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6장에서는 초대 교회가 부흥 성장하게 됩니다. 12 사도들이 교회를 치리 하는 데는 한계가 왔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기 위해서 일곱 집사를 선택하게 됩니다. 스데반도 들어갔습니다. 스데반 집사도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다가 공회에 체포되어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오직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다가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종려주일을 맞이해서 우리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종려주일과 함께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스데반 집사도 열심히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여 순교하게 됩니다.
제목: “초대교회 일곱 집사” (행 6장)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사도행전 6:1~15
요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신님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행 6:3-4)
주제: 초대교회가 부흥 성장하니 구제와 봉사를 위해 일곱 집사를 세우다
오늘은 사순절 여섯 번째 주일이자 종려주일(悰櫚主日 Palm Lord’s Day)로 지킵니다. 사실 이스라엘에서 자라는 손바닥 모양의 “palm tree”는 “대추야자(date palm) 나무” 혹은 “야자나무”입니다. 이를 번역할 때 중국에는 없는 나무이고 종려수와 비슷하다고 “종려”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그래서 종려주일 혹은 대추야자 주일이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야자나무는 의인의 번성(시 92:12), 아름다움(아가 7:7), 승리(요 12:13)를 상징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과 왕을 맞이할 때 환영하는 뜻으로 손에 대추야자 잎을 들고 흔들면서 “호산나”하며 축제를 가집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입장하실 때 메시야를 목말라 기다리던 군중들이 “호산나”하며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했습니다(시 118:25-26). 그래서 오늘을 호산나 주일(Dominica Hosanna)이라고도 부릅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 왕이여” 하며 환호했습니다. 히브리어로 호산나(Hosanna)는 “우리를 구원하소서Save us!(Hosianna)입니다. 전쟁과 가난과 공포와 두려움에서부터 우리를 구원해 달라는 백성들의 외침입니다. 시편 24편 7-10절은 다음의 질문과 답변을 두 번씩 반복하고 있습니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뉘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바로 오늘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예수님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승리하신 예수님을 환영하십시다. 우리가 호산나!로 인사할 때 여기에 담긴 뜻은
1) 예수님은 메시야이십니다(예수 그리스도) (요 1:4)
2)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우리의 왕이십니다 (시 44:4, 마 9:27)
3) 자신을 비어 종의 형체로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빌 2:6-7)
4) 평화의 왕이시며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담을 허셨습니다(엡 2, 4, 14)
5) 예수님은 영광과 승리의 왕이 십니다 (히 2:9)
6) 예수님은 화목케 하시려고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고후 5:18-20)
7) 영원한 희생 사역을 성취하심으로 우리의 영원한 제사장이며 구세주가 되셨습니다(마 20:28)입니다.
또한 오늘은 고난 주간(the Last Week, the Holy Week)의 첫날인데 '고난의 주일' (Dominica Passionis)이라고 불리우기도 합니다. 오늘부터 고난주간을 맞이합니다. 일년 가운데 가장 거룩하고 성스러운 주간이며 주님의 공생애 마지막 주간(The Last Week, The Holy Week)이 시작됩니다. 이번 주간을 정리하면서 경건하게 지내며 다음 주일 부활주일을 기쁨으로 맞이합시다.
1) 호산나 대추야자주일 – 호산나 외치며 주님을 왕으로 모심, 입성하신 후 주님께서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심. 천국복음을 전파하심. 베다니로 가셔서 기도하심.
2) 월요일 – 베다니에서 조반을 드시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심, 들어오시는 길에 열매가 없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당시 형식만 남은 유대교 및 주님을 죽이려 했던 이들의 믿음 모습)를 저주하심(마 21:18-19). 성전을 정화하심(눅 19:45-48), 권위에 대해 바리새인들과 논쟁하심(마 21:23-28),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심(눅 20:45-47). 과부의 연보를 칭찬하심(눅 21:1-4). 아침에 저주한 무화과 나무가 말라있는 모습을 보시고 믿음의 기도의 위력에 대해 교훈하심(막 11:20-22).
3) 화요일 – 종말교훈을 하심(마태 24-25장), 예루살렘을 위하여 눈물의 기도를 하심(눅 19:41-44, 히 5:7). 천국 복음을 마지막으로 전하심.
4) 수요일 – 이날에 대한 기록은 성경에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겟세마네(감람원) 동산에서 종일 침묵의 기도를 하신 날입니다.
5) 목요일(세족 목요일 Maundy Thursday) –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요 13:1-35). 최후의 만찬을 하심(마 26:17-30), 가룟 유다가 배신을 함(눅 22:1-6), 겟세마네 동산에서 철야기도를 하심(마 26;36-46)
6) 금요일(성금요일 Good Friday) – 새벽에 로마 군병들에 의해 체포되심 (마 26;47-56), 유대인의 산헤드린에서 사형언도를 받으시고 빌라도 심문을 받으심(마 14:53-72), 사형언도를 받으심(마 27:11-31). 십자가 형에 처하시고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로 행진하심(Via Dolorosa “고난의 길”), 십자가에 달리셔서 6시간만에 운명하심(마 27:32-56), 아리마대 요셉의 새 무덤에 장사되심(요 19:38-42)
7) 토요일(성 토요일 Holy Saturday) – 무덤에서 안식하심으로 구약의 안식일을 완성하심. 지옥에 내려가셔서 구원의 마지막 기회를 주심(행 2:31, 엡 4:8-10, 벧전 1:11-12, 4:6)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은 사도행전 6장을 강해합니다. 초대교회가 급성장하는 과정속에서 사도들의 일이 너무 많아져서 집사님을 선출하게 됩니다.
1-7절, 일곱 사람을 택함
(1)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2)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나눔과 섬김 사역을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3)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신님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4)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5)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신님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6)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7)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1절. 그때에 제자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초대교회는 급성장합니다. 12사도에서 120문도로, 첫날 3000명이 세례[침례] 받고(행 2:41), 앉은뱅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를 받은 후 5000명이 추가되었고(행 4:4),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후 사도들을 통해 표적과 기적이 많이 일어나니 큰 무리가 교회로 몰려왔습니다(행 5:14). 사도행전에서, 믿는 자들을 ‘제자’라고 자주 불리었습니다(행 2:41; 6:1, 7; 11:26, 29; 13:52; 14:22; 19:9; 20:30 등). 제자는 선생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고 그를 본받는 자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들, 즉 주님을 믿고 그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고 그의 모습과 행위를 본받는 자입니다. 초대교회는 제자들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그때 문제가 생겼습니다. 일군의 부족 때문에, 교회 안에 때때로 문제가 생깁니다. 당시의 문제는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망한 것입니다. 히브리파 유대인은 유대 땅 출신 유대인을 가리키고, 헬라파 유대인은 세계 각곳의 출신으로 헬라어를 쓰는 유대인을 말합니다. ‘매일 구제’라는 말은 매일 식사[밥퍼]를 제공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아마 고의적으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지만, 그런 일로 인하여 사랑의 공동체에 불평하는 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2-4절. 열두 사도들이 모든 제자들을 불러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나눔과 섬김을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도다”라고 지적합니다. ‘공궤를 일삼는 것’이라는 원어는 ‘식탁 봉사의 일’을 뜻하며 금전 지출의 일을 내포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의 주된 임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이었으므로 식탁 봉사나 금전 지출의 일로 인해 말씀 전파의 일이 소홀히 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한가지 안을 제출합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신님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專務)하리라.” 섬김과 나눔의 일, 즉 식탁 봉사나 금전 지출의 일을 위해 사람들을 세운 것이 집사직의 기원이 됩니다. 이런 일은 목사와 장로들이 할 수 없거나 해서는 안 되어서가 아니라, 목사와 장로들이 영적인 일[기도하는 일, 말씀 사역]에 전념하도록 하기 위해 집사들을 세워 그 일을 맡기게 된 것입니다. 집사의 자격은 ‘성신님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이라고 규정합니다. ‘사람’이라는 원어(아네르 aner)는 ‘남자’라는 뜻인데, 사도들과 장로들과 같이 초대교회의 집사들은 남자들 중에서 선택되었습니다. 목회서신에 보면 여집사 제도가 후에 생겼습니다(딤전 3:11).
‘성신님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봉사할 만한 지혜와 믿음과 재능이 있는 모범적 인물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3장에서 장로와 집사는 한마디로 인격적 성숙함이 있는 자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감독(장로)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집사들도 단정하고,”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딤전 3:2, 8, 11). 집사의 수는 일곱입니다. 일곱은 완전을 상징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일곱이라는 숫자를 많이 계시하는데, 일곱 촛대(교회), 일곱 별(목사),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일곱 뿔, 일곱 눈(하나님의 일곱 영) 등입니다. 만여명 이상의 교인들이 있었을지라도 단지 일곱 집사를 세웠습니다. 초대 교회는 직분자의 수가 많지 않았습니다. 집사의 직무가 섬김과 나눔과 구별하여, 사도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에 전념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사도들의 직무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개인적인 기도뿐 아니라 공적 기도 모임을 인도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고 ‘말씀 전하는 것’은 전도와 설교와 권면의 일을 가리킬 것입니다. 목사와 장로의 직분은 바로 그런 일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교회 헌법은 목사의 주요 직무에 대해 “양무리된 교인을 위하여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으로 교훈하고 강도하며”라고 말하고, 장로의 직무에 대해 (1) 교회의 신령적 관계를 총찰하고, (2) 도리 오해나 도덕상 부패를 방지하고, (3) 교우를 심방하여 위로, 교훈, 간호하고, (4) 교인의 신앙을 살피고 위하여 기도하고, (5) 특별히 심방할 자를 목사에게 보고한다고 합니다.
5-6절. 온 성도들[요즘말로 공동의회]이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신님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Stephen)과 또 빌립(Philip)과 브로고로(Prochorus, 훗날 사도 요한과 함께 밧모섬에 가서 요한의 대필자가 됨)와 니가노르(Nicanor)와 디몬(Timon)과 바메나(Parmenas)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Nicolas a proselyte of Antioch)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웠고,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습니다. 선택 방법에 대해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사도행전 1:21-26의 사도 보선의 경우나 사도행전 14:23의 장로 선택의 경우를 참고할 때, 그들은 후보를 추천하고 제비뽑기나 거수투표로 선택했을 것입니다. 회중에 의해 선택된 일곱 사람은 사도들의 기도와 안수로 직분을 받았습니다. 안수는 직분을 위탁하고 그 직분에 필요한 성신님의 은사를 구하는 상징적 형식이었습니다. 초대 교회의 임직식은 거창한 의식이 아니고 기도와 안수로 이루어진 조촐한 의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7절.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increased)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많은 수도 복음에 복종하였습니다. ‘도’라는 원어(피스티스 pistis)로 ‘믿음’이라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그 내용인 복음 진리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왕성함과 혼의 구원의 역사 그리고 교인들의 수적인 증가는 다 하나님의 은혜요 성신님의 역사이었습니다.
행 6:1~7의 교훈을 정리하면 첫째로, 우리는 교회의 직분들의 성격을 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목사와 치리장로는 기도와 말씀 전파의 일에 전념해야 할 직분입니다. 목사와 장로의 관계는, 목사가 말씀 연구와 기도 중에 교회의 방향을 잡으면 장로들이 교회가 그 방향을 향해 전진할 수 있도록 돕고 협력해야 하는 관계입니다. 집사는 교회의 그 외의 여러 일들, 특히 재정 지출이 필요한 일들과 나눔과 섬김의 일을 맡는 직분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직분자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교회직분자는 성신님과 지혜가 충만하며 다른 이들에게 칭찬을 듣는 자이어야 합니다. 후보자들에게는 신앙 지식과 사상의 건전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특히 인격적 성숙함, 즉 모든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는 것이 요구됩니다. 물론, 직분자는 자기 직분에 충실해야 합니다. 직분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충성입니다. 고전 4:2,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요계 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골 4:17,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셋째로, 우리 모두는 말씀의 왕성(increase)함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역사하셔서 죄인들의 마음을 밝히시고 깨뜨리시고 회개시켜 말씀 앞에 복종케 하시기를 기도합시다.
2. 스데반이 체포되어 공회 앞에 서다(행 6:8-15)
스데반 집사님은 과연 짧은 생애이었지만 교회에서 귀히 쓰임 받은 일꾼이었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이상적인 중직 인물입니다.
(8)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9)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할새(10)스데반이 지혜와 성신님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11)사람들을 가르쳐 말시키되 이 사람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12)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 가지고 공회에 이르러(13)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말하기를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14)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8절. 스데반집사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적과 표적을 민간에 행하였습니다. 기적(miracle)은 주로 사도들이 행하였습니다. 행 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적과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행 5:12,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적이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사도의 표는 기적 행하는 것이었습니다(고후 12:12). 하나님께서 사도들에게 기적 행하는 능력을 주신 목적은 그들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확증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표적들과 기적들과 능력들, 그리고 성신님(Holy Ghost)의 초자연적 은사들로써 사도들과 함께 증거하셨습니다(히 2:4). 그러나 사도 시대에는 사도들뿐 아니라 집사님들 중에도 기적을 행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스데반 집사가 그 중 한분이었습니다.
9-10절. 스데반은 기적을 행하였을 뿐 아니라, 대적자들과 변론할 때 지혜와 성신님으로 말하였습니다. 리버디노(Libertines), 구레네인(Cyrenians), 알렉산드리아인(Alexandrians), 길리기아(Cilicia)와 아시아(Asia)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할 때에 스데반이 지혜와 성신님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였습니다. ‘리버디노’는 어떤 지역 이름이 아니고 ‘자유인들’이라는 뜻으로 이방 나라에 포로된 종의 신분에서 자유를 얻은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 같습니다.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일을 거스르는 사탄의 방해와 핍박이 항상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신앙 생활은 영적 전쟁입니다. 개인적으로도, 교회적으로도 그러합니다. 스데반을 대적한 자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인들이었으나, 속으로는 진리에 대해 무지하고 이해심이 없고 악하고 편견에 사로잡혀 있고 교만하고 긍휼의 마음이 없고 이성적이지도 않고 공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거짓되고 불의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충동질하고 거짓 증인까지 동원했습니다. 그들이 스데반을 말로 당하지 못하자 온갖 악한 일들을 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1-14절. 그들은 사람들을 가르쳐 “이 사람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고 이간하게 하였고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거짓 증인들을 세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않는도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대적자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였습니다. 11절의 ‘가르쳐’라는 원어(휘포발론 ὑπέβαλον)는 ‘선동하다, 매수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말하게 하였습니다. 또 그들은 백성과 장로들과 서기관들도 충동하였습니다. 악인들은 주님의 종들을 방해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합니다. 또 그들은 스데반을 잡아 공회로 데려갔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거짓 증인들을 세웠고 그들로 하여금 스데반이 거룩한 예루살렘 성전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그치지 않고 나사렛 예수님께서 이곳을 헐고 모세가 전한 규례를 고치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말하게 하였습니다. 그런 유의 거짓 증거는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악한 일이었습니다. 같은 메시지라도 어떤 태도와 관점에서 듣느냐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즘말로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있습니다.
15절. 그러나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 즉 공회원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사람의 얼굴은 대체로 그의 마음을 나타냅니다.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는 말은 그의 얼굴이 선한 천사들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 완전성을 나타내었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그의 얼굴에는 교만과 악독, 음란과 탐욕, 미움과 분노가 없었고 온유와 겸손, 거룩과 사랑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확실히 하나님의 은혜로 성화된 성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과 대면하여 말씀을 받은 모세의 얼굴에도 광채가 나타났습니다. 스데반은 온갖 중상모략과 거짓의 증인들의 공격을 받고도 얼굴이 천사와 같이 빛이 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행 6:8~15의 교훈을 요약하면 첫째로, 우리는 스데반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귀히 쓰이는 그릇이 되기를 바랍니다. 스데반은 일곱 명 중 하나로 선택되었지만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받은 직분 이상의 능력을 행하였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우리도 우리의 직분 이상의 일을 행하는 자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와 성신님이 충만하여 맡은 일 이상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일꾼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됩니다. 그러나 인간 편에서 우리는 교리적으로, 윤리적으로 온전한 자 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스데반을 대적한 자들은 겉으로는 교인들이며 교회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도나 직분자는 외적인 모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내면적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와 사역에 대한 깨달음과 지식과 믿음, 겸손과 진실과 충성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이 없을 때 그는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고 허물어뜨리는 자가 될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항상 고난을 각오하며 살아야 합니다. 개인적 신앙 생활이나 교회 생활은 영적 전쟁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육신의 죄성과 세상과 사탄과 싸웁니다. 사탄은 우리가 평안하게 주님을 따르지 못하도록 많은 고난과 핍박으로 우리를 도전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결국 승리할 것입니다. 모든 일은 합력하여 개인에게나 교회에게나 유익을 이룰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는 스데반의 얼굴에 나타난 것과 같은 천사의 얼굴을 사모합시다. 날마다 우리 속에 있는 죄악성을 십자가에 못박고 보혈의 샘에서 씻음 받으며 성신님의 불로 태움 받읍시다. 교만과 악, 미움과 분노, 음란과 탐욕을 다 씻음 받고 태움 받읍시다. 우리 마음은 거룩과 선, 온유와 겸손과 사랑으로만 가득 채워지게 하자. 온전한 성화를 이룹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종려주일을 맞이하며 내일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이 순간 더욱 경건생활에 올인하여 스데반처럼 천사의 얼굴이 나타나도록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갑시다. 어떤 어려움과 핍박과 박해에서도 천국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과 얼굴은 햇빛처럼 빛날 것입니다. “호산나”하며 영광의 주님을 오늘 내 마음속, 우리 가정, 우리 교회, 이 지구에 왕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오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 제 마음속에도 입성해 주셔서 영원하신 왕으로 다스려 주옵소서. 예수님 모시고 사는 매일 매일이 천국의 삶임을 믿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처럼 말씀을 부지런히 전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는 천국의 메신저로 살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 모든 중직자들이 스데반의 믿음과 생활을 본받게 하옵소서. 이번 한 주간 나 자신을 부인하고 제가 져야할 십자가를 지고 주님만을 성실하게 따르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마태복음 고난주간 설교말씀] 새벽닭 울 때(마 26:6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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