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5장 주석 강해설교 말씀은 하나님 중심의 삶을 권면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본주의 사상이 아니라 신본주의 사상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예수님 중심 사상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앞세우고 예수님을 자랑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을 권면(전 5:1-20)
Ⅰ. 하나님 앞에서 주의함 5:1-3
세상의 허무함을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솔로몬의 계획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끌며 우리의 직책에 충실하게 하려는 것이다.
(1) 여기서 솔로몬은 우리를 '하나님의 전' 곧 공공 예배의 장소로 보낸다. 우리는 피조물에 대한 실망을,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돌리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말씀과 기도 속에는 어떤 상처에도 바를 수 있는 기름이 들어 있다.
(2) 또한 솔로몬은 우리에게 그곳에서 우리의 행동을 조심할 것을 명한다. 종교적 실천들은 헛된 것이 아니지만, 만약 우리가 잘못 수행하면 그것은 헛된 것이 된다. 네 발을 삼갈지어다. "네 발을 하나님의 전에서 멀리 하지 말고(참조. 잠 25:17), 잘 살펴서 다니며 그 가는 길을 주의하라. 경건한 정숙함으로 하나님의 예배를 참예하며,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며, 성급하게 다니지 말라. 즉 '발이 급한 사람'처럼 다니지 말라(잠 19:2). 또한 너의 생각으로 하여금 배회하거나 방황하지 못하게 하라. 너의 마음이 잘못된 대상에게 쏠리지 않도록 하라."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모세와 아론에게 내던졌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명령을 넌지시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출 3:5;수 5:15). 우리는 우리가 드리는 제사가 '우매자의 제사'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즉 제사의 의미와 본질은 생각지 않고, 상징과 의식에 주저앉아 버리는 '우매자의 제사'를 드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죄 인지도 모르고 악을 행할 수가 있다.
인간의 악한 마음은 예배의 행위 속에서도 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읽히고 가르쳐질 때에 거기에 근실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때때로 듣는 것은 순종하는 것을 대신한다. 왜냐하면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기 때문이다(삼상 15:22;사 1:15,16).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는 언제나 극히 조심해야 한다(2절).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즉 기도나 서약이나 주장할 때에 그리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우리가 아무런 볼일도 없이 온다면, 갈 때에도 아무런 이익을 얻지 못하고 갈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말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서 나와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에 말이 우리의 생각을 앞지르지 말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생각은 곧 하나님께 드리는 말이다. 우리의 말하는 것이 마음에서 나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의 말은 갑작스런 열기나 격정이 아닌 안정된 마음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그곳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축복과 찬송보다도 훨씬 높이 계시다.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땅은 하나님 보좌의 발등상이요, 하나님과 어떤 교제도 가질 자격이 없는 무가치한 곳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말씀을 올릴 때에는 정중하고, 겸손하며, 진지하고 삼가는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Ⅱ. 서원과 말한 것을 지킬 것 5:4-8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네 가지 사실에 대하여 권고를 받는다.
(1) 서원한 바를 양심적으로 지켜야 한다.
1) 서원한 마음을 제어하는 것이다(민 30:2). "네가 어떠한 환난을 의식하거나(시 66:14) 어떤 자비를 목적으로(삼상 1:11) 하나님께 서원했다면, 너는 네 입을 여호와께 열었으므로 취소할 수 없음을 알라. 그러므로 너의 약속한 것은 지키라." 서원한 것을 갚으라. "그것을 온전히 갚고 조금이라도 갚지 않는 부분이 없게 하라."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리기로 서약했는가? 만약 그렇게 서약했다면 그 말한 대로 행하라. 갚기를 더디게 말라.
2) 우리가 우리의 서원한 바를 신속하고도 기쁜 마음으로 갚아야 할 두 가지 이유가 여기 제시되어 있다.
①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 되는 까닭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하나님께 속임수를 쓰려고 계획한 것처럼 되어서, 결국은 어리석은 짓이 되고 만다.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②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격이 되는 까닭이다. 즉 그것을 어긴 형벌을 받아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럴 바에는 차라리 서원하지 않는 것이 낫다. 서원하지 않은 것은 단지 어떤 일을 하지 않고 넘어간 것에 불과하지만,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은 사기죄와 거짓 맹세의 죄에 빠지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거짓말하는' 것이다(행 5:4).
(2) 서원함에 있어서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우리는 악한 것이나 죄악의 소지가 있는 것에 대해서는 결코 서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서원은 잘못 발해진 것으로서, 지켜지지 말아야 하는 까닭이다. 헤롯의 성급한 약속이 그로 하여금 세례 요한의 목을 자르게 만들고 만 것과 같은 서원에 의하여 '자기 입으로 자신의 육체를 범죄케 말라.' "서원을 했으면, 그것을 교묘하게 피해서 빠져나갈 생각은 하지 말라. 제사장(여기서 만군의 여호와의 천사 혹은 사자라고 불리고 있음) 앞에서 말하기를, 다시 생각해 보고 마음을 돌렸으며 그 서약을 지켜야 할 의무를 벗고 싶다고 말하지 말라. 반드시 그 서원에 충실해야 하며,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말라." 만약 우리가 부정직하게도 우리 입의 말을 취소하고, 우리의 서원을 폐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우리의 계획을 실패케 하실 것이다.
(3) 하나님 경외하기를 계속해야 한다(7절). 옛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꿈에 의하여 자기들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척하면서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의 꿈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거의 잊어버리게 만들었다(렘 23:25,26). 그런데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놀랍고 기묘한 꿈을 꾸고서는 마치 자기들이 재난을 미리 감지하기나 한 것처럼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한다. 꿈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많은 꿈을 꾸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꿈속에는 헛된 것이 많다.' 그러므로 "꿈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하라. 꿈을 자꾸 반복하는 짓은 이제 그만두라. 또한 꿈을 강조하지도 말고 거기서 결정적인 결론을 이끌어내지도 말며,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라."
(4) 정의감과 인간을 위한 염려를 품고 있는 선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빈민을 학대하는 것'과 '공의를 박멸하는 것'(법의 허울 속에서 권력의 비호를 받는 압제)을 보면 분노를 느낀다. 나라 전체는 훌륭한 정부의 통치를 받고 있을지라도 어떤 특정한 지방이 악한 사람에게 맡겨지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사태가 밝아 보이지 않을 때에, 우리는 비록 압제자들이 높을지라도 하나님은 피조물의 '가장 높은 자보다 더 높은 분'이시며, 제왕들 중의 가장 높은 자보다도 더 높은 분이시라는 사실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은 '온 땅 위에 가장 높은 분이시며' 그의 '영광은 하늘들 위에 있다.' 비록 압제자들이 지금은 안전하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조목하고 계시며 그들인 난폭하게 공의를 거스른 일들을 모두 갚아 주실 것이다.
Ⅲ. 재산도 헛됨 5:9-17
솔로몬은 여기서 '육체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헛되듯이 큰 부와 그에 대한 '안목의 정욕'도 헛되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사람은 재물을 소비함으로써 행복을 얻지 못하듯이 그것을 쌓아 두더라도 역시 행복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1) 솔로몬은 땅의 소산이 인간 생명의 유지와 평안을 위하여 귀한 것임을 수긍한다(9절). 땅의 이익은 뭇사람을 위하여 있나니. 모든 사람이 그것을 필요로 하며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정해진 일이다. 그리고 땅에서는 모든 사람이 쓰기에 충분한 양이 나온다. 땅은 우리의 곳간이며 짐승들은 우리와 함께 토지의 공영자이다. 왕도 밭의 소산을 받느니라. 따라서 그 소산이 없다면 굶어 죽을 것이다. 이것은 농부의 소명에 큰 명예를 입혀 준다. 이는 인간 생명의 유지를 위해서는 농부의 직책이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필요한 것인 까닭이다.
(2) 솔로몬은 생명의 유지를 위한 것 이상의 부, 곧 사용하기 위함이 아니라 축적을 위한 재산은 헛된 것이며 그것이 사람을 편안하거나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이 가지려 한다(10절). 정상적인 욕망은 그 요구하던 것이 획득되면 진정이 되지만, 타락한 욕망은 만족을 모른다. '은 그 자체만 가지고서는' 충족시킬 수 없는 인간의 신체적 욕구들이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배가 고프다면, 그때에 은을 먹는 것은 마치 진흙덩이를 먹는 것과 똑같이 사람의 허기를 채워 주지 못한다. 하물며 세상적인 풍요가 영적인 욕구를 채워 주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재산이 더하면 먹는 자도 더하나니(11절). 음식이 많아지면 입도 많아진다. 재산이 늘어나는가? 그와 동시에 가족의 수도 훨씬 늘어나면서, 자녀들도 성장해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가?
사람의 소유가 점점 증가하게 되면 그에 따라 그것들을 비치해 둘 수 있는 더 나은 집이 필요하다. 주인은 자기의 소유로써 자기가 누릴 수 있는 실제적인 유익만큼 주위의 사람들도 누릴 수 있게 배려한다. 그런데 이때에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행한다는 만족감은 오직 주인만이 가지는 것이며, 이것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되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는 사람에게는 분명히 만족을 주는 일이다. 사람은 그 소유가 많을수록 그것에 대한 염려도 늘어나게 되는데, 이것 때문에 그들은 어쩔 줄 모르게 되고 수면을 방해받게 된다(12절). 원기를 되찾게 하는 수면은 이 세상에서의 생활을 위하여 음식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열심히 일을 하고 나서 얻은 소산만으로 사는 사람들이 대개는 가장 잠을 잘 잔다. 노동자는...잠을 달게 자거니와. 때때로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이 자주 밤에 단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소유가 많은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손해를 입을 위험성이 더 많다(13절). 내가 해 아래서 큰 폐단 되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재산을 열심히 축적해서 안전하게 지키고 있는 자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 되도록 지키는 것이라. 그들에게는 차라리 그 재산이 없었더라면 더 좋을 뻔했던 것이다. 그들은 '그 재산으로 해를 끼친다.' 즉 그 재산은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육체의 정욕을 만족시킬 수 있게 만들어 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압제하며 가혹하게 다룰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자주 그들은 자신의 부로 말미암아 해를 입게 된다. 만약 그들이 부자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다른 사람을 압제하며 가혹하게 다룰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자주 그들은 자신의 부로 말미암아 해를 입게 된다. 만약 그들이 부자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다른 사람의 시기를 받지도 않았고 도적을 맞지도 않았을 것이다. 큰 고통과 함께 축적된 재물은 그들이 그 재물을 지키고 증가시키기 위하여 쏟던 바로 그 고통과 근심에 의하여, 즉 '재난을 인하여 패망한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모든 것을 얻음으로써 모든 것을 잃는다.
사람이 죽을 때에,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는 그 모든 것을 뒤에 남겨두고 가는 것이다(15,16절).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 데로 돌아가고. 육신에 관한 한 우리는 올 때와 똑같이 돌아간다. 흙은 원래대로 땅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의 영혼까지도 처음에 왔던 대로 성화되지 못한 채 돌아간다면, 이것은 슬픈 일이다. 그 마음이 이 세상에 집착되어 있는 사람은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한다'는 것을 슬픈 폐단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재물은 그와 함께 저 세상으로 가지는 못하며 그곳에서는 재물이 조금도 그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 만약 우리가 신앙생활로 수고했다면, 우리는 그 수고로써 얻은 은혜와 평강을 우리의 마음속에 가지고 갈 것이며, 그것을 영원토록 더 많이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원한 양식이다. 사람들은 임종 시에, 자기가 수고하여 얻은 모든 이익이 바람과 같이 사라져서 그것이 어디로 갔는지 알지도 못하게 될 때에야 비로소 자기들의 수고가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였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소유가 많은 사람들이 만약 마음을 그 소유에 쏟는다면, 그들의 죽음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그 삶도 역시 불편한 것이다(17절). 재산을 늘리는 데에 그렇게도 혈안이 되어 있는 이 탐욕스러운 속인들은, '일평생 어두운 데서 먹으며 번뇌와 병과 분노가 그들에게 있게 된다.' 그는 자기의 재산에서 아무런 쾌락도 아무런 기쁨도 누리지 못하는데, 이는 '그가 슬픔의 떡을 먹으면서도'(시 127:2), 다른 사람이 그것을 먹는 것에 대하여 크게 화를 내는 까닭이다.
Ⅳ. 낙을 누리는 분복 5:18-20
쌓아 놓은 부가 허무하다는 사실에서 솔로몬은,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우리의 소유를 선용해서 그것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선을 행하며, 거기서 우리 자신과 가족이 평안을 얻는 것임을 추론한다. 솔로몬은 앞에서 이미 이 사실을 역설하였다(2:24;3:22).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는 '날 수'를 정해 주셨다(욥 14:5). 그러므로 우리는 그 날들을 '마음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주 우리 하나님을 섬기면서' 보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소명인 직업을 고역으로 여기지 말아야 하며, 또한 우리 자신이 거기에 질질 끌려가는 노예처럼 되지 말고, 우리가 당황이나 불안에 빠지지 않고 해낼 수 있는 일 이상의 벅찬 일을 벌이지 않으면서, '수고함으로 즐거워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기쁘게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 은사의 목적에 부응하는 것이며, 합리적이고도 관대하게 세상에서 선을 행하고 그들의 소유를 가장 잘 이용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그들의 공로이자 그들의 위안이 된다. 이것이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거기에는 책임감과 단정함이 따른다. 그렇게 행하고자 하는 심정은 하나님의 섭리의 모든 은사를 존귀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이것은 세상에서의 우리 생활에 부수적으로 따라다니는 많은 고통과 시련에서 우리를 건지는 길이다(20절).
저는 그 생명의 날(즉 슬픔과 뼈아픈 고통의 날들, 노동하는 날들, 통곡의 날들)을 깊이 관념치 아니하리니. 그는 그날들을 잊어버리거나, 아니면 흘러가 버린 물처럼 기억할 것이다. 그는 자기의 십자가들을 크게 걱정하지 않을 것이며, 그것의 쓴맛을 오래 간직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저의 마음의 기뻐하는 것으로 응하시는' 까닭이며, 그의 노동의 모든 슬픔을 그것의 기쁨으로 채워 주시며, '그의 손에 수고한 대로 먹게' 하심으로써 그의 수고를 보상해 주는 까닭이다.
[창세기 4장 성경 주석 강해] 가인과 아벨의 첫 제사(창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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