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아모스 3장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북이스라엘 사마리아 심판 예언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솔로몬 이후에 북쪽과 남쪽으로 나라가 쪼개지면서 북이스라엘은 10개의 지파가 올라가게 됩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왕이 한 명도 나오지 않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왕만 나오다 보니 하나님을 섬기지 않음으로 결국 심판의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가 나와서 말씀을 선포해도 듣지 않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도 북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해서 말하지만 그들은 듣지 않습니다. 영적인 귀를 닫아버리니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듣지 않습니다. 우리도 영적인 귀를 닫으면 안 됩니다. 복음의 말씀을 듣지 않고 세상의 길로 가면 멸망당하게 됩니다. 이 시간 아모스 선지자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정신 차리고 주님을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북이스라엘 사마리아 심판 예언(암 3:1-8)
1절은 쉬메우 에트 하다바르 하제 아쎄르 디베르 아도나이 알레켐 베네 이스라엘 알 콜 하미쉐파하 아쎄르 헤엘레티 메에레츠 미츠라임 레모르입니다.
암 3: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에 대하여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모든 족속에 대하여 이르시기를
=====3: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를 쳐서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 - '이 말씀을 들으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쉬메우 에트-하다바르 하제'가 문장 초두에 나와 강조되어 있으며, 이런 표현은 새로운 주제로 전환하기 위해 사용되곤 하였다(4:1; 5:1; 8:4). 들으라는 샤마는 명령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 말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다바르 하제'의 '하제'는 지시 대명사로 앞으로 계속 설파할 내용을 지시한다.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온 족속을 쳐서 이르시기를 -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이 권고가 이스라엘 백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유다의 백성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2절은 라크 에트켐 야다에티 미콜 미쉐페호트 하아다마 알 켄 에프코드 알레켐 에트 콜 아오노테켐입니다.
암 3:2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
=====3:2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 - '너희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크 에트켐'은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본 문장의 맨 앞에 나와 있어서 강조되어 있다. 그만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에 근거하여 말씀하신다는 사실이 부각된다.
'알았나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다'는 칼(능동태) 완료 공성 1인칭 단수이다. 하나님께서 완전히 너희만을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완료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나도 세상 모든 민족 중에서 이렇게 영원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야다라는 동사는 지극히 절친한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특별하게 선택하였다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창 18:19).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서(출 19:5; 말 3:17) 제사장 나라(출 19:6), 여호와의 백성(삿 5:11; 삼하 14:13), 거룩한 백성(신 7:6; 14:2,21)으로 여겨졌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 - 이스라엘이 징계받는 원인이 제시된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특별하게 여기셨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계명을 떠나서 범죄 하였기 때문에 징계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이 돌아오길 기대하는 것이므로(6, 8-11절) 하나님의 징계는 택한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다(히 12:5-8).
3절은 하옐레쿠 쉐나임 야헤다브 빌티 임 노아두입니다.
암 3:3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3:3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 - 2절에서 예고된 심판이 잠시 중단되고, 아모스의 예언적 권위를 확증하려는 듯한 일련의 질문들이 제기된다. 그 가운데 첫 번째 질문은 두 사람의 의견 일치가 없이는 동행할 수 없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아모스가 언급하는 두 사람이 누구를 암시하느냐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있다.
(1)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으로 보는 견해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동행하길 원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거부하고 말았다는 것이다(Pusey, Harper). 이 견해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범죄와 그에 따른 징계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2) 하나님과 아모스로 보는 견해로 아모스 자신의 예언이 하나님의 뜻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는 아모스의 선포가 다른 선지자들의 선포와도 일치되는 것으로 아모스가 선지자적인 권위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3) 기본적으로 (2)의 견해와 동일한 관점이지만, 아모스는 하나님의 뜻을 증거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입장 표명이라는 견해다(Calvin, Keil). 이 가운데 (2), (3)의 견해가 무난하다.
4절은 하이쉐아그 아르예 바야아르 베테레프 에인 로 하이텐 케피르 콜로 미메오나토 빌티 임 라카드입니다.
암 3:4 사자가 움킨 것이 없는데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으며 젊은 사자가 잡은 것이 없는데 어찌 굴에서 소리를 내겠느냐
=====3:4
사자가 움킨 것이 없고야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으며 - 사자가 부르짖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 선언이 사자의 울음소리 같다는 사실을 연상시킨다(1:2). 아울러 사자의 부르짖음이 사자가 움킨 것에 근거하는 것처럼, 아모스의 선포도 명백한 근거와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선포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고, 선포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범죄 하였기 때문이다.
5절은 하티폴 치포르 알 파흐 하아레츠 우모케쉬 에인 라흐 하야알레 파흐 민 하아다마 베라코드 로 이레코드입니다.
암 3:5 덫을 땅에 놓지 않았는데 새가 어찌 거기 치이겠으며 잡힌 것이 없는데 덫이 어찌 땅에서 튀겠느냐
=====3:5
창애를 땅에 베풀지 아니하고야 새가 어찌 거기 치이겠으며 아무 잡힌 것이 없고야 창애가 어찌 땅에서 뛰겠느냐 - 개역 성경에서는 두 번에 걸쳐 '창애'라고 번역되었지만, 히브리어 원문에는 각각 '파흐'와 '모케쉬'로 되어 있다.
'파흐'는 땅에 있는 덫(ground snare)을 의미하는 것으로 새를 잡기 위해 땅에 고정시켜 놓은 덫을 가리킨다. '모케쉬'는 원래 미끼(bait)라는 뜻이었다가 나중에는 함정(trap)을 의미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BDB).
그러므로 이 두 문장은 새가 잡히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기보다는 원인-결과의 관계(cause and effect)를 보여주는 비유로서 서로 독립된 두 개의 구절로 보는 것이 낫다.
6절은 임 이타카 쑈파르 페이르 베암 로 예헤라두 임 티흐예 라아 베이르 바아도나이 로 아사입니다.
암 3:6 성읍에서 나팔이 울리는데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 여호와의 행하심이 없는데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
=====3:6
성읍에서 나팔을 불게 되고야...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 - 앞에서 전개된 비유의 본래 의도대로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상기시키기 위해 원인과 결과를 나타내는 수사학적 질문을 던진다.
'나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쇼파르'는 전쟁 때 공격하기 위한 신호(삿 7:18, 19), 군사 행동을 정지시키기 위한 신호(삼하 2:28), 적군이 쳐들어 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신호(렘 6:1; 호 5:8) 등으로 불렸다.
본절에서는 어떤 성읍의 거민들에게 경고로 부는 나팔을 의미한다. 또한 '재앙'은 하나님의 주권 하에 시행되는 것이 기정사실임을 전제하고 있다(사 45:7).
7절은 키 로 야아세 아도나이 아도나이 다바르 키 임 갈라 소도 엘 아바다이브 하네비임입니다.
암 3: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3: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 본절이 앞절과 연관성이 있는지 여부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앞부분과 논리적인 연결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T.E.McComiskey).
그래서 어떤 학자는 본절의 첫머리에 나오는 히브리어 '키'를 '그러나'(but)로 번역하고(Harper), 어떤 역본들은 '확실히'(surely)로 번역하였다(KJV, JB). 그렇지만 8절에 나오는 '사자'와 '두려움'의 개념이 4절의 '사자'와 6절의 '두려움'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을 보면, 7절 만을 따로 생각할 수도 없다.
한편 '비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소드'는 '은밀한 협의'(SECRET COUNSEL)란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밀접한 관계에 기초한 적극적인 의논(잠 15:22)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깊은 관계성을 통해 미리 알려주는 계획(plan)을 가리키기도 한다.
하나님과 이런 관계에 있으므로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렘 23:18, 22). 한편, 하나님의 심판에는 그에 앞서 항상 경고가 있다. 노아 시대에 홍수 심판도 그러했고(창 6:13-21),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에도 미리 경고되었다(창 18:17-21; 19:12,13).
보이지 - 갈라라는 동사로서 칼(능동태) 완료 남성 3인칭 단수이다. 완전히 덮개를 벗겨서 보여준다는 의미다. 신약에서는 계시라는 개념이다. 능동태는 하나님께서 직접 선지자들에게 모든 비밀을 보여주신다는 의미다. 완료 시제이니 하나도 빠짐없이 보여주셔서 앞으로 어떻게 하나님이 행동하실 것인지를 알게 하신다는 의미다. 복음도 비밀이다. 이 비밀을 선택한 백성에게 보여주신다.
8절은 아르예 샤아그 미 로 이라 아도나이 아도나이 디베르 미 로 이나베입니다.
암 3:8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
=====3:8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 본문은 하나님 심판 선포의 엄위로움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4절; 1:2; 렘 25:30; 호 11:10), 임박한 전쟁이나 멸망을 상징할 때도 사용되었다(사 5:29; 렘 2:15).
이 구절은 4절의 사자의 부르짖음과 6절의 백성의 두려워하는 모습을 반영하는 것 같다(J.Niehaus).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 - 나바라는 동사로서 닢알(수동태)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이다. 수동태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만 선포한다는 의미다. 예언은 인간이 능동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실 때 할 수 있다. 미완료는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선지자들에게 말씀을 허락하실 때 그 말씀을 선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본 구절은 아모스가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는 심정을 털어놓고 있다. 누구라도 여호와의 말씀을 깨닫는다면 이를 거역할 수 없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자기에게 핍박이 주어진다고 해도 이런 사역은 포기할 수 없다(7:10-17; 행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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