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서 송구영신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게 됩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새 마음을 가지고 새롭게 출발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에 새 마음을 품으라(빌 2:2-11)
새해 첫 시간에 성도들이 같이 모여 예배드림으로 새해를 맞이 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크신 복이 우리 온 교회 우리 교우 가정 가정마다에 성도 한분 한분마다에 충만하게 임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만이 아니고 한국교회 전체와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 전체 위에 그리고 북한에 있는 동포들에게까지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자비하심이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새해를 맞이하여 온세계 교회 전체 위에와 온세계 모든 나라 각 민족 모든 인류 위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내려서 금년이 이 땅 위에 참된 평화와 번영이 임하는 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크신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문제는 우리 인간들이 받을 준비가 부족한데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새해를 맞아 우리가 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새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새 마음은 다름 아닌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마음을 품는다" G5426 프로네오는 ‘감정이나 의견을 가지다, ~에 애착을 가지다, 관심을 갖다, 주의하다, 뜻을 같게 하다, 같은 마음을 가지다’ 등의 뜻이 있습니다. 즉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주님과 같은 뜻을 가지도록 노력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이 새해 첫 시간부터 품을 수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준비하신 무한한 복을 우리에게 부어주실 것입니다. 온 성경 말씀이 다 주님의 마음을 가르쳐 주지만 특별히 두드러지게 가르쳐주는 구절 몇 개가 있습니다. 복음서 가운데는 마태복음 11:2.8 이하가 눈에 뜨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러시면서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마음은 온유한 마음입니다.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거친 마음이 아닙니다. 가시가 돋친 마음이 아닙니다. 돌처럼 딱딱하고 얼음처럼 차가운 마음이 아닙니다.
‘온유한’ G4235 헬라어 프라오스는 온화한, 겸손한, 부드러운 것을 말합니다. 또한 주님의 마음은 겸손한 마음입니다. 겸손한’ G5011 헬라어 타페이노스는 내리 눌린, 낮추는, 겸비한 것을 말합니다. 자만심이 없습니다. 자기를 높이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자기를 자랑하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겸손한 마음은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습니다. 겸손한 마음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듭니다. 겸손한 마음은 상대방의 마음도 겸손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오늘 본문에도 더 구체적으로 잘 나타나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나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여기 우리 주님의 마음이 어떠한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원래 하나님의 본체이시며 본체의 형상이십니다. 본체라는 헬라어는 모르페 입니다. ‘모양, 본질, 형상, 겉모양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영, 곧 헬라어로는 프뉴마인데, 그 뜻은 ‘숨, 바람, 영혼, 성령, 생명의 본질, 영적 상태, 마음’ 등이어서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분입니다(딤전 6;16).
볼 수 없는 영이신 하나님이 피조물과 접촉하시기 위해서 보이는 형상으로 나타나셨으니 곧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3에서는 주님을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여기 ‘본체’라는 말씀이 헬라어로는 쉬포스타시스입니다. 본질, 실상, 실제’라는 뜻이고 형상이라는 말씀인 헬라어는 카락테르 입니다. ‘조각, 인친 모습, 정확한 복사본, 재 묘사, 초상’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이시니 영원하신 하나님과 함께 계실 수밖에 없고 피조물에게 하나님을 나타내시는 하나님 자신이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동등이십니다. 본질과 영광과 권능과 지위와 모든 것이 같으십니다. 그러나 범죄하여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을 불쌍히 여기셔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구원의 계획을 세우시면서 피조물과의 접촉점이 되시는 말씀을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게 하시고 사람이 되게 하셔서 사람의 죄를 대신 지시는 대속물로 삼으시기로 계획하셨을 때 그는 기꺼이 순종하여 나오셔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등이시지만 일단 인류 구원을 위한 희생 제물로 인간으로 오신 이상 주님은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인간이시니 인간으로서는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셨다고 하였습니다. 동등된 모든 것을 취하실 수 있었지만 그것들을 취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겸손입니다. 우리 인간은 조금 잘못하면 내 지위나 내 권리 이상으로 가지려고 하기가 쉽습니다. 소위 월권이라는 것입니다. 내 것은 물론이고 자칫하면 내가 넘보지 말이야 하는 것도 내 것인 양 가지고 행세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마땅히 자기에게 속한 것인데 더 큰 사랑과 의를 이루시려고 그것들을 그대로 가져 누리려고 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오히려 자기를 비우셨다는 것입니다. ‘오히려’라는 말은 헬라어로 알라입니다. 반대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등의 뜻이고, ‘비우다’라는 말의 헬라어는 케노오입니다. ‘비게 하다, 깎아내리다, 무력하게 하다, 명성 없이 만들다, 헛되게 하다, 잃게 하다, 박탈하다’라는 뜻입니다. 비운다는 말은 말하자면 자기 속에 있는 것이나 자기에게 속한 것을 내어 쏟아버린다는 뜻입니다. 물이 가득한 병을 거꾸로 들어 물을 쏟으면 병이 비워집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으로서의 영광과 권능과 모든 것이 충만하셨지만 그것들을 다 쏟아버리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셨으니 하나님의 아들이 되셔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시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비우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조금 잘못하면 욕심을 내어 더 채우려고만 힘쓰기 쉽습니다. 물질이나 권력이나 무엇이든 필요 이상으로 한도 끝도 없이 더 채우려고만 힘쓰기 쉽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오히려 자기에게 있는 것마저 비우셨습니다. 이것이 담담하게 순종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도를 닦는 사람들이 마음을 비웠다는 말을 씁니다. 그것은 욕심 등 더러운 마음을 깨끗이 청소하고 밝게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먼저 마음을 깨끗이 비우셨습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류를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셔서 남을 섬기는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다고 했습니다. ‘종’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둘로스입니다. ‘노예, 속박’의 뜻이고, 형체라는 헬라어 단어는 모르페입니다. ‘모양, 형상, 외양의 뜻으로 무한하신 하나님이 유한한 인간 모양으로 스스로 속박되셨고 한걸음 더 나아가 섬기는 노예 신분으로까지 내려가신 것입니다.
원래 사람은 흙 곧 히브리어로는 아파르 티끌, 먼지, 가루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곧 히브리어 단어로는 첼렘입니다. 즉 하나님의 그림자로 그 형상을 닮게 창조되어 지정의를 갖춘 인격체로서 하나님을 영원히 찬송하고 섬기며 영광 돌리도록 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러한 인간을 친히 만드신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섬기기 위해서 섬기는 것이 원래의 자세인 인간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로서의 모든 것 즉 자기에게 속한 모든 권능과 영광을 내버리시고 종의 형체 곧 사람의 형상을 취하셨습니다. 낮추셔서 스스로 종이 되셨습니다. 이것은 원래 인간이 그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대신 그 역할을 해 주시고 인간이 원래의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도록 해주시기 위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서의 원래의 기능을 수행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거기에 그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다음에는 사람 중에서도 또다시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이것은 비굴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이 마땅히 그래야 하는 그 위치를 찾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벌 받아야 하는 그 자리까지 예수님이 대신 낮아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 가운데서도 자기를 높이지 않으시고 죽기까지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셔서 자기 몸을 희생하시고 다른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 자기희생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이렇게 하시지 않고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이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 믿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권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말입니다. '마음을 품는다’라는 말인 헬라어 단어는 프로네오입니다. ‘감정이나 의견을 가지다, 애착을 가지다, 관심을 갖다, 주의하다, 뜻을 같게 하다, 같은 마음을 가지다’라는 뜻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려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 내 것 혹은 내게 맡겨 주신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들을 내 것이라고 고집하거나 혹은 그 이상으로 더 차지하려고 아우성을 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인정하고(고전 4:7), 마음을 비워 가능한 한 양보하고 나를 낮추어 모든 자리에서 그 자리를 떠받치는 밑거름 역할을 하는 봉사와 희생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조건 손해만 보라는 말이냐 하면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방법은 그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이셔서 예수님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얻게 하시고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이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시인하도록 하셨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신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좋은 것만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낮아지고 겸손해져서는 안 되겠지만 하늘의 이치가 우리가 온유하고 겸손하여 나를 비우고 낮추게 될 때에 결과적으로 그러한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될 때에 이 지구는 정말로 살만한 세상으로 바뀌게 되는 것을 장차 올 천년왕국에서는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너와 내가 함께 행복해지는 비결이 어디 있는가를 보여 주고 계십니다.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간절히 새해 기도를 드립니다. 어떤 사람은 잘못된 방법에 따라 이기적인 생각으로 복을 비는 사람들조차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금년에는 새해를 당해서 간절하게 하나님께 드릴 기도가 무엇일까를 생각할 때 이기적인 생각에서가 아니더라도 내가 종국에는 영화롭게 되고 하나님 아버지께도 영광을 돌리는 길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도록 해달라는 기도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앞부분에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고 사도 바울이 권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 되는 서론 격입니다. 마음을 같이 한다는 것은 우리 각자가 주님과 하나가 될 때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같은 사랑을 가진다’라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대로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요 13:34)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랑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은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희생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뜻을 합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 알아야 말씀과는 동떨어진 엉뚱한 의기투합이 벌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우리가 다 같이 주님의 마음을 품을 때 가능합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에 매달릴 때 다툼이 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 자아가 죽고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만 사실 때 이 허영심을 버리고 겸손하게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게 되고 자신도 돌보고 남도 돌볼 여유가 생기게 됩니다.
새해를 들어서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꼭 받을 능력도 다 받아야겠습니다. 그러나 제일 귀한 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의 마음에 받는 것입니다.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그 마음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받은 성도가 모인 가정은 언제나 화평할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받은 이들이 모인 단체나 교회는 언제나 한 마음 한 뜻으로 즐겁게 섬기게 될 것입니다. 일하게 될 것입니다. 큰 성과를 내게 될 것입니다.
우리 온 교회도 우리가 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 가지는 은혜를 받으면 언제나 한 마음 한 뜻으로 화평한 가운데서 큰 사명을 감당하여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가화만사성이란 말이 있습니다. 집이 화목하면 모든 일을 이룬다는 뜻이지요 이 화목의 근본적 요소가 무엇입니까? 바로 온 식구가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일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않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의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주의 종에게까지 충만한 기쁨을 주어 그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즐거운 감사의 보고를 드리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새해에 우리는 많은 복을 기대합니다. 우리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 복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진짜 복이 어떤 것인가를 아는 사람은 성경에서 그 비결을 배울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이러한 은혜를 받기 위하여 우리 모두 이 시간부터 한 해를 마칠 때까지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모든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 가운데 우리가 구하는 모든 것입니다. 우리가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모든 것도 다 포함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마음을 품게 될 때에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얻게 될 것이고 그러할 때에 그리스도 안에 숨겨진 놀라운 참복이 우리에게 임하여 우리가 구하지 아니한 복까지도 다 받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궁극적인 복인 영원한 생명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넉넉히 유업으로 받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참으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금년 한 해는 여러분 모두에게 이러한 복으로 인하여 기쁨이 충만한 한 해가 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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