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구약성경 말씀

[창세기 4장 성경 주석 강해] 가인과 아벨의 첫 제사(창 4:1-8)

르호봇 2024. 3. 12. 11:21
반응형

창세기 4장 성경 주석 강해 설교는 가인과 아벨이 여호와께 첫제사를 드리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과 아벨은 첫제사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고 아벨의 제사는 받았습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제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첫 제사(창 4:1-8)

 

I. 가인과 아벨을 낳음 4:1,2

아담과 하와에게는 많은 아들 딸들이 있었다(5:4). 가인과 아벨은 그 형제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둔 사람이었던 것 같다.

1. 두 아들의 이름(1,2)

(1) 가인은 "얻음"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그 이유는 하와가 그를 낳았을 때 기쁨과 감사와 더불어 커다란 기대를 가지고서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자녀들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녀를 늘려 주신다는 사실에 대해 마땅히 감사를 드려야 한다. 우리가 자녀들이란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그 하나님은 친히 지으시고 주신 선물을 저버리지 아니하신다는 것을 알 때 자녀들에게서 오는 우리의 위로는 갑절이 되고 신성하게 되는 것이다.

(2) 아벨은 "헛됨"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하와는 자기가 가인으로써 약속된 후손을 얻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또 다른 아들은 자기에게 헛되다고 여겼다.

2. 가인과 아벨의 직업(2)

(1) 그들은 둘 다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아버지가 순결한 상태에 있을 때조차도 직업을 주셨으며 이제 그들에게도 직업을 주셨다.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서 할 일을 갖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자녀들에게 성경과 직업을 주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실 것이다"라고 도드는 말했다.

(2) 그들의 직업이 달랐기 때문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들은 서로 물건을 거래하고 바꿀 수 있었다. 국가의 구성원들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또한 그들은 상호 간의 거래를 통해서 서로에게 더 큰 호의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 그들의 일은 그들 아버지의 직업인 농사꾼으로서의 소명에 속해 있었다.

(4) 아벨은 비록 동생이었지만 먼저 직업을 가졌고 이 본보기가 아마도 가인으로 하여금 직업을 갖게 만들었을 것이다.

(5) 아벨은 명상과 기도에 가장 유리한 직업을 선택하였다. 왜냐하면 명상과 기도에 유리하다는 이유 때문에 목축 생활은 특별히 더 좋은 직업으로 간주되어 왔기 때문이다.

. 가인과 아벨의 신앙 4:3-5

1. 가인과 아벨의 신앙(3,4)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과 아벨은 그 가족의 제사장인 아담에게 각각 '여호와께 드릴 제물'을 가져왔다. 하나님은 이렇게 해서 약속에 대한 아담의 믿음과 치료책으로 주신 법에 대한 그의 복종을 시험하셨다. 하나님은 이렇게 해서 다시 하늘과 땅 사이에 교통이 있게 하려고 하셨고 장차 올 좋은 것들의 그림자를 주려고 하셨다. 여기서 다음의 네 가지 점을 생각해 보자. 첫째, 하나님께 드리는 경건한 예배란 전혀 새로운 고안물이 아니라 예부터 있어 온 제도이다. 그것은 '태초부터 있는'(요일 1:1)것이며 '옛적의 선한 길'(6:16)이다. 둘째, 자녀들이 어릴 때 그들에게 경건한 예배를 잘 가르치고 일찍부터 훈련시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래야 그들이 장성하여 스스로 행동하게 되었을 때는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셨으니 우리는 가진 바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 넷째, 위선자들과 악을 행하는 자들도 외형적인 예배에 있어서는 가장 훌륭한 하나님의 백성들로 나타내 보일 수 있다. 가인도 아벨과 함께 제물을 가져왔다. 아니, 마치 가인이 아벨보다 먼저 제물을 가져온 것처럼 가인의 제물이 앞에 언급되었다. 바리새인이나 세리나 모두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었다(18:10).

2. 그들 신앙의 각기 다른 결과(4,5)

신앙의 모든 행위 가운데서 목표 삼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열납 하심이다. 만일 우리가 이 목표를 이룬다면 참된 예배가 이루어진 것이며 이것을 놓친다면 우리는 헛되이 경배하게 되는 셈이다(고후 5:9).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을 열납 하셨으며' 아마도 하늘에서 불을 내리심으로써 그 증거를 보여 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가인과 그 제물을 열납 하지 아니하셨다'.

(1) 그들 사이에는 인격의 차이가 있었다. 가인은 악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제물은 '헛된 제물'이었다(1:13). 하나님은 가인 자신을 열납 하지 않으셨으며 따라서 그의 제물도 열납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아벨은 의로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의인 아벨'이라고 불린다(23:35). 그의 마음은 곧고 그의 생활은 경건하였다. 하나님은 그를 거룩한 사람으로서 열납 하셨고 그러므로 그의 제물을 거룩한 제물로서 열납 하셨다.

(2) 그들이 가져온 제물에 차이가 있었다. 성경에는 아벨의 것이 가인의 것보다 '더 나은 제사'(11:4)라고 명백히 언급되었다. 아벨의 것은 제사의 성격에서나 제물의 질에 있어서 더 나았다. 가인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인 '땅의 소산', 곧 자기에게 필요 없는 것을 가져왔다. 그러나 아벨은 제물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신중했다. 아벨은 절름발이나 깡마른 것이나 찌꺼기를 제물로 선택하지 않고 '양의 첫 새끼', 곧 그에게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으로 그리고 '그 기름', 곧 최고의 것들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으로 제물을 삼았다.

(3) 무엇보다 중대한 차이는 아벨은 믿음으로 제물을 드렸고 가인은 믿음으로 드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의거한 원리 자체에 차이가 있었다. 아벨은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법칙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의 목표로 삼고 제물을 드렸다. 그러나 가인은 단지 교제를 위해서 하는 정도로만 했다. 곧 자기 자신의 신용을 보존키 위하여서만 드렸으며 믿음으로 드린 것이 아니었으므로 이것이 그에게 죄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벨은 회개의 마음을 가진 신앙인이었다. 그러나 가인은 겸손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만을 신뢰하였다.

3.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와 자신의 제사에 차별을 두신 데 대한 가인의 불만(5)

가인은 이에 대해 몹시 분을 내었고 그것이 이내 그의 얼굴에 나타났다. 첫째, 이러한 그의 분노는 하나님께 대한 그의 적대감을 나타낸다. 명백히 그는 자신의 불신앙과 위선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시지 아니한 것이라고 자신을 나무라고 통분해 해야 했었다. 우리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듣는 비난들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우리가 겸손하지 못한 마음을 가졌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둘째, 또한 그것은 자기 동생에 대한 그의 시기심을 나타낸다. 그는 자기 동생을 원수로 보고 증오심을 품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에 무가치한 자들은 흔히 하나님의 은총으로 귀하게 된 자들에 대해 분을 품는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고자 하는 잔들도 막음'으로써(눅 11:52)가인의 이러한 길을 걸었다. 시기심이란 대체로 그 자체에 뼈를 썩게 하는 형벌이 따르는 죄이다.

. 가인의 분노와 하나님의 책망 4:6,7

여기서 하나님은 가인에게 그의 분노와 불평이 어리석고 죄된 행위임을 깨닫게 하고 그로 다시 선한 성품으로 돌아오게 하여 그 이상의 악을 방지할 수 있도록 그와 변론하신다. 이와 같이 탕자의 아버지도 맏아들과 그들이 당면한 문제를 변론하였다(눅 15:28 이하).

(1) 하나님은 가인 스스로 자신의 불평의 동기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도록 말씀하신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6절). 여기서 다음 두 가지 점을 유의하자.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악적인 격정과 불만을 주목하고 계시다. 둘째, 우리는 스스로 이렇게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왜 내가 분해 하는가? 내가 분을 내는데 실제적이고 바르며 적당한 이유가 있는가? 내가 어찌하여 그렇게 급히 성을 내는가?"

(2) 하나님은 다시 가인의 마음을 바로잡으시기 위해 여기서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그에게 명백히 밝히셨다.

1)그가 하나님께 화를 내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하나님은 가인 앞에 생명과 축복을 제시하신다. "만일 네가 네 동생이 한 것처럼 선을 행했다면 너의 제물도 네 동생의 것처럼 틀림없이 열납되었을 것이다." "이제 만일 네가 선을 행한다면 다시 말해 네가 네 죄를 회개하고 네 마음과 생활을 고치며 보다 나은 제사를 드린다면 그것은 열납될 것이고 너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며 너의 위로와 명예가 회복되고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여기서 우리는 복음이 얼마나 일찍부터 전파되었는가를 보게 되고 그 복음의 은혜가 죄인들 중의 괴수인 한 사람에게까지 제공되었음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가인 앞에 죽음과 저주를 놓으신다. "만일 네가 선을 행하려 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네가 계속해서 분을 품고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해지기 보다는 하나님을 대적하여 마음이 강퍅해진다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은 뜻이다. 죄를 더하게 된다는 뜻이다. "분이 네 마음속에 있으니 머지않아 살인을 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죄의 형벌을 가져오리라는 뜻이다. 죄와 형벌은 아주 가까운 동계어다. 그래서 히브리어에서는 같은 어휘로 두 가지 듯을 모두 표현하고 있다. 죄가 집안에 숨어 있으면 저주는 죄수를 발견하기만 하면 곧 체포할 준비가 되어 있는 형사처럼 문에서 기다린다. "네가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를 위한 희생'을 모두 의미한다. 성경은, 대속 제물이신 그리스도께서 '문 밖에 서 계시다'고 말한다(계3:20). 이 모든 사실을 생각해 볼 때 가인은 자기 자신에 대해 화를 내야 했지 하나님께 대하여 화를 낼 만한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2)그가 자기 동생에게 화를 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그의 소원은 네게 달려 있는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너를 형으로 존중할 것이고 너는 장로로서 이전처럼 그를 다스릴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을 열납하셨다고 해서 장자 상속권을 그에게로 옮겨 주신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으셨고 아벨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째서 가인이 그렇게 화를 내야만 했는가?

IV. 아벨이 죽음을 당함 4:8

이 사실은 다음 두 가지 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1) 가인의 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은 가장 심각한 진홍빛 붉은 죄였다. 이 점에서 우리는 다음 몇 가지 사실들을 볼 수 있다.

1)아담이 금단의 열매를 따먹은 것은 아주 사소한 죄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으나 그 죄로 말미암아 아주 극악한 죄가 들어오게 된 것이다.

2)이것은 여자의 후손을 대적하는 뱀의 후손이 품고 있는 적의의 결과였다. 육신을 좇는 자가 '성령을 좇는 자를 핍박하는'일은 이처럼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3)여기서 또한 우리의 '시기와 미움과 악의 그리고 모든 무자비함'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게 된다. 이런 것들이 사람의 마음에 가득하면 그 사람은 살인과 같이 두려운 죄에 빠질 위험이 있다. 많은 죄들은 가인의 죄가 악화된 결과들이었다.

그가 살해한 사람은 자기의 친동생 곧 그가 마땅히 보호해야 할 어린 동생이었다.

또한 그 동생은 자기에게 조그만 잘못도 결코 행한 적이 없는 착한 동생이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에게 이 일로 말미암아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으나 그는 여전히 자신의 야만적인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겉으로 우정과 친절을 보임으로써 그 계획을 숨겼다. 70인역에 따르면 가인은 아벨에게 '들에 나가자'고 말하였다고 한다. 아람역의 부연 설명에 따르면 가인은 장차 올 심판도 없고 내세도 없다고 주장하였는데 이에 대해 아벨이 진리를 변호하여 말하자 그가 이것을 기회로 그를 때려눕혔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에 의하면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유는 '자기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왔기'때문이었다(요일 3:12).

아니 그는 자기 아우를 죽이는 가운데서 직접 하나님 자신을 공격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아벨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를 미워하였다.

(2) 아벨의 고난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담이 범죄한 이래로 줄곧 사망이 왕 노릇해 왔으나 이제까지 누가 그 사망에게 붙잡혔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사망에 붙잡힌 자기 나오게 된 것이다.

1)제일 먼저 죽은 사람은 성도, 곧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에게 열납된 자였다. 그리하여 최초로 무덤에 간 자는 천국에 갔다.

2)최초로 죽은 자는 자신의 믿음을 위하여 죽은 순교자였다. 아벨의 죽음은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면류관이 따르는 죽음이었다.

[히브리어 상형 문자] 알파벳 타브(십자가) 상형과 숫자 400의 관계

 

[히브리어 상형 문자] 알파벳 타브(십자가) 상형과 숫자 400의 관계

히브리어 알파벳은 상형문자이므로 마지막 글자인 타브는 400의 숫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십자, 표시.라는 상형에서 왔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타브는 십자가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서

rhb-bible.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