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히.헬라어 주석 강해

[마태복음 17장 헬라어 강해] 가버나움 베드로 성전세 사건(마 17:24-27)

르호봇 2021. 2. 25.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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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17장 헬라어 강해 중에서 가버나움 베드로 성전세 사건의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이르렀을 때 성전세를 받는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왔습니다. 너희 선생은 왜 성전세를 내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가서 성전세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랬더니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를 받느냐고 말합니다. 타인에게냐 아들에게냐라고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베드로는 타인에게 받는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오해가 되지 않도록 성전세를 내라고 말합니다.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으로 너와 나를 위하여 성전세를 내라고 했습니다. 

가버나움 베드로 성전세 사건(마 17:24-27)

 

24절은 엘돈톤 데 아우톤 에이스 카페르나움 프로셀돈 호이 타 디드라크마 람바논테스 토 페트로 카이 에이폰 호 디다스칼로스 휘몬 우 텔레이 타 디드라크마입니다.

마 17: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17:24

가버나움 - '나훔의 마을'이란 뜻으로서 갈릴리 호수 서북쪽에 위치한 성읍이다.

오늘날에 이 성읍은 어디인지 정확하지 않으나 일반적으로 '텔 훔'이란 곳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곳은 예수의 선교 사역의 중심지였으나(8:5-15; 9:2-8; 18:1-5), 회개하지 않고 교만함으로써 인해 예수의 책망받는 지역이기도 하다(11:23). 이제 예수께서는 수난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오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리 방문하셨다.

반 세겔 받는 자들이 - '반 세겔'이란 헬라어로 '디드라크마'로서 '두 드라크마'를 의미한다. 그런데 한 드라크마는 헬라어인 하루 품삯을 나타내는 동전 명칭으로서 유대인에게도 사용되는데 일반적으로 1/4세겔로 취급되었다.

한편 이 '반세겔'은 유대인들이 출애굽 한 후 시내산에서 인구 조사를 한 직후에 모든 유대인 남자들이 내었던 생명의 속전, 즉 애굽에서 건져주신 생명의 대가로 여호와께 바쳤던 양과 같은 것이다(30:11-16).

이것은 선민 이스라엘에게는 의무적으로 부과된 것이었다. 바벨론 포로 후 그 의무는 20세 이상된 자로서 3/1세겔로 조정되었다(10:32).

예수 당시에도 느헤미야의 수정된 의무조항에 따라 매년 유월절 전인 봄에(달월 15) 모세 당시의 환율에 의해 계산, 부과했다. 따라서 당시에는 반세겔을 바꾸려는 환전상으로 들끓고 있었을 것이다. 이 환전상들은 그 수수료로 인해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었다.

여하튼 이 반세겔은 로마에 바치는 공공의 세금이라기보다 당시 주로 성소의 유지 비용으로 사용되었다. 한편 여기에서 '반 세겔 받는 자들'(호이 타 디드라크마 람바논테스, those receiving the didrachmas)은 일반적으로 국세를 거두는 '세리'(텔로나이)와는 다르다(9:10).

이것은 반 세겔을 거두는 자들이 신분상 로마 위해 세금을 거두는 자들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성전을 위해 거두는 다른 계층의 사람들임을 암시한다.

너의 선생이 반 세겔을 - 이는 세금 징수자들이 이미 예수와 베드로 등의 제자들과의 관계를 익히 알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와 더불어 성전을 대하시는 예수의 태도가 과연 어떠한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이들은 예수께로 시선을 돌렸던 것이다.

25절은 레게이 나이 카이 호테 에이셀덴 에이스 텐 오이키안 프로에프다센 아우톤 호 이에수스 레곤 티 소이 도케이 시몬 호이 바실레이스 테스 게스 아포 피논 람바누신 텔레 헤 켄손 아포 톤 휘노 아우톤 헤 아포 톤 알로트리온입니다.

마 17:25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17:25

베드로는 예수가 성전세를 낼 것이라고 생각하여 예수께 찾아갔다. 예수는 성전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분이다. 성전세는 성전을 보수하는 데 사용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는 성전세를 내지 않아도 되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내라고 했다.

 

26절은 레게이 아우토 호 페트로스 아포 톤 알로트리온 에페 아우토 호 이에수스 아라게 엘류데로이 에이신 호이 휘오이입니다.

마 17:26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절은 히나 데 메 스칸달리소멘 아우투스 포류데이스 에이스 텐 달랏산 발레 앙키스트론 카이 톤 아나반타 프로톤 익두스 아론 카이 아노이크사스 토 스토마 아우투 유레세이스 스타테라 에케이논 라본 도스 아우토이스 안티 에무 카이 수입니다.

마 17: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17:27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히나 데 메 스칼달리소멘 아우투스) - 직역하면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실족지 않게 하기 위하여'(But that we may not offend them)가 된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율법 위에 계신 분으로서 율법이 정한 바 그 의무 조항을 능히 초월하실 수 있으셨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다인의 유익을 우선 생각하시는 지극한 사랑의 원리에 따라 스스로 겸비(兼備)해지기를 원하셨다(3:15).

한편 본문의 '오해케 한다'는 '스칸달리소멘'은 단순히 넘어뜨린다는 뜻이 아니라 아예 함정에 빠뜨려 치명적인 피해를 제공한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이는 결국 예수께서 성전세 납부를 거부함으로써 야기될 상황, 곧 예수가 왜 성전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자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을 율법으로 파괴하고 성전과 예배를 무시하는 자들로 오해하여 마침내 당신의 복음을 먼저 배척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예방적 조처로서 성전세 납부를 하고자 하신 것이다.

이러한 겸비의 모범을 따라 훗날 사도 바울도 다른 사람을 위한 자기 절제와 겸비의 도를 가르치게 된다(고전 8:13; 9:12, 22).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 성전세 조달을 위한 예수의 구체적인 지시 사항이다. 이로써 우리는 동전 한 닢이 고기 입 속에 있음을 미리 아시는 예수의 전지성(全知性)과 그 동전을 이미 있게 하신 자신의 전능성(全能性)을 알 수 있다(Wycliffe).

한편 신약에서는 낚시 기사가 이곳밖에 없고 대부분은 그물을 사용하는 것으로 언급된다. 여하튼 예수의 유일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율법의 요구에서 면죄되시지만, 율법에 순종하실 뿐 아니라 제자들의 필요에 대해서도 당신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적 방식으로 예비해 주신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수난 예고(22, 23) 바로 뒤에 위치하여 우리로 하여금 예수의 겸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즉 그분은 바다를 잠잠케 하시며,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능력자이셨지만 스스로 낮추시고 쓸데없이 남으로 오해케 하지 않으시려고 이러한 이적의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던 것이다(11:28-30; 12:20).

이 같은 겸손의 교훈은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 및 오늘 우리들을 위한 것이다.

한 세겔(스타테르) - 그리스에서 통용되던 금화로서 대략 4드라크마, 곧 한 세겔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것이면 1인당 반세겔 요구되는 성전세의 두 사람분을 납부할 수 있을 것이다. 실로 예수의 이적은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가장 정확한 은혜로 채워진다.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 '나와 너'란 예수와 베드로가 비록 하나 같이 반 세겔의 성전세를 내었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입장에서 내게 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예수께서는 근본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를 지니신 분으로서 성전세를 내지 않으셔도 됨에도 불구하고 내시는 것이며, 베드로는 그 근본이 죄인 된 인간이요 사망에 처한 자로서 생명의 속전 곧 성전세를 내야 할 자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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