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신약성경 말씀

[부활 주일설교말씀] 배 오른편에 던져 잡은 물고기 153마리(요 21:1-14)

르호봇 2024. 3. 21.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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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1장 부활 주일설교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나타나서 밤새 아무것도 잡지 못한 빈 그물로 낙심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순종하여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졌는데 그물에 큰 물고기가 잡혔는데 153마리였습니다. 베드로는 순종하므로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배 오른편에 던져 잡은 물고기 153마리(요 21:1-14)

 

.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그리스도 21:1-14

우리는 여기서 디베랴 바닷가에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그리스도에 관한 기사를 볼 수 있다. 전에 일어났던 일들과 이번에 일어난 사건을 비교해 보자. 전에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때는 그들이 모두 모여있던 주의 날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평일로서 제자들이 물고기를 잡고 있을 때 나타나셨다. 그것도 제자들 중 몇 사람에게만 자신을 나타내셨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자신을 알리는 방법은 다양하다. 주님은 그들이 일상 생업에 몰두해 있을 때 성령을 통해 그들을 만나신다. 둘째, 이번의 사건과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자신과 만나기로 한 갈릴리의 산에서 있었던 사건(28:16)을 비교해 보자. 이제 그리스도는 제자들이 그의 현현을 기다리는 동안 그 기다림에 지치지 않도록 자신을 나타내고 있다.

(1) 그리스도께서는 열 두 제자 모두에게가 아니라 그중 일곱에게만 나타나셨다(2). 나다니엘이 그들 중 하나로 언급되었는데, 우리는 1장 이후로는 그에 대한 기록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를 바돌로매와 동일한 인물로 간주한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함께 대화를 나누고 함께 일을 하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함께 있는 시간을 택하여 자신을 드러내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동일한 사실에 대한 공동의 증인이 되게 하려 하심이었다. 도마가 그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베드로 다음에 기명된 것으로 보아 이제는 그가 이전보다 사도들의 모임에 더욱 가까워진 듯하다.

(2) 그들은 어떻게 생업에 종사하게 되었는가(3).

1) 고기잡이 가는 것에 대한 그들의 동의: 나는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하고 말하자 그들도 "우리도 함께 가겠다"라고 동의한 것으로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동일 업종의 종사자끼리는 화합이 안되지만, 그들에게는 가능했던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한 것은 다름과 같은 목적을 위해서였다. 첫째, 기회가 다시 올 때까지 게으르지 않기 위함이다. 행동해야 할 때가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당분간 그들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오락이 아닌 생업으로서 고기잡이를 하려 했던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근면하며 자신들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임을 보여주는 일례이다. 그들은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게으르지 않으려고 했다. 자신들의 생애를 기쁘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공백을 가득 채우려고 애써야만 할 것이다. 둘째, 그들은 또 스스로 생계를 유지해서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2) 고기잡이에 대한 그들의 실망: 그날 밤 그들은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근면한 사람들도 종종 빈 손으로 돌아오곤 하며, 심지어 선한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정직하게 했더라도 바라던 만큼 성공하지 못할 경우가 있는 법이다. 그들은 신의 섭리에 의해 그날 밤 아무것도 잡지 못하다가 아침이 되어 기적적으로 많은 고기를 잡게 된다면 더욱 만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인간에게 몹시 혹독하고 절망적인 일들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극진한 은혜를 베푸신다.

(3) 어떠한 방법으로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을 보이셨는지 찾아보자. 1절에서 자기를 나타내셨으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나타내신 일 속에 네 가지를 관찰해 볼 수 있다.

1) 그리스도께서는 적절한 시기에 자신을 나타내 보이셨다. 날이 새어 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4).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것은 그들이 가장 난처한 입장에 처했을 때였다. 제자들이 자신의 갈 바를 모르고 있었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자기를 잃어버리지 않았음을 알도록 하실 것이다. 주께서는 물 위를 걷는 모습이 아니라, '바닷가에 서'있는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그것은 이제 그들이 그리스도를 향해서 나아가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 항로에 험한 폭풍아가 몰아칠 때 주님이 바닷가에 서 계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를 보고 서둘러 나아갈 수 있게 하신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 것인가?

2)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점진적으로 나타내 보이셨다. 제자들은 그것이 예수 님이었음을 즉시 알지 못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종종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까이 우리 곁에 계신다.

3)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제자들에게 내보임으로써 자비의 한 예를 드러내셨다. 5절에서 그는 제자들을 '자녀들'이라고 불렀다. ,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하셨던 것이다. 첫째, 이 호칭은 매우 친근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는 아버지가 자녀들을 보살피고 온화하게 대하듯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들은 연령적으로 어린이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자녀들인 것이다. 둘째,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한 질문은 매우 친절한 질문이었다. '주께서는 몸을 위하시느니라'(고전 6:13)는 말씀도 있듯이,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을 알고 계시므로 충분한 은혜를 베풀어 줄 뿐 아니라 일용할 양식도 넉넉히 약속해 주시는 것이다.

오늘도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자들의 오두막집을 들여다보시면서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묻고 계신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그들을 돌보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로 하여금 형제들에게 동정 어린 관심을 가지고 대할 것을 한 본보기로 보여 주시는 것이다. 노동력을 상실했거나 노동에 지쳐 가난하게 된 가장들이 많다. 그러므로 부유한 사람들은 그들을 향하여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묻고 그들의 어려움을 덜어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가장 궁핍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기주장을 제대로 내세우지 못하는 계층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없나이다'라는 짤막한 대답만을 전했다.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는 그리스도의 질문은 그들의 필요한 바를 몰라서가 아니라, 제자들로부터 직접 그 답변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리스도로부터 필요한 것을 공급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배고픔과 궁핍을 스스로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4)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권능을 나타내는 한 예로써 제자들에게 자신을 내보이셨다. 6절에서 그리스도는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라고 명령하신다.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르자 빈손으로 집에 가려던 제자들은 많은 고기를 잡아 풍요롭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명령과 그 명령에 수반되는 약속: 그의 명령은 그러한 곳에 "그물을 던지라"는 것이며, 또 그 명령을 지킬 경우 그 약속은 "얻으리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섭리는 가장 작은 일에까지 마치는 까닭에 자신의 일상업무 속에서 그가 주시는 암시를 깨달을 줄 아는 사람들은 행복한 것이다.

이 명령에 대한 제자들의 순종과 그 순종의 결과: 제자들은 그 말을 한 사람이 예수신 줄 아직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 누구로부터의 충고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용기가 있었다. 이처럼 낯선 사람의 말에 따름으로써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된 것이다. 그들 들의 모든 수고를 보상하는 수확을 올렸다. 그리스도의 명령을 잘 준 행해서 잃어버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이 수확에 대해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첫째, 그것 자체가 기적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행하심으로써 그들에게 자신을 증거 해 보이셨던 것이다. 둘째, 그것은 제자들을 위한 하나의 자비이다.

그들의 기술과 근면함이 아무 결과도 드러내지 못했을 때 권능의 그리스도께서는 적시에 오셔서 그들을 구하셨다. 셋째, 그것은 그리스도가 이전에 베드로에게 배를 빌어 쓴 대가로 보상해 준 자비이다(눅 5:4). 그 두 번의 자비로운 행위는 베드로가 마음속에서 주를 만났을 때나 일하면서 주를 만났을 때 모두 그를 대단히 감동케 했다. 나중의 은혜는 이전의 은혜를 마음에 되새기도록 계획되었고 또 그렇게 먹은 떡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넷째, 그것은 하나의 신비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가 이제 제자들을 파송하려는 대단히 중요한 역사이다. 이일 직후 하루에 3000명이 회개했는데 그때는 바로 복음의 그물이 "배의 오른편에 던져진" 때였다.

이 사건은 그리스도의 사역 자들이 자신의 일을 계속 성실하게 하도록 격려하는 사건이었다. 마침내 주어지는 한 번의 풍성한 수확이 복음의 그물을 던지는 장시간의 노고를 보상하기에 충분할 수도 있는 것이다.

(4) 제자들은 이 발견을 어떻게 받아들였나(7,8절).

1) 요한은 가장 이해력이 뛰어나고 눈치가 빠른 제자였다. 예수께서 사랑하는 자는 제일 먼저 "주님이시라"라고 말한 사람이었다. 그리스도의 비밀은 그가 총애하는 자들과 함께 있는 것이다. 요한은 그가 주님이심을 스스로 깨달았을 때 그것을 자기와 함께 있는 자들에게 전했다. 그리스도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그를 영접하게 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요한은 베드로에게 각별히 그 사실을 말해 주었는데 그것은 그 누구보다도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보고 기뻐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 베드로는 가장 열정적이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제자였다.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말을 듣자마자 그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것은 오직 제일 먼저 그리스도에게 가고자 함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에 대한 존경심을 "겉옷을 두름"으로 표시했는데 그것은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그리스도 앞에 나타나기 위함이었으며, 가능하면 빨리 물속을 통과해서 그리스도께로 가고자 했던 행동이었다. 그는 바다에 뛰어듦으로써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강한 애정을 나타내 보였으며, 그리스도께 가기 위해서 해변으로 가 헤엄을 쳤던 것이다. 가라앉았던지 혹은 헤엄을 쳤던지 간에, 그는 황급하게 "바다로 뛰어 내림"으로써 자신의 성의뿐 아니라 예수 님과 함께 있으려는 의향을 보이고자 했다. 베드로는 관대한 용서를 받았으며, 그리스도께로 가기 위해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했던 그의 기꺼운 행위는 그가 그리스도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왔던 사람들은 그에게 나아가기 위해서 폭풍이 몰아 치는 바다라도 기꺼이 헤엄쳐 가게 될 것이다.

3) 나머지 제자들은 조심스럽고 정직한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배를 타고 가능한 한 빨리 바닷가로 서둘러 갔다(8). 첫째, 하나님께서는 극히 다양하게 은사를 베푸신다. 베드로나 요한과 같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탁월해서 은사나 은혜를 많이 받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단지 평범한 제자들로서 자신의 본분을 다 지키는 진실한 사람들이었다. 후자처럼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도 모두 영광 중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앉게 될 것이다. 아니, 아마도 그들은 나중 된 자가 먼저 된 것처럼 더 많은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 요한과 같은 사람들은 대단히 심사숙고하는 형이어서 많은 지식의 은사를 가지고 교회를 받든다.

한편 베드로와 같이 상당히 활동적이며 용기 있는 사람들은 또 그런 방식으로 자신들의 세대에 유용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교회의 눈의 역할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손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이 모든 것은 몸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를 영광되게 하는 데 있어서는 상당히 큰 차를 나타낼 수 있지만 서로가 모두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베드로가 바다에 뛰어든 것은 비난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열성과 강한 애정으로 인하여 칭찬받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때문에 마리아와 함께 그의 발아래 앉기 위해서 세상을 등진 사람들도 역시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세상의 일을 통해서 더욱 열심히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일은 여기 나오는 다른 제자들처럼 계속 배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그물을 끌고 고기를 바닷가로 옮기는 것인데 이들이 세속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의 자리를 지키면서 가난한 자들에게 음식을 베푸는 일에 이르기까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양자를 모두 좋게 판단했으므로 우리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

(5) 예수께서는 육지에 올라온 제자들을 어떻게 환대하셨나?

1)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위해서 양식을 준비하셨다. 제자들이 물에 젖어 추위에 떨고 또 근심과 배고픔에 지쳐 육지로 올라오자, 거기에는 그들을 따뜻하게 하고 몸을 말려 줄 불과 물고기와 빵이 준비되어 있었다. 여기에는 일체의 품위라든가 우아함 같은 것은 없었다. 보잘것없지만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에 우리는 만족해야만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이와 같이 그의 제자들을 보살핀 예를 통해서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이다. 제자들이 그들의 일터에서 걱정에 싸여 돌아왔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친절하게 그 어부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예비해 두셨다. 그리스도의 사역 자들이 그들을 고용하여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그리스도께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은 든든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이곳에서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것은 그들에게 더 좋은 것이 예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잡았던 것 중의 일부를 요구하셨다.(10,11)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잡은 물고기를 육지로 가져오라고 명령하셨다.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수고하여 잡은 물고기를 그들이 먹기를 원하셨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근면하고 정직하게 일하여 받은 것은, 그 안에 특별한 즐거움이 있는 법이다. 그리스도는 이로써 우리들에게 우리가 가진 것을 활용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또한 그는 우리가 그의 기적적인 은사들에 대해 경험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땅에 묻어버리지 말고 사용하여 널리 드러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성도들을 위한 영적인 초대의 본보기를 제시하고자 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그들과 더불어 먹고, 또 그들이 그와 더불어 먹는 것이다. 사람을 낚는 어부인 사역 자들은 자신이 잡은 모든 것들을 주님 앞으로 가져와야만 한다.

명령에 대한 그들의 순종(7). 6절에선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사람을 낚는 어부들이 복음의 그물로 사람들의 영혼을 감쌌다 해도 하나님의 끊임없는 은혜를 받지 못하면 그 영혼들을 바닷가로 끌어낼 수 없으며 선하게 시작된 일이라도 완성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 물고기를 육지로 끌어올리는 일에 가장 활동적이었던 사람은 바로 베드로였다. 그는 앞에서(7) 주님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 더 열렬한 애정을 표현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주님의 명령에 대해 더욱 즉각적인 순종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신실한 사람들이 모두 남들 앞에 나서는 사람들은 아니다.

잡힌 물고기의 수는 모두 큰 것으로 '일 백 쉰세 마리'였다.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돌보고 있다는 것에 대해 더 잘 드러내는 실례이다. 고기들이 아주 많았을 뿐 아니라 크기까지 했지만 그물이 찢어지지는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한 마리의 고기도 놓치지 않았고 그물 또한 손상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복음의 그물은 하루에 삼 천명이라는 많은 사람을 감쌌으나 찢어지지는 않았다. 그것은 언제나 영혼들을 하나님에게로 이끌 만큼 강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을 조반에 초대하셨다. '제자들이 주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한 것을 살펴볼 때 주님은 매우 친절하게 "와서 조반을 먹으라"라고 제자들을 부르셨던 것 같다.

첫째, 여기에서 그리스도가 제자들을 얼마나 자유롭게 대하셨는가를 보라. 그는 제자들을 마치 친구처럼 대하셨다. 그는 "와서 나와 함께 조반을 들자"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을 은혜 가운데서 자기와 함께 교제를 나누도록 부르신다. 그리스도는 바로 친구가 되시는 분이다. "그가 너를 환영하시리라. 와서 그와 더불어 먹으라". 그는 장차 영광의 자리로 그들을 부르실 것이다. 그리스도에게는 그의 모든 친구들과 추종자들을 먹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즉 그들 모두를 위한 충분한 공간과 양식이 있는 것이다. 둘째, 제자들이 그리스도 앞에서 얼마나 공손했는지를 보라.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꺼렸다. 그러므로 그들 가운데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었다.'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감히 묻지 못한 이유는 그리스도와 담대하게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는 상당한 근거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이유는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더 이상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그가 그리스도인지 아닌지를 물었다면 그들은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불신을 부끄럽게 여겨야만 한다. 근거 없는 의심은 근절되어야 할 것이며, 애초부터 의심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잔치의 주인으로서 제자들에게 떡과 생선을 떼어 주셨다.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저희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13). 이것은 평범한 대접에 불과했다. 그것은 단지 생선으로 된 조반이었으므로 검소한 식사였다. 시장이 최고의 반찬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잔치를 베푸는 왕처럼 자신을 내보이시지 않고 음식을 먹음으로써 그 자신이 살아있음을 보여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 주님께서는 그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실제의 육신으로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고자 했다. 사도들은 그들이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었던 것을 그리스도가 부활한 증거로 생각했다(10:41).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초대한 모든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셨다. 그는 그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셨을 뿐 아니라 친히 그것을 나누어 주셨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그분의 덕택으로 구속의 은혜를 얻을 뿐 아니라, 간구할 수 있게 되었다.

본 복음서의 저자는 식사 중인 제자들에 대한 묘사를 그치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14). 예수께서는 마리아와 여인들과 두 제자와 게바에서 나타나신 적이 있지만 제자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곳에 나타나신 것은 이때를 빼고는 단지 두 번 밖에 없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주목하게 한다. 첫째,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부활했다는 사실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 이중, 삼중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셨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의 부활을 확실하게 나타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제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계속적인 친절의 본보기로서 그는 한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제자들을 찾아오셨다. 그리스도께서 은혜롭게 찾아준 사건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이것은 세 번째'라고 했는데 우리는 첫 번째와 두 번째로부터 어느 정도 개선되었을까? '이것은 세 번째'라고 한말은 아마도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요한복음 헬라어 설교] 베드로가 잡은 물고기 153 마리의 비밀(요 21:6)

 

[요한복음 헬라어 설교] 베드로가 잡은 물고기 153 마리의 비밀(요 21:6)

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복음 헬라어 설교 중에서 베드로가 잡은 물고기 153 마리의 비밀이라는 성경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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