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신약성경 말씀

[마가복음 6장 성경주석강해]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막 6:30-56)

르호봇 2024. 3. 12.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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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6장 성경주석강해 설교는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과 물 위를 걸으신 이적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를 기적을 베풀어 주시면서 하나님의 신성을 나타내셨습니다. 광야에서 모세는 하늘에서 만나를 내렸다면 예수님은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막 6:30-56)

 

.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6:30-44

1. 그리스도께서 파송했던 사도들의 귀환(30)

사도들이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을 설명하려고 예수께 왔다. 그들은 예수께 '자기들의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했다'. 말씀의 사역자들은 그들이 행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그들은 주 예수와 관련된 것 그리고 중 예수께서 하신 대로 행하는 것 이외의 어떤 것도 행하거나 가르쳐선 안된다.

2. 제자들이 피로를 풀도록 하려는 그리스도의 친절하신 배려(31, 32)

이르시되 너희는 한적한 곳에 와서 잠간 쉬어라 하시니(31).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리스도에게 막 돌아왔을 때 요한의 제자들도 그들의 주인인 요한이 죽었다는 슬픈 소식을 가지고 그리스도에게 왔던 것 같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 가운데 공포에 질린 사람도 있고 피곤에 지친 사람도 있음을 아시고 적당한 위안을 제공해 주신다. 즉 피곤한 사람들에게는 휴식을 주고 놀란 사람들에게는 피난처를 주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친절하고 동정하는 마음으로 제자들에게 와서 잠깐 쉬어라고 말씀하셨던가! 그리스도를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일하는 종들이라도 항상 주님의 일에 긴장하며 지낼 수는 없다. 그들의 몸은 얼마동안의 휴식과 안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머리가 되시는 주님께서는 몸을 위해서 계시기 때문에 몸의 구조를 고려하시어 몸의 휴식뿐만 아니라 정신의 휴식도 허락하시는 것이다.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을 한 사람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그러면 이제 그리스도가 그 제자들에게 베푼 다정한 배려가 어떠했는지 알아 보자. 첫째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따로' 불러내신다. 만일 그들이 휴식을 취해야 한다면 그들은 따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쾌적한 시골의 대저택으로 초대하신 것이 아니고 한적한 곳으로 초대하셨다. 배를 말씀 전하는 장소로 사용했던 그리스도께서 한적한 광야를 휴식처로 삼으신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셋째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단지 잠깐 쉬도록 부르신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잠깐 숨만 돌리고 다시 일하러 가게 하시는 것이다. 넷째로 이와 같이 한적한 곳에서 잠간만 쉬어야 할 이유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일을 적당한 시간으로 배정하고 그대로 지키면 아무리 많은 일이라도 매우 쉽게 처리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에 계속해서 오고 가면 작은 일이라도 상당한 노력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다섯째로 그들은 사람들이 계속 오고 가므로 배를 타고 갔다. 배를 타고 물로 가는 것은 육지로 가는 것보다 힘이 훨씬 덜 든다. 그래서 그들은 비밀리에 떠났던 것이다. 매우 공적인 인물들은 가끔 홀로 있고 싶어 한다.

3.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부지런함(33)

그들은 그들의 부지런함 때문에 책망을 받거나 되돌아가라는 명령도 받지 않고 오히려 환영을 받았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좋은 태도 때문에 저질러진 과실은 이 과실이 좋은 애정으로 인해 비롯되었다면 쉽사리 용서받을 것이다. 그들은 모든 고을로부터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하여 그들의 가정과 일터 및 그들의 직업과 일상 업무를 버렸다. 그리스도께서 배를 타고 바다로 가셨지만 그들은 도보로 그리스도를 따랐다. 그들은 그리스도에게만 매달렸다. 그들은 도보로 달려와 서두른 결과 제자들보다 먼저 갔다. 한적한 곳이라도 그들은 꼭 그리스도를 따랐다.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는 한적한 광야도 천국으로 변한다.

4. 그리스도가 사람들에게 베푼 환대(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쾌한 생각이 들기보다는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셨다'(34). 이때 그들은 양처럼 잘 순종하고 유순한 것처럼 보였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줄 목자가 전혀 없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겨여 마태복음에 기록된 대로 그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셨을(14:14)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던 것이다.

5. 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사람들을 위해 만든 양식(35-44)

그리스도께서는 그 모든 청중들을 자기의 손님들로 관대히 맞으시고 그들에게 놀라운 환대를 하셨다. 그러므로 이 일은 진정 하나의 기적적인 사건일 수밖에 없다.

(1) 제자들은 무리를 집으로 보내야 한다고 제안했다.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저물어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소서(35, 36). 제자들이 이와 같이 그리스도에게 제안했으나 무리들이 스스로 떠나려 했던 내용은 발견할 수 없다. 그런데 제자들은 무리들을 해산하는 것이 무리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좋은 일을 갈망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 갈망하는 마음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것보다 좋은 일이 더 많이 하며 또 더 오래 지속시킨다.

(2) 그리스도께서는 무리들 모두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명령하셨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37). 우리에게 무례를 범했던 사람들에게 우리가 친절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무리들이 먹을 양식을 만들라고 명령하셨다.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이 광야로 가지고 온 떡은 그들이 겨우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그것조차 무리들과 나누어 먹게 하시고자 한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환대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인한 영적인 양식 때문에 그를 따랐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의 양식도 부족함이 없도록 돌보셨다. 의무를 지키며 나가는 길은 우리에게 안전을 보장하는 길인 만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길이기도 하다. 시험을 받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신뢰를 받는 하나님의 섭리를 통하여 하나님은 하나님께 성실한 어떤 종의 기대도 결코 저버리지 않고 오히려 시절을 좇아 놀라운 구원을 베풀어 많은 종들을 새롭게 하셨다.

(3)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명령을 실행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여 그 명령을 거절했다. 제자들은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라고 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지시도 기다리지 않고 자신들이 생각해 놓은 계획 때문에 그리스도의 큰 목적을 어지럽게 해놓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줄 그의 양식을 그들이 더 귀중하게 여기도록 그들의 어리석음을 미리 알게 하려 하셨다.

(4)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무리에게 배불리 먹이셨다. 그들이 가져온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였으며 그것이 그들의 식단이었다. 이것 가지고는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이 먹기에도 부족했지만 그들은 이것조차 나누어 주어야 했던 것이다. 우리는 종종 그리스도께서 다른 사람들의 식탁에 초대받는 것을 보지만 이 본문에서 우리가 대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직접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저녁을 먹이시는 장면이다.

첫째, 그들이 나눈 음식은 평범한 것이었다. 진수성찬은 마련되지 않았던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필요에 따라서 얻는다면 산해진미를 먹지 않는다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이 하신 약속은 그가 그들을 먹이리라는 것이지 그들에게 잔치를 베풀어 주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둘째, 그 손님들은 질서정연하였다. 그것은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하시니'(39절) '떼로 혹 백씩 혹 오십씩 앉았기'(40) 때문이며 또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지 혼돈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셋째, 음식에는 축복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던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 가운데 어느 누구에게도 시키지 않고 홀로 축사를 하셨다(41). 그리고 이 축사의 효력으로 떡이 이상하리만큼 불어났으며 물고기도 마찬가지로 불어났다. 그래서 그들의 수효가 오천 명이 이르렀으나 그들이 다 배불리 먹었던 것이다(42-44). 그리스도는 위대한 치유자로서 오셨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먹이시는 위대한 양육자가 되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다. 그리고 그리스도에게는 그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의 필요를 채워줄 만한 충분한 것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무도 빈 손으로 보내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충만하게 채워질 것이다.

넷째, 제자들은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에 신경을 써서 그것들로 열두 광주리를 채웠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떡이 충분하도록 명령했지만 그는 이 일로 우리에게 낭비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고자 했을 것이다.

. 물 위로 걸어오신 예수 6:45-56

1. 무리를 해산시키심 (45)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재촉하사(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셨다'. 사람들은 흩어지기를 싫어했다. 이제 그들은 훌륭한 저녁 식사를 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떠나는 데 서두르지 않았다.

2. 그리스도는 기도하러 산으로 가심(46, 47)

그리스도는 기도하셨다. 그는 기도를 중시하셨으며 자주 기도하셨고 또한 오랫동안 기도하셨다. 그는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시기 위하여 홀로 기도하러 가셨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하나님과 은밀한 대화를 나누도록 격려하시기 위하여 홀로 기도하셨다. 훌륭한 사람에게는 그가 하나님과 홀로 있을 때 외에는 홀로 있을 기회가 없다.

3. 바다에서 곤경에 빠진 제자들(48)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이 괴로이 노 저었다'(48). 이것은 장차 그리스도가 복음을 전파하도록 그의 제자들을 해외로 파견하실 때 그 제자들이 당하게 될 고난의 본보기였다. 교회는 종종 사나운 비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위로받지 못하고 바다에서 항해하는 배와 같다.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섬기지만 우리에게 해가 되는 바람과 조수를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폭풍을 만난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그들을 중재하시는 그들의 주인이 거룩한 산에 계시다는 것은 위로가 된다.

4.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을 찾아오신 그리스도(49-52)

주님은 가능한 한 가장 애정을 느끼게 하는 방법으로 제자들을 도우시려고 결정하셨다. 그러므로 그는 친히 그들을 찾아오셨다.

(1) 그리스도는 '밤 사경 즈음에' 즉 새벽 세 시가 지나서야 오셨다. 자기 백성에 대한 그리스도의 방문이 더 오래 지연되더라도 그는 결국 오실 것이다.

(2) 그리스도는 물 위를 걸어서 오셨다. 바다는 지금 거센 파도가 일고 있었지만 그리스도는 그 바다 위를 걸어오셨다. 어떠한 어려움도 그리스도가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나타내는 은혜를 방해할 수는 없다. 그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가장 사나운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다를 해쳐나가려 하실 것이다.

(3) 그리스도께서 '저희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셨다'(48).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섭리가 그들을 지나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지나치시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지만 그들은 그가 저희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4) 그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놀라서 그를 유령으로 생각했다. 저희가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50). 우리는 흔히 우리 자신의 환상과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환영을 보고 당황하거나 놀라는 경우가 있다.

(5)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제자들에게 알려서 그들을 격려했으며 또한 그들의 두려움을 가라앉혔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시기를 기뻐할 때까지 그분을 알 수 없다. 여기서 내니라고 한 말은 나는 너희의 주인이며 너희의 친구라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 안에 계시며 또 우리와 가까운 곳에 계시다는 것과 같은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은 그의 제자들로 하여금 폭풍 속에서도 안심하고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했다. 폭풍이 몰아치는 날에도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계시다면 비록 구름과 흑암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다 해도 우리는 족히 안심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자기 제자들에게 자기가 누구인지를 말씀해 주시지 않는다.

그들은 양이 목자의 음성을 알아 듣는 것처럼 그의 음성을 듣고 그가 누구인지 알았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강제로 체포하려고 온 사람들에게 '내로라'라고 말하셨을 때 그들은 그말을 듣고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졌다(18:6). 그러나 그리스도가 믿음으로 자기를 좇으려 오는 사람들에게 내로라라고 말했을 때 그들은 그 말을 듣고 다시 힘을 얻어 위로를 받았던 것이다.

(6) 그리스도께서 '배에 올라 저희에게 가셨다'(51). 제자들은 그 주인과 함께 있어야 편안하다. 그가 배에 올라 저희에게 가시자마자 바람이 그쳤다. 바람은 갑자기 그쳤던 것이다.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명령하는 것을 듣지는 못했지만 이와 같이 바람이 멈추었다면 우리는 그 고요함으로 말미암아 위로를 얻게 된다. 다시 말해 그 고요함은 바로 그리스도가 배에 있었기 때문에 일어났던 것이다.

(7) 그들은 이제껏 그들에게 일보다 이 기적을 보고 더욱 심히 놀랐다. 그래서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랐던 것이다. 그러나 왜 제자들은 모두 이 일에 놀라게 됐을까? 그것은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떡을 떼시던 일에 대해 그 합당한 가치를 부여했다면 그들은 이 일을 보고 그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그가 떡을 불렸던 사건이 그가 물 위로 걸어온 것만큼이나 큰 권능을 드러내신 사례였기 때문이다. 마치 전에 일어난 일과 전혀 다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현재의 사역에만 우리가 도취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가 이전에 행하신 사역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5. 그리스도 일행을 매우 환영하는 게네사렛 사람들(53-56)

그 게네사렛 땅의 사람들이 곧 예수를 알고(53) 또한 그가 가는 곳마다 얼마나 위대한 역사를 행했는지 알았다. 또한 그들은 그가 한 장소에서 잠시 동안만 머물렀던 것을 알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 다니며병든 자를 침상채로 메고 나아왔다.' 병고침을 받으려는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냉대받을 염려가 없었다. 그가 가고자 하는 곳마다 수많은 병자들이 그에게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예수께서 지나가는 길에다 병자를 놓아 '예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 그들이 그리스도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려는 것보다는 단지 병고침을 받으려는 데 애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말씀의 사역자들이 사람들의 육체적인 병을 고칠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인가!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의 영적인 병보다도 육신의 병에 얼마나 더 많은 관심을 지녔는지를 생각하면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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