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2장에서는 예수님이 중풍병자를 고치는 이야기가 기록되었다.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메워 가지고 왔다. 무리들 때문에 예수님께 나갈 수 없어서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를 내려보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선포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
중풍병자를 고치심(막 2:1-12)
그리스도께서 얼마 동안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신 뒤에 이때쯤이면 그에 대한 소문도 그를 따르던 무리도 많이 감소되었을 것이라는 기대를 걸면서 그의 본부 가버나움에 돌아와 당신의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그럼 아래에서 이 말씀을 살펴보기로 한다.
Ⅰ. 많은 무리가 그리스도에게로 나왔다. 비록 베드로의 집이거나 예수께서 일시적으로 유숙한 곳이거나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 들었다(1,2절). 그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이면 회당으로 나오실 것을 확신했지만 그 시간까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왕이 출현하신 곳에는 알현이 있기 마련이고 실로가 출현하신 곳에는(창 49:10) "많은 사람이 모여" 오기 마련이다. 우리의 영혼을 위해서 기회를 잘 이용하려면 시간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 사람들은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를 보러 가자"라고 초대를 했다. 그러므로 그 집이 방문객을 다 수용하지 못할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 할 수 없게 되었다(12절). 비록 그 집이 초라했지만 비둘기들이 제 집을 찾아 모여들 듯이 많은 사람들이 구름 떼와 같이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밀려오는 것을 보는 것은 복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Ⅱ. 그리스도께서 모여온 방문객들에게 좋은 대접을 하셨다. 그의 집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접이고 어느 누구보다 더 나은 대접을 하셨으니 그것은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었기" 때문이다(2절).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아마 병 고침을 받기 위해 왔을 것이고 또 적지 않은 사람들은 다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표적을 보려고 호기심에 끌려 왔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모든 사람들을 맞이하여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었다". 비록 안식일 같은 적당한 시간에 회당문이 그에게 개방되기는 하지만- 어떤 이들이 그것은 적당치 않은 장소요 적당치 않은 시간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평일 중 어느 날이나 어느 집에서라도 복음 전하는 것은 마땅하다고 생각하시었다.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는.... 너희는 복이 있느니라"(사 32:20).
Ⅲ. 그리스도에게 병 고침을 받기 위해 불쌍한 불구자가 사람들에게 메워 왔다. 그 병자는 중풍병 환자였다. 마태복음 8장 6절에 나온 사람과 같이 "몹시 괴로워하지"는 않은 듯 보이나 전연 활동할 수 없으므로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3절) 마치 관에 누운 듯한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4절) 메고 왔다. 이 병자가 사람들에게 메워 와야만 했다는 것은 그의 가련함을 보여 주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인생의 비참한 상태를 말해 준다. 사람들이 그 환자를 예수께로 메워 왔다는 것은 그들의 사랑을 보여 주는 것이며, 그것은 역시 인간이 고통을 당하는 동료들에게 베풀어야 할 그런 동정을 말해 주고 있다. 이런 동정을 베푸는 것이 마땅한 것은 우리도 언제 그런 불행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친절한 친척들이나 이웃들은 그들이 단 한 번만 이 불쌍한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메고 오면 다시는 그를 메고 다닐 필요가 없음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힘들어 그 병자를 예수께로 데리고 왔을 것이다. 그리고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 내리"었다(4절). 나는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전하신 이 집이 다락방이라고 결론을 내릴 필요가 없다고 본다. 물론 유대인들은 다락방에 신성한 집회소나 기도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만일 그러했다면 무엇 때문에 지혜를 구하는 자들과 같이 "문 앞에라도 용신 할 수 없게" 되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전하신 이 집은 다락방도 없고 마당에서 지붕에 오를 수 있는 조그마하고 초라한(그리스도의 외모와 같이) 그런 집이었다고 추측한다. 그리고 이 불쌍한 중풍병 환자를 메고 온 사람들은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을 때" 실망하지 않고 갖은 방법을 다하여 그들의 불쌍한 친구를 지붕 위로 데리고 올라가서 기왓장들을 벗겨 내고 침상에 끈을 달아 예수께서 말씀을 전하시는 앞에 달아 내리었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께 대한 그들의 믿음과 열심을 말해 주고 있다. 결국 이사실은 그리스도에게 대해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우리가 떠나지도 아니하고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 32:26)한 그런 끈기 있는 열심을 보여 준다.
Ⅳ. 그리스도께서 이 불쌍한 병자에게 친절히 말씀하시었다.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아마 그 문둥병 환자는 장기간의 질환으로 야기된 그의 성질이 그의 신앙의 훈련에 적지 않은 지장을 주었을 것이므로 "저의 믿음"이 아니고 그를 데리고 나온 "저희 믿음을 보시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백부장 하인의 중풍병을 예수께서 고쳐 주실 때에는 백부장이 비록 그 하인을 데리고 나오지 않았지만 예수께서 거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그의 하인을 고쳐 주실 수 있다고 믿는 "저의 믿음"을 보시고 칭찬하시었다(마 8:13). 그러나 여기에서는 여러 가지 난관을 무릅쓰고 그들의 친구를 주께로 데리고 나온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칭찬하시었다. 참된 신앙과 강한 신앙은 다양하게 역사한다. 때로는 신앙에 따르지 않는 이성을 굴복케도 하고 때로는 신앙에 따르지 않는 감정을 극복하게도 한다. 그러나 어떻게 나타나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인정을 받게 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5절). 여기에 "소자야"라고 부른 이 칭호가 얼마나 부드러운가 말이다. 그 사람에 대해서 아버지다운 배려와 관심을 나타내 보여 주는 말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진실한 신자를 그의 아들처럼 여기신다. 아직 중풍병이 낫지 않았지만"소자야"라고 부르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들처럼 대해 주신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한 이 말씀에도 그리스도의 다정한 사랑이 잘 나타나 있다.
1. 죄는 우리의 모든 고통과 병의 원인이 된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질병으로부터 그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된 죄에 대한 생각들을 씻어 버리고 죄 사함을 받게 하는데 더욱 관심을 갖게 한다.
2.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여 주실 때 병의 찌름과 악성을 은혜롭게 제거하여 주신다. 그러므로 질병에서의 회복은 죄의 용서를 받음으로써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자비인 것이다(사 38:17; 시 103:3). 어떤 결과를 제거하려면 그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사죄는, 병이 치유되거나 모든 악령을 물리쳐, 모든 질병을 근절시키는 요인이 된다.
Ⅴ.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서기관들의 생트집과 그들의 트집의 부조리에 대한 논증. 그들은 율법 선생들이다. 그리고 피조물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특권인 죄를 사해 준다는 일은 참람되다는 그들의 교리는 옳다(사 14:25). 그러나 그런 선생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그들의 그런 항의는 옳지 않았으며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무식과 적대감의 결과였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7절) 한 이 말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하고 계심을 충분히 증명해 주셨음에도 그리스도께서 죄를 사하실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저희가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8절). 이 말씀이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증거 해준다. 그리고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알게 하려 하느니라"(10절) 한 말씀을 확실하게 하였다.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계 2:23). 물론 하나님의 주권은 분리될 수 없으며, 사람의 생각을 아시는 그분이 우리 죄를 사해 주실 수 있다. 죄를 사해주시는 일에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친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의 생각들을 아시기 때문에 사람들의 죄의 중함과 특성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시고 계시지만 용서해 주실 준비가 다 되어있기 때문이다. 지금 그리스도께서 "중풍 병자"의 병을 고쳐 주심으로써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것을 증명하였다(9-11절). 만일 그리스도께서 죄를 용서해 주시는 일을 못하셨다면 병을 고쳐 주시는 일도 못하셨을 것이다.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10,11절).
1. 이 사실은 그 자체에 논쟁할 만한 소재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병의 원인이 된 죄를 제거하시지 않았다면 죄의 결과인 병을 고쳐 주실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죄는 영혼의 병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병을 고쳐 주시는 일은 죄를 사해 주시는 일의 상징이 된다. 죄 사함을 받으며 병 나음도 받는다. 말씀으로 표적을 행하시는 분은 그 표적이 의미하는 일도 행하실 수 있다.
2. 이 사실은 그들에게 합당하였다. 이 육적인 서기관들은 병 고침을 받으려면 죄 사함을 받아야 된다는 이 합당한 결론에 대해납득이 갔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다른 더 신령한 결론보다도 쉽게 설득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9절)고 물으신 것은 타당하였다. 그와 같은 벌에서 사면을 받음은 곧 죄 사함을 받음이다. 병을 능히 고치시는 분이 죄를 능히 사하실 수 있을 것이다. 이사야 33장 24절을 참고하라.
Ⅵ. 병자에 대한 치유와 이 사실이 사람들에게 준 인상(12절). 그 병자는 "침상"에서 완전하게 일어났을 뿐 아니라 그에게 원기가 회복되었음을 보여 주었다.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12절). 그리스도의 행하신 기적은 전례 없었음을 주의하라.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혼을 고치시기 위해 무엇을 행하시나를 볼 때 우리는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출애굽기 12장 복음설교] 유월절 양고기는 다음날까지 남겨서는 안 된다(출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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