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성경지명 설교자료

[성경지명 설교말씀] 가버나움-죽음에 관한 상반된 시각(막 5:35-43)

르호봇 2021. 2. 2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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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성경 지명 설교말씀 중에서 가버나움의 죽음에 관한 상반된 시각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주님의 생각과 인간이 생각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회당장의 딸이 죽었을 때 모두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때 모든 사람이 비웃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는 분입니다. 우리도 이런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인간이 생각하지도 못한 기적을 베푸실 수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도 죽음에 관하여 다르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게 됩니다. 영원한 영화의 몸으로 부활하여 영원히 살게 됩니다.

가버나움-죽음에 관한 상반된 시각

 

막 5: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막 5: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막 5: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막 5: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막 5: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막 5:40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막 5: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막 5: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막 5: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우리 기독교의 시각으로 볼 때 인류 불행의 원인은 죄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바로 죽음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성경의 말씀대로 죽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포와 불행의 사신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한 극복 문제는 종교와 철학의 공통적인 대명제입니다. 본문 가버나움 회당장의 어린 딸의 죽음과 그 딸을 죽음에서 소생시킨 주 예수의 행적 속에서 죽음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시각과 생명에 대한 주님의 시각을 대비시켜 줍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통해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신앙의 진실성과 그 귀중 성을 다시금 인식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 절망과 희망을 보여줍니다

1) 절망하는 사람들

"가로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35). 이 말은 회당장의 이웃이 소녀가 죽은 소식을 전한 내용입니다. 그 말속에는 죽음에 대한 깊은 절망감이 깃들어 있습니다. 괴롭게 한다는 말은 '스큘레인'이라는 말로서 "말도 안 되게 혹사시킨다"는 뜻입니다. 죽은 사람을 예수님께 살려달라고 청하는 일은 어불 성설, 억지를 부려 예수님을 괴롭히는 일이니 그만두라는 뜻입니다. "죽으면 더 이상 어쩔 수가 없다"라는 절망적 인식이 사람들의 의식을 사로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절망감은 주 예수께 간구하고 기대하는 것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결국 절망은 불신의 씨앗입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이 바로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도 했습니다. 죽음, , 삶에 대한 절망은 우리 신앙의 적입니다.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우리 기독교 신앙의 특색이요, 생명임을 기억합시다.

 

2) 끝없는 희망을 주시는 주님

이에 반해 우리 주님은 어떻습니까? 그 죽음의 소식을 듣고도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36)고 하셨습니다. 절망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죽음의 권세를 극복할 능력이 없고 죄악의 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우리에겐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는 있으므로 구주 예수를 믿으라는 명령입니다. 아브라함처럼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을 수 없는 중에도 믿으라는 교훈입니다(4:18).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주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있기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만날지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9:23)고 하셨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의인으로 인정받고 천국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며, 어떻게 죽은 후에 부활하여 영생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오직 주님의 전능하신 권능과 그 사랑의 언약을 굳게 믿음으로 가능할 뿐입니다.

 

2. 체념과 권능을 보여줍니다

1) 체념하는 사람들

주님이 회당장의 집에 가시니 이미 장례 절차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곡하며 피리 불고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풍습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많은 나라가 동일합니다. 세계는 '죽음의 문화와 절차'에 아주 익숙합니다. 전문적으로 곡해 주거나 다양한 절차로 장례를 치름으로써 죽은 자의 가족들을 잠시나마 위로해 주는 것입니다. 이는 죽은 자를 살려낼 수는 없으니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장례식을 통해 위로받으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들은 죽음에 관해 '체념'하는 이 세상 사람들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기독교를 제외한 세상의 지혜는 결국 죽음 문제에 대해 '체념'을 그 해답으로 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절대적 숙명이니 그저 체념하고 살아야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가르치는 종교도 있습니다. 죽음은 필연적이니 살아있을 때 실컷 즐기라는 사상도 있습니다(고전 15:32). 이 모든 사상의 밑바탕에는 죽음에 관한 체념 의식이 깔려있는 것입니다.

 

2) 권능으로 죽음을 물리치신 주님

주님은 야이로의 딸을 보시고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39)고 하신 후 그 당장 '달리다굼' 즉 일어나라고 명하사 죽음에서 소생시키시는 놀라운 권능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가버나움 회당장 딸을 부활시켜 주신 이적을 필두로 나인성 과부의 아들, 그리고 나사로를 살려내시는 부활의 이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야이로의 딸은 죽은 즉시 살려내시고, 나인성 과부의 아들은 죽은 후 묘지로 가던 중 살려내셨으며, 야이로는 무덤에 묻힌 지 사흘이 지났을 때 살려내셨습니다. 주님은 부활의 권능, 사망 권세를 물리치시는 권능을 가지신 창조주이심을 반증하는 예입니다. 어쩌다가 우연하게 살려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권세가 주 예수께 분명히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증거는 주 예수 자신도 삼일 만에 부활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주님 안에 있는 그 부활의 권능으로 우리까지 다시 살리실 것을 믿게 합니다.

 

3. 경악과 경계를 보여줍니다

1) 부활에 경악하는 사람들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기는"(42), 가버나움 지방부터 시작된 주님의 천국 복음 사역은 세상 사람들에게 '놀람과 충격'을 가져다주었습니다(막 1:23-28). 주님의 가르침, 행사 모두가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이처럼 '기적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은혜를 아는 성도들은 그저 놀랍고 감사할 뿐입니다. 죄인이 의인으로 인정받는 일, 영생을 얻는 일, 기도의 응답받는 일 모두가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2) 맹신을 경계하시는 주님

그 기적적인 상황을 본 사람들에게 주님은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고 이 부활 사건을 은밀하게 처리하라고 경계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이적이 일어나면 그 이적의 주인 되신 하나님보다 이적 그 자체를 우상화하는 폐단이 있습니다. 소녀의 부활 사건도 그 소녀를 부활시킨 주님보다 그 부활 이적 자체, 아니 더 나아가 부활된 소녀를 신성시하는 맹신적인 일이 벌어지는 것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적을 보고 신비감에 젖어 있지만 말고 현실적으로 그 소녀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부활했어도 음식을 먹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사람임을 간접적으로 교훈하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처럼 이상과 현실 감각이 조화된 신앙을 유지해야 합니다.

 

가버나움 회당장 딸을 사망 권세에서 건지신 이 사건은 이제 이 땅에 주님의 생명 권세가 왕 노릇 할 것이라는 신호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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