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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히브리어 주일설교] 헤렘을 손대어 저주받은 아간(수 7:16-21)

르호봇 2021. 3. 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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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여호수아 히브리어 주일설교 중에서 하나님의 헤렘을 손대어 저주받은 아간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헤렘은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을 말합니다. 여리고 성의 모든 것은 헤렘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이기 때문에 손대면 안 됩니다. 그런데 아간이 헤렘에 손을 대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아이 성을 점령하지 못하고 패배하게 됩니다. 아간의 죄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가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아간의 죄를 지적하셨습니다. 제비를 뽑았는데 아간이 걸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나 때문에 공동체에 피해를 주는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내 가정과 교회와 직장에 문제가 생기게 하면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축복이요 불순종하면 결국 저주를 받게 됩니다. 이 시간 아간을 통해서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의 신앙을 올바르게 하나님 앞에서 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헤렘을 손대어 저주받은 아간”(수 7:16-2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고 가나안 정복을 위한 첫 번째 도전으로 여리고 성을 함락하려고 합니다. 이 성은 난공불락의 성으로서 성문을 닫으면 외부에서 공격하여 성을 함락하기가 쉽지 않은 성입니다. 이 성을 함락하기 위하여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부한 말씀이 있습니다.

18절은 베라크 아템 쉬메루 민 하헤렘 펜 타하리무 우레카흐템 민 하헤렘 베사메템 에트 마하네 이스라엘 레헤렘 바아카르템 오토입니다.

19절은 베콜 케쎄프 베자하브 우켈리 네호쎄트 우바르젤 코데쉬 후 라아도나이 오차르 아도나이 야보입니다.

 

6:18-19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은 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하니라

여리고성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첫 관문입니다. 그래서 여리고성에서 취하는 모든 물건은 하나님의 것이 됩니다. 첫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한 은과 금과 동철 기구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구별하여 여호와의 곳간에 들이라고 여호수아가 명령하였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것을 손대면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손을 대지 말라고 했는데 샤마르 8140입니다. 지키다 보존하다 준수하다는 뜻입니다. 칼(능동태) 명령법을 사용합니다. 너희는 반드시 헤렘에 손을 대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만약에 말씀을 지키지 않고 손을 대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명령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강력한 요구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첫 열매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물질의 십의 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이것을 소홀히 하여 하나님의 것에 손을 댄다면 나도 또한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신앙이 될 것이고 결국은 교회와 가정을 망하게 하는 장본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아간의 신앙을 통하여 나의 영적 신앙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아간의 신앙은 어떤 신앙이었는지를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물건에 손을 대는 신앙이었습니다.

1절은 바이메알루 베네 이스라엘 마알 바헤렘 바이카흐 아칸 벤 카르미 벤 자베디 벤 제라흐 레마테 예후다 민 하헤렘 바이하르 아프 아도나이 비베네 이스라엘입니다.

 

7:1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아간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 바친 물건에 손을 대어 범죄 하였습니다. 자신의 욕심에서 나온 행위였습니다. 하나님의 첫 열매를 손에 대니 결국 이스라엘 전체가 화를 당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에 손을 대서는 안 됩니다.

 

온전히 바친 물건을’이라는 단어는 헤렘 2764입니다. 드림, 바친 것,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하람 2763 진멸하다, 멸절시키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자신의 것을 구별하여 드린 물건에 손을 대는 것을 싫어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리고 성의 첫 열매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아간은 이미 하나님의 것에 손을 대어 멸하기로 작정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저주를 받게 됩니다.

 

이것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표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간의 잘못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정복 전쟁에 타격을 입게 됩니다. 아이 성을 정복하려고 갔던 삼천 명이 실패하고 돌아오게 됩니다.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는 한 명도 죽지 않고 무혈입성했는데 아이 성은 36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그 이유가 아간의 죄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가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36의 숫자적 의미는 30+6입니다. 30은 알맞은 순간, 그리스도의 피, 헌신, 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6은 세상, , 불완전, 세속의 완전, 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리고성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승리한 전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헌신이 들어간 전쟁입니다. 또한 가장 알맞은 때에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을 정복하게 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아간은 세상의 욕심과 세속에 빠져 사는 신앙을 가지고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이 욕심 때문에 자신의 마음은 계속해서 불완전하여 괴로웠습니다. 아간의 욕심 때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나의 욕심 때문에 공동체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됩니다. 

15절은 에이타 헤 에피뒤미아 쉴라부사 티크테이 하마르티안 헤 데 하마르티아 아포텔레스데이사 아포퀴에이 다나톤입니다.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욕심이 잉태했다고 했는데 쉴람바노 4815입니다. 임신하다는 뜻입니다. 분사 과거 능동태 문법입니다. 욕심이 잉태되었다는 것은 임신하듯이 이미 뱃속에 아이가 있는 것처럼 욕심이 자리고 있음을 말합니다. 분사는 욕심이 계속해서 자라나고 있다가 때가 되매 밖으로 아이가 나오는 것처럼 행동에 옮기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과거 시제는 욕심은 이미 인간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간은 욕심 때문에 죄를 낳게 되었고 이 죄가 점점 자라나서 멸망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럼 우리들도 이와 같은 신앙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물건에 손을 대서는 안 됩니다. 십의 일을 내가 갖는 것도 하나님의 물건에 손을 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교회 전체가 복을 받을 수가 없고 가정 또한 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내 안에 욕심을 임신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자라나게 되면 결국 행동으로 나오게 됩니다.

 

죄가 장성했다고 했는데 아포텔레오 658입니다. 이행하다 성취하다는 뜻입니다. 분사 과거 수동태 문법입니다. 죄가 장성했다는 것은 욕심이 밖으로 빠져나와 행동으로 이행했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욕심을 성취했다는 말입니다. 분사는 자신의 욕심대로 자기가 행동에 옮겨서 아간처럼 하나님의 헤렘에 손을 댄 것을 말합니다. 과거 시제는 욕심이 뱃속에서 계속해서 자라나고 있었기 때문에 행동에 옮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수동태는 한 번 욕심이 잉태하면 겉잡을 수 없이 장성하게 되고 결국 이것이 사망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의 말씀으로 절제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죄가 내 안에서 자라날 수밖에 없습니다.

아간’이라는 단어는 아칸 5912입니다. 괴롭히는 자, 골치 아픈, 괴로운, 이라는 뜻입니다. 아간은 이름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모든 사람을 괴롭히는 자며 골치 아픈 존재로서 하나님 앞이나 사람 앞에서 괴로움을 주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간의 신앙은 철저하게 욕심과 정욕에 빠져있는 신앙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것과 나의 것을 구별하여 하나님도 괴롭게 하지 않고 사람도 괴롭게 하지 않는 거룩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욕심을 버릴 수 있는 길은 복음의 말씀으로 나를 쳐서 절제하는 방법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아간의 죄를 보시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8절은 바야케레브 에트 베토 라게바림 바이라케드 아칸 벤 카르미 벤 자베디 벤 제라흐 레마테 예후다입니다.

 

7:18 삽디의 가족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더라

 

하나님은 제비뽑기를 통하여 죄인을 골라내셨습니다. 먼저 이스라엘 전체에서 지파를 선택하였습니다. 이때에 유다 지파가 뽑혔습니다. 그리고 유다 지파 중에 세라 족속이 뽑혔습니다. 그리고 삽디가 뽑혔고 그다음에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죄인으로 뽑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간의 죄를 기억하시고 멸망받을 자로 선택하셨습니다.

 

뽑혔더라’라는 단어는 라카드 3920입니다. 문법은 와우접속사 동사 닢알(수동태)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입니다. 제비를 뽑다, 탈취하다, 걸리다, 포획하다, 라는 뜻입니다. 아간이 제비뽑기에서 즉시 뽑히게 됩니다. 와우접속사 문법은 시제를 바꾸어 해석하는 문법입니다. 미완료 시제이니 완료로 해석합니다. 아간이 빼도 박도 못하도록 완전히 낙인이 찍혔다는 것을 말합니다. 더 이상 빠져나갈 수 없도록 하나님은 제비뽑기를 통해서 아간을 뽑았습니다. 그 이유가 수동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아간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뽑히도록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간은 정신없는 전쟁터에서도 자신의 것을 챙기기에 급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한 것입니다. 유다 지파는 명문 가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유다 지파를 통하여 오신다고 예언까지 되었던 지파입니다. 그런데 아간은 명문 가문에서 제대로 된 신앙의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몰랐습니다. 이렇게 자신 멋대로 하나님의 물건을 탈취하여 자신의 장막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여리고 성을 함락하기 위하여 정신이 없는데도 아간은 자신만 잘 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눈은 피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눈은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눈에 딱 걸리게 되어 아간을 제비 뽑아 동물을 포획하듯이 붙잡아 죽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간을 즉시로 포획하였습니다. 포수가 동물을 잡기 위하여 준비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아간을 잡기 위해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아간은 하나님의 눈을 빠져나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아간의 행동을 예의 주시하면서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생활을 하면서 아간처럼 신앙생활을 한다면 사람의 눈은 피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눈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기지 못한 자들입니다. 교회에서 중대한 일을 하고 있는데 자신은 교회 공동체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틈을 타서 자신의 유익을 챙기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지 말고 교회에서 큰 행사를 치를 때에 뒷전에 빠져 아간처럼 물질의 유익만 챙기려는 신앙을 버려야 합니다.

 

셋째, 아간이 하나님보다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21절은 바에르에 바샬랄 아데레트 쉰아르 아하트 토바 우마타임 쉐칼림 케세프 우레쑌 자하브 에하드 하미쉼 쉐칼림 미쉐칼로 바에흐메뎀 바에카헴 베힌남 테무님 바아레츠 베토크 하아홀리 베하케세프 타흐테이하입니다.

 

7:21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그 무게가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가졌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하더라

 

아간이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금덩이 하나를 탐내어 가졌습니다. 이것을 자신의 장막에 숨겼습니다. 아간이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여리고 성에 들어가자마자 여리고 성주가 있고 있던 시날 산의 외투를 훔쳤습니다.

 

보고’라는 단어는 라아 7200입니다. 문법은 와우접속사 동사 칼(능동태) 미완료 공성 1인칭 단수입니다. 보다, 생각하다, 찾다, 결정하다, 주목하다, 라는 뜻입니다. 성경 원문에는 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맨 처음에 나오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는 항상 보는 것으로부터 나오게 됩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을 때에도 먼저 보았습니다. 아간도 먼저 시날 산의 외투가 보기 좋았고 금과 은이 눈에 들어왔던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아간은 많은 생각을 했으며 현재 전쟁판에서 시날 산의 외투를 찾았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시날 산의 외투는 여리고 성의 성주가 입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간은 이것을 탐냈다고 합니다. 이것을 눈으로 주목하여 보니 마음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것을 취하지 말라고 했는데 자신의 마음속에는 가져야 한다는 욕망이 용솟음쳤습니다. 그래서 아간이 결정했는데 잘못된 결정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고 인간의 욕심을 따라갔던 것입니다.

 

아름다운 외투’라는 단어는 아데레트 155입니다. 외투, 왕의 의복, 화려함,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아다르 142 영예를 얻다, 존귀하다, 영광을 나타내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아간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바벨론에서 수입된 값비싼 왕의 옷을 훔쳤습니다.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원하였으며 하나님이 영광을 받아야 하고 예수님이 영광을 받아야 할 것을 자신이 독차지하기 위하여 자신 스스로 왕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렇게 영예를 얻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교황과 같은 사람들이요 이단의 교주들이 아간과 같은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자리에 자신들이 앉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받을 영광을 아간이 받으려고 하니 진노를 받게 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교회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육적인 시날 산의 외투를 좋아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물질을 주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고 말씀을 무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에 자신이 올라가려고 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시날 산의 외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아간이 훔쳤던 물건 중에 금과 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문자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를 상고해 보아야 합니다.

 

’이라는 단어는 자하브 2091입니다. , 황금,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금이 빛을 내는 것처럼 반짝이는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금으로 사용한 것들을 보면 특히 성막에서 성소와 지성소는 모두가 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아간이 금을 훔쳤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무시한 것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위에 올라가려고 했던 것을 의미합니다. 현재 이단의 교주들과 가톨릭의 교황은 예수님의 신성 위에 올라가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예수님을 통하여 세상의 권리와 욕심을 채워간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장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여야 합니다.

’이라는 단어는 케쎄프 3701입니다. , 속전,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카싸프 3700 치욕을 당하다, 창피를 당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아간이 은을 훔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무시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자신의 치욕을 대신 갚아주셨는데도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물질의 욕심에 눈이 멀어 자신을 예수님의 자리에 올린 것입니다. 이렇게 했더니 하나님은 아간을 치욕 거리로 만들고 많은 사람들에게 창피를 당하게 하여 결국은 가족과 가축과 자신도 하나님께 진노를 받아 멸망의 길로 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앙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물질에 정신이 팔려 욕심을 부리면 영적인 하나님의 눈이 닫혀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간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믿지 않고 무시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다시 율법의 의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믿음이 아닌 율법의 의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면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시날 산 외투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가 더 올라가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면 이것은 명예에 대한 시날 산 외투입니다. 아간은 시날 산 외투만 입으면 자신이 여리고 성주가 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에 아간은 여리고 성주를 먼저 찾아가서 죽이고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한 상태에서 여리고 성주의 시날 산 외투를 취했습니다. 그렇다면 아간의 모든 신앙은 세상의 명예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훔치면서 명예를 얻으려고 하는 것은 미련한 짓입니다. 결국 멸망을 자초하는 꼴이 되고 맙니다.

 

그럼 금을 훔친 것은 무엇입니까? 아간은 금을 통하여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기를 원했다는 것을 영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바벨탑 사건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이름을 내고자 하나님께 죄를 짓고 있습니다. 금은 번쩍번쩍하면서 빛을 냅니다. 결국 아간은 자신의 이름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짓밟고 자신의 이름을 높이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가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자신의 영광을 높이려고 한다면 아간처럼 내가 하나님의 금을 훔쳤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여 자신의 안위만을 누리려고 한다면 결국 이런 사람들도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나의 하나님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할 때에 하나님이 축복해 주십니다.

 

그럼 은을 훔친 것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철저하게 파괴되실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을 통하여 구원을 얻어야 하는데 이것을 아간은 무시했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을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여 자신의 명예를 높이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은을 훔쳤다는 것은 예수님의 인성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완전하게 되려면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모두 믿어야 합니다. 둘 중에 하나만 믿는 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아간의 잘못된 신앙이 이스라엘과 족속과 가문과 가족들을 사지로 몰아가게 했습니다.

 

만약에 내가 교회생활을 하면서 아간처럼 신앙생활을 한다면 교회와 단체와 가족들을 죽음의 길로 인도하게 됩니다. 이제는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회개하여 내가 가지고 있는 시날 산의 외투와 금과 은을 다시 하나님께 온전하게 바쳐야 합니다. 그때에 모든 재앙이 사라지고 축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들은 온전한 신앙인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창세기 1장 히브리어 설교]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창 1:1-4)

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1장 히브리어 설교 중에서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시작과 끝이며 처음과 나중이며 알파와 오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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