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3장에서는 사도 바울일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올 한 해 하나님의 주신 비전을 보면서 열심히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목표를 설정했다면 예수님 안에서 열심히 달려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하겠습니다.
푯대를 향하여(빌 3:13-14)
우리가 사도 바울의 생활을 회고해 보면 그 생활이 얼마나복 받은 생활이고 얼마나 성공적인 생활이었나 하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생활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여기, 자기 스스로 기록한 말씀을 보니 이 생활 가운데 일정한 푯대가 있었습니다. 즉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 목표를 바라보고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그 푯대를 잡기 위하여 달음질하고 쫓아가는 생활이었습니다.
첫째로 금년 새해가 과연 축복받는 새해가 되려고 하면 먼저 우리 생활에 있어서 푯대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목표를 바로 잡고 정해야 하겠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푯대는 헬라어 스코포스는 ‘목표, 표적, 주시하는 것’의 뜻이요, 향하여’로 번역된 헬라어는 카다로서 ~에 따라, ~의 방식에 따라, 통하여, 에게로, 함께, 일관하여’의 뜻을 가지며, 그리스도 안에서의 헬라어 엔은 안에, 곁에, 가까이에, 함께, 가운데, 밀접하게, 통하여, ~으로 말미암아의 뜻이며, 달려간다’라는 말인 헬라어는 디오코는 추구하다, 추적하다, 갈망하다, 열망하다, 찾다, 따라가다, 밀어붙이다, 서둘러가다, 쫓아가다의 뜻입니다.
어떤 사람의 생활을 가만히 보면 여러 십 년을 살되 아무런 목표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의 생활은 마치 산 위의 풀과 같아서 동풍이 불면 서로 가고 서풍이 불면 동으로 가고 바람에 밀리는 물결과 같이 바람 부는 대로 요동합니다. 키 없는 배와 같아서 물결 가는 대로 방향을 바꿉니다. 물론 이런 사람의 생활에 있어서 지조를 찾을 수 없고 의리를 찾을 수 없고 절개를 보기 힘듭니다. 이런 생활이 종국적으로 총체적인 실패로 돌아갈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목표를 정하기는 하지만 목표를 잘못 정합니다. 돈을 목표로 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돈이라고 하는 것은 한 푯대를 향하여 나가는 데에 도움이 되고 방패가 될 수는 있지만 일생의 목표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지식을 탐구합니다. 그러나 지식이 방패는 될 수 있지만 일생의 목표 자체는 될 수 없습니다. 지위가 그렇고 권력이 그렇고 다 편협하여 이 모든 것들이 인생의 궁극적 목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실패하지 않고 일생에 있어서 성공하고 의의 있는 생활을 하려고 하면 일생을 통한 제대로 된 푯대가 선명해야 하겠습니다. 이 일생을 통한 목표를 우리가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이 목표는 땅에서 찾을 수 없고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모든 인생의 푯대가 되게 하시고 목표로 정하여 달리게 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성경 전체가 말씀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그 성품, 그리스도의 그 인격, 그리스도의 그 완전무결하신 생활, 그리스도의 그 도덕적 완전성은 우리 모든 인생의 최고 목표, 최고의 푯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 자신의 뜻과 그 표현이십니다. 우리는 일생 동안 이 그리스도의 모습, 곧 하나님의 말씀을 닮아 가기 위하여 그를 향하여 달려가고 또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인격을 조성하시기 위한 목적으로 당신의 말씀이 육신이 되게 하셔서 아들로서 그리스도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셨고, 성령을 보내 주시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우리가 비록 죄 가운데서 나고 죄 가운데서 살았지만 장차는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조성해서 하나님과 교통 할 수 있고 영원히 사는 생명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모든 환경도 그 목적 달성을 돕도록 하십니다.
여기 보면,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일생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를 알기 위하여 힘썼습니다. 그와 같이 살기 위하여 힘썼습니다. 그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힘썼습니다. 심지어 그와 같이 고생하기를 원했습니다. 죽기를 원했습니다. 죽은 후에 다시 살기를 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젊었을 때는목표를 잘못 정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다음에는 그때부터 푯대를 바로 정했습니다. 어거스틴 같은 사람도 젊었을 때는 푯대를 잘못 찾았습니다. 세상의 지식, 철학에서 찾으려고 애썼습니다. 세상의 쾌락에서 찾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다 실망했습니다. 나이 30이 지나서야 푯대를 바로 찾았습니다. 그 후로는 오직 이 푯대를 향하여 달음질쳤습니다.
일생의 푯대를 바로 찾았습니까? 무엇 때문에 이 땅에서 살고 있습니까? 그저 막연히 태어났으니까 죽지 못하여 살아가고 있습니까? 분명하게 내 눈에 이 푯대가 나타나 보입니까? 오늘 새해 첫 주일에 아직 여러분의 푯대가 분명하지 않으면 이 아침에 찾으시고 확인하시고 확정하시기 바랍니다.
또 둘째로 보면 사도 바울은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렸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잡다.라는 말인 헬라어는 카탈람바노이며 ‘간절히 붙잡다, 획득하다, 자기 것으로 삼다, 깨닫다, 이해하다, 파악하다, 찾아내다’의 뜻이고, ‘잊다’라는 말인 헬라어는 에필란다노마이 이며 ‘소홀히 하다, 잊어버리다, 간과하다, 무관심하다’라는 의미입니다.
푯대를 찾은 다음에 사도 바울은 그냥 있지 않았습니다. 그 푯대를 잡으려고 달음질했습니다. ‘달려간다는 말의 헬라어는 디오코는 ‘추구하다, 추적하다, 갈망하다, 열망하다, 찾다, 따라가다, 밀어붙이다, 서둘러가다, 좋아가다’의 뜻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달음질하는데 제일 중요한 주의 사항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로, 뒤를 돌아다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경주하는 사람이 뒤를 돌아다 보연 실패하게 됩니다. 둘째로는 여기는 그 말이 없지만 히브리서 12:1을 보면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고 했습니다. 옷 같은 것, 너풀 너풀한 것을 입고는 달음질을 제대로 못합니다. 간단하게 입어야 잘 달릴 것입니다.
먼저, 달음질을 잘하려면 뒤를 돌아보지 말라.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라고 했습니다. 내가 예수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내 일생의 푯대로 삼고 그의 일생을 온전히 나의 목표로 삼고 달음질하려고 한다면, 뒤에 있는 것을 다 잊어버려야 하겠습니다. 뒤에 있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말아야겠습니다. 죄지은 것을 온전히 회개했으면 다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내 마음이 다시 상할 것이 없고 그것을 너무 생각하다가는 다시 낙심하기 쉽습니다. 사도 바울이 항상 뒤를 돌아보았더라면 그렇게 큰 이를 못 했을 것입니다.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만 죄지은 것을 회개하여 다 용서함 받았으면 돌아보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전에 슬픈 일을 당한 것도 돌아보지 않아야겠습니다. 물론 여러분 중에는 지난 1년 동안에 슬픈 일을 당한 분도 더러 있을 줄 압니다. 우리는 사람이므로 슬픈 일을 잊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슬픔도 다 주님께 맡기고 주님을 바라보는 가운데서 이것도 잊어버려야겠습니다. 이런 것을 오래 두어 두면 마음이 상하고, 마음이 상한 것을 오래 두면 상처를 다시 입어서 인격에 증상을 받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과거에 실패한 것도 잊어버려야겠습니다. 과거에 실패한 것 때문에 너무 상심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완전한 신이 아니기 때문에 실수할 수 있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에 너무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오직 우리는 새해에 새 목표만 바라볼 것입니다. 동시에 과거에 누구와 혐의를 가졌다든지 불평이라든지 불만이라든지 불화한 마음이라든지 원한, 그런 것이 있으면 온전히 다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것들은 다 달리는데 방해되고 유익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과거에 잘한 것도 잊어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과거에 잘한 것을 너무 생각하면 공연히 쓸데없이 교만해집니다. 겸손한 사람이 되려면 과거에 잘한 것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과거에 잘한 것, 또 전에 성공한 것은 앞으로의 참고자료로 삼을 것 외에는 잊어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전에 잘살던 것도 잊어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전의 것, 과거 속에 묻어버려야 할 것은 잊어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2:1의 말씀과 같이 달음질 잘하는 사람은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것, 거리끼는 것은 온전히 벗어버려야겠습니다. 내가 달음질하는데 거리끼는 의복은 그것이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것이라도 벗어버려야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를 향하여 달리기는 하지만 손목에 무엇이 매달려 있어서 달릴 때에 요란한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다 회개했지만 돈 주머니는 회개하지 않고 그대로 달고 다닙니다. 또 어떤 사람은 다 회개했지만 정욕의 생활을 끊어 버리지 못하고 꾸준히 달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좋지 못한 습관, 좋지 못한 성격을 온전히 벗어 버리지 못하고 그냥 달고 다닙니다. 그것이 달릴 때 요란한 소리를 냅니다.
오늘 새해 첫 주일 아침, 이 기쁜 주님의 날, 여러분의 달음질을 방해하고 거리끼는 것, 얽매는 것, 내가 모르는 것이라도 주님은 다 아십니다. 그 무엇이든지 온전히 회개의 기도로서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가볍게 한 해를 출발할 수 있기 바랍니다. 셋째, 그다음에 여기 하는 말이, 앞을 향하여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운동장에서 달리는 사람을 보면 저 앞에 골인 라인이 있으면 그 푯대에 채 가지는 못했지만 그의 눈은 어디에 있습니까? 눈은 벌써 푯대에 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로 해서 달리려고 하면, 비록 우리의 생활이 다 변해서 예수님과 같이 온전히 거룩하게 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우리의 눈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 있어야겠습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라든가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 : 1-2)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눈은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아야겠습니다. 바라보는 방법을 두어 가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성경을 항상 읽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은 예수님의 문자적 표현입니다. 성경을 우리가 늘 읽으면 그 얼굴은 하나 밖에 보이지 않는데, 그 얼굴은 메시아 되시는 예수님의 얼굴인 것입니다. 둘째로는 열심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는데 기도라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과 교통하고 예수님께
우리의 사정을 알리고 예수님과 직접 사귀는 생활이 바로 기도의 생활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기도를 힘쓰면 자연히 우리의 눈은 주님께 가 있고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바라보기만 하면 푯대에 갈 수 있습니까? 달음질하는 사람을 보면 그 다리가 얼마나 빨리 뜁니까? 또 팔을 얼마나 내젓습니까? 보이지는 않지만 그 사람의 심장과 폐장이 얼마나 휩니까? 맥박이 얼마나 빨리 뛰고 숨 쉬는 것이 얼마나 빠릅니까? 이와 같이 다리뿐만 아니라 온몸이 다 달음질하는 것입니다. 달음질하는 사람은 사지백체, 오장육부가 하나도 쉬는 것이 없이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하여 함께 활동합니다. 우리가 목표를 정하고 그리스도가 계신 곳으로 달음질해 가는 것도 이렇게 온몸과 마음이 함께 활발하게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몸은 움직이는데 마음은 딴 곳에 가 있든지, 마음은 있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생활을 보면 봉사 한 마디로 줄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활은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에게 봉사하는 모든 활동으로 가득 찼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라가려고 한다면 하나님을 섬기려고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은 그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의 뜻대로 살아드리는 것입니다. 열심히 새해부터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봉사를 해야겠습니다. 그전에도 전도를 했지만 새해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말과 생활로 전도하여야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가 점점 더 세상에 퍼져서 모두가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질서 있고 화평한 세상이 되도록 애써야겠습니다.
새해부터는 좀 더 노력해서 고칠 것은 고쳐야겠습니다. 작년에는 그저 생각나는 대로 하나님을 섬겼지만 새해부터는 좀 더 깊이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힘껏 달음질하여 섬기려고 노력하고, 하여간 좀 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엮어가기 위하여 애써야겠습니다. 요한복음 12:26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따르라는 말씀은 헬라어로 아콜루데오입니다. 함께 같은 길에 있다, 통행하다, 연락이 되다, 뒤쫓다, 따라가다, 제자로서 따르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섬기려면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이 계신 곳에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 우리가 있어야 합니다.
또 그리스도는 하나님만 섬기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섬기셨습니다. 말씀으로도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천국 복음을 전해주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배고픈 자를 먹여주시고 죽은 자를 살려주시고 슬픈 지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푯대로 하여 달려가려면 새해부터는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더 많이 봉사할 수 있도록 달음질하여야겠습니다. 봉사할 사람을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가능한 대로 가족에서부터 시작하여 더 봉사하려고 노력하여야겠습니다. 나아가서 봉사하는 범위가 교회와 사회로 더 넓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겠습니다.
내가 수고하여 어려운 사람을 더 도울 수 있도록 더 땀을 흘려야겠습니다.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인생은 행복한 인생입니다. 영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 정신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 육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 물질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 이 모든 사람을 돕기 위하여 수고하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로 삼아 달려가는 것입니다. 도와야겠다고 생각만 하지 말고 전보다 더 힘써서 실지로 행하여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새해를 당하여 우리 일생의 푯대를 새롭게 찾아 확인하고,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얽매이거나 무거운 것은 내려놓고, 앞을 향하여 달음질해서 우리의 인격과 성격과 우리의 생활이 점점 그리스도와 같아진다면 자연히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속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영생을 미리 맛보며 즐겁게 살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부지런히 달려가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상이 있습니다. 또 이렇게 되면 내 개인의 생활만 장성하고 복 받는 것이 아니라 내 가정이 한 가지로 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복 받은 가정이 많아지면 우리의 교회와 사회와 나아가서 우리 민족 전체가 큰 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진정한 개혁은 이와 같이 우리 개개인이 푯대를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 그의 의를 잡고 열심히 달려갈 때 가능할 것입니다.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생활을 잘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개인과 가정과 온 교회와 나라가 하나님의 복음 듬뿍 받는 귀한 새해가 될 수 있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송구영신 예배 원어 설교말씀] 새해에 새 마음을 품으라(빌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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