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히.헬라어 주석 강해

[사도행전 5장 헬라어 강해설교] 성령을 속여 죽은 삽비라 사건(행 5:7-11)

르호봇 2021. 4. 1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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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도행전 5장 헬라어 강해설교 중에서 성령을 속여 죽은 삽비라 사건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께 헌금하기로 작정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땅을 팔았습니다. 땅을 판 값의 일부를 감추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기고 해 놓고 땅을 판 값의 일부를 훔친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였기 때문에 심판을 받았습니다. 초대교회에 본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셨습니다. 아나니아가 거짓말하여 성령을 속이고 죽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아나니아의 시체를 장사 지내고 있었습니다. 세 시간쯤 지나서 삽비라가 자신의 남편이 죽은 줄도 모르고 베드로에게 왔습니다. 베드로가 땅 값이 이것뿐이냐고 말했더니 맞다고 했습니다. 또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삽비라도 죽었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속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성령을 속여 죽은 삽비라 사건(행 5:7-11)

 

7절 에게네토 데 호스 호론 트리온 디아스테마 카이 헤 귀네 아우투 메 에디뒤이아 토 게고노스 에이셀덴

행 5:7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5:7

하나님께서 삽비라에게 과하신 형벌에 대해서는 그것이 본보기를 위한 보다 큰 효력을 더해준 것 이외에는 더 할 말이 없다. 더구나 그들 각자의 배신적인 의향과 그 완강한 악의를 따로따로 교회 전체가 보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어떠한 섭리에 의하여 발생한 것이다.

그들은 똑같이 책임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에 관한 정보를 동시에 접하게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각자가 자기 자신의 불신앙을 매우 분명히 나타냈다고 하는 것이 교회의 선도를 위해서 더욱 적절하고 유효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런 일이 그런 식으로 가끔 생겨나기는 한다고 하더라도, 자기 남편의 목전에 있는 일이 삽비라의 위장의 원인이 된 것이 아니었고 따라서 그녀의 범죄는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

외부에서 주어진 어떤 압력이 그녀에게 가해짐이 없이 자신의 자유의사에 의하여 행동하였기 때문에 그녀는 남편보다 나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 또한 그녀는 베드로의 심문에서 자기들의 사기행위가 폭로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악의의 거짓말을 하는 데 있어서 동일한 수준에 있었던 것이다.

8절 아페크리데 데 아우테 호 페트로스 에이페 모이 에이 토수투 코리온 아페도스데 헤 데 에이펜 나이 토수투

행 5:8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5:8

내게 말하라 - 하나님은 고질적인 자들과 용서를 받을 수 없는 자들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복수하는 일이 되지 않기 위하여 돌발적인 충동으로 형벌을 주지 아니하시고 먼저 적당한 조사를 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된다. 그것은 삽비라가 그 사건이 사람의 눈에 뜨이지 않은 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베드로의 그런 심문은 마치 자기가 하나님의 심판의 자리 앞에 소환된 것과 같이 간담이 서늘해지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제정신에 돌아올 만한 시간이 주어졌다. 실상 그것은 회개할 수 있는 조용한 초대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생각 없이 행동함으로써 자신이 치료될 수 없는 인간이며, 또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이 일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배운 것이다. 즉 우리가 죄인들을 정상적인 길로 데려오는 데는 큰 고통을 겪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령은 이러한 절제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고집스럽고 완강한 모욕이 그 범죄에 첨가될 때에는 그것은 이미 형벌해야 할 시기가 무르익은 것이.

그러므로 하나님의 과도한 엄격을 좋아하지 않는 자들은 자기 자신들이 지나치게 거만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차라리 어떻게 우리가 장래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인가를 우리에게 반영시켜 주는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만일 형벌받는 일이 없이 하나님을 기만하기를 원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너무도 지나치게 그의 거룩하신 존엄을 무시하는 일인 것이다.

한 걸은 더 나아가서 내가 위에서 서술한 그 모든 상황은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의 죽음에 해당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충분하게 증명해 준다. 왜냐하면 첫째로 위선이란 그 자체가 하나님을 지극히 싫어하기 때문이요, 그리고 둘째로 하나님을 속이려는 그들의 의도는 최고의 경멸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소속되어 있는 그 모임을 지배하시는 그리스도를 존경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불신앙에 파렴치함이 첨가된 것이다.

더구나 그들은 자신들의 선량한 모습을 과시해 보여 주려고 했던 그 사람들 앞에서 수치와 불명예를 면해 보려는 마음만을 가지고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명백한 악을 부인한 일이 그들에게 아무 의미도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자기들의 죄상에 대한 완강한 부정이 모든 것의 극치 점이다(veluti summus cumulus) 그런데 무수한 위선자들이 날마다 이 두 사람 못지않게 하나님과 교회를 속이지만 그러면서도 죽음의 형벌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 왜 부조리로 여겨지지 않는가 하는 것은 내가 이미 설명한 바이다.

하나님이 이 세상의 유일한 심판자이시기 때문에 그가 원하시는 시기와 방법에 의하여 그분 자신의 결정대로 각 개인을 형벌하시는 일은 그분에게 달려 있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해서 형벌의 어떤 특정한 방법을 규정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두 사람의 신체적 형벌에는 아직도 숨겨져 있는 영적 심판의 중대성이 거울 속에 비치는 것처럼 우리 앞에 보여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만일 영원한 불 속에 던져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면, 사람들의 눈 앞에서 넘어져 죽었다는 것이 재앙 중의 최악의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고린도전서 105절을 보라.

9절 호 데 페트로스 에이펜 프로스 아우텐 티 호티 쉬네포네데 휘민 페이라사이 토 프뉴마 퀴리우 이두 호이 포데스 톤 답산톤 톤 안드라 수 에피 테 뒤라 카이 엑소이수신

행 5: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5:9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 그는 자기가 조금 전에 한 말, 즉 그들이 불신앙적으로 또는 경멸하는 태도로 하나님을 조롱한 일을 분명하게 지적하기 위하여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마치 하나님의 성령이 사람들의 마음을 속속들이 아는 분(cognitor)이 아닌 것처럼, 조심 없이 자기들의 사기행위를 고안해 냈기 때문에 그는 그들이 성령을 시험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기들이 범죄에서 서로 공법자가 되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이 마치 아무것도 모르고 가리어지신 것처, 서로 자기들의 계획을 자기들만이 알고 있는 것같이 생각한 것은 너무도 경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권위가 하나님에게서 제거되거나 그의 전지(全知)가 무시될 때에 하나님은 시험을 받으시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는 성령을 말할 때에 그분은 사도들을 통하여 교회를 지배하시는 분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성령이 오시면 그가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요16:8)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실 때에 그의 마음에 생각하신 지배권은 그가 교회의 선교를 통하여 행사하신다는 바로 그것뿐이라고 여기셨기 때문이다.

10절 에페센 데 파라크레마 파라 투스 포다스 아우투 카이 엑셉쉭센 에이셀돈테스 데 호이 네아니스코이 휴론 아우텐 네크란 카이 엑세넹칸테스 에답산 프로스 톤 안드라 아우테스

행 5:10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5:10

그녀도 그녀의 남편과 같은 운명에 처해질 것이라는 선고가 내려졌다(9절). 그녀의 죄가 폭로되었다.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그는 선고하기 이전에 그녀에게 그녀의 추행을 알려 주고 그녀의 죄의 악함을 보여 주었다. 그럼 그들이 행한 죄는 무엇이었나 살펴보자.


① 그들은 주의 성령을 시험하였다. 그들이 수많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능력을 체험하고서도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여 이르기를 "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지 아니 계신지" 의심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뿐 아니라 그의 통치하심도 의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이실 수 있나 보자"라고 말하였다. 본문의 이들 부부도 같은 생각을 하였다. 

"사도들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 거짓말도 알아낼 수 있을까? 우리가 그들에게 이것이 판돈 전부라고 하면 이것이 그 일부에 불과한 것인 줄 분별할 수 있을까?" "그가 흑암 중에서 어찌 심판하실 수 있으랴"(욥 12:13). 그들은 사도들이 방언의 은사를 받은 것을 알았다. 그러나 설마 그들이 영분별의 은사도 받았겠는가라고 생각하였다. 죄를 짓고도 무사히 벌을 받지 않을 줄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을 시험하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을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여기고 그를 시험한다.


② 그들은 그것을 행할 것을 공모하였다. 그들은(거룩한 제도에 의해 결합되어) 부부로 결속된 관계를 불법 이행에도 이용한다. 부부 사이에 있어서 또는 친척들 사이에서 선한 일에 의견이 대립되고 악한 일에 협조가 잘되는 경우, 부부 사이에 악을 도모하는 일이 더 나쁜지 친척간에 악을 도모하는 일이 더 나쁜지 규정하기는 곤란하다. 이미 그들이 이 일을 행하기로 의견의 일치를 봄으로써 더 나아가 그들은 성령을 시험하였던 것이다. 그들이 이 문제를 놓고 서로 의견을 나눌 때 그들은 주의 성령이 그들을 주의 성령이 그들을 발견하실 수 없으리라고 여겼다. 

그들이 그들의 뜻을 여호와께 숨기려고 아무리 피하였지만 헛되게도 그것은 알려지고야 만다. "어찌 너희가 미혹되었는가? 어찌하여 너희가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는가. 이미 지나간 시험에 다시 걸려들다니!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된 너희가 보다 자신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단 말인가! 어찌 너희가 그같이 엄청난 모험을 하였는가"라고 꾸짖는다.

그녀가 당할 운명이 예고된다.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아마도 그는 그들이 오는 소리를 들었거나 또는 오래지 않아 올 것을 알았던 것 같다)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공모하여 금단의 실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가 함께 낙원에서 쫓겨났듯이 공모하여 주의 성령을 시험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함께 이 세상에서 쫓겨났던 것이다.

선고가 곧 형 집행을 의미하였다. 무슨 형리가 필요 없었다. 때로 베드로의 말이 떨어지자 곧 병 고치는 능력이 일어났듯이 파멸하는 능력이 그의 말과 함께 일어났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말하기만 하여도 사람을 죽이시기도 하고 살리시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의 입에서(이제는 베드로의 입에서) 선과 악이 나오느니라." 말씀되었다. 그녀가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려져 혼이 떠났다"(10절). 어떤 죄인에 대해서 하나님은 단번에 결판을 내리시는가 하면 또 다른 죄인에게는 오래 참기도 하신다.

이같이 차별하여 대하심에는 분명히 그만한 이유가 있으시리라.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시지는 않는다. 그녀는 그때까지 그녀의 남편이 죽은 것을 듣지 못하였다. 그녀의 죄가 드러나면서 그 사실도 알려졌다. 그리고 죽음의 선고가 내려지자 그것이 벼락처럼 그녀를 내리쳤고 회오리바람처럼 그녀를 휩쓸어갔다. 그렇다고 갑작스럽게 죽는 모든 경우를 이와 같이 끔찍한 죄에 대한 처벌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갑자기 죽는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보다 이상 가는 죄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는 그들에게 좋은 일이다.

어쨌든 누구나 갑자기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이 항상 준비해야 된다는 경고이다. 그러나 본문에서 그것이 심판인 것은 분명하다. 어떤 이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저 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육을 멸하심은 "주 예수의 날에 영혼이 구원받게 하심이라"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들 부부에게 근친상간한 고린도인의 경우처럼 회개할 만한 기회가 주어졌다면 나도 관용성 있는 이런 견해에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비의는 주어지지 아니하였다.

그녀가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 이 떠났다" 말씀되고 있다. 그녀가 판 값 전부를 그곳에 갖다 놓았다면 그녀 스스로가 자신의 몸으로 부족량을 메꾸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장례를 돌보는 "젊은이들이" 들어와 그녀가 "죽은 것을 보고, "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아나니아의 경우처럼 "시신을 싸서 메어다가 그 남편 곁에 장사하였다." 그리고 아마도 그들의 무덤에 묘비를 세워 성령을 속인 죄로 신의 진노를 받아 죽었다는 것을 기념하였으리라. 어떤 이는 그들이 가져온 돈, 그들의 거짓에 관련된 돈을 어떻게 하였을까 묻는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떤 자들이 미신에 사로잡혀 "이것은 피 값이라 성전고에 넣어둠이 옳지 않다"(마 27:6)라 한 것처럼 그들이 미신을 섬기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순결한 자에게는 모든 것이 순결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져온 것은 그들이 가져온 것을 받는 사람까지 더럽히지 않았다. 그들이 감추었으므로 감춘 사람만이 추하게 되는 것이다. 고라 일당의 반역자들이 사용했던 향로를 다시 사용하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민 16:36-40).

11절 카이 에게네토 포보스 메가스 에프 홀렌 텐 에클레시안 카이 에피 판타스 투스 아쿠온타스 타우타

행 5: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5:11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 한 사람의 형벌은 모든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경종이었다고 그는 다시 반복해 말한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분명히 두 종류의 두려움을 설명하고 있다. 신도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경고를 받음으로써 그 이상의 이익을 얻을 것이 없을 정도로 그처럼 완전하게 하나님을 두려워한 적이 일찍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교회가 두려워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오래전에 악한 자들에게 가하셨던 그 모든 형벌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가 일고, 또 오늘도 날마다 실제로 악인들에게 가해지는 형벌을 볼 때에,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으로 인하여 범죄의 유혹과 방종에서 돌아서도록 자주 경고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육체란 그처럼 계속적으로 점검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굴레만으로는 그 목적을 이루기에 불충분하기 때문인 것이다. 외부의 사람들에게는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 있었.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기까지는 하지 못했으나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는 안되도록 강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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