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신약성경 말씀

[마가복음 고난주간 설교말씀] 십자가에 달려 고통당하는 예수님(막 15:15-32)

르호봇 2024. 3. 1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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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고난주간 설교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당하는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난주간에 우리는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통당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고난주간은 매 년마다 돌아오지만 우리는 고난주간에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하나님께 경건한 믿음과 신앙으로 나가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려 고통당하는 예수님(막 15:15-32)

 

. 형장으로 가시는 예수 15:15-21

(1)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악한 뜻을 만족시키려고 그리스도를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했다.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니라(15). 비록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하여 그리스도에게 먼저 채찍질했으나 그때에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넘겨주고 말았다. 죄없는 자에게 채찍질한 것을 확실할 수 있었던 사람이 점차로 그 죄 없는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눅 23:16)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죽으셔야 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것이다. 첫째로 그리스도는 피를 흘리며 죽으셔야 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9:22).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버리셔야 했으므로 십자가에 못 박혀 그의 피를 흘리셨던 것이다. 둘째로 그리스도는 고통스럽게 죽으셔야 했다. 그리스도는 스스로 죽음의 고통을 맛보시기 위하여 죽으셨다. 그리스도는 가장 큰 공포를 느끼시며 죽으셨을 것이며 그러므로 그 죽음을 정복하셨을 것이다.

셋째로 그리스도는 수치스럽게 죽으셔야만 했다. 그 죽음은 노예들이나 가장 비열한 악인이 당하는 그러한 수치스러운 죽음이었던 것이다. 십자가와 수치는 공존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가장 심한 비난과 치욕을 당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만족을 이루셨다. 그러나 이것도 가장 심한 것은 아니었다. 가장 극악한 점은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받으시며 죽으셔야 했다는 사실이다. 그 저주는 유대인의 율법에 의하여 낙인이 찍힌 것이었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21:23). 그리스도께서 순종하심으로 나무에 달리셨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죽음의 비난과 저주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2) 빌라도는 로마 군인들의 장난기를 만족케 하려고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내주어 능멸을 당하시게 했다(16-19). 그들은 대기하고 있던 온 군대를 모아 뜰 안으로 가서 그 곳에서 그리스도를 왕으로 꾸며 능멸했던 것이다. 이제 그들이 그리스도를 어떻게 능멸하는지를 보라. 첫째로 그들은 "왕들은 자주색 옷을 입어야겠지"라고 희롱하면서 예수께 자색 옷을 입혔다. 둘째로 그들은 "왕들은 면류관을 써야겠지"라고 희롱하면서 예수님의 머리 위에다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웠다. 밀짚이나 목피로 만든 면류관을 씌워도 그들이 희롱하기엔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가시 면류관을 예수님의 머리 위에 씌워 찔림을 당하는 아픔까지 느끼시게 했다.

그리스도는 그가 쓰시기에 합당한 영광의 면류관을 우리에게 씌우시기 위하여 우리가 마땅히 써야 할 가시 면류관을 쓰셨던 것이다. 셋째로 그들은 "왕들에겐 신하의 문안이 있어야겠지"라고 희롱하면서 예수님에 대하여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18)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 문안까지도 흉내냈던 것이다. 넷째로 왕들은 통치의표로 그 손에 홀을 갖고 있는데 그들은 이것을 모방하여 예수님으로 하여금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도록(27:29)했다. 주 예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자들은 실제로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는 이 로마 군인들과 같은 자들인 것이다. 다섯째로 신하들이 왕에게 충성을 맹세할 때는 그 왕에게 입을 맞추는 관습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 대신 예수님에게 침을 뱉었다.

마지막으로 왕에게 무릎을 꿇고 인사하는 신하의 예를 모방하여 그들은 예수님 앞에서 희롱을 하며 꿇어 절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을 경멸하면서 이런 행동을 했으며 서로 웃고 야단들이었다. 예수님이 이처럼 자신의 옷이 아니라 남의 옷을 입고 조롱을 당하신 것은 그가 그 자신의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뒤집어 쓰신 죄는 바로 우리의 죄이며 그가 당하는 수치는 바로 우리의 수치인 것이다. 그리스도께 무릎을 끓으면서 그 영혼의 무릎을 꿇지 않는 자들은 여기에서 보이는 로마 군인들의 행동처럼 예수님을 모욕하는 것이다.

(3) 정해진 시간이 되자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의 법정에서 처형장으로 끌고 갔다(20,21). 그들은 구레네 사람 시몬으로 하여금 예수님 대신 예수님이 진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게 했다. 그는 아무 생각도 없이 시골에서 와서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갑자기 우리에게 십자가와 같은 고난이 엄습하여 우리를 놀라게 한다 할지라도 그와 같은 일을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십자가는 매우 다루기 힘들고 무거운 짐이었다. 그러나 얼마 동안이라도 그 십자가를 졌던 시몬은 성경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복음은 그 구레네 사람 시몬을 기념하게 될 것이다.

. 십자가에 못박히심 15:22-32

여기에서 나타나는 것은 우리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내용이다.

1.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던 장소(22)

그곳은 골고다라 하는 곳으로 번역하면 해골의 곳을 뜻한다. 이곳은 평범한 처형장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점에서 죄인들과 다를 바 없이 취급되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못 박히셨던 것이다.

2.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던 시각(25)

그 시각은 제 삼시였다. 유대인들의 계산 방법에 따르면 제 삼시는 곧 아침 아홉 시경이거나 아니면 그보다 좀 늦은 시각이었다. 그들은 바로 그 때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이다.

3.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받았던 모욕(23,24,26-32)

(1) 사형당하기로 된 죄수에게는 포도주를 주는 관습이 있었는데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줄 포도주에 몰약을 탔으므로 포도주의 맛은 썼다. 예수님은 그 포도주를 맛보시긴 했어도 그것을 마시는 것은 원치 않으셨다. 그는 그 포도주의 쓴 맛을 기꺼이 받아들였지만 그것을 마심으로써 그 효과를 얻으려 하시지는 않으셨다.

(2)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자들의 옷들은 사형을 집행한 사람들에게 사례로 주어졌다. 그래서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의 옷을 나누려고 제비를 뽑았던 것이다(24). 이와 같이 그들은 예수님의 고통을 즐거워했다.

(3) 그들은 예수님의 머리 위에 '유대인의 왕이라'(26)고 쓴 죄 패를 씌워 놓았다. 이 죄 패에는 아무런 죄목도 기록되어 있지 않고 그의 주권만이 쓰여 있었다. 아마도 빌라도는 이 글을 통해 좌절당한 왕으로서의 그리스도에게 모욕을 주려고 했거나 아니면 더할 나위 없이 선한 왕을 섬길 자격이 없는 백성으로서의 유대인들에게 모욕을 주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선포하시려 한 것이다. 가야바가 자기의 한 말을 알지 못한 것과 같이 빌라도도 그가 쓴 말의 참 뜻을 모르고 있었다(11:51).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볼 때마다 그의 머리 위에 그가 왕이라고 쓰여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4)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27). 예수님은 셋 중에 가장 악한 자로 여겨졌기 때문에 가운데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이 세상에서 사시는 동안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에게 선을 베푸시기 위하여 그 죄인들과 교제를 나누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으셨던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으며 또 그것을 위해서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가가 특별히 주의를 기울였던 점은 그 일을 통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이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언해 좋은 이사야서에는 예수님이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어야'(53:12)한다고 예언되었다.

(5) 구경꾼들은 예수님의 불행을 보고 위로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를 모욕했다. 예수님의 불행을 보고 그를 모욕한 구경꾼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 살펴보자. 첫째로 '지나가는 자들'(29)까지 그를 모욕했다. 그들은 몹시 예수님을 조롱했을 뿐 아니라 그를 몹시 증오하며 분개하였다. 분명 대제사장들이 비꼬았던 말을 듣고 그들도 사용했을 것이다.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29,30). 그들은 이런 말로써 예수님을 모욕했던 것이다. 둘째로 대제사장들까지 그를 모욕했다.

대제사장들은 사람 가운데서 취했으며(5:1,2) 사람을 위하여 임명되었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거나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31)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들은 또한 예수님이 할 수만 있다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도록 요구했다(32).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아야만 그를 믿겠다는 것이다. 셋째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던 강도들까지도 예수님을 모욕했다(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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