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신약성경 말씀

[디모데후서 3장 주석설교말씀] 마지막 날의 표적들(딤후 3:1-9)

르호봇 2023. 2. 15.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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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3장에서는 말세에 대해서 사람들이 타락할 것에 대해서 말씀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면서 돈을 좋아하게 된다.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지 않고 부모를 거역한다. 사람들이 정이 없고 자기만 알게 된다. 세상의 정욕과 쾌락을 좋아하며 복음을 싫어한다. 구원받는 길을 가르쳐 주어도 귀를 닫고 듣지 않으려고 한다.

 

마지막 날의 표적들(딤후 3:1-9)

 

전 장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 안에 악한 사람이 있다 하여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음을 말하였다. 왜냐하면 복음의 그물에는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가 한꺼번에 걸려들기 때문이다(마 13:47, 4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혹자가 올 것이라고 예언하셨다(마 24장). 따라서 우리는 유혹자의 활동을 보고 설득당하거나 교회나 기독교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여서도 안 될 것이다. 옥에도 티가 있으며 밀이 타작마당에 놓여 있을 때 밀 가운데는 많은 겨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Ⅰ. 디모데는 복음의 시대인 마지막날에 "고통하는 때"가 올 것을 알고 있어야만 하였다. 복음의 시대는 여러 가지 면에서 개혁의 시대이지만 이러한 복음의 시대일지라도 고통의 때가 있을 것을 디모데는 알아야만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고통은 밖에서부터의 박해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교회 내에서의 부패에 의한 것이었다. 이때는 어려운 시기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시대에서는 사람들이 선한 양심을 지키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고통의 때가 이를 것인데 왜냐하면 유대인과 이방인이 합세하여 기독교를 박멸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지 아니하였다. 다만 그는 고통의 때가 이를 것인데 왜냐하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그 능력은 없는 자들이 더럽혀지고 악해져서 교회에 대단히 많은 해를 끼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이천명의 포위하고 있는 군대보다 아군의 두 명의 배반자가 더 많은 해를 끼치는 것이다. 고통의 시대가 올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악하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을 기억하자.

1. 죄는 고통의 때를 만든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도덕과 기질이 일반적으로 타락할 때 시대는 살기 어려운 시대가 된다. 왜냐하면 모두가 타락한 가운데서 우리의 순결함을 지키는 것은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2. 고통하는 때가 올 때 우리는 성경의 예언이 진리임을 깨달아야 한다. 만약 예언된 대로 고난의 때가 닥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성격의 신적 권위에 대하여 의심하게 되는 시험에 들게 될 것이다.

3. 우리가 고통하는 때가 이른 것을 볼 때 놀라지 아니하기 위해서 우리는 말세에 대해 예언한 내용을 알고 또 믿으며 숙고해야 한다. 그러므로 본문에 "네가 이것을 알라"고 하였다.

Ⅱ. 바울은 디모데에게 무슨 이유 때문에 고통의 때가 닥치는 것인가를 설명하고 말세를 알 수 있는 징조가 무엇인지를 설명하였다(2절 이하).

1. 자기를 사랑함이 고통의 때의 요인이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여기에 나타난 자기 사랑은 비정상적인 자기애(自己愛)를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영적 자아보다는 죄된 육체적 자아를 더 사랑한다. 인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자기 의무를 다하는 것보다는 자기 육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며 그 욕망을 위하여 준비하기를 더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기독교적인 사랑 대신에 그들은 자기에 대해서만 관심을 지니며 또 교회의 덕에 앞에 자신의 만족을 추구한다.

2. 탐욕이 고통의 때의 요인이다. 자기 사랑은 죄와 재앙이라는 기다란 기차를 끌고 간다는 것을 명심하자.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는 많은 선행을 기대할 수 있으나 인간이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때 그에게서는 아무런 선행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탐욕이 일반적으로 널리 유행되므로 모든 사람이 자기가 가질 수 있는 것을 위하여 또 자기가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하여 노력하게 될 때 인간관계는 험악하여질 것이고 사람은 이웃끼리도 경계하게 될 것이다.

3. 자긍과 교만이 또 하나의 요인이 된다. 고통하는 때가 되면 사람들은 교만에 빠져 자랑하는 자가 되고 훼방하는 자들이 된다. 자랑하는 자라 함은 사람들을 경멸과 조소하는 눈초리로 쳐다보는 자들이요, 훼방하는 자들이라 함은 하나님과 주의 이름을 훼방하는 자들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인간도 무시하게 되고 정반대로 변해 버린다.

4.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을 때. 의무와 감사로 부모에게 대하여야 되고 그리고 자주 부모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을 의지해야 하는 데도 자녀들이 자기들의 이 의무를 저버리게 될 때 이것들이 고통하는 때를 조성하는 것이다. 그들의 부모를 거스르고 배반하는 자들에게는 재앙이 닥치는 법이다.

5. 감사하지 아니하고 거룩하지 아니하는 것들이 고통의 때의 요인이 된다. 이 두 가지는 항상 함께 따라다닌다. 인간이 거룩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지면 또한 하나님의 긍휼에 대하여 감사하지도 않게 된다. 그것은 배은망덕과 불경건은 함께 따라다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배은망덕은 가장 나쁜 죄 가운데 하나이다. 감사치 아니함, 불순함, 육적욕망으로 자신을 더럽히는 것, 이 모든 것은 우리 육신을 위하여 좋은 것들을 준비해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배은망덕의 증거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선물들을 우리 정욕의 음식과 연료로 삼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사들을 남용하는 것이 된다.

6. 자연법 또는 보편적 선을 사람들이 무시할 때 그때는 고통의 때이다. 그때도 사람들이 무정하여 원통함을 풀지 아니한다. 사람의 성품에는 누구에게나 따스한 온정이 있게 마련이다. 인간이 있는 곳에는 자기와 똑같은 본성을 향한 인간애가 있게 되며 특히 친족들 사이의 정은 각별한 법이다. 그러나 고통의 때에는 자녀들은 부모에게 불순종하며(2절), 부모들은 자녀에게 대해 무정해진다(3절). 본성의 타락의 죄가 어떠한 것인지를 보라. 본성이 타락될 때 그들은 본래 타고 난 인간끼리 느끼는 따듯한 마음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이 땅에서 인류가 번성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가 깨지게 된다. 그리고 본능적인 애정이 없는 사람이라면 또한 신앙적인 계약에 의해서도 구속받지 않으려 할 것은 뻔한 일인 것이다. 그들은 "무자비하게 된다." 즉 그들은 혈연에 대해서도 아무런 느낌이 없게 되는 것이다.

7. 인간들이 서로 참소할 때 그것은 고통의 때이다. 참소한다는 것은 희랍어 성경에는 ‘디아볼로이’(1228)라 하였다. 이 말은 사람이 서로에게 악마가 된다는 뜻인 것이다. 즉 사람들이 상대를 존경하지 않으며 또는 서원한 신앙의 의무를 무시해 버리고 자기들은 자유로와 마음대로 말하고 행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시 12:4).

8. 인간이 자기와 자기의 욕망을 스스로 다스리지 못할 때 고통의 시대가 올 것이다. 스스로의 욕구를 자제하지 못하는 것은 "절제할 줄 모르기 때문이며 자기의 정열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은 "사납기" 때문이다. 그들이 스스로 자신을 다스리지 못할 때 무너지는 도시와 같은 것이다. 또한 성벽이 없는 도성과 같아 약한 병력의 침입 앞에서도 곧 불타고 말 것이다.

9. 선하고 존경받아야 할 것이 일반적으로 멸시를 받으며 경멸당할 때가 고통의 때이다. 박해자들은 선한 사람들을 멸시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10. 인간들이 배반하고, 고집하며, 자고 할 때가 고통의 때인 것이다(4절). 즉 사람들이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 할 때"가 그러한 때인 것이다. 우리의 구주께서는 형제가 형제를 배반하여 죽음에 내어 주며 아버지가 자식을 배반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마 10:21). 그런 자들이야말로 가장 최악의 배반자들인 것이다. 또한 성경을 박해자들에게 내어 주는 자도 배반자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자기에게 위임된 신임을 배반하였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성미 급하고 과장하여 자기 주위의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대할 때 또한 이런 경향이 일반적으로 풍미할 때 고통의 시대가 올 것이다.

11. 인간들이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할 때"가 고통의 때이다. 진실한 그리스도인 보다도 쾌락주의자들이 더 많아질 때 바로 그때가 악한 때인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셔야 한다. 하나님 보다 사물을 더 좋아할 때 그 마음이 육욕적인 마음이며 그 마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으로 가득 찬 마음인 것이다.

12. 이러한 모든 악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경건의 모양은 가지고 있다"(5절).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기독교를 믿는 것으로 간주되어 세례를 받고 신앙 고백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경건의 모양이 그럴듯할지라도 사실은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경건의 모양에는 경건의 능력이 따라야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함께 있게 하신 둘 중에서 경건의 능력은 잘라 떼어버린다. 그들이 경건의 모양으로 가장 하는 것은 비난받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들은 죄를 제거해 주는 경건의 능력에는 순종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것을 볼 수 있다.

(1) 사람들이 신앙 고백을 했을지라도 대단히 나쁘고 사악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그러면서도 경건의 모양은 지닌다.

(2) 경건의 형태는 경건의 능력과는 대단히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경건의 형태는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능력이 전혀 결핍되어 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그들은 능력을 부인한다. 특히 그들의 생활 가운데서 경건의 능력을 실행하지 않는 것이다.

(3) 이러한 악으로부터 선한 그리스도인은 돌아서야만 할 것이다.

Ⅲ. 여기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유혹자들을 경계하라고 경고한다. 디모데 자신이 그들에 의해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될 것을 물론 이어니와 그가 책임 맡고 있는 사람들도 그들의 유혹에 빠져들지 않도록 무장해 주라고 명하였다.

1. 바울은 그들이 얼마나 부지런히 활동하는 가를 설명하여 주었다(6절). 그들은 변절시키기 위해 특별히 정한 사람의 집을 비공개적으로 방문한다. 왜냐하면 악을 행하는 자들은 빛을 미워하기 때문이다(요 3:20). 그들은 박해자들이 그리스도인의 가택을 수색할 때 하는 식으로 강제로 집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선택한 사람들의 집에 살금살금 들어가서 그 사람들의 환심을 먼저 얻은 다음 그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을 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이 그들에게 넘어가는가를 생각해 보자. 그들의 유혹에 넘어가는 자들은 약한 자들로서 곧 "어리석은 여인들"이며 또한 악한 자들로서 곧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는"자들인 것이다. 어리석은 머리와 더러운 마음을 지닌 사람들 그중에도 특히 여자들이 쉽게 유혹자들의 먹이가 된다.

2. 바울은 그런 자들이 "항상 배우지만"진리의 지식에는 결코 이르지 못하리라는 것을 보여준다(7절).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항상 배워야 하며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런 자들은 회의론 자들로서 경솔하고 불안정하여 무슨 새로운 사실을 대하게 되며 새로운 지식을 습득한다는 구실 아래 쉽게 그 교훈에 젖어버린다. 결코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지식에는 이르지 못한다.

3. 바울은 그들의 진전을 막는 어떤 방해가 있을 것을 예언하고 있다. 그는 이런 방해자들을 모세를 대적한 애굽의 마술사들 즉 본문에 그 이름이 기록된 얀네와 얌브레를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비록 구약 성경에서 이들의 이름을 볼 수 없지만 고대 유대인의 저술물들 가운데 그들의 이름이 명기되었었으리라고 볼 수 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끌고 애굽에서 인도해 내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왔을 때 그 마술사들이 모세에게 대적하였던 것이다. 이 방해자들은 "진리를 대적하고" 또한 애굽이 마술사들처럼 "마음이 부패한 자들이"었고 진리를 곡해하며 편견과 삐뚤어진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었고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자"들이며 진실한 그리스도인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저희들은 그 어리석음이 드러나서 결국은 그 방해하려는 노력이 성공을 거두지는 못할 것이라고 본문은 말씀한다. 다음을 유의하자.

(1) 유혹자들은 비밀 장소를 찾고 어두운 곳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중 앞에 나서기를 두려워하며 몰래 집 안으로 숨어 들어간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가장 약한 자들, 즉 어리석고 부도덕한 여인들을 공격한다.

(2) 유혹자들은 전(全) 세기를 통하여 모두 비슷하다. 그들의 특징은 언제나 똑같다. 즉 모세를 대적하였던 얀네와 얌브레같이 진리에 대적하는 행위를 한다. 또한 그들의 기도는 실패로 끝나고 만다는 데도 그들의 운명은 일치하는 것이다.

(3) 진리에 대적하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들이다. 진정 그들은 어리석은 자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위대한 진리가 마침내는 승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4) 비록 하나님께서 범죄 한 영혼을 당분간은 활동하도록 내버려 두실 것이지만 곧 그들은 사슬에 묶어 놓으실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이상으로 국가나 교회를 속일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자들의 어리석음은 온 천하에 드러나서 결국 성공을 거두지는 못할 것이다." 즉 그들이 사기군이라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요 또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버리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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