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레위기 18장 히브리어 설교 중에서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는 동성애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동성애를 싫어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번성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상 명령에 따라 이 땅에서 충만하고 번성해야 합니다. 오늘은 히브리어 원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는 동성애”(레 18:22)
오늘은 한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동성애 법에 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정확하게 진단해 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동성애는 인간의 관점에서 허락하고 좋아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철저하게 가증한 행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다고 인간의 관점에서 동성애자들을 옹호하고 불쌍하다고 친근한 마음으로 그들도 용서해 주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무너지고 맙니다.
그럼 동성애라는 것이 학문적 관점에서는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동성애(同性愛, 영어: Homosexuality)는 생물학적 또는 사회적으로 같은 성별을 지닌 사람들 간의 감정적, 성적 끌림 혹은 성적 행위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게이는 남성 동성애자, 레즈비언은 여성 동성애자를 말합니다. 동성애는 사람뿐만 아니라 1,500종이 넘는 동물들에게도 발견되었으며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이 땅에서 번성하고 충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가정을 꾸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동성애자들이 결혼을 하는 법이 유럽에서는 통과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생명의 역사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 번성하고 충만해지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생명이 없는 것은 결국 죽음뿐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럼 다른 나라에서 동성애자 결혼을 통과시킨 나라들을 알아보겠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스웨덴, 스페인, 프랑스와 같은 유럽 국가들과 더불어, 캐나다,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뉴질랜드, 남아공 등 총 16개 국가에서 동성애자 결혼을 법제화하였습니다. 미국과 멕시코는 주정부 법에 따라 동성애자 결혼을 허용하고 있으며, 여러 나라에서 동성애자 결혼을 합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기독교 국가들도 동성애자 결혼을 옹호하여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가증이 여기는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동성애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레위기의 주제는 거룩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거룩하게 만들기 위하여 법을 주셨습니다.
3절은 케마아세 에레츠 미츠라임 아쎄르 예샤베템 바흐 로 타아슈 우케마아세 에레츠 케나안 아쎄르 아니 메비 에트켐 솨마 로 타아슈 우베후코테헴 로 텔레쿠입니다.
레 18:3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따르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하나님이 동성애의 법을 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하던 애굽의 풍속을 따르지 말고 또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동에 옮기지 말라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애굽과 가나안 땅에 이미 동성애자가 있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이방인들의 동성애를 따르지 말고 행동에도 옮기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좇지 말라고 했는데 얄라크 3212 동사입니다. 칼(능동태) 미완료 남성 2인칭 복수입니다. 칼형은 너희가 스스로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를 따르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미완료 시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가나안의 풍속을 계속해서 따르거나 규례도 행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세상의 풍속을 따라서 우상을 숭배하면 안 됩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계속해서 세상 풍속을 따르면 안 됩니다.
역사적으로 애굽에 동성애자가 있었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고대 시대의 도자기 파편에는 이성애를 다루는 그림뿐만 아니라 동성애를 다루는 그림들도 자주 발견되어왔습니다. 기원전 2400년경 고대 이집트의 5대 왕조 시대에 지어진 한 무덤에서는 두 남성의 성적 행위가 표현되어 있는 도자기가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무덤의 주인인 두 남성, 크눔호텝과 니안크크눔이 서로 코와 코를 맞대고 마주 보고 있는 벽화도 함께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집트 중 왕국 시대의 전승 이야기인 《네페르카레 왕과 사세넷 장군》도 파라오와 장군 사이의 동성애적 관계가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동성애자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실제 파라오 페피 2세의 이야기를 각색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을 토대로 본다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애굽에서는 동성애가 공공연하게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애굽 땅의 동성애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명령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동성애의 정확한 하나님의 의도를 깨달아야 합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동성애를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동성애를 보아야 합니다.
22절은 베에트 자카르 로 티쉐카브 미쉐케베 이솨 토에바 히입니다.
레 18:22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법을 주셨습니다.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행위는 가증한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행위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의도가 무엇일까요? 동성애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나는 구원받은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신부인 내가 동성애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주님을 버리는 행위입니다. 또한 동성애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생명력이 없습니다. 남자와 남자가 만나면 생명이 없습니다. 여자와 여자가 만나도 생명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가 만날 때에 신비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성애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법칙에 위배되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는 것입니다.
‘여자와 동침함 같이’라는 단어는 (미쉐카브 4904) 침상, 침실,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샤카브 7901) 동침하다, 눕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침상에서 남녀가 성적인 관계를 맺을 때에 사용하는 단어이며 또한 쉼을 얻기 위하여 침상에서 잠을 잘 때도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남녀가 침상에서 동침하여 잠을 잘 때에 사용하던 단어입니다. 이것은 동성애자들이 서로 침상에서 잠을 자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남녀가 서로 함께 동침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남자와 여자가 서로 침상에서 성적인 관계를 맺는 행위를 하듯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고 하나님은 강력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같은 동성애자들끼리 동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법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세상의 법을 어겼을 때는 두려워할 줄 알면서 하나님의 법을 어겼을 때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법은 바로 감옥에 들어가거나 벌금형을 받기 때문에 두려워 하지만 하나님의 법을 어겼을 때에는 눈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법이 세상 법보다 더 위에 있습니다. 이 세상의 법을 만든 기초가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남자와 동침하지’라는 단어는 (샤카브 7901 동사 칼(능동태) 미완료 남성 2인칭 단수) 동침하다, 강간하다, 행음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와 동침하듯이 동성애자와 동침하는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는 강간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상을 섬기는 행음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철저하게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계십니다.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는 것은 계속해서 남자는 남자와 여자는 여자와 계속해서 동침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법이 애굽과 가나안 이방인들에게는 적용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자들은 법이 없기 때문에 자신들 마음대로 동성애자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달랐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법으로 주셨기 때문에 이 법이 적용됩니다. 그래서 동성애자를 사랑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일이 됩니다.
32절은 레카 나쉐케 에트 아비누 야인 베니쉐케바 임모 우네하예 메아비누 자라입니다.
창 19:32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롯의 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후손을 얻었다고 했을 때에 여기에서 ‘동침하여’라는 단어가 (샤카브 7901)입니다. 롯의 딸들이 아버지가 술에 취해 있을 때에 강간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동성애자들이 서로 사랑을 하는 것은 강간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정상적인 성적인 행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셨는데 동침하지 말라고 했을 때에 (로 3808) 영원히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영원히 동성애자를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고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위반하는 행위이며 더 나아가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하는 행위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증한 일이니라’라는 단어는 (토에바 8441) 가증이 여김, 꺼리는 일, 혐오스러운 것,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타아브 8581) 마땅치 않게 여기다, 지긋지긋하게 하다, 미움을 받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성애자들의 성적인 행위를 가증이 여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혐오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혐오스럽고 불결한 행위가 동성애자들의 성적 행위입니다. 이런 행위를 계속해서 한다면 하나님의 눈에 마땅치 않게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행위가 하나님을 지긋지긋하게 만들어 더 이상 쳐다보기도 싫어하실 정도로 미움을 받을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동성애자들을 옹호해서도 안 됩니다. 내가 그 행위자가 아니라고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런 행위는 하지 않아도 마음에 동조하고 있다면 이것조차 하나님은 동성애자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7절은 아쿠사테 호티 에르레데 토이스 아르카이오이스 우 모이큐유세이스입니다.
28절은 에코 데 레고 휘민 호티 파스 호 블레폰 귀나이카 프로스 토 에피뒤메사이 아우테스 헤데 에모이큐유센 아우텐 엔 테 카르디아 아우투입니다.
마 5:27-28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을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간음을 행동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에 이미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았다면 마음에 간음했다고 주님은 말씀합니다.
간음하였다고 했는데 모이큐오 3431 동사인데 직설법 과거 능동태 단수 3인칭입니다. 직설법은 실제로 마음에 간음하는 생각을 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과거 시제는 이미 생각에 간음의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은 행동으로 옮겼을 때 죄가 되지만 신약은 더 강화가 되어 마음에 생각만 품어도 죄라고 말씀합니다. 그럼 이 말씀은 내가 동성애자도 아닌데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 말씀이냐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속에 동성애자를 동조하고 옹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도 동성애자와 같다고 말씀합니다.
내가 행동으로 동성애자의 성적 행위를 나타내지 않았다고 하지만 퀴어축제와 같은 동성애자의 집회를 좋아하고 구경하면서 대리만족을 하고 있다면 예수님께서는 너도 똑같은 동성애자와 같다고 강력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내 마음속에서도 동성애를 동조한다든가 아니면 동성애자들의 축제를 구경하면서 대리만족적인 생각을 가져서도 안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죄이기 때문입니다.
20절은 토아바트 아도나이 이케세 레브 우레초노 테미메 다레크입니다.
잠 11:20 마음이 굽은 자는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행위가 온전한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굽은 자는 여호와 하나님께 미움을 받아도 행위가 온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받게 됩니다.
여기에서 ‘미움을 받아도’라는 단어가 (토에바 8441)입니다. ‘토에바’의 히브리적 상형 의미를 본다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지 않고 세상적인 눈으로 집에서 은밀하게 죄를 지어 하나님과 호흡이 끊어진 상태라는 의미입니다.
마음에 동성애자들을 동조하고 여기에 함께 동참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혐오스러운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과의 영적인 호흡이 끊어진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이 되지 않은 자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미움을 받게 되는데 결국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내 마음속에서 동성애자의 행위에 동조하는 마음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동성애자와 동침할 때에는 어떻게 하라고 하시는지를 말씀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13절은 베이쉬 아쎄르 이쉐카브 에트 자카르 미쉐케베 이솨 토에바 아슈 쉐네헴 모트 유마투 데메헴 밤입니다.
레 20:13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하나님은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이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한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죽이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동성애를 싫어하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죽은 자들은 자신이 지은 죄대로 죄 값을 치렀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죽일지니’라는 단어는 (무트 4191 동사 호팔 미완료 남성 3인칭 복수) 죽다, 사라지다, 무감각해지다, 죽임을 당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성애자가 성적인 관계를 맺고 서로 사랑하는 행위가 있다면 죽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들으면 거부반응을 일으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면서 어떻게 이런 자의 영혼을 사랑하지 않고 죽일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을 오해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법을 주시고 그 법대로 하시는 것이 공의로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호팔형을 사용했다는 것은 죄를 지은 자는 반드시 죽여할 것을 말합니다. 미완료 시제는 계속해서 이런 죄를 짓지 못하도록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세상에서 사람을 강간했습니다. 이 법이 통과되어 반포가 된 상태입니다. 판사는 이 사람을 강력 범죄로 보아 사형을 선포했습니다. 그랬더니 강간을 한 사람이 판사 앞에서 말하기를 강간 한 번 했다고 무슨 사형까지 내릴 수가 있습니까? 도대체 이런 법이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말한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말할 것입니까? 강간당한 여자가 바로 내 딸입니다. 여러분들은 용서해주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용서하여 아무런 처벌도 내리지 않고 내보내 주었습니다. 이 사람이 다시 이런 죄를 짓지 않는다고 여러분들은 생각하십니까? 이렇게 되면 세상의 질서가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죄를 짓고도 당당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를 미혹하여 동성애자가 되었다고 한다면 이런 자들을 하나님은 처벌하십니다. 우리가 꼭 육체를 죽인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구약에서는 육체를 죽였지만 지금은 동성애자를 옹호하거나 동성애자가 되면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하나님과 영적인 감각이 무뎌지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죽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내가 동성애자임에도 하나님 앞에서 죄의식이 없다면 이 사람은 죽임을 당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죽임을 당하도록 지명이 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절대 이런 동성애자들을 옹호하거나 또한 따라가거나 동성애자를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자녀를 보호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에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나를 동성애로부터 보호하시고 이런 생각조차도 머리에 생각나지 않게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8절은 카이 프로스퀴네수신 아우토 판테스 호이 카토이쿤테스 에피 테스 게스 혼 우 게르랖타이 타 오노마타 엔 테 비블로 테스 조에스 투 아르니우 에스파그메누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입니다.
계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 책에 이름이 창세 이후로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짐승에게 경배하게 됩니다. 동성애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책에 나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다면 동성애자를 옹호하게 되며 이성애보다 동성애를 더 사랑하게 됩니다.
생명 책이 이름이 기록되었다고 했는데 그라포 1125 동사입니다. 동사 직설법 완료 수동태 단수 3인칭입니다. 직설법은 구원받은 백성은 실제로 생명 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에 선택받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생명 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완료 시제는 생명 책에 이름이 기록된 것은 이미 끝났다는 의미입니다. 수동태는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생명 책에 이름이 기록된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미 생명 책에 이름이 올라가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구원받은 백성들은 오직 예수님이 매일같이 생각나고 매일같이 신랑만 생각나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이렇게 주님과 이 세상에서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생명 책에 이름이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무장되어 있는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동성애자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랑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신랑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성애자들은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에 동성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런 자들에게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여 진정한 신랑을 만나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주님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같은 남자나 같은 여자에게 짜릿한 사랑을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이성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사랑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자들은 동성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부터 예수님을 믿기 싫으니까 핑계 대지 마시고 오직 주 안에서 동성애를 없애고 이성애자가 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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