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원문 설교강해 자료

[히브리어 성경 예수님 말씀] 구제와 주기도문의 예수님 교훈(마 6:1-15)

르호봇 2023. 12. 17. 11:32
반응형

마태복음 6장 히브리어 원어성경 예수님 말씀은 예수님이 산상수훈의 교훈에서 구제와 기도와 주기도문과 용서에 대해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구제하려면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기도할 때는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기도할 것인지에 대해서 주기도문을 통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구제와 주기도문의 예수님 교훈(마 6:1-15)

 

구 제(1-4)

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의를 행할 때에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하여야 한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면 사람 앞에서 사는 자요 사람의 영광을 구하는 자이다. 하나님 앞에 바로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자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에 상을 받지 못한다.

6: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구제하는 목적은 하나님 앞에 바로 하기 위해서 구제하는 것이다. 즉 구제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해야 된다. 만일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면 화가 미칠까봐 두려운 마음으로 해야 되고, 사람 앞에 자기를 나타내려고 구제를 하면 안 된다.

고린도전서 9:16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 하였다. 바울이 복음을 전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할 수가 없고 만일 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책망을 받고 화가 미칠까 봐 하는 것이다.

구제하는 것도 이러한 정신으로 해야한다. 이러한 정신으로 구제를 한다고 하면 사람 앞에서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고 칭찬받을 것도 없다. 자기의 생각대로 다른 사람을 동정하느라고 구제하는 사람은 사람 앞에서는 칭찬을 받을 수 있으나 하나님 앞에는 칭찬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한 것이 아니고 자기 생각대로 했고, 하나님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고 자기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한 것이기 때문에 그 상은 이미 사람에게서 다 받은 것이다. 또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한 것이 아니고 껍데기로만 한 것이기 때문에 외식이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해서 한 것이 아니면 하나님에게서는 아무 상도 받지 못한다.

6: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것은 구제할 때에 은밀하게 하라는 뜻이다. 그래야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이 갚아 주신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심령에 매인 바 되어 구제하는 사람은 사람들이 자기를 칭찬할까 봐 두려워하며 하나님께만 충성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을 위해서 구제하는 사람은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선하게 사용하므로 하나님 앞에 의를 이루는 것이다.

연보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서 해야 한다. “얼마를 연보해야 하나님의 뜻에 꼭 맞을까?” 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해야 한다. 만일 연보를 사람 앞에 보이려고 한다거나 사람 앞에서 부득이 함으로 하게 된다면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사람을 위한 연보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연보할 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 된다(빌4:18 참조)

6: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은밀하게 하는 구제는 영적 골방에 들어가서 성령과 중생한 영의 인도를 받아서 한 구제이다. 이렇게 한 구제는 하나님이 보시고 신령한 것으로 더 많이 갚아 주신다. 그러므로 구제한 자는 영적으로 더욱 부요해진다.

기 도(5-8)

6: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에 서서 기도하는 사람은 외식하는 자이다. 왜냐하면 성령의 인도와 자기 심령의 역사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령의 인도와 심령으로 하는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영적 생활을 하는 태도 즉 진실하여 은밀한 골방에 들어가는 기도이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외식으로 기도한 것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으므로 하나님 앞에는 받을 것이 없다.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이 골방은 영적 세계를 의미한다. “네 골방이라고 한 것은 자기의 중생한 영의 세계를 말하는데 그 중생한 영에는 언제나 성령과 진리가 내재(內在)한다. 그 영적 세계는 모든 현상 세계와 복잡 다단한 잡념의 세계를 초월하여 자기 속 깊은 곳에서 성령에 의해 발견된다. 그 세계를 찾아서 기도하여야 하나님과 교통하고 영의 역사가 있게 된다.

문을 닫고 세상의 것이 자기 마음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자기 마음이 세상에 나가지 못하도록 늘 자기 마음을 지키라는 뜻이다(잠4:23 참조). 기도할 때에 은밀한 자기 골방을 찾지 못하면 기도가 되지 않는다. 고요한 심령의 세계를 찾으려면 시간을 많이 들이고 애를 많이 써야 한다. 기도를 시작하면 처음에는 산심(散心)이 되고 여러 가지 잡념이 들어와서 기도의 문이 잘 열리지 않는다. 이것은 심령이 골방에 들어가지 못한 증거이다. 거기서 골방에 들어가려고 더욱 힘을 쓰고 매달려서 전심전력을 기울이면 점점 마음이 고요해지고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게 된다.

마음을 하나님께로 기울이면 마음이 하나님께 도달되어 하나님과 접촉이 되고 우리의 영이 마음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통 할 수 있게 된다. 그 때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고 하나님의 감동과 능력이 임하여 하나님의 빛과 기쁨의 세계가 이루어진다. 그렇게 되면 세상과 나는 간 곳이 없고 구속한 주님만 보이게 되며 감사의 눈물이 나오고 감격이 넘치게 된다. 이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직접 들어주셔서 응답해 주시고 위로하여 주신다. 그러므로 섭섭한 마음이나 한숨이 사라지고 위로가 오며 평강이 온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그리스도의 품 속에 사는 생활이다.

은밀한 골방에 들어가서 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들어주시고, 진리를 깨닫게 하여 주시고, 위로를 풍성히 내려 주신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의 은밀한 관계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져 나가야 한다. 은밀한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고 그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내 마음과 몸을 바쳐야 된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갚아 주신다. 사람 앞에서 하고 체면 때문에 하고 칭찬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하늘나라 밖의 일이요,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6: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 하지 말라고 했다. “중언 부언이라는 것은 믿음 없이 형식적으로 하는 기도요 골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하는 기도이다.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교통 하며 믿음으로 하는 기도는 같은 말을 반복해서 기도할찌라도 중언부언이 아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같은 말로 기도를 세 번 하셨고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비 오게 해 달라고 기도할 때 같은 말을 일곱 번 하였다. 그 기도는 중언부언이 아니었다. 영적 골방을 찾아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고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맡아 줄 수 있는 참된 기도를 하게 된다.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골방에 들어가지 못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고, 자기 욕심대로 하는 기도이다.

6:8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성도가 구하기 전에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있어야 할 것을 미리 아시고 주신다. 그러므로 욕심으로 말을 많이 하여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하지 말고 은밀한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하여야 한다.

주기도문(9-15)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예수님이 어떻게 기도할 것을 가르쳐 주셨다. 주기도는 열 마디로 되어 있는데 첫마디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이다. 하늘에 계신 도덕과 지혜와 능력이 높으신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우리 아버지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은 영적 교회인데 그것이 우리의세계이다. 사욕을 버리고 우리의 세계에서 사는 자라야 아버지의 혜택을 받는다. 교만과 독선과 사욕을 채우려는 신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하나님은 모든 성도들의 아버지시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이다.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제일 첫째이다. 자기를 위하는 기도가 아니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여 드리는 기도를 해야 한다. 우리 성도가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늘 소원을 가져야 한다.

빌립보서 1:20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하였다.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소원했다. 자기에게 아무리 유익한 일이더라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는 것은 하지 않아야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라면 자기에게는 어떠한 손해가 나더라도 꼭 하여야 한다.

내게 유리한가, 불리한가”, 내가 높아지겠느냐, 낮아지겠느냐하는 것은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일이라면 무조건 하여야 한다. 자기에게 아무리 유익이 되는 일 일지라도 그 일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낮아지고, 하나님께 욕이 돌아가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는 일이라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자기에게 유익이 된다고 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어지는 일을 하게 되면 결국 하나님의 축복이 떠나므로 망하게 된다.

많은 손해를 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영광이 하나님께 돌아가는 일을 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고 순조롭게 성공의 길이 열리게 된다. “내가 복을 받아야겠다.” “내가 잘 되어야겠다하고 욕심을 부리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도록 힘을 쓰면 영혼이 잘되고 육신도 복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존귀하게 되고, 영광스러워진다면 거기에 하나님의 모든 것(만복)이 다 있다.

천하를 다 얻는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이름에 욕이 돌아가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어지면 마지막에는 다 망하게 된다. 반대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고 할지라도 그 일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갔다면 하나님께서 더 크고 더 좋은 것으로 주시게 된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되는 만큼 그만한 복이 온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에 조금이라도 손상이 간다고 하면 그만큼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된다.

6:10 나리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하심이 임하게 해 달라는 기도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벌써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으나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면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계속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사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

마음속에 하나님을 모시고 그와 더불어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의 마음과 몸을 통하여 나타나야 한다. 믿는 성도들이 서로 교제를 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그 중심에 모시고 주님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 믿는 사람끼리 서로 시기하고 당파를 만들고 분쟁이나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마귀의 나라이다. 진리문제 때문에 싸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진리는 양보하면 죽기 때문에 양보하지 않으려고 싸우는 수도 있다. 그러나 물질 문제와 자기들의 이권문제 때문에 싸우는 교회나 노회나 총회는 하나님의 나라 운동이 아니다. 항상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예수님을 중심으로 생활하면 싸우지 않게 된다. 김의홍 목사님은 늘 예수 생활화하자”고 말씀하셨다. 성경을 배우는데만 그치지 말고 예수님의 인격을 닮고 예수님의 생활을 닮아 가자는 말씀이다. 참으로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된다.

누가 17:21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예수님을 중심으로한 제자들의 유기체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말이다. 또 너희 심령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뜻도 있다. 믿는 사람이 예수님을 중심하여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으며 하나님으로 즐거워하고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세계가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와 주장을 받게 되면 서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서로 사랑하게 된다.

로마서 14:17-18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였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현재 이 세상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면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러한 것이 다 제거되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만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기도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 개인에게서부터 이루어져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에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셨다. 아버지의 뜻이 내 자신을 통하며 이루어져 나아가도록 소원을 가지고 기도를 해야 한다. 또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 사이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해야 한다.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전 세계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소원을 가지고 기도해야 된다.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의 구속을 하늘에서 예정하시고 땅에서 이루어 주신 것처럼 우리의 구원이 그 목적대로 점점 이루어져서 완성이 되고 악의 세력은 심판하여 없애달라는 뜻이 있다.

6:1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일용할 양식이란 영적 양식을 가리키는 것이며, 믿음으로 나아가면 육신의 양식은 따라오게 된다. 마태 6:25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일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시기 때문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구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고 하였다. 영이 새 생명으로 살아 나아가려면 영적 양식을 날마다 먹어야 한다. 영적 양식을 날마다 먹지 못하면 영이 날마다 새롭게 살아 나아갈 수 없다.

 

[헬라어성경 요한계시록 설교말씀]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계 14:6-13)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계 14:6-13) 십사만사천 명이 구원의 인을 맞고 어린양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시온 산에 섰습니다. 이 사람들은 새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완전

rhb-bible.tistory.com

중생한 영은 죽지 아니하고 늘 살아있으나 새 생명의 역사가 중단되지 않으려면 날마다 영적 양식을 받아먹고 자라나야 한다. 그러므로 육신의 양식보다 영의 양식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것은 마치 육신의 목숨보다 영혼의 생명이 더 중요한 것과 같다(마10:28, 요11:25-26 참조).

일용할 양식을 육신의 양식이라고 하면 마태 6:25-31의 말씀과 모순된다. 왜냐하면 육신의 양식은 구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또 육신의 양식보다 영의 양식이 더 중요한데 육신의 양식은 구하면서 영의 양식을 구하지 않는다면 옳지 않다.

요한 4:34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하셨고 또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하셨다(요6:27 참조). 성도가 영의 양식을 받아먹으려면 우선 주일날 영의 양식을 받아먹어야 한다. 주일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고 영이 새 힘을 얻어 소생함을 입어야 한다. 교역자들은 주일날 하나님의 양떼에게 하나님의 신령한 양식을 먹여서 양 떼들의 영이 새 힘을 얻고 소생하도록 길러 나아가야 한다(마24:45 참조).

목사가 강도(講道)를 할 때에 신령과 진정으로 가르치지 못하면 영의 양식이 되지 못한다. 교역자가 먼저 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고 새 힘을 얻어 그 영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줄 때에 교인들의 영이 새 힘을 얻어 살아 나아갈 수 있다. 성도가 주일날 영의 양식을 얻어먹고 그 말씀을 새김질하며, 자신이 날마다 성경을 읽고 영으로 깨달아 힘을 얻어 나아가야 한다.

날마다 성경을 읽으면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영의 양식이 되게 하려면 기도를 많이 하고 애써야 된다. 일용할 양식을 내게달라 하지 않고 우리에게달라고 했다. 일용할 양식을 먹으려면 사욕을 떠나 우리의 세계에 들어가야 하고 우리전체가 먹기 위해 일용할 양식을 구하여야 된다. 일용할 양식을 이기주의로 구하면 먹지 못한다.

이기주의와 욕심과 자기를 위하는 것을 다 내어버리고 예수님의 세계에 들어가야 영의 양식을 먹을 수 있다. 잠언 30:8-9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 함이니이다 라고 하였다.

여기에서는 육신의 양식을 말하고 있다. 육신의 양식은 너무 많으면 배가 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기 쉽고 너무 적으면 가난하여 도적질하기 쉬우니 너무 가난하게도 말고 부하게도 말게 하여 달라는 뜻이다. 이것은 인간의 연약함을 나타내는 기도이다. 사도바울은 빌립보 4:11-13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바울은 일체의 비결즉 풍부할 때나 가난할 때나 환경에 제재를 받지 아니하고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참된 신앙에 서면 배부를 때나 배고플 때나 물질에 제재를 받지 않기 때문에 너무 부하게도 말고 가난하게도 말게 하라는 기도를 할 필요가 없다.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이 육신의 양식이라고 하면 바울 같은 사람은 이 기도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 아닌가!

주기도문은 기도의 표준이기 때문에 참 믿음에 서 있는 사람도 주기도문대로 기도해야 된다. 따라서 일용할 양식은 영의 양식으로 보아야 한다. 성도는 영이 살아가는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 성경의 모든 원리가 영을 살려 나가는 것이 목적이며 육신을 살려 가는 것이 표준이 아니다. 영을 살려 나가기 위한 주기도요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한 기도이다. 그러므로 영의 양식을 먹고 영적 생명이 장성하며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 그러므로 영의 양식을 구하는 자에게 육신의 양식은 따라오게 되어 있다.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죄에서 점점 벗어져서 성결을 입어 나가기 위한 기도이다. 신자는 예수를 구주로 믿을 때 이미 죄 사함을 받았다. 법적으로는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를 다 용서받고 그리스도의 의를 입어서 하나님 앞에서 의인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성도의 육체 속에 부패성이 아직 남아 있다(7:15-23, 골3:5-10 참조). 또 마귀가 끊임없이 성도를 시험하기 때문에 마귀의 시험에 들어서 성도와 성도 사이에 막혀 있는 것이 많다. 그러므로 이것들을 다 없이 하여 달라는 기도이다.

우리 이미 구원받은 모든 성도와 앞으로 구원받을 모든 성도 즉 택한 백성 전체를 가리켜 우리라고 한다.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다 사하여 주셨으니 신자는 법적으로 다 죄 사함을 받아서 의롭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영적으로 한 생명(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되어 있다. 이렇게 사죄의 은례를 입은 신자가 타인이 자기에게 범한 과오를 용서해 주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 속에 있는 육체의 부패성을 제거하여 달라는 것이다. 날마다 짓는 죄를 사하여 달라는 것이다. 신자간에 막히고 불화하는 것을 제거하여 달라는 것이다. 택한 백성 중에 아직 믿지 않고 죄 중에 있는 자들을 사죄하여 구원해 달라는 것이다.

우리가 죄사함 받을 때에 어떤 조건부로 죄사함 받은 것은 아니다. 즉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여 주면 하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우리의 죄도 용서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도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지 못하면 하나님과 의 영적 교통이 막히고 사랑의 세계를 잃어버린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를 떠나고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 점점 거룩을 입어 나가는 일을 하지 못한다. 이것이 긍휼없는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있다는 말이다(약2:13 참조).

예수를 믿음으로 죄 사함 받은 사람도 그 지체 속에는 죄악의 강한 세력이 있다. 그러므로 죄악의 세력과 그 영향력에서 벗어져 나오는 일 즉 성화를 이루어나가는 일은 필요하다. 성화를 이루어 나아가는 데는 조건이 있다. 즉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어야만 하나님도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이다.

누가 11:4에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하여 한층 뜻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공로로 사죄 받은 성도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지 못하면 죄의 세력과 죄의 영향력에서 벗어져 나오지 못한다는 말이다. 성도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성화를 이루어 나갈 수 없다. 참사랑은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해 주는 것이다.

제자들이 다른 사람의 죄를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되느냐고 물어볼 때 예수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셨다. 다른 사람의 죄를 얼마든지 용서하여 주어야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의 세력에서 건져 주신다. 성도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여 줄 때에 하나님과의 막힌 것이 열리고 빛과 생명의 역사가 임하여 죄악의 세력에서 벗어져 나오게 되며 영혼이 자라나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점점 이루어져서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게 된다.

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우리의 세계 즉 구원받은 성도 전체가 시험에 들지 않게 해 달라는 뜻이다. 영적인 우리의 세계에 들어가면 믿는 형제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다. “우리인 성도 전체가 사실은 자기의 몸이다. 왜냐하면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의 지체요,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기 때문이다. 그 몸 전체를 사랑하여 그 몸 전체가 시험에 들지 않기를 소원하며 기도해야 한다. 다른 성도는 시험에 들던 말든 자기만 시험에 들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이기주의이며 사욕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이 사람은 자신이 벌써 시험에 든 자이다. 이 기도는 우리 성도 모두가 시험에 들지 않고 잘 되게 하여 달라는 것과 하늘나라가 잘 되기를 바라는 기도이다.

시험이 없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시험이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안 된다. 성도가 시험이 올 때에 시험에 들지 않고 그 시험을 이기면 시험이 자기에게 큰 유익이 된다. 시험은 성도를 연단시키고 유익하게 하기 위하여 주어지는 것이다. 야고보 1:2-4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시험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다. 그러므로 시험이 올 때에 피하지 말고 그 시험을 이겨야 한다. 이기면 유익이 많다. 시험을 이기면 우리 영이 자라나고 인격이 만들어진다. 우리가 당하는 시험은 모두 감당할 수 있는 것만 허락하시는 것이다(고전10:13 참조).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을 주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시험이 올지라도 자기에게 감당할 것을 주신 줄 알고 잘 참고 이겨서 유익을 얻도록 하여야 한다. 시험을 이기려 면 걱정하지 말고 온전히 기쁘게 여기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나가야 한다. 또 자기 영이 영적 세계에 들어가서 살아야 시험을 이길 수 있다. 마귀의 세력을 이기려면 영적인 생명의 세계에 들어가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그리하면 마음에 화평과 기쁨을 얻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과 영적 생명의 힘으로 시험을 이길 수 있다.

악에서 구하옵소서 이 세상은 악이 가득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악에서 건짐을 받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악에서 건져 달라는 기도이다. 이 세상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아서 악한 세력이 가득 차 있고 마귀가 믿는 자를 삼키려고 한다. 이것을 우리의 힘으로는 이길 수가 없고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건져 주어야만 건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주여 이 악에서 건져 주옵소서하고 부르짖어야 한다. 악에서 건짐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죄악의 세력을 점점 제거시켜 주시고 의를 입혀 주셔서 점점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되고 악에서 건짐을 받는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 말 위에 대개라는 말을 넣어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장이.... ”하는 주기도문도 있다. “대개라는 말이 어떤 사본에는 없고, 어 떤 사본에는 있다. 우리가 주기도를 할 때 대개를 넣어서 하는 것이 옳다. “대개라는 말은 왜냐하면이라는 뜻이다. 앞에서 일곱 마디의 기도를 하고 나서 왜냐하면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현재에도 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와 같이 기도합니다“의 뜻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와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하나님께만 있다. 세상나라는 다 없어져도 하나님의 나라만 영존하고, 세상 권세는 다 없어져도 하나님의 권세만 영존하고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영광은 다 없어져도 하나님의 영광만 영원히 존재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만 권세와 영광을 돌려야 한다. 영원 전부터 천국에 있는 영광은 물론이고 이 세상에서 구원운동을 통하여 이루어 나가는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도 금생과 내세에 그대로 영원히 남는다.

6:14-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성도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어야 천부의 사죄 은총을 입는다. 성도가 믿을 때에 법적으로 사죄를 받았으나, 여기서는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성화를 이루어 나가는 면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긍휼과 사랑으로 대하여 주신다는 뜻이 있고, 죄악의 권세에서 건져 주신다는 뜻도 있으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죄대로 다스리지 않으신다는 뜻도 있다. 우리 성도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여 주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용서받는 길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과실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하나님의 긍휼이 떠나기 때문에 하나님과 막혀서 기도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먼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여 주고 나서 기도를 해야 한다. 성도가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서 산다면 남의 허물을 자연히 용서하여 주게 된다. 다른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여 주어야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고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야만 또 참된 용서가 나오게 된다.

 

[신약 히브리어성경 강해말씀] 오병이어의 이적 사건(요 6:1-15)

요한복음 6장에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의 네 번째 이적이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고 있을 때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어

rhb-bible.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