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열왕기상 18장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선지자 100명을 구한 오바댜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합과 이세벨 당시의 북이스라엘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가 판을 치던 시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참 선지자들은 핍박을 받아 순교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럴 때 오바댜는 선지자 백 명을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하나님의 종들이 먹고 살아가기가 쉽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육적인 먹을 것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온전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거짓 복음이 교회에 들어와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율법주의 사고가 교회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참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파해야 하겠습니다.
선지자 100명을 구한 오바댜(왕상 18:1-6)
1절 바예히 야밈 라빔 우데바르 아도나이 하야 엘 엘리야후 바솨나 하쉘리쉬트 레모르 레크 헤라에 엘 아흐아브 베에트나 마타르 알 페네 하아다마
왕상 18:1 많은 날이 지나고 제 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18:1
많은 날을 지내고 제 삼 년에 - '많은 날'(야밈 라빔)이란 표현은 어감상(語感上) '세월이 제법 많이 흘렀음'을 나타낸다. 그런데 언제로부터 계산해서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말인가? 아마도 이는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집에 체류하기 시작한 때(17:8-16)로부터 일컫는 말일 것이다. 그 이유는 본절에서 '제 삼 년에'라는 설명이 곧이어 나오기 때문이다.
즉 히브리적 시간 계산 방법에 의거할 때 '제 삼 년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은 실지로 만 3년이 못된다는 것이 분명하다. 더욱이 신약성경에 의하면, 엘리야 시대의 가뭄은 3년 반 동안 계속되었다고 한다(눅 4:25; 약 5:17). 따라서 본절의 '제 삼 년에'는 엘리야가 아합에게 가뭄을 선포한 때(17:1)를 기점으로 잡고 계산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Prlpit Commentary, Lange, Keil & Delitzsch).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 '보이라'(라아)는 말은 문자적으로는 물론 '가서 만나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에 함축되어 있는 뜻은 보다 폭넓고 깊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 단어가 '제시하다', '증명해 보이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이 동사에 의해 표현되는 행동은 앞서 선행된 어떤 예시, 예견에 대한 결정적 증거 제시의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본장에서 엘리야의 행적은 이러한 의미에 부합된다. 즉 엘리야는 일찍이 아합에게 가뭄을 예언한 바 있다(17:1). 그런데 지금 엘리야는 가뭄 종식의 예언을 위해 다시 아합과 만나도록 명령받는다. 왜냐하면 엘리야가 그 같은 선포를 하여야만 가뭄과 같은 자연력의 고삐를 쥐고 계신 분은 바알(Baal)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심이 명백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아합에게 '보이러'가는 엘리야의 행동은 여호와의 하나님 되심을 '증명해 보이러'가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2절 바옐레크 엘리야후 레헤라오트 엘 아흐아브 베하라아브 하자크 베쇼므론
왕상 18:2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가니 그 때에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였더라
=====18:2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였더라 - 사마리아(Samaria)는 아합에 의해 소위 자연의 풍요로움과 생산의 풍부를 보장한다는 바알 신을 섬기는 중심지가 된 곳이다(16:29-33). 그런데 바로 그곳이 기근(饑饉)으로 허덕였다는 점은 본서 기자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다름 아니라 바로 바알 숭배의 허구성을 폭로해 주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서 '심하였더라'(하자크)는 말은 '아주 맹렬하였다'로 번역할 수 있다. 이는 곧 그 이상 더할 수 없을 가뭄이 사마리아를 덮쳤다는 말이다.
3절 바이크라 아하아브 엘 오바드야후 아쎄르 알 하바이트 베오바드야후 하야 야레 에트 아도나이 메오드
왕상 18:3 아합이 왕궁 맡은 자 오바댜를 불렀으니 이 오바댜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라
=====18:3
궁내 대신 오바댜 - '오바댜'(오바드야후)는 '여호와를 섬기다'는 뜻이다. 특히 이 이름 속에 담긴 동사 '아바드'는 '노예처럼, 종처럼 섬기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런데 사실상 이름 그대로 오바댜(Obadiah)는 지극한 열심으로 여호와를 섬긴 사람이다. 즉 당시 바알 숭배의 심장부라 할 아합 궁중의 고위직에 있었던 자였음에도 그가 여호와의 선지자 일백 인을 숨겨 주었다는 사실(4절)은 가히 그 신앙의 열성과 순수함을 짐작케 해준다. 한편 '오바댜'는 구약에서 비교적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다(대상 3:21; 7:3; 8:38; 9:16; 대하 17:7; 34:12; 스 8:9). 따라서 동명이인(同名異人)을 혼동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크게 - '크게'(메오드)는 '대단히', '지극히' 등의 뜻을 갖는 부사이다. 그런데 성경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을 섬기는 바람직한 태도를 묘사하기 위해 자주(구약에서 약 300회) 사용되었다(신 6:5; 왕하 23:25). 한편 신약에서 이 단어는 '마음과 힘(mind and strength)을 다하여'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러한 표현은 이 말이 갖는 심도를 잘 드러내 준다(막 12:30; 눅 10:27).
여호와를 경외하는 - '경외하다'에 해당하는 '야레'에는 '두려워하다'. '놀라워하다'는 뜻도 들어 있다. 이는 곧 하나님과 접해 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체험적 신앙을 은연중 강조해 준다.
4절 바예히 베하케리트 이제벨 에트 네비에 아도나이 바이카흐 오바드야후 메아 네비임 바야헤비엠 하미쉼 이쉬 바메아라 베킬르켈람 레헴 바마임
왕상 18:4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백 명을 가지고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더라
=====18:4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대에 - 이때가 언제인지 정확치 않으나 학자들은 대개 엘리야의 가뭄 선포(17:1) 이후로 본다(Hammond). 그것은 두어 가지 가능한 추측 때문인데 곧 다음과 같다. (1) 엘리야의 정면 도전(가뭄 선포)에 대한 보복 조처였으리라는 추정(Hess, Menken)이다. 한편 이세벨(Jezebel)에게 박해를 당한 '선지자들'이란 아마도 선지다 학교의 생도 들일 것이다(Bahr, Hammond, Keil, K. Austel).
선지자 일백 인을... 굴(窟)에 숨기고 - 사마리아 서북방 약 60km 지점에 위치한 갈멜산(Mount Carmel) 주변에는 당시 약 2,000개의 석회굴이 있었다고 한다(Montgomery). 따라서 오바댜가 선지자들을 숨긴 곳도 이 지역 어느 곳일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역사적으로도 갈멜산 일대는 피난자들의 은신처였는바 신약 시대에는 일명 '은자(隱者)의 고장'이라 불릴 정도였다.
가져 - 원래 '가져'에 해당하는 '라카흐'는 '취하다', '움켜쥐다', '채어가다' 등의 뜻이다. 따라서 이 동사는 대단히 역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이는 이세벨의 마수가 시시각각 닥쳐오는 절박한 시점에서 재빠르게 선지자들을 빼돌리는 오바댜의 스릴 있는 움직임을 연상시켜 주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한글 개역 성경처럼 '가져'라고 번역하기보다 '빼돌려'라고 번역함이 보다 바람직하다.
5절 바요메르 아흐아브 엘 오바드야후 레크 바아레츠 엘 콜 마에예네 하마임 베엘 콜 하네할림 울라이 니므차 하치르 우네하예 수스 바페레드 베로 나케리트 메하베헴마
왕상 18:5 아합이 오바댜에게 이르되 이 땅의 모든 물 근원과 모든 내로 가자 혹시 꼴을 얻으리라 그리하면 말과 노새를 살리리니 짐승을 다 잃지 않게 되리라 하고
=====18:5
물 근원(根源) - 이 말은 일반적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 좀 어색한 표현이다. 그런데 '근원'에 해당하는 '메에'는 본래 '창자', '생식기' 등을 뜻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무엇인가를 산출해 내는 내부의 근원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절의 '물 근원'은 '물이 흘러나오는 근원이 되는 곳'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이는 '수원지'(水原地)라는 보다 널리 쓰이는 말로 표현 하는 것이 더 낫다.
말과 노새를 살리리니 - 극심한 가뭄과 기근 중에 아합의 관심이 이처럼 말과 노새 보호에 쏠려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비록 혹자는 그것이 움직일 수 없는 우리 속의 짐승을 위한 불가피한 처사로 변호하지만(Hammond), 아합의 일차적 관심이 백성에 있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는 당시 아합의 권력 기반이 말과 노새가 상징하듯 군사력과 상업력에 있었지, 여호와로부터 위탁받은 백성들로부터의 신망(信望)에 있지 않았음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6절 바예할르쿠 라헴 에트 하아레츠 라아바르 바흐 아흐아브 할라크 베데레크 에하드 레바도 베오바드야후 할라크 베데레크 에하드 레바도
왕상 18:6 두 사람이 두루 다닐 땅을 나누어 아합은 홀로 이 길로 가고 오바댜는 홀로 저 길로 가니라
=====18:6
아합은 홀로 길로 가고 - 아합이 왕의 신분으로써 호위 군사나 수행원도 없이 홀로 탐색에 나섰다는 것은 이상하다. 그러므로 본절에서 '홀로'(레바드)란 말은 '따로', '별개로'의 뜻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한편 사막 지대의 군주나 족장이 일반적으로 그러하듯 당시 극심한 가뭄 상황하에서 아합 왕이 직접 수원지 탐색에 나선 일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라 한다(Pulpit Com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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