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신약성경 말씀

[마태복음 10장 예수님말씀] 열두 제자를 보내심(마 10:1-42)

르호봇 2021. 10. 7.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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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셔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이런 권능을 부여해 주시고 세상에 나가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전도하라고 보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핍박도 있을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우리도 구원받은 백성으로 십자가 복음을 세상에 전파해야 합니다.

 

열두 제자를 보내심(마 10:1-42)

 

1-15, 물질을 초월할 것

[1]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 . . .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셨다. 마가복음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다(3:13).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것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 그가 일꾼을 일으키시며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고 세우신다. 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그를 택한 것이 아니요 그가 그들을 택하여 세웠다고 말씀하셨다(15:16). 교회의 직분자들은 하나님께서 그 직분에 적합한 은사를 주시는 대로 세워진다(12:5-8; 고전 12:4-6; 27-28; 4:11). 그러나 동시에 교회는 그 직분에 자격 있다고 보는 후보자들을 추천하고 선택하는 방법을 사용한다(1:21-26; 6:2-6; 14:23).

누가복음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밤새도록 기도하신 후 열두 제자들을 사도로 택하셨다(눅 6:12-13). 예수께서는 일꾼 선택의 중대한 일을 앞두고 많이 기도하셨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교훈이 된다. 하나님의 일은 기도 없이 시작되거나 진행되거나 성취될 수 없다. 그 일이 중대하면 중대할수록 더욱 그러하다고 본다. 복음 사역은 주의 종들과 성도들의 진실한 많은 기도가 요구된다.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다. 물론, 그들의 더 중요한 일은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그에게 듣고 배우는 것이며 또 나가서 전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또한 사도들에게 병 고치는 권능을 신분증처럼 주신 것이었다. 마가복음 3:13-15,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병들을 고치며--전통사본]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그러므로 사도들은 많은 기적을 행하였다(2:43; 5:12). 사도 바울의 말대로, 기적을 행하는 것은 사도들의 표이었다(고후 12:12).

[2-4]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 . . .

사도 마태는 열두 사도의 이름을 기록하였다.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 등이었다. 마태는 그들을 사도라고 불렀다. ‘사도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바돌로매는 아마 나다나엘(1:45)을 가리키고, 다대오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언급된 야고보의 아들 유다를, 또 가나안인 시몬은 셀롯인 시몬을 가리키는 것 같다(눅 6:15-16; 1:13).

가룟 유다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택하신 특별한 은혜를 받았던 자이었고 열두 사도의 명단에 들어 있지만, ‘예수를 판 자라는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사람은 시작보다 결말이 중요하다. 시작은 미미하나 결말이 훌륭한 사람이 있고, 시작은 훌륭해 보이나 결말이 부끄러운 자도 있다.

[5-6]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 . . .

예수께서는 이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셨다.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아직 사마리아 전도나 이방 전도의 때가 아니었다. 먼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야 하였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에 나타나 있는 전도의 순서이었다. 오늘날도 우리는 교회에 다닌 적이 있는 자들을 먼저 돌아보고 그 후에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우리는 교회에 다니다가 시험에 들었거나 낙심한 자들을 먼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주께서는 친히 제자들을 부르시고 세우시고 능력을 주시고 사명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친히 교회의 직분자들을 부르시고 세우시고 능력을 주시고 사명을 주실 것이다.

[7-8]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 . . . .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들에게 가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전파하라”고 말씀하셨다. 천국은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세계이다.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고 믿었다면 천국이 그의 심령에 이미 임한 것이다. 그는 사탄이 왕노릇하던 세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통치에 복종하는 자가 되었다.

예수께서는 또 제자들에게,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병자[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말씀하셨다. 사도들에게 주신 병 고침의 능력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일종의 신임장이었다. 사도들의 주된 임무는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지만, 그들이 전하는 복음에 대한 하나님의 보증의 표로서 기적들 행함이 수반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능력의 일들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은혜이므로 또 다른 이들에게 거저 주어야 하였다.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돈벌이의 방법으로 사용해서는 안 되었다.

[9-11]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 . . .

예수께서는 또,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전도자들은 여비나 옷이나 신이나 먹고 마실 것에 대한 문제로 염려하지 말고 오직 주께서 맡기신 일에 충성해야 했다. 일꾼이 일용할 양식을 얻는 것은 마땅하며 주께서는 그의 필요를 채우실 것이다.

예수께서는 또,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고 말씀하셨다. 합당한 자란 신앙적으로, 경제적으로 합당한 자라는 뜻일 것이다. “너희 떠나기까지라는 말씀은 땅의 것을 구하는 자처럼 자기에게 좀더 유리하게 보이는 곳으로 옮겨다니지 말라는 뜻을 포함할 것이다. 주께서 보내신 곳이라면 그가 떠나라고 하시기 전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또 성도들은 하나님의 종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할 의무가 있다.

[12-15]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 . . .

예수께서는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전도자는 그가 머무는 집을 위해 평안을 기원해야 한다. 그를 영접하는 그 집이 이 평안을 받기에 합당하면 그의 빈 평안은 그 집에 임할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또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고 말씀하셨다.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는 것은 관계의 단절을 상징한다. 어떤 성의 사람들이 사도들의 전도와, 기적들을 통한 확증을 보고도 그들을 영접하지 않고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들은 소돔 사람들보다 더 큰 죄악을 범하는 자들이다. 소돔 사람들은 그런 기적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과 사도들의 기적의 일들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사도들과 제자들이 증거한 신약성경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누가 신약성경의 말씀들을 거절하고 믿지 않는다면, 그의 죄악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증거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오늘날도 전도자들은 물질적인 것들에 얽매이지 말고 오직 주께서 명하신 대로 천국 복음, 곧 십자가의 구원의 복음을 담대히, 가감 없이 만방에 전해야 하고, 또 성도들과 교회는 그들의 전하는 바를 믿고 그들을 따르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야 할 것이다.

16-23, 고난을 받게 될 것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 . . .

예수께서는 또,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종들은 순진한 양들이다. 그들을 세상에 내보내는 것은 마치 양들을 이리 떼 속에 보내는 것과 같다. 전도자들은 모든 사람에게 환영을 받으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세상에서 많은 고난을 당하고 죽임도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자들은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해야 한다. 뱀은 지혜의 비유로 사용되었다. 전도자들은 악한 세상에서 지혜롭게, 신중하고 사려 깊게 처신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비둘기같이 순결해야 한다. 참된 지혜는 순결한 지혜이다. 야고보서 3:17,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바른 사상과 거룩한 인격은 전도자로서의 합당한 첫 번째 자격 요소이다.

[17-18]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 . . .

주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전도자들은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 사람들은 그들을 공회에 넘겨주며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공회와 회당이 하나님의 종들을 핍박하는 기관이 될 것이다. 전도자들은 심지어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할 기회가 될 것이다.

[19-20]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 . . .

주께서는 또,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고 말씀하셨다. 전도자들은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설 때에 무엇을, 어떻게 말할지 염려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 곧 성령께서 그들 속에 계셔서 말씀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성령께서는 모든 전도자들에게 전할 말씀과 능력을 주실 것이다.

[21-22]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 . . .

주께서는 또,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사탄의 역사는 강하다. 성도가 경건과 의에 굳게 서서 악과 타협지 않고자 한다면, 사탄은 심지어 가족들과 이웃들을 통해 전도자의 믿음을 파괴하려 할 것이다. 전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미움과 어려움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건짐을 받을 것이다.

[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 . .

주께서는 또,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고 말씀하셨다. 핍박으로 인한 피신은 정당하고 지혜에 속하는 일이다. 피할 수 있는 데도 피하지 않고 죽는 것이 충성은 아니다. 전도자는 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순교의 불가피한 때가 오면 즐거이 순교할 수 있다. 그러나 피신하여 다른 곳에서 전도할 수 있는 데도 잡혀 죽으려 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는 말씀은, 오순절 성령강림을 가리키든지, 혹은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가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선택된 모든 사람들이 사는 곳들을 비유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킬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주께서는 열두 제자들에게 전도의 사명을 주셨다. 전도는 하나님의 택자들을 구원하는 그의 방법이다. 전도의 사명은 일차적으로 전도자들에게 주어졌지만, 넓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모든 성도에게 주어졌다.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둘째로, 전도자는 물질을 초월하며 살아야 한다. 그것은 모든 성도들에게 모범이 된다. 주께서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말씀하셨다. 주께서는 무리들에게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눅 14:33). 사도 바울도 교훈하기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말하였다(딤전 6:7-8).

셋째로, 전도자는 핍박을 각오해야 한다. 주께서는 사도들이 옥에 갇히고 채찍에 맞고 핍박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은 소아시아의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믿음에 거하라 권하며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14:22). 또 그는 빌립보서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말했다(1:29). 우리는 천국 복음을 널리 전하는 자가 되고, 물질을 초월하며 자족하고, 고난과 핍박을 각오하며 살아가자.

24-33, 사람을 두려워 말 것

[24-27]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 . . .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바알세불은 귀신의 왕곧 사탄을 가리킨다(12:24). 악한 사람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알세불이라고 불렀다면 그의 제자들에게 어떤 비난을 할 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자들은 사람들에게 악한 비난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주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복음 전도자들과 설교자들은 사람들을 두려워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감추인 진리들은 밝히 전파되어야 하고, 그들이 집안에서 은밀하게 배운 진리들은 집밖에서 공공연히 전파되어야 한다. 오늘날도 설교자들은 골방에서 성경을 묵상하고 연구한 후에 강단에서 담대히 선포해야 한다.

[28-31]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몸의 죽음이 사람의 끝이 아니다. 사람에게는 불멸적 영혼이 있고, 그 영혼은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기다린다. 사람들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일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몸과 영혼을 함께 지옥에 멸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주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세상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다. 앗사리온은 16분의 1 데나리온인 값싼 동전이었다(1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다). 지극히 보잘것없는 참새 한 마리라도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참새보다 귀한 인간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죽지 않을 것이다. 전도자는 그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32-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사람들은 사람 앞에서 그를 시인해야 한다.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그를 부인한다면 그를 믿는 것이 되겠는가? 정말 그를 믿었다면 사람 앞에서 그를 시인해야 한다. 그러므로 전도자들은 사람들의 핍박과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고 비겁하게 굴복하지 말고, 사람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담대히 전해야 할 것이다.

34-39, 주님을 가장 사랑할 것

[34-36]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 . .

주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오신 것이 아니고 검을 주러 오셨다. 그가 오셔서 우리에게 참 평안을 주신 것이 사실이지만(11:28), 그것은 구원받은 자들의 심령 속에와 성도들의 교제 가운데 있는 평안이며 화목이다. 그것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무차별적 평안이 아니고, 또 진리와 비진리, 혹은 선과 악의 화해가 아니다. 복음은 막연한 평화의 개념이 아니다. 성도의 신앙생활은 오히려 죄와 마귀와 세상의 악과 싸우는 영적 전쟁이다.

모든 성도의 삶이 그러하지만, 특히 전도자들의 삶이 그러하다. 하나님의 진리는 우리에게 그에 대한 최고의 헌신과 사랑과 복종을 요구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랑과 순종의 최고의 대상이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절대적 헌신과 사랑과 복종은 때때로 집안 식구들로부터 미움과 핍박을 일으킬 것이다. 또 미워하고 핍박하던 식구들과 한 번 혹은 여러 번 싸움과 갈등을 치룬 후 그들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이킨 후에야 가정의 참된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나 전도자의 사명의 걸음을 시작했기 때문에 가정에 불화가 생긴다면, 그것은 아마 이상한 일이 아니고 정상적 과정일 것이다. 조금 참고 진행하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은혜와 유익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편에 계시고 그의 위로와 평안이 그의 종들과 백성들에게 있을 것이다.

[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주께서는 또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고 말씀하셨다. 모든 성도들에게 그러하지만, 특히 전도자들에게 있어서, 부모님께 대한 사랑과 효도와 순종이 하나님께 대한 의무보다 우선 될 수는 없다. 부모에 대한 의무 때문에 주의 부르심을 거부한다든지 주의 계명을 어겨서는 안 된다. 작은 예로, 부모님을 위한 생신 잔치 때문에 주일 예배를 소홀히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자녀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자녀 사랑, 자녀 교육, 자녀 후원이 하나님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 자녀들 때문에 경건생활이나 사명의 걸음이 지장되어서는 안 된다. 자녀들을 돌보는 것보다, 혹은 같은 원리로, 남편이나 아내를 돌아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자들도 자기의 가족들을 돌보고 사랑해야 하지만, 주님을 사랑함보다 더 할 수는 없다. 모든 성도는 아무리 피곤하고 바쁜 일상생활일지라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경 읽는 시간을 최우선적으로 구별해야 할 것이다.

또 우리는 먼저 자녀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앙적으로 교회 안에서 성장하도록 힘써야 한다. 세상적으로 아무리 좋은 교육을 받게 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영혼이 죽었거나 병들었다면 어찌 기뻐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우리는 통곡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세상적인 교육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녀들이 먼저 하나님을 알고 그를 경외하는 것을 원하신다. 성경공부는 세상 공부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성도는 세상의 그 무슨 일보다 하나님 섬기는 일을 첫째로 여겨야 한다.

[38-39]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 . . .

주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성도는 심지어 자기 자신을 부정해야 한다. 자기 사랑은 곧 세상 사랑이요, 하나님 사랑과 반대된다. 돈을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사랑이나 돈 사랑인지, 아니면 하나님 사랑인지, 또 세상의 100년 간의 삶을 위할 것인지, 아니면 영생을 위할 것인지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이 세상의 것을 위해 사는 자는 주님을 따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자는 확실히 영생의 복을 받을 것이다. 성도는 참으로 가족관계를 초월하여 하나님을 섬겨야 하며 심지어 자기 자신도 부정하며 섬겨야 한다.

40-42, 전도자의 위로

[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이 말씀은 전도자로 파송되는 열두 제자들에게 위로를 주시는 말씀이다. 주께서는 그들을 주님 자신의 신분이나 심지어 하나님 자신의 신분의 가치에까지 올려놓으신다. 이것은 놀라운 말씀이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권위로 파송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을 영접하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과 같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이 세상에서 고난이 많을 것이나 이런 존귀한 사명과 신분을 가지게 된 것이다.

[41-42]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 . . .

주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사람이 선지자를 선지자로 알아보고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고, 의인을 의인으로 알아보고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다. 또 주의 젊은 종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는 자는 결단코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이 말씀은 주의 제자들을 대접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가르쳐 주신 말씀이다. 이것은 고난받을 전도자들에게 적지 않은 위로가 될 것이다.

우리의 선행이 그 자체로는 상 받을 가치가 없지만 주께서는 그것에 대해 상급을 약속하셨다. 우리의 선행의 첫 번째 동기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 때문이지만, 상급의 약속도 부수적인 동기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주께서는 우리의 선행에 대해 상 주실 것이다.

마태복음 1024절부터 42절까지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자. 사람의 위협 중에 가장 큰 것은 죽인다는 위협이다. 그러나 사람은 우리의 몸만 죽일 수 있고 우리의 영혼은 죽이지 못한다. 우리의 영혼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영원한 지옥의 불못에 던져 넣으실 수 있다. 또 보잘것없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목숨은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죽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허락하시는 죽음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피할 수 없고 또 피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의 목숨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자.

둘째로,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데 무엇을 두려워하고 주저할 것인가?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지 않는다면, 주께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어떻게 우리를 시인하실 수 있겠는가?

셋째로, 우리는 우리의 가족들보다, 심지어 우리 자신보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더 사랑하자. 그것은 마땅한 일이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온 세상에서 가장 사랑을 받으셔야 할 분이시다.

넷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 얻은 모든 성도들은 복음을 위해 헌신한 하나님의 진실한 종들과 전도자들을 영접하고 대접하자.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대접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영접하고 대접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모든 사람을 사랑하되, 특히 하나님의 종들과 일꾼들을 사랑하고 영접하고 대접하자.

[사무엘상 2장 히브리어 강해] 사무엘과 엘리 제사장 책망(삼상 2:18-26)

 

[사무엘상 2장 히브리어 강해] 사무엘과 엘리 제사장 책망(삼상 2:18-26)

엘리 제사장의 홉니와 비느하스가 제사장의 아들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고 제물에 손을 대고 성막에서 수종 드는 여인과 동침하는 일들이 있었는데도 엘리 제사장은 아들들을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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