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히.헬라어 주석 강해

[열왕기하 18장 히브리어 강해] 놋뱀을 깨뜨린 히스기야(왕하 18:1-8)

르호봇 2021. 6. 27.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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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열왕기하 18장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놋뱀을 깨뜨린 히스기야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모세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평을 하다가 불뱀에 물려 죽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불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았습니다. 이 놋뱀을 보는 자마다 살아났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도 계속해서 놋뱀을 신성시하고 있었습니다. 놋뱀 자체에 능력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여 우상화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가 놋뱀을 깨뜨려버렸습니다. 우리도 잘못하면 이런 신앙을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가 능력이 있는 것처럼 십자가를 숭배할 수 있습니다. 죄를 사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숭배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던 도구로 사용했을 뿐이지 십자가에는 능력이 없습니다.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치중하는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도 놋뱀과 같은 우상을 깨뜨려 버리는 성도의 삶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놋뱀을 깨뜨린 히스기야(왕하 18:1-8)

 

1절 바예히 비쉐나트 솰로쉬 레호셰아 벤 엘라 멜렉크 이스라엘 말라크 히즈키야 벤 아하즈 멜렉크 예후다

왕하 18:1 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 삼 년에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니

2절 벤 에세림 베하메쉬 솨나 하야 베몰르코 베에세림 바테샤 솨나 말라크 비루솰람 베솀 임모 아비 바트 제카르야

왕하 18:2 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 오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요 스가리야의 딸이더라 

  
=====18:1,2

호세아 삼 년에... 히스기야가 왕이되니 - 호세하 3B.C. 730년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때는 히스기야가 아하스와 공동 통치를 하던 때이고 정작 그가 왕위에 오른 때는 B.C.728년 경이다. 그런데 문제는 본장에서 산해립이 유다를 침입한 때 (B.C. 701)를 히스기야 14년으로 언급하고 있는 점이다(13). 그렇다면 히스기야는 B.C.715년 경에 즉위한 셈이 된다. 이러한 연대상의 난문제는 이미 앞에서도 살펴본 바인데 이에 대해 흑자는 B.C. 728년과 715년 사이에 약 13년간의 연대기가 빠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Thiele).

우리는 여기에서 히스기야의 통치에 대한 일반적인 기록을 보게 된다. 그의 아버지의 나이와 그의 나이를 비교해 보면, 그의 아버지가 11살 내지 12살에 그를 낳았던 것 같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그가 나이가 차게 되어 직무를 감당하기에 적합하게 된 때에는, 이미 그의 아버지의 죄악이 한도에 다다랐다.

그의 위대한 경건심. 이것은 그의 아버지가 열왕 중에서 가장 악한 왕의 하나였고, 매우 악하고 타락하였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빛나게 되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가장 선한 임금 중의 하나였다. 이것은 우리에게 다음 사실을 말해 준다. 즉 사람에게 있는 선한 것은 타고난 것이 아니고 은총, 절대 은총, 최상의 은총에 속한 것이요, 그 은총은 천성과는 달리 천성적으로 악한 감람나무를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이는 일을 한다는 것(롬 11:24), 그리고 또 그 은총은 아무리 큰 곤란이나 약점도 극복한다는 것을 알려 준다. 그의 아버지 아하스 왕은 자식에게 나쁜 모범은 물론 나쁜 교육을 시켰을 것이다. 그의 제사장 우리야가 아마 그를 교육시켰을 것이다. 생각건대, 그의 시종자들과 친구들은 우상숭배를 고수하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뛰어나게 훌륭한 인물이 되었다. 하나님의 은총이 역사하면, 그 무엇이 방해할 수 있으랴!

3절 바야아스 하야솨르 베에네 아도나이 케콜 아쎄르 아사 다비드 아비브

왕하 18:3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18:3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 이러한 특별한 찬사는 유다 왕들 가운데 오직 아(왕상 15:11)와 요시야(22:2)에게만 주어졌다. 이러한 평가는 북왕국의 열왕들에 대한 평가와 아주 대조적인 것이다. 아마도 그 아비 아하스와 선지자 이사야의 접촉이 잦았던 점으로 보아(사 7:3-16) 히스기야는 어릴 때부터 이사야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영향이 스가리야로부터 받은 영향과 함께 히스기야를 훌륭한 신앙인으로 성장시켰을 것이다(Pulpit Commentary).

그는 참으로 다윗의 아들이었다. 다윗에게는 타락한 자식들이 매우 많이 있었다(3절). 그러나 “히스기야는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 하나님은 바로 다윗과 언약을 맺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에게는 그 언약의 은혜를 입을 권리가 있었다. 우리는, 옳은 일을 행하기는 했지만, “다윗과 같지는 않았던” 자들이 있었음을 알고 있다(14:3). 그들은, 다윗이 행했던 바와 같이 하나님의 명령을 사랑하지 않았고, 그것들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제2의 다윗으로서, 다윗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했고, 하나님의 집을 사랑했다. 세월과 사람이 악할수록 덕은 더욱 필요하지만 오히려 계속하여 더욱 덕이 없어지는 것을 보더라도 놀라지 말자. 히스기야는 많은 악한 왕들을 따르지 않았으니,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다윗과 같은 왕을 세우셨기 때문이다.

4절 후 헤시르 에트 하바모트 베쉬바르 에트 하마체보트 베카라트 에트 하아셰라 베키타트 네하쉬 하네호셰트 아쎄르 아사 모쎄 키 아드 하야밈 하헴마 하이우 베네 이스라엘 메카트림 로 바이크라 로 네후쉐탄

왕하 18:4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찢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5절 바아도나이 엘로헤 이스라엘 바타흐 베아하라이브 로 하야 카모후 베콜 말케 예후다 바아쎄르 하이우 레파나이브

왕하 18:5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18:4,5

그는 열렬한 왕국 개혁자였고,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대하 29:3) 알맞은 시기에 그 개혁을 시작했다. 즉 그가 왕위에 오르자마자 착수했다. 조금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그의 나라가 매우 부패해 있고 그 백성이 만사에 지나치게 미신적임을 알아냈다. 그들은 언제나 그러했었다. 그러나 지난 왕대(王代)에 있어서는 이전보다 더욱 심했다. 히스기야의 악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우상숭배가 그 땅을 대홍수와 같이 뒤덮었다. 그의 마음은 이 우상숭배로 인해 분기되었다. 그것은 아덴에서의 바울의 분개와 같았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당시에는 아버지가 살아 있었다. 그리하여 그가 실권을 잡게 되자마자 그는 곧 우상을 훼파하는 일을 시작했다(4절). 물론 그 백성이 우상숭배와 긴밀히 결합되어 있는 것을 생각할 때, 그 일에 반대가 있으리라는 것은 각오했을 것이다.

주상들과 아세라 목상들은 완전히 우상숭배적이고 이교도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는 그것을 부수고 파괴했다. 비록 그의 아버지는 그것들을 세우고 그것들에 대해 애착을 표시했지만, 그는 그 우상들을 보호하지 않았다. 우리는 결코 육친의 부모들 때문에 하나님을 모독해서는 안 된다.



산당들은 특별한 절기 때에는 선지자들에 의해서 사용되어 왔고, 선한 왕들도 묵인해 왔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성전에 대한 모욕이며, 다만 성전에서만 예배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율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그리고 제사장들의 감독하에 있으므로 산당들은 우상숭배적인 예배 법을 끌어들이는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선배들의 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법으로 삼은 히스기야는 산당을 제거했다. 산당을 제거하는 법을 제정하고, 거기에 세워진 예배당과 장막과 제단들을 파괴하는 법을 만들었고, 그러한 것들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그 법은 엄격히 지켜졌다. 그리고 아마도 이스라엘 왕국이 그들의 우상숭배 때문에 받아야 했던 그 무서운 심판들을 보고, 히스기야는 더욱 열렬한 개혁자가 되었고, 그 백성들도 더욱 자진해서 그와 합심하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 이웃의 해를 보고 경고를 삼는 일은 좋은 일이다.

놋뱀은 원래 하나님의 명령에서 연유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상숭배로 악용됨으로 인해, 그는 놋뱀을 부수어 버렸다. 그 놋뱀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으로 들어올 때 가지고 들어왔던 것이다. 그들이 그것을 어디에다가 세웠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광야에서의 그들 조상에게 베풀어졌던 하나님의 선하심의 기념과 그 이야기의 사실을 전통적으로 입증하는 증거물로써 조심스럽게 보존되었었다(민 21:9). 이것은 환자에게는 하나님께 그 치유를 의뢰하게 해 주고,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하나님께 자비를 구할 수 있는 용기를 불러일으켜 주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들은 창조주보다도 피조물을 더 숭배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들 이웃의 어떤 민족들이 행했던 바와 같은 이교도의 주상 숭배를 싫어하던 자들은 놋뱀에게 분향하도록 하는 사단의 유혹을 받았다. 놋뱀은 하나님의 직접 명령에 따라 만들어졌고, 그들에게는 자비의 도구가 되어 왔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경건한 열심을 지닌 히스기야는, 그 백성들에게 그것을 예배하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더 이상 악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 놋뱀이 “느후스단” 곧 “한 조각의 놋”에 불과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므로 그것에 분향하는 것은 어리석고 악한 일이라는 것을 그 백성들에게 알리려 한 것이다.

패트릭(Patrick) 주교가 설명하는 바와 같이, 그때 그는 놋뱀을 파괴하여 가루로 갈아서 공중에 흩어버렸고, 조각조차도 남지 않게 했다. 이리하여 놋뱀의 정당한 영예가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그 영예가 다시금 훌륭하게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즉 요한복음 3장 14절에서, 우리의 구주께서는 놋뱀을 자신의 모형으로 삼으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도 그것이 우상화될 때에는 보존되기보다는 차라리 없어지는 것이 더 낫다.

6절 바이데바크 바아도나이 로 사르 메아하라이브 바이쉐모르 미츠보타이브 아쎄르 치바 아도나이 에트 모쎄

왕하 18:6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7절 베하야 아도나이 임모 베콜 아쎄르 예체 야세킬 바이므로드 베멜렉크 아슈르 베로 아바도

왕하 18:7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8절 후 히카 에트 펠리쉐팀 아드 아자 베에트 게불레이하 미미그달 노체림 아드 이르 미브차르

왕하 18:8 그가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더라 


=====18:6,7,8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 히스기야 왕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신 4:4말씀에 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히스기야는 여호와를 향한 정열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세속의 삶 가운데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신앙을 지켜나가기란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연합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15:4-6).

이 점에 있어서 그는 누구라도 비길 수 없는 사람이다.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와 같은 자가 없었다”라고 했다(5절). 그의 개혁에 있어서 뛰어난 점은 두 가지다.

용기와 하나님을 믿은 신앙이다. 그가 우상을 제거하는 것은, 신하들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므로 그들로 반역하도록 자극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다.” 즉 그는 자기가 하는 일을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이며 자기를 해 받지 않게 구원하실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우리를 보호하시고 상 주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확고하게 믿는 일은, 우리의 의무를 행할 때에 히스기야와 같이, 우리를 담대하게, 신실하게, 활기 넘치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가 왕위에 올랐을 때 그의 왕국의 원수들에 둘러싸인 것을 발견했지만, 그는 그의 아버지가 했던 바와 같이 외국에 지원을 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보호자이심을 믿었다.

의무 수행에 있어서의 참을성과 견실성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그와 같은 자가 없었다. 즉 그는 확고한 결의로써 여호와 하나님을 굳게 의지했다. 그리고 “그를 좇는 데서 결코 떠나지 않았다”(6절). 처음에는 잘 시작했던 그의 선조들 중의 어떤 이는, 중도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그는 갈렙과 같이 여호와를 전적으로 따랐다. 그는 모든 우상숭배적인 관례를 제거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켰고, 또한 모든 일에서 자기의 의무를 의식했다.

그의 개혁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7-8절). 그는 하나님과 함께 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다.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가 그와 함께 했을 때, “그가 어디로 가든지 성공하였고”(7절), 그의 모든 사업에서 즉 전쟁, 건축, 그리고 특히 개혁에 있어서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왜냐하면, 그 선한 사업은 그가 예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쉽게 수행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힘을 믿고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은, 그것에서 성공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진리는 위대하고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그는 자기의 성공을 보고 나서,

아버지가 굴종했던 앗수르 왕의 멍에를 벗어버렸다. 이 사건은 “그를 반역한” 것이라고 일컬어진다. 앗수르 왕이 그 사건을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히스기야가 자기의 왕위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었으나, 아하스의 힘으로는 그렇게 하지 못했었다. 이 대담한 투쟁을 즉각적으로 시작한 것이 신중하지 못한 일일지도 모르나 어떤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나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부정하지는 않다. 그가 열방의 우상숭배를 떨쳐 버리고 났다면, 곧 그들의 억압의 멍에도 벗어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자유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길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는 블레셋 사람들을 맹렬히 공격했고, 그들은 가사에 이르기까지 그 촌락들과 성곽이 둘린 성읍들을 쳤다. 그러므로 그가 친 것은 “망대와 견고한 성”이었다. 그것은 자기 아버지 시대에 그들이 쳐들어와 스스로 주인이 되어버렸던 곳들이나(대하 28:18), 그는 그것을 탈환했다. 그의 아버지 시대에 아버지가 끌어들여 왔던 부패를 그가 일소하고 났을 때 그 아버지가 잃었던 소유물들을 그가 회복했다는 것은 능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블레셋에 대한 히스기야의 승리에 대해서는 이사야가 예언했었다(사 14:28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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