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신약성경 말씀

[마태복음 20장 비유 성경공부] 포도원 품꾼의 비유(마 20: 1-16)

르호봇 2020. 11. 13. 16:39
반응형

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20장 비유 성경공부 중에서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 비유는 천국에 관한 비유입니다. 예수님이 처음부터 천국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비유를 구원이 아닌 성화적 관점으로 해석하면 맞지 않습니다. 구원을 열심히 했다고 해서 더 많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주님의 은혜로 동일하게 주시는 것입니다. 구원받고 난 이후에 성화적 삶을 살아가면서 열심히 산 사람은 더 많은 상급을 받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적은 상을 받게 됩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은혜를 구원을 얻었으니 열심히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을 해야 합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마 20: 1-16)

 

마20: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마20: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마20: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마20: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마20:5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마20:6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마20:7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마20: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마20:9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마20: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마20: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마20: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마20: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마20: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마20: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마20: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1. 이 비유의 동기

베드로의 질문 - 젊은 관원의 사건과 근심하며 돌아간 젊은이...

주님은 베드로의 질문에 답변하셨다. "세상이 새롭게 되어..." 그러나 주님은 베드로의 질문에서 매우 잘못되고 거짓된 어조를 탐지해 내셨다. 그래서 그를 꾸짖고 책망하고 가장 심각하게 경고하시기 위하여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이 비유의 해석의 열쇠는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먼저 된 자가 누구인가? 먼저 된 자가 누구인가?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먼저 왔어도 구원을 받지 못했다. 나중 온 자들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면 그들보다 먼저인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가장 열성적이며 충성스러운 중진 일꾼들, 그렇게 봉사하고 충성한 것이 잘못이고 나중 되는 것이 좋은 것이란 의미가 아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열심을 내면서 먼저 왔다고 나중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왔어도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한다면 이것은 나중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어야 한다.

 

2. 이 비유중에 우리가 관심을 집중시켜야 하는 원리가 하나 있다.

기독교인의 삶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은혜라는 것이다. 이 놀라운 은혜의 원리에 맨 마지막에 온 자들도 처음부터 일한 자들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생각할 수 있다. 나이가 늙어 개종한 자들에게 종종 찾아드는 낙심, 너무 늦었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생의 늦부분에 개종한 사람들은 때때로 구원이 그에게 좀 늦게 임하였고 많은 시간을 낭비한 것을 미끼로 삼는 마귀의 유혹에 걸려들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우리 주님이 열한 시에 그들을 불러 일터로 보낸 사실이 커다란 위로가 된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의 강조점은 오히려 먼저 온 사람들에게 있다. 이 비유의 중요한 목적은 먼저 된 자들에게 교훈하시고 엄숙한 경고를 하시는 것이 의심할 여지가 없다. 교회에서 열심히 일을 했는데 율법주의 신앙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나중 온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아직도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중 온 자라 할지라도 감사하면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면 된다. 먼저 온 사람에게는 감사가 없었다. 자신의 능력이 출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에 포도원에 들어온 사람들은 힘없고 실력 없는 사람이므로 주인에게 감사했다.

 

3. 포도원에 이른 아침부터 보냄을 받은 이 사람들은 왜 마지막에는 그렇게 슬픈 인물로 나타났습니까?

2"저가 품꾼들과 약속하여..." 맨 처음 사람들의 경우에만 된 것.

이른 아침에 나가서 포도원에 들어온 품꾼들은 실력 있고 힘 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자들과 한 데나리온에 주인이 계약했다. 계약을 맺으려고 노력하는 경향

어떤 것들을 명문화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 곧 그들이 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너무나도 의식하고 있다. 어느 의미에서 일하는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자들이다. 자신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을 받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많이 일한 사람이나 적게 일한 사람이나 돈을 똑같게 나누어주자 화를 냈다. 그러면서 주인이 하는 일까지 참견을 했다. 율법주의 신앙은 섭섭하게 하면 금방 화를 낸다. 시험에 자주 걸려 넘어진다.

그들이 자신의 일을 평가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도 역시 평가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 모든 것을 주의 깊게 간직하여 둔다. 그들은 얼마나 시간을 소비하였으며 얼마나 오랫동안 일을 하였으며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 - 종일 더위와 수고를 견딘 것을 간직한다. 이 사람들은 최초의 잘못된 태도 때문에 즉 그들이 은혜의 원리를 잊었기 때문에 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받을 것을 기대하였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더 받을 자격이 있는 자들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들은 완전히 논리적이었다. 그들은 더 많이 받을 자격이 있고 더 많이 받아야 한다는 감정을 갖고 더 많은 것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더 많이 받지 못했다. 율법주의 신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 스스로 판단하고 자신이 세운 판단의 잣대에 어긋나면 잘못된 일이기 때문에 분노를 낸다. 신앙적인 관점에서도 자신의 틀에 하나님의 말씀을 끌어들여 잘잘못을 판단한다.

그들은 불평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행복과 기쁨은 다 사라져 버렸다.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기뻐하는 대신에 비참해지고 불평하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 이것은 그들이 모든 것은 은혜로 된다는 것을 잊어버린 사실에서 결과된 것이다. 행위주의를 강조하면 결국 은혜가 사라진다. 자신의 의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가 나타나지 않으면 화가 나게 되어 있다.

결국 먼저 온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경멸과 다른 사람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질투도 포함된다.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탕자 비유 중 맏아들의 경우. 이 경향은 충실하고 가장 훌륭한 일을 하는 기독교인들에게 간교한 방법으로 들어와 시험한다. <다른 사람들을 많이 주는 것은 주는 자의 뜻인데> 내 것이나 받으면 되었지 남을 간섭하고 질투하는가? 율법주의 신앙은 다른 사람이 잘되면 배가 아프다. 은사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으면 화가 난다. 자신은 은사도 없는데 나보다 못한 사람이 어떻게 은사를 가질 수 있느냐는 식으로 생각하게 된다.

가장 심각하고 무서운 일은 그들의 마음속에 집주인이 불공평하다는 감정을 가진 점이다. "네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 세어 보아라. 그런데 네가 얻은 것은 무엇이냐. 다른 친구들을 보아라. 그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지만 그래도 그가 얻은 것을 보아라"라고 마귀가 유혹한다.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다니 - 한 시간만 일한 사람과 똑같이, 그래서 하나님은 불의 하신 분이라고 느낀다. 구원은 공평하게 주신다. 하나님의 주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참견한 권한이 없다. 그런데도 인간은 구원에 관하여 하나님께 참견을 하고 있다. 저 사람은 왜 구원을 주고 저 사람은 구원을 왜 주지 않느냐고 따져 묻는다. 이런 신앙을 버려야 한다.

 

4. 이에 대한 치료책은 하나님의 나라를 지배하는 원리를 이해하는 데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항상 알고 있는 것과 같지 않고 전혀 다른 무엇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과거의 생활 원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나의 모든 생각은 달라져야 한다. 나는 옛 생각의 개념들을 가지고 교회를 다녀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매매나 권리의 개념을 가지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가 이것을 하고 저것을 했다 해서 나는 무엇인가 대가로 받을 것을 기대할 권리가 있다고 논쟁하는 것처럼 잘못된 영은 없다. 우리가 하나님께 열심히 봉사하고 기도하고 헌신하고 헌금하면 보상심리가 발동한다. 그에 대한 보상이 없으면 그때부터 시험에 걸린다. 성경에는 상급에 대하여 가르친다. 상급조차도 은혜에 속한 것이다 - 주님은 그들에게 주어야 할 필요는 없다.

5. 하나님과 흥정하지 말자.

하나님과 약속을 맺으려 한다면 그것밖에 더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없다. 나중 온 자들은 약속하지 않았다. 상당하게 주리라. 그들도 한 데나리온을 받았다. 우리 하나님의 은혜에 맡기면 우리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많은 것을 틀림없이 받게 된다. 우리 주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너희 상을 이미 받았노라고 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였다. 그것이 그들의 원하는 바였고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전부였으며 더 이상 가질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사람을 의식하면서 보상을 받으려고 하면 하나님께 상을 받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6. 우리는 나의 일에 대한 기록이나 계산을 하지 말자.

하나님으로 하여금 계산을 기록하도록 하자. 내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자. 계산을 기록하느라고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계산방법은 우리들의 물질적인 전망과는 완전히 정반대이다. 나중 된 자... 모든 것이 뒤바뀐다. 전 세계가 은혜로 인하여 뒤바뀌어진다. 연약한 가운데 강단으로 나아가나 능력으로 끝을 맺는 경우가 있다. 자신감을 가지고 나아갔다가 바보와 같은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그러면 낙심된다. 결과를 의식하지 말고 일만 하라 기록은 하나님이 하신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얻었다면 이제는 바울처럼 부름의 상을 좇아가면 된다. 바울은 이미 받았다 함도 아니요 얻었다 함도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앞으로 될어질 부름의 상을 좇아간다고 했다. 상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결산하게 된다. 경주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상을 줄 수는 없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믿음의 경주를 열심히 달려야 한다.

 

 

[마태복음 13장 설교] 보화의 비유(마 13 : 44)

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13장 설교 중에서 예수님의 비유 중에서 보화의 비유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팔레스틴 지역은 약탈이 빈번하고 오늘날의 은행과 같이 재물을 맡길만한 공식 기

rhb-bible.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