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창세기 23장에서는 사라의 죽음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라가 죽자 아브라함은 사라를 장례 할 매장지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헤브론의 막벨라 굴을 아브라함이 구입하여 사라를 그곳에 장사 지냈습니다.
사라의 매장지를 사는 아브라함
사건 개요
모리아 산 사건 이후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일백이십칠 세를 일기로 가나안 땅 헤브론에서 죽었다. 이에 아브라함은 사라를 장사 지내기 위해 헷족속에게서 매장지를 사고자 하였다. 이때 헷 족속 사람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밭을 주겠다는 제안을 하였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고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을 바꾸어 그 속에 사라를 장사하였다.
역사적 배경
사라의 죽음에 관한 기록과 법적 절차에 따른 묘지 구입 과정은 매우 정교하게 구성되었다. 이 이야기에 서술된 법 절차와 구성은 B.C. 7-5세기경 신바벨론 제국에서 널리 사용되던 대화체 문서와 유사하다. 아브라함은 사라가 죽은 후 일련의 장례 의식을 치른 뒤 그녀를 묻을 묘지를 사기 위해 헷 사람들과 흥정한다. 그는 나그네였기 때문에 그 지역 공동체의 동의를 받지 않고는 땅을 가질 수가 없었다. 이때 나오는 헷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정착하기 전에 가나안에 살던 원주민들이었다.
이들은 소아시아 일대에 살던 원시 헷족으로서 헷 제국을 건설한 신헷족에 밀려 팔레스틴으로 내려왔다는 학설이 있다. 아브라함과 헷 사람들은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협상을 진행한다. 아브라함이 땅 값으로 지불한 은 사백 세겔은 매우 비싼 가격이다. 예를 들어 예레미야는 은 십칠 세겔을 주고 밭을 사고(렘 32:9), 오므리는 사마리아 산 일대를 은 이천 세겔로 구입했던 것이다(왕상 16:24). 후에 이 동굴에는 사라 외에도 아브라함, 이삭, 리브가, 레아, 야곱이 차례로 묻혔다. 오늘날 그 무덤의 위치는 헤브론 동쪽 엘 하틸 지역의 거대한 이슬람교 사원 밑이다.
구속사적 의미
아브라함은 단지 사라의 장례를 위해 헷족속의 밭을 샀지만 이것은 구속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었다. 즉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최초로 소유하게 된 사건이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의 축복이 역사 속에서 현실로 실현된 것이다.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의 합법적인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브라함이 구태여 정당한 값을 치르고 에브론의 밭을 샀다는 사실은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소유의 정당성을 제공하는 근거가 된다.
단어연구
●나그네요(까르)
‘머무르다, 묵다, 모이다, 거주하다’라는 동사 (구르)에서 유래한 말로 동일한 혈족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 기거하는 자 즉 체류자를 의미한다. 본문에 등장하는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아직 아브라함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단지 체류자의 자격으로 기거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관영할 때 그 땅을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참조, 창 15:16).
●내 주여(아도나이)
‘주인’이라는 뜻으로 원래는 하나님에 대한 존칭으로 사용되었는데 그 용례가 확장되어 상대를 높여 부르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본문에는 아브라함이 비록 타민족이지만 헷족속이 그의 인격을 존중함을 나타낸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증거 하는 것이다.
●막벨라(함마케펠라)
‘두 개의, 이중의’라는 뜻인 (카팔)에서 유래한 말로 ‘쌍굴, 이중으로 된 굴’이라는 의미의 지명이다. 이곳에는 사라뿐만 아니라 아브라함, 이삭, 리브가, 야곱, 레아가 묻히게 된다(참조, 창 49:30 등).
●들으소서(쉐마에니)
‘주의하다, 듣다’라는 뜻으로 상대의 말을 귀담아 듣고 그 말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은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계속적으로 권고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강해설교
세상 사람들은 땅에 대한 소유욕이 매우 강합니다. 그것은 다른 것들은 인간이 생산해 낼 수 있지만 땅만큼은 인간이 더 생산할 수 없기에 영원한 재산적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농경 사회에서의 땅은 생산을 할 수 있는 자본으로서의 역할을 하므로 땅에 대한 사람들의 욕심은 언제나 끊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땅은 인간의 영원한 소유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이 영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을 약속하심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기업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러한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이 땅에서의 생을 살아갔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죽어 장사 지낼 땅을 매입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성도가 이 땅에서 어떠한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교훈받을 수 있습니다.
1. 믿음으로 소유한 약속의 땅
[해석]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은 그녀의 시신을 가나안 땅 헤브론에서 장사 지내려고 땅을 매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지만 그곳에는 아브라함의 소유된 땅이 한 치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에 매장하려고 하였는데 이는 그 땅이 하나님께서 장차 자신의 후손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소망의 땅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내를 장차 자신의 후손들이 거할 땅에 매장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즉 아브라함은 현재로 자신에게 가나안에 땅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곳을 자신의 후손들에게 주어 살게 하실 것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적용]
성도는 이 땅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약속을 믿고 있으므로 소망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사라가 죽어서도 약속의 땅에 매장되었듯이 성도는 죽어서도 이러한 소망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이 세상 사람들과 같이 세상에 대한 헛된 욕심을 가지고 살지 말아야 합니다. 진정한 하늘에 대한 소망을 가진 자는 이 세상의 썩어질 것에 대해 궁극적인 가치를 두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성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믿음 안에서 죽는 자는 하나님의 품에 안겨 복을 받게 되므로 오히려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감을 기뻐하며 감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자녀는 죽어서도 사라와 같이 약속의 땅을 향하여 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께로서 받는 축복
[해석]
아브라함이 그 땅의 소유주인 헷 족속에게 자신의 아내를 장사 지낼 땅을 팔 것을 요구하였을 때 그들은 그 땅을 거저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이는 그 당시 아브라함이 그 지역에서 덕망이 높고 많은 사람들에게 복 있는 자로 알려졌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들의 제안을 거부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함으로 그 땅을 매입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이방인들로부터 거저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아브라함이 소돔 성 사람들이 대적들에게 잡혀가자 그들을 구원하였을 때에도 일어났었습니다. 소돔 왕이 아브라함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전리품을 주고자 했을 때 아브라함은 그가 아브라함으로 치부케 하였다고 할 것을 염려하여 모든 것을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시고자 약속하신 복은 온전히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증거 하려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보여줍니다.
[적용]
성도는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의 언약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기로 약속하신 축복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복을 누리는 것도 포함이 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순종하며 사는 의인에게만 제한되지만 이 땅에서의 복은 외형적으로 볼 때 믿지 않는 자들도 누리고 있습니다. 즉 불신자들도 세상의 부와 권세와 건강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기로 약속하셨지만 실제로는 이방인들이 차지하고 있었던 것에서도 나타납니다. 이는 의인과 악인에게 동시에 비를 내려주시고 햇볕을 주시는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총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세상 사람들이 누리는 복을 누림에 있어서 그 근거와 방법이 달라야 합니다. 즉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방법으로 복을 누리고 있지만 성도는 오직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주시는 복을 받아 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외형적으로 볼 때 세상에서 누리는 것은 같아 보일지라도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는 자는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게 됩니다. 반대로 악인들이 복을 누림의 결과는 자신들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축복의 영광을 세상에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였던 것처럼 성도는 세상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음을 통하여 복을 누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3. 죽은 자의 소망인 하나님 나라
[해석]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죽어 장사된 가나안 땅의 무덤과 밭에는 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리브가와 야곱과 레아가 합장되었습니다(참조, 창 25:9창 49:31창 50:31). 믿음의 조상들이 아브라함이 산 땅에 묻힌 것은 그들 모두 하나님의 언약하신 약속의 땅에 소망을 두고 살았고 마지막 날에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을 소망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믿음의 조상들의 행적은 성도들에게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의 삶의 자세에 대해 교훈해 줍니다.
[적용]
모든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지만 성도와 불신자의 죽음의 의미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성도의 죽음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로 가는 관문이지만 불신자의 죽음은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으로 가는 비극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지막 날 성도들은 생명의 부활로, 악인들은 심판의 부활로 다시 일어날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모든 목적을 하나님 나라로 두고 지혜롭게 행하여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들인 죽음을 맞이하면서 약속의 땅에 매장되기를 소망하였던 것은 그들의 일생이 하나님 앞에서 소망 가운데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복을 받은 자로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믿음을 지켰듯이 성도는 하나님의 복을 소유한 자답게 담대하고 깨끗하게 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그러한 자세로 바르게 행할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누렸던 영육 간의 복을 허락하시어 성도에게 누리게 하십니다.
설교관주
●믿음의 인물인 사라(히 11: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죽어 돌아갈 땅(창 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소망이 됨(행 26:6)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영원한 소망(잠 14:32)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구원을 이루는 소망(롬 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토지의 매입(잠 31:16)
밭을 간품하여 사며 그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심으며
●하나님의 영광(왕상 8:11)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완전한 하나님의(신 32:4)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요일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하나님만을 의지함(사 27:5)
그리하지 아니할것 같으면 나의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로 더불어 화친할 것이니라
●악인의 순간적인 행복(욥 20:5)
악인의 이기는 자랑도 잠시요 사곡한 자의 즐거움도 잠간이니라
●악인의 행복의 한계(눅 16:24)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약속의 땅을 유업으로 받음(히 11:9)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믿음을 따른 죽음(히 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의인의 평안한 죽음(사 57:1)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자비한 자들이 취하여 감을 입을지라도 그 의인은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 줄로 깨닫는 자가 없도다
[출애굽기 16장 설교말씀] 하루 하루를 생각하라(출 16: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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