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잠언 9장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생명을 주는 지혜로의 초청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잠언 기자는 미련한 자가 되지 말고 지혜로운 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십자가 복음을 들음으로 미련한 자가 아니라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미련한 자는 하나님이 없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대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도 복음으로 초청하시는 하나님을 따라서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생명을 주는 지혜로의 초청(잠 9:1-6)
1절 호크모트 보느타 베이타흐 호츠바 암무데이하 쉬브아
잠 9:1 지혜가 그의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
=====9:1
내용상 8장의 후반부와 직접 연관되는 부분으로 지혜의 집 문에서 간절한 애정으로 지혜의 초청을 기다린 자는 물론이고(8:34) 지혜 없는 어리석은 자까지 잔치에 초청하는 내용이 6절까지 기술된다(마 22:1-14; 요 7:37,38).
지혜가 그 집을 짓고 - 여기서 '지혜'(호크모트)는 원어상 복수 형태로 쓰여졌는데, 이는 지혜의 종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8장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모든 신적 속성을 함축하고 있는 지혜의 완전성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로 쓰인 것이다(1:20,22; 14:1; 24:7).
또한 '집을 짓고'(보느타 베타)는 여기서 완료형으로 쓰였는 바(house, NIV, RSV), 이는 지혜가 초청한 자들을 위한 모든 준비를 이미 완료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한편 이러한 '지혜의 집'은 영적으로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 자신의 몸과(요 2:19) 그의 몸 된 교회를(벧전 2:5)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으며 이것으로 유추해 볼 때 본절은 모든 인간을 천국 복음으로 초청하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예시하고 있다 하겠다.
일곱 기둥을 다듬고 - 이는 고대 근동에 있어서 특별한 종교 제전이나 축제의 용도로 쓰여진 장대한 건축물의 기둥들을 암시하며 그것은 현관과 첫 번째 홀 사이의 행랑을 지탱하는 역할을 담당했다(Deitzsch, Hitzig, Toy). 한편 '일곱'이란 숫자는 성경에 있어서 완전수로 나타내며, 또한 이 기둥들이 상반절의 '지혜의 집'에 속한 부속물이란 점에서 본 문구는 '지혜의 집'의 완전성을 암시해 주는 한편 영적 의미에서 지혜의 일곱 가지 신적 속성과(약 3:17) 계시록에 나타난 일곱 교회(계 1:4이하)를 예시하고 있다(Bernard, Delitzsch, Vitringa, Zockier). 한편 LB는 두 문장으로 이루어진 본절을 '일곱 기둥으로 떠받쳐진 궁전'(...a palace supported on seven pillars)이란 하나의 문장으로 번역했다.
2절 토브하 티베하흐 모스카 예나흐 아프 아르카 슐하나흐
잠 9:2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여 상을 갖추고
=====9:2
짐승을 잡으며(토브하 티베하) - 혹자는 이를 '희생 제사'에 비유하기도 하나 원어상 그러한 종교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는 단순히 잔치를 위한 식용의 용도를 가리키는 것이다(마 22:4).
포도주를 혼합하여 - 여기서 '혼합하여'(모스카)는 원어상 '(향료 따위를) 섞다'란 뜻인 바, 이는 흥겨운 기분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포도주에 몰약을 섞어 그 도수를 높인 것을 의미한다(23:30; 사 5:22). 그러나 델리취(Delitzsch)는 원액 그대로의 포도주는 극히 독하기 때문에 이를 입에 맞도록 더운물이나 찬 물에 섞어 마신 당시의 관례를 따라 본 문구를 해석하기도 한다.
한편 본절에 나타난 고기와 포도주는 모두 내적, 외적 삶의 유익한 지침들이 되는 지혜의 속성들을 상징하며 더 나아가서는 지혜 그 자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적 양식과 음료가 되신다는 사실을 예시하고 있다(눅 22:19, 20).
3절 샬르하 나아로테이하 티크라 알 가페 메로메 카레트
잠 9:3 자기의 여종을 보내어 성중 높은 곳에서 불러 이르기를
=====9:3
그 여종을 보내어 - 히브리어 '에베드'는 구약 성경에서 종종 '노예'로 번역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완전하게 속박된 노예의 신분이 아니라 어느 정도 자유권과 생활권을 보장받은 자들로 주인으로부터 많은 권한을 위임 받은 '종'으로 이해하는 것이 낫겠다(27:27; 31:15; 창 24:14; 룻 2:5; 에 2:2, Toy).
한편 이는 위 주석들의 영적 의미로 미루어 볼 때 신약에서 천국 복음의 초청자로 위임받은 '주의종'(마 22:3;눅 14:17)들에 비유될 수 있다. 한편 70인 역은 이를 '그녀의 종들'로 번역했다.
불러 이르기를 - 개역 성경의 번역은 상반절과 연관하여 지금 말하는 자가 지혜의 여종인 듯이 묘사되어 있으나 원전과 각 영역본들은 이 두 가지 상황, 즉 '여종을 보내는 것'과 '자신이 직접 외치는 것'으로 구분하여 다룸으로써 지금 말하는 자를 지혜 자신으로 나타낸다(She has sent..., and she calls..., NIV).
4절 미 페티 야수르 헨나 하사르 레브 아므라 로
잠 9:4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9:4
잔치 준비를 완료한 지혜의 초청 내용이 기술된다.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 여기서 '어리석은 자'(페티)는 생각이 단순해서 외부의 유혹에 쉽게 속아 넘어가는 자를 가리키는 바, 필연적인 심판의 대상으로만 언급하던 '악한 자'(8절; 6:17-19; 8:13)와는 달리, 본절에서 이 어리석은 자를 초청하는 것은 그들의 어리석음이 의도적이고 완악한 죄적 성향에서 기인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경험이 없고 확고한 분별력이 없는 인격적인 미숙함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길로 돌아올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5절 레쿠 라하무 벨라하미 우쉐투 베야인 마사케티
잠 9:5 너는 와서 내 식물을 먹으며 내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고
=====9:5
내 식물을...마시고 - 여기서 '식물'(라히미)은 문자적으로 '빵'이란 뜻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 용어는 모든 음식물에 대한 일반적인 명칭으로 자주 등장한다. 한편 이러한 지혜의 초청은 그리스도의 초청 메시지(요 6:35,50, 51, 53-58)와 유사하다(Bertheau). 특히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본절을 신약의 성만찬 의례(마 26:26-28)를 직접 예시한 것으로 보았다.
6절 이제부 페타임 비헤이우 베이쉐루 베데레크 비나
잠 9:6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 하느니라
=====9:6
어리석음을 버리고 - 혹자는 '어리석음'(페타임)을 '어리석은 자들'(the foolish, KJV)로 해석하여 본 문구를 '어리석은 자들을 떠나라'로 읽는다(Hitzig, Umbreit, Zockler). 그러나 대부분의 주석가들과 역본들은 이를 추상 명사로 보고 권고의 대상인 어리석은 자로 하여금 이제까지 지니고 있던 바로 그 어리석음 자체를 버리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명철의 길을 행하라 - 여기서 '명철의 길'은 곧 지혜의 교훈을 통해 지시된 길을 가리키는 바(2:9), 본절을 통해 저자는 어리석은 자로 하여금 그 어리석음을 떠나는 소극적인 측면과 함께 지혜의 교훈에 순종하며 사는 적극적인 측면까지를 포괄하여 권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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