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구약성경 말씀

[창세기 28장 기도에 대한 말씀] 야곱의 벧엘 서원 기도(창 28:1-22)

르호봇 2024. 1. 13.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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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8장 기도에 대한 말씀에서는 야곱이 에서의 눈을 피하여 밧단 아람으로 도망칠 때 벧엘에 머무르게 되면서 잠을 자게 됩니다. 야곱이 벧엘에 있을 때 꿈을 꾸게 되는데 하나님이 야곱에게 축복했습니다. 야곱은 잠에서 깨어나 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하게 됩니다.

 

야곱의 벧엘 서원 기도(창 28:1-22)

 

이삭이 야곱을 밧단아람으로 보냄(1-5)

28:1-2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부탁하여 가로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너의 외조부 브두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

이삭이 야곱을 불러 축복해 주면서 가나안 사람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밧단아람으로 가서 와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고 말했다.

야곱이 부모를 떠나 외삼촌댁으로 가게 된 이유는

첫째, 가나안 땅에서 아내를 취하지 않고 외삼촌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 이유에 불과하다.

둘째, 에서가 죽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실제적 이유이다 (27:41-43).

셋째, 장자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다.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것 때문에 핍박을 받아 밧단아람의 외삼촌댁으로 피하여 가게 된 것이다. 야곱이 인본주의를 써서 장자의 명분을 빼앗은 것은 잘못되었으나, 그가 인본주의를 쓰지 않았다고 해도 장자의 축복을 받게 되면 그로 인하여 에서의 미움을 받아 쫓겨나게 될 것이다. 단지 야곱이 인본주의를 쓴 까닭에 형을 더욱 격노하게 했고 핍박이 커진 것이다. 야곱이 핍박을 받지 않으려면 장자의 축복을 포기하고 양보하면 되겠지만 그것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약속이요 기업이기 때문이다.

성도들도 믿음을 지키면 핍박을 받게 되나, 그때에 진리를 양보하지 말고 믿음과 인내로써 끝까지 나아가야 한다.

28:3-4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어 너로 생육하고 번성케 하사 너로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 주사 너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너의 우거하는 땅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해 준 내용이다.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야곱이 번성하여 여러 족속이 될 것과 메시아의 축복이 포함되어 있다.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신 복을 가리키며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축복을 가리킨다(12:2,3; 15:7). 야곱이 에서의 핍박으로 인하여 피해 가지만 그에게는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축복이 함께 한다.

28:5 이에 이삭이 야곱을 보내었더니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으니 라반은 아람 사람 브두엘의 아들이요 야곱과 에서의 어미 리브가의 오라비더라

야곱이 그 부친의 말대로 밧단아람에 사는 외삼촌 라반에게 간 사실을 총론적으로 말했다.

에서가 이스마엘의 딸을 취함(6-9)

28:6-9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취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라 하였고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좇아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 아비 이삭을 기쁘게 못하는지라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취하였더라

에서가 자기 아내들이 여호와를 모르고 우상을 섬기는 일로 인하여 부모에게 근심되게 한 것을 알았고(26:34-35), 또 부모가 동생 야곱에게 가나안 여인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신자의 가정인 외삼촌 집으로 가서 아내를 취하라고 밧단아람으로 보낸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에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하여 본처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 마할랏을 또 아내로 취하였다. 이것을 보면 에서의 효성이 지극하다. 야곱은 20년 동안 밧단아람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지 못했으나, 에서는 부모를 모시고 섬겼다. 이렇게 인간적인 면으로 볼 때에는 에서가 야곱보다 나은 면이 많이 있으나 불행히도 그에게는 믿음이 없었다. 반대로 야곱은 인간적인 면에서는 에서보다 못한 점이 많이 있었으나 믿음이 있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었다.

야곱이 돌베개 베고 잠(10-11)

28:10-11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야곱이 하란으로 향하여 가는 이 길은 장자의 축복을 받은 일로 인하여 육에 속한 자에게 핍박을 받아 피난 가는 길이다. 부모를 작별하고 가는 길이다. 야곱이 후에 가나안 땅에 돌아와서 아버지는 다시 만났으나 어머니는 만나지 못한 것 같다. 전에 가 보지 못한 멀고 험난한 고난의 길이다. 외로운 길이다. 의지할 데가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이 홀로 가는 길이다. 앞길을 예측할 수 없는 길이다. 외삼촌댁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또 그곳에 가서도 잘 있게 될 것인가? 앞으로 언제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길이다. 그러므로 이 길은 야곱이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면서 가는 길이다. 믿음으로 가는 길이다.

이 길은 오늘날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걸어가는 길과 같다. 성도의 길은 육에 속한 자에게 핍박받으면서 가는 길이요 피난 가는 길이다. 베드로후서 1:4에 보면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라고 했다. 또한 성도의 가는 길은 고난의 길, 외로운 길이다. 찬송가에도 내 고생하는 것 옛 야곱이 돌베개 베고 잠 같습니다라고 했다.

성도의 가는 길은 돌베개 베고 자는 것과 같이 고달픈 길이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외로운 길이다. 또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길이다. 그러나 성도가 환난과 고통을 당할 때에 하나님을 더욱 의뢰하고 기도하면 그 풍랑 인연하여 더 빨리 가게 된다. 환난 가운데서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가까워지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가 평안할 때보다 환난과 핍박이 많을 때가 오히려 신령한 복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은혜의 때이다.

교역자가 개척교회 하느라고 많은 시련과 고통을 당하는 때가 좋은 때이다. 그때에 교역자가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게 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많은 은혜와 복을 주시기 때문이다. 또 그 때에 자기의 부족한 것과 연약한 것을 찾아 많이 회개하고, 바로 고치게 되므로 큰 유익이 있다. 시편 119:67에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하였다. 또 시편 119:71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서 고난 받는 기간은 큰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실제로 일제 말기나 6․25사변과 같은 큰 환난이 올 때에 성도들이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였고 많은 은혜를 받았다.

야곱이 벧엘에서 계시를 받음(12-15)

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꿈에 본즉 하나님께서 꿈을 통하여 야곱에게 계시를 주셨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꿈과 음성과 비의적현상(秘儀的現想)과 우림과 둠밈 등을 계시의 방편으로 사용하셨다.

사닥다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은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 앞에 갈 수 있음을 뜻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사닥다리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은혜가 우리에게 내려오는 사닥다리이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사자는 천사를 가리킨다. 이는 사닥다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교통이 이루어지게 됨을 가르쳐 준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이 사람과 만물에게 내려오고 성도의 기도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상달하게 되고 성도와 만물이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된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 계시를 주신 것은 장자의 축복,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축복을 야곱에게 허락하여 주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야곱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축복을 다 받게 되었다.

28:13-15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여덟 가지의 축복을 약속해 주셨다.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약속대로 반드시 야곱을 구원해 주실 것. 나는 여호와니 여호와는 약속의 말씀을 지켜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가나안 땅을 야곱과 그의 자손에게 주실 것.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야곱이 누운 땅은 루스(벧엘)이며 가나안에 속한 땅이다. 그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허락하신 약속의 땅이다..

야곱의 자손이 창성하게 해 주실 것 이것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로 인하여 믿음의 자손이 많아질 것을 가리킨다.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약속의 후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자가 땅의 티끌과 같이 많아질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 말씀은 또한 진리가 승리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 지금은 야곱이 돌베개 베고 자는 외롭고 미약한 존재이나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이 있으므로 그가 반드시 승리하고 복을 받을 것이다.

야곱의 자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나시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될 것.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그것을 의미한다. 갈라디아서3:16에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라고 했다.

야곱과 함께 해 주실 것.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시는 것은 야곱이 다른 사람보다 나아서가 아니라 그의 믿음 때문이다. 야곱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었고 그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다. 이와 같이 신앙과 말씀이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해 주신다.

야곱이 어디로 가든지 지켜 주실 것. 야곱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고 사명이 있기 때문에 그 일을 다 이루기까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지켜 주신다.

야곱을 인도하여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해 주실 것.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한 땅이기 때문에 반드시 야곱을 인도하여 그 땅(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오게 해 주실 것이다.

야곱에게 허락한 것을 이루기까지 야곱을 떠나지 아니하실 것. 하나님께서 야곱을 붙들고 하나님의 뜻을 반드시 다 이루실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야곱을 붙들고 사용하시며 일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실 것이다.

야곱이 잠 깨어 벧엘이라 칭함(16-19)

28:16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야곱은 지금까지 자기 아버지 이삭이 쌓은 제단에만 하나님이 계신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이곳에도 계신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천지에 충만하시고(23:24), 무소부재하시므로 성도가 어디에 있든지 다 보시고 기도를 들어주시고 권고하여 주신다.

28:17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하나님의 전이요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므로 하나님의 전이라고 하였다. 하늘의 문 야곱이 그곳에서 천국이 열리고 사닥다리가 하늘에 닿은 것을 보았으므로 그곳을 하늘의 문이라고 했다. 야곱과 같은 신앙으로 믿음의 길을 걷는 자에게는 하늘 문을 열어 주시고 하나님을 만나게 해 주신다. 성도가 신령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과 교통 하는 곳은 어디나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는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이 그를 찾아가시고 그 예배를 받으신다(4:23).

28:18-19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 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야곱이 베개 하였던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기름을 부었다. 기둥으로 세운 것을 보면 그 돌이 상당히 큰 것 같다. 야곱이 기름을 부은 것은 하나님의 집으로 거룩하게 구별한 것을 증거 하기 위해서였다. 기름은 구별된 곳이나 구별된 사람에게 부었다(8:10,30; 30:25 참조).

벧엘 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이다. 야곱이 돌기둥을 세우고 기름을 부은 것은 벧엘의 신앙에서 떠나지 않고 벧엘의 신앙에 굳게 서기 위한 결심을 나타낸다. 다시 말하면 벧엘의 신앙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겠다는 증표이다. 벧엘의 신앙이란 하나님의 집을 떠나지 않는 신앙, 하나님과 교통 하며 하나님의 약속에서 살며 그 약속의 말씀을 바라보며 이루어 나가는 신앙이다.

야곱의 서원(20-22)

28:20-22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야곱이 잠을 깨어 큰 기쁨과 감격에 넘쳐 하나님께 서원을 하였다.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이것은 야곱이 조건을 붙여서 서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평안히 돌아가게 해 주실 것을 믿고 믿음으로 서원하는 것이다.

성도가 때로는 하나님께 서원하는 것이 좋다. 바울도 하나님께 일찍이 서원한 것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다고 했다(18:18). 서원은 맹세와는 다르다. 성도가 서원함으로 자신의 결심이 더욱 굳어지고, 변함없이 실행하게 된다. 보통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하나님 앞에 서원하는 일이 많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을 때에 감사하여 서원하는 일도 있다.

성도가 서원을 하고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가 된다. 성도가 하나님께 한번 서원한 것은 지켜야 한다. 신명기 23:21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라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지 못하고 잘못 서원을 한 것은 그 서원을 취소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행해야 한다. 그러나 자기 육신의 유익을 위해 이기주의로 서원을 취소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시편 15:4에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라고 하였다. 진리에 어긋난 문제가 아니면 성도가 서원한 것을 지켜야 한다.

여기서 야곱이 세 가지 서원을 했다.

첫째,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모시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먼저 야곱과 함께 하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믿고 거기에 협력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참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이다. 구원 역사는 하나님께서 단독적으로 하시는 것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사람이 협력해야 한다. 특히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문제는 사람이 협력해야 한다. 사람이 협력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동행해 주는 혜택을 받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주셨으나 야곱이 제 생각과 제 뜻대로 나아가면 하나님이 동행해 주는 축복을 받지 못한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12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라고 했다.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붙잡고 푯대(목표)를 향하여 가는데 바울 자신도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서 좇아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 성도를 붙잡고 당신의 뜻대로 인도하실 때에 나도 그 일을 하려고 힘을 써야 그 일이 성공이 되고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있다.

둘째,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될 것이요 야곱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증거로 돌을 기둥으로 세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 체험 위에다가 성전을 세운다는 것이다. 야곱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허락하신 약속을 듣고 믿었다. 그러므로 그가 장자의 축복을 귀히 여겨 하나님의 기업에 참여하려는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있던 차에 벧엘에서 계시의 말씀을 받게 된 것이다.

이 계시는 야곱이 아버지를 통하여 받은 것보다 더 깊고 더 확실하고 명백한 계시이다. 그 진리는 그 시대에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진리였다. 이와 같이 귀한 진리를 야곱이 그 밤에 받고 깨달았으므로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흘러 떠내려 보내지 않기 위한 증표로써 돌기둥을 세운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신앙으로 체험한 것을 기념하여 깨달은 진리를 확실히 붙잡고 그 진리를 떠나지 않으려고 돌기둥을 세운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하는 신앙이다. 이는 마치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신앙 고백을 할 때에 예수님이 이 반석(베드로가 깨달은 진리) 위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16:18).

하나님의 전이될 것이라고 한 말은 영적 성전을 짓겠다는 뜻이다. 보이는 성전보다 보이지 않는 영적 성전을 짓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영적 성전의 기초는 사도와 선지자의 터(하나님의 말씀)이며 (2:20), 각자가 공력을 들여 금, , 보석, 나무, 풀과 짚으로 짓는다(고전 3:12). 우리 개인의 성전을 지어 나가는 것은 자기 영이 자라나며 신앙 인격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5:12-14).

영이 점점 자라나서 능력이 있어야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일을 감당해 나갈 수 있다. 야곱은 벧엘에서 계시를 받아 깨달은 진리를 세워 나가야 하고, 베드로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고백한 진리를 세워 나가야 한다. 오늘날 우리도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신 진리로써 교회를 세우고 진리의 빛을 어두운 세상에 비추어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딤전 3:15).

셋째,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이것은 십일조를 드리겠다는 서원이다. 십일조의 근원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선악과나무를 두어 따먹지 못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에덴동산의 주인이신 것을 알게 하며 또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이 허락한 것만 취하여야 되고 말씀에 금한 것을 취하면 하나님께 심판받는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십일조 제도는 어떤 것이 하나님의 것인지 알게 하며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쳐 드려야 될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정하신 것이다.

십일조를 실제로 드린 사실은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 4대 연합군을 물리치고 돌아오는 길에 멜기세덱에게 노획물의 십분의 일을 드린 것이 맨 처음이다.

말라기 3:10에는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다. 온전한 십일조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전부 다 바치는 것을 가리킨다. 시편24:1에는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천상천하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인 줄 알고 하나님께 바쳐 놓고 살아야 한다. 고린도전서 6:19-20에는 우리 몸은 우리 것이 아니요 값으로 산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소유와 우리 몸과 자녀들도 다 하나님의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전부 하나님께 바쳐 놓고 사는 생활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생활이다. 소득의 십일조를 바치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뜻으로 바치는 것이다. 이 십일조를 바치지 않는 것은 죄이다. 예수님께서도 십일조를 바치라고 하셨다(23:23).

[신명기 18장 하나님 말씀] 레위인과 참 선지자 구별법(신 18:1-22)

 

[신명기 18장 하나님 말씀] 레위인과 참 선지자 구별법(신 18:1-22)

신명기 18장 하나님 말씀은 레위인과 참 선지자 구별법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한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분깃을 허락했다. 여호와 화제물과 그 기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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