은 고라신 사람들처럼 이적을 보고도 복음에 대해 깨달음이 없고, 복음을 영접하지 못합니다. 그저 획기적이고, 놀라운 일에 대해 호기심을 가질 뿐 진리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2) 예수님의 구속 사역에 대해 무관심하였음
예수님의 이적을 보고, 들으면서도 믿지 않았던 고라신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믿지 않았습니다. 심히 사악하고 부패했던 두로와 시돈도 그리스도를 영접했는데 그리스도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고라신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라신 사람들에게 장애가 된 것은 그리스도를 적극적으로 대적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듣고도 믿지 않으며, 진리에 관심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같은 영적 불감증은 거룩한 공동체를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 하나인 라오디게아 교회의 영적 무감각을 책망하시면서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덥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계 3:15)고 권면하셨습니다.
3. 구원받았다는 착각을 했습니다
1) 회개하지 않고도 구원받았다고 착각함
고라신을 비롯한 가버나움과 벳새다 지역은 일찍이 세례 요한의 회개 메시지가 선포된 곳입니다. 하지만 완악한 이곳의 주민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오셨다는 메시지를 전하여도 그들은 자신들이 죄인이며, 회개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고라신 사람들은 구원받았다고 착각했습니다. 영적으로 무지한 이들 주민들은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고, 세례 요한의 회개 선포를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구원받았다는 헛된 신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2) 믿지 않고도 구원받았다고 착각함
고라신을 비롯한 벳새다, 가버나움 지역의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기사와 이적을 많이 체험하고 목격하였습니다. 이들 주민들은 그리스도의 이적을 가장 많이 체험하고 목격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구원받았다고 착각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면서도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가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구원받았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이는 구원에 상응하는 행위가 따르지 않는 잘못된 기대와 소망이었습니다. 진정으로 구원 얻기에 합당한 자는 그분의 말씀을 멀리서 듣는 자가 아닙니다. 주님의 이적을 목격한 자도 아닙니다. 주님 앞에서 주님의 말씀과 능력을 힘입어 자기 죄를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는 자만이 구원에 합당한 자입니다. 죄에 대한 회개와 주를 영접하는 믿음이 없이는 구원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물론 고라신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핍박하거나 복음에 대적하여 맞서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에 대한 무감각으로 인해 고라신은 예수님의 책망을 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자기 죄에 대해 철저하게 회개하고, 복음을 영접하여, 구원의 복음에 헌신할 때 영적 무감각에서 벗어나 복음의 편에서 적극적으로 그의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일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니엘 1장 히브리어 설교말씀] 다니엘의 뜻을 정한 신앙(단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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