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히.헬라어 주석 강해

[히브리어 성경말씀 전도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의 허무함(전 6:7-12)

르호봇 2022. 3. 16. 15:22
반응형

전도서 6장에서는 인간이 채울 수 없는 욕망의 허무함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권력과 권세를 잡으면 더 큰 권력을 쥐고 싶어서 욕심을 부립니다. 재물을 손에 넣으면 더 많은 재물을 가지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욕망을 채우지만 기쁨과 즐거움은 잠시 잠깐입니다. 허무함에 도달하게 됩니다. 오직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의 허무함(전 6:7-12)

 

7절 콜 아말 하아담 리피후 비감 하네페쉬 로 티말레

성 경: [전6:7]

주제1: [세상적 풍요와 허무]

주제2: [해 아래 인생의 허무]

󰃨 사람의 수고는 다 그 입을 위함이나 ... 차지 아니하느니라 - 전반 절은 전도자가 앞에서 인생의 가장 좋은 것을 먹고 마시며 낙을 누리는 것이라고 한 내용과 연관시켜 볼 수 있다(2:24;3:12,13;5:18). 그러나 전도자는 단순히 이 세상 것만을 인정하고 영생이나 초월적 세계를 믿지 않는 유물론주의자나 이 세상 쾌락만을 추구하는 자와는 전혀 다르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 삶의 모든 축복의 근원을 하나님께 두었기 때문이다(5:18, 19 참조). 한편 '식욕'에 해당하는 '네페쉬'는 원래 '영혼'(soul)이란 뜻이다. 혹자는 여기서 '영혼'이란 ''과 대조를 이루는 말로서 ''이 육체적, 일시적 기쁨을 위하는 것이라면 '영혼'은 영적이며 영원한 즐거움에 의해 채워지는 것으로서 서로 비교되고 있다(Zockler). 그러나 이보다는 인간의 지, , 의의 인격을 형성하는 중심으로서 '영혼'의 기능 중 본절에서는 감정적인 측면, 특히 음식에 대한 욕구와 관련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 식욕(영혼)은 차지 아니하느니라'라는 말속에는 진정한 기쁨은 단순히 음식, 물질 따위의 외형적인 여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창조주 되시며 모든 기쁨과 만유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에 의해서만 진정으로 채워질 수 있다는 암시가 내포되어 있다 하겠다(2:24;4:8 참조).

8절 키 마 요테르 레하캄 민 하키실 마 레아니 요데아 라할로크 네게드 하하임

성 경: [전6:8]

주제1: [세상적 풍요와 허무]

주제2: [해 아래 인생의 허무]

󰃨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뇨 ... 유익한고 - 원문에 의하면 본절 서두에 연결사 ''가 있는데 대부분의 영역본들은 이를 원인을 나타내는 연결사로 보나(KJV, RSV, NASB), 혹자는 '역시'의 뜻으로 이해하기도 한다(Lange). 어느 경우든 본절이 앞절과 연관됨을 나타낸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한편 본절에서 '지혜자''우매자'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대해 어떤 이는 낙태되어 이 세상의 고난과 괴로움을 모르는 자와 부요하고 오래 사나 그 심령에 낙을 누리지 못하는 자에 관한 앞 내용(2-7)과 연관된다고 보기도 한다(G.A. Barton). 그러나 그보다는 이 질문을 바로 앞절, 7절 내용과 연결시키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Lange). 즉 인간은 그의 입을 위하여 수고하나 그의 식욕(영혼)이 차지 아니하는 바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탁월한 처세술을 발휘하여 부귀와 명예를 누리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 중간 격이라 할 수 있는 자들, 곧 비록 가난하지만 생활의 지혜를 늘 찾으려 애쓰는 자들도 있다. 물론 본절에서 '지혜자''우매자'란 하나님의 관점에서 지혜로운 자나 어리석은 자를 가리키기보다는 인간 세상의 관점에서, 인간적인 지혜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를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9절 토브 마리에 에나임 메할라크 나페쉬 감 제 헤벨 우리우트 루아흐

성 경: [전6:9]

주제1: [세상적 풍요와 허무]

주제2: [해 아래 인생의 허무]

󰃨 눈으로 보는 것이 심령의 공상보다 나으나 ... 것이로다 - 바라는 바 적은 것이나마 낙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 머릿속에 근사한 공상만 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결국 이 또한 인생의 참 행복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혹자는 이와 관련하여 본절의 ''이란 인생을 즐기고 만족을 발견하는데 필요한 신체 부분 중 하나라고 보기도 하며(1:8, M.A. Eaton), 다른 사람은 '눈으로 보는 것이 ... 나으나''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즐기는 것이 나으나'(better is the enjoyment of what one has)라는 뜻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G.A. Barton). 그리고 루터(M. Luther)는 이를 '다른 좋은 것을 생각하는 것보다는 현재의 좋은 것을 즐기는 것이 더 낫다'라고 번역하였다. 한편 '공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형 '할라크''걷다', '이리저리 다니다'는 뜻인데, 영역본 NASB는 이를 '심령'(영혼)이라는 말과 연관하여 '영혼이 원하는 것'(what the soul desires)으로 KJV, RSV 등은 좀 더 의역하여 '욕망의 방황'(the wandering of the desire)으로 번역하고 있다.

10절 마 셰하야 키바르 니키라 쉬모 비나오데아 아쎄르 후 아담 비로 유칼 라딘 임 셰하타키프 미메누

성 경: [전6:10]

주제1: [세상적 풍요와 허무]

주제2: [해 아래 인생의 허무]

󰃨 그 이름이 칭한 바 되었으며 - 문자적으로는 '그 이름이 불린 바 되었으며'(has already been named, NIV, RSV, NASB)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성격이나 특성이 이미 규정되어 있으므로(M.A. Eaton) 사람은 존재론적으로 스스로 선택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일정한 질서와 법칙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뜻을 암시한다. 한편 주석가 위클리프(Wycliffe)는 본절이 어떤 것을 변화시키려는 인간의 자의적 노력이 전혀 무용하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보기도 한다.

󰃨 자기보다 강한 자와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 - 만물의 생성 소멸과 존재 법칙 및 인생의 모든 길흉화복을 주권적인 섭리로써 주장하시는 하나님께 피조물이 반박하거나 대항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45:9;46:10;9:20 참조). 또한 이 말속에는 참된 낙을 누리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주권에 철저히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맥상의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11절 키 예쉬 디바림 하리베 마리빔 하벨 마 요테르 라아담

성 경: [전6:11]

주제1: [세상적 풍요와 허무]

주제2: [해 아래 인생의 허무]

󰃨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이 ... 유익하랴 - 원문에 의하면 본절 서두에는 연결사 ''가 있어서 본절이 앞절과 연관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여기서 ''이란 문자적으로는 '데바림'으로서 대략 다음 두 가지 의미로 이해된다. (1) 개역 성경처럼 '(사건)'을 뜻하는 것으로 본다(Hengstenberg, Ginsburg). 영역본 KJV도 이를 지지한다. (2) '말들'을 뜻하는 것으로 본다(Delitzsch, M.A. Eaton, G.A. Barton). 이를 지지하는 영역본들로는 NIV, RSV, NASB 등이며, 70인 역(LXX)또 '말들'(로고이)로 번역하고 있다. 이 경우 이 '말들'10절에서 암시되는 바 모든 것을 작정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다투는 무익한 변론의 말들을 뜻한다 하겠다. 그러나 (2)를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에는 후기 연대설에 근거하여 본서의 내용이 구약 시대 말기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 및 엣세네파 등이 인생의 예정된 운명과 그로 인한 인간의 행동 간의 상호 관계에 대한 토론들(바리새인들은 인간의 행동 중 일부는 하나님의 작정하신 자 운명에 의해 또 다른 부분은 인간 자신의 의지에 의해 행해지는 것으로, 사두개인들은 인간의 모든 해동들이 하나님의 예정이나 작정에 의하지 않고 전적으로 인간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해지는 것으로, 그리고 엣세네파들은 사두개인들과는 반대로 인간의 모든 행동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예정과 작정에 의한 것으로 본다, Josephus)을 함축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나(Delitzsch, G.A. Barton) 일반적으로 본서의 저작 연대가 솔로몬 시대라고 보는 바, 이와 같은 논리 비약적인 주장은 그 근거가 불분명하다. 아무튼 본절의 의미는 앞절과 연관시켜 볼 때, 연약하고 무기력한 인생이 모든 일들을 작정하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거역하여 스스로 행하는 것들은 전혀 무익하고 오히려 더욱 헛되게 함을 암시한다.

12절 키 미 요데아 마 토브 라아담 바하임 미시파르 이메 하예 헤빌로 비야아셈 카첼 아쎄르 미 야기드 라아담 마 이흐예 아하라이브 타하트 하샤메쉬

성 경: [전6:12]

주제1: [세상적 풍요와 허무]

주제2: [해 아래 인생의 허무]

󰃨 헛된 생명의 모든 날 - 전도자가 인생을 이와 같이 규정한 것은 인간이 아담의 범죄 이후 정죄되고 사망 가운데 거하여(5:16-21) 일평생을 헛된 수고와 근심 가운데서 보내기 때문이다(1:3;2:23). 그러나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모든 것이 새롭게 되어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이 땅에서는 나그네 생활을 하나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고후 5:16,17;빌 3:21;벧전 1:1;2:11).

󰃨 그림자 같이 보내는 - '그림자'란 실체의 허상으로서 머물지 않고 쉽게 사라지는 것이다. 여기서는 인생의 날이 빨리 사라져 지나가는 것을 암시하는 비유적 표현이다(대상 29:15;8:9;14:2;102:11;144:4 참조).

󰃨 그 신후(身後)- '신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하라'는 '뒤에'(후에)란 뜻인데, (1) 죽음 후를 말하는 것인지(Delitzsch) (2) 단순히 알지 못하는 미래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 의견이 나뉜다. 그러나 문맥상 (1)이 더 타당한 듯 보인다. 아무튼 본절은 이 세상에 사는 인간이 무지하고 연약하며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지적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거나 그분을 거역하고는 결코 헛된 삶을 살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하겠다. 한편 신약에서 주님의 형제 야고보는 인간의 연약함과 무지에 대해 언급하면서 인간의 생명을 안개에다 비유했다(4:14).

[히브리어 성경말씀 잠언서] 이웃을 사랑하는 하나님 말씀(잠 3:27-35)

 

[히브리어 성경말씀 잠언서] 이웃을 사랑하는 하나님 말씀(잠 3:27-35)

잠언서 3장에서는 이웃을 도와주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웃에게 베풀라고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이웃의 것을 빼앗으려고 하지 말고 해하지 말라고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이

rhb-bible.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