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죽고 내가 살아났습니다. 그렇다면 내 안에 살아계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영생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새 생명을 얻었으니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다(롬 6:1-11)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죄 문제입니다. 죄가 청산되지 않으면 영원한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원죄이고 또 다른 죄는 자 범죄입니다. 이것을 청산하려면 믿음과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원죄가 해결되고 행위의 회개로 자 범죄를 해결합니다. 주님은 이 문제를 청산해 주시려고 육체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육체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주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됩니다. 구원받은 자는 주님과 연합된 자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으면 함께 살지 못합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주님과 함께 무덤에서 부활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주님과 연합하여 평생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절 티 운 에루멘 에피메누멘 테 하마르티아 히나 헤 카리스 플레오나세
롬6: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느냐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냐고 합니다. 우리가 은혜를 더 받으려고 죄에 거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이 자 범죄를 계속해서 지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미 원죄가 사라진 사람입니다. 원죄가 사라졌다는 것은 영원한 심판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런 자가 이 세상에서 자 범죄를 계속해서 지으면 안 됩니다. 율법주의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 죄를 더 짓고 있습니다. 믿음이 아닌 행위를 주장하고 있으니 은혜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더하고 있습니다.
2절 메 게노이토 호이티네스 아페다노멘 테 하마르티아 포스 에티 제소멘 엔 아우테
롬6: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바울은 말합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그럴 수 없다고 합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겠냐는 말입니다. 율법주의자는 이것을 반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행위를 나타내어 죄에 거함으로 하나님의 용서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지 율법의 행위로 구원 얻는 자들에게 죄를 허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자 범죄를 짓는 누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자 범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반복적 회개가 필요합니다.
3절 에 아그노에이테 호티 호소이 에밥티스데멘 에이스 크리스톤 이에순 에이스 톤 다나톤 아우투 에밥티스데멘
롬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 알지 못하냐고 합니다. (세례를 받은: 히브리어는 타발 2881 담그다, 적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담가져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는 주님과 함께 죽었다는 의미입니다. 세례는 내가 받고 싶지 않다고 해서 받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받고 싶다고 해서 받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늘로부터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일방적 은혜로 받게 됩니다.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나 성령세례를 주지 않습니다. 물세례는 교회에 들어와 세례 학습을 하면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세례는 하나님의 철저한 은혜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내가 학습 공부를 했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공부하지 않아도 오는 것이 성령세례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4절 쉬네타페멘 운 아우토 디아 투 밥티스마토스 에이스 톤 다나톤 히나 호스페르 에게르데 크리스토스 에크 네크론 디아 테스 독세스 투 파트로스 후토스 카이 헤메이스 엔 카이노테티 조에스 페리파테소멘
롬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주님과 함께 장사되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나도 또한 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려 함이기 때문입니다. (장사되었나니: 히브리어는 카바르 6912 매장하다) 나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주님과 함께 무덤에 묻혀 장사되었습니다. 이렇게 장사된 것도 나의 의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습니다.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인간의 의지로 주님과 함께 무덤에 장사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주님과 함께 묻히지 않으면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주님과 함께 죽지 않으면 나는 새 생명을 소망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잘 살아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새 생명: 히브리어는 하다쉬 2319 새롭게 하다, 새로 만들다) 주님과 함께 무덤에 들어가 연합되어 부활됨으로 새 생명을 얻게 됩니다. 하다쉬는 완전히 새롭게 탄생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히브리어 문법은 강조수동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나의 힘과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 하에 완전한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내가 변화되기 싫어도 변화될 수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이것이 완전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새 사람으로 바뀌기 싫어도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로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어 완전히 새로운 부활의 삶을 살게 해 줍니다.
5절 에이 가르 쉼퓌토이 게고나멘 토 호모이오마티 투 다나투 아우투 알라 카이 테스 아나스타세오스 에소메다
롬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내가 완전히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은 자가 되면 주님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됩니다. 어떤 이는 주님의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지 않은 자가 있습니다. 이런 자는 교회는 나오지만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자입니다. 아직 설 죽은 자입니다. 주님의 죽음과 완전하게 연합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런 자는 주님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완전하게 연합되지 못합니다. 주님과 같은 부활의 모습으로 연합된 자는 영화의 몸을 가진 자입니다. 속사람이 완전히 부활되어 주님의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모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만이 가능합니다.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자는 절대 주님과 부활의 모습으로 연합할 수 없습니다.
6절 투토 기노스콘테스 호티 호 팔라이오스 헤몬 안드로포스 쉬네스타우로데 히나 카타르게데 토 소마 테스 하마르티아스 투 메케티 둘류에인 헤마스 테 하마르티아
롬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바울은 우리가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옛사람은 율법의 행위 아래에 있던 시절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는 아직도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히지 못한 상태입니다. (죄의 몸이 죽어: 히브리어는 아바드 6 멸망하다, 죽다, 소멸하다) 죄의 몸이 죽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멸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말합니다. 어떤 이는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 아니라고 말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구원이 취소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옛사람이 완전히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으면 원죄가 더 이상 나에게 역사하지 못합니다. 완전히 소멸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나의 원죄를 완전하게 소멸시켜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죄의 종노릇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새 생명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7절 호 가르 아포다논 데디카이오타이 아포 테스 하마르티아스
롬6: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우리의 옛사람이 죽어 원죄에서 벗어나 의롭다라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의롭다고 칭해주셨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히브리어는 나카 5352 비우다, 깨끗하다, 무죄로 하다)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죽고 원죄에서 벗어나 나는 완전히 죄가 없는 무죄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런 상태가 구원받은 상태입니다. 내가 의롭게 되려고 열심히 노력해도 되지 않습니다. 수동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의지로 의롭게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열심히 노력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노력이 헛수고라고 말합니다. 내가 의롭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음으로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더하여 주시고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거룩한 상태로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하게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다시 원죄 상태로 돌아가 구원이 취소되지 않습니다.
8절 에이 데 아페다노멘 쉰 크리스토 피스튜오멘 호티 카이 쉬제소멘 아우토
롬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으니 이제는 주님과 함께 부활하여 살 줄을 믿게 됩니다. (믿노니: 히브리어는 아만 539 확실하게 하다, 믿다) 내가 주님과 함께 죽었으니 주님과 함께 부활하여 살 것도 믿게 됩니다. 이 믿음은 내가 믿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입니다. 사역능동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은 소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이끄시는 믿음이기 때문에 소멸하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을 믿게 됩니다.
9절 에이도테스 호티 크리스토스 에게르데이스 에크 네크론 우케티 아포드네스케이 다나토스 아우투 우케티 퀴리유에이
롬6: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첫 열매로 살아나셨습니다. 주님은 다시 죽지 않습니다. 사망이 다시 주님을 주장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주님의 부활도 믿지 못하는데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주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시고 죽음이 주님을 엄습하지 못합니다. 우리도 주님과 함께 죽었기 때문에 죽음이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주님과 함께 새 생명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겉 사람은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신 몸입니다. 이 몸을 통해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게 됩니다. 구원받고 나면 나의 속사람이 영원히 주님과 연합하여 살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이 영화의 몸으로 부활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죽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10절 호 가르 아페다넨 테 하마르티아 아페다넨 에파팍스 호 데 제 제 토 데오
롬6: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주님은 십자가에서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었습니다. 나의 원죄와 자 범죄를 위하여 단번에 죽었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여 살아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계십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되셨습니다. 우리의 부활도 주님과 하나님께 영광을 위하여 부활됩니다.
11절 후토스 카이 휘메이스 로기제스데 헤아투스 네크루스 멘 에이나이 테 하마르티아 존타스 데 토 데오 엔 크리스토 이에수 토 퀴리오 헤몬
롬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기라고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를 통하여 구원을 얻었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활되었습니다.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 구원이 취소되지 않습니다. 나의 행실이 하나님 앞에서 자 범죄를 짓는다고 해도 이것으로 구원이 취소되지는 않습니다. 단지 징계만 있을 뿐입니다. 원죄가 해결된 사람은 이제부터 주님의 몸이기 때문에 주님과 항상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시켜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고 주관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주님과 함께 평생 동행하시고 주님과 함께 새 생명의 삶을 누리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성막 히브리어 원어성경 설교문] 성막의 물두멍(출 30: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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