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계시록 2장 헬라어 강해 중에서 첫사랑을 잃은 에베소 교회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주님은 지상의 일곱 교회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교회의 상태에 따라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일곱 교회는 성도들의 믿음 생활에 대해서 점검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교회의 상태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첫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라고 책망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열정으로 신앙생활을 했지만 외부의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서 주님을 버리고 돌아서는 교회입니다. 우리도 돌밭에 떨어진 씨처럼 믿음 생활하면 안 됩니다. 흙이 얕기 때문에 뿌리를 깊이 있게 내리지 못합니다. 조금 신앙생활하다가 세상의 문제가 생기면 주님을 버리고 신앙을 버리고 교회를 떠나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옥토 밭에 뿌려진 씨가 되어야 합니다. 뿌리를 깊이 있게 내려서 100배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첫사랑을 잃은 에베소 교회(계 2:1-7)
1절 토 앙겔로 테스 에페시네스 에클레시아스 그랍손 타테 레게이 호 크라톤 투스 헤프타 아스테라스 엔 테 덱시아 아우투 호 페리파톤 엔 메소 톤 헤프타 귀크니온 톤 크뤼손
계 2: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에베소'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1) 상업상으로는 매우 중요한 교역의 중심지로서 소아시아에서 제일 부유한 도시이며 유프라테스에서 라오디게아를 경유하여 에베소까지 이르면서 동방의 산물이 종착하는 곳이었다. (2) 종교적으로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데미(Artemis) 여신상이 있어서 미신이 성행하였으며 황제 숭배가 행해지던 부도덕한 곳이었다. (3) 정치적으로는 로마로부터 자치권을 인정받아 '스트라테고이'(Strategoi)라는 독자적 행정관이 있었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통치 기관으로서 '불레'(Boule)라는 민회관과 순회 재판소가 있었다.
따라서 명목상 '버가모'가 소아시아의 수도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에베소가 소아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Mounce, Kraft, Kiddle). 이러한 에베소에 기독교 신앙이 전파된 것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며 또한 바울이 이 에베소 지역에 2년 간 머무르며 목회하였고 후에 디모데가 바울의 열심을 본받아 목회 활동을 함으로 예루살렘과 안디옥에 이어 기독교 선교의 중심지가 되었다(행 19장; 딤전 1:3, Ironside). 한편 '사자'는 그리스도에 의해 책임을 갖고 교회를 수호하는 하늘의 천사들을 가리킨다.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 본문은 에베소 교회에 계시된 그리스도의 모습에 대한 묘사이다.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에서 '붙잡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라톤'은 단순히 '잡는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요동할 수 없도록 확실하게 움켜쥐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호하시고 통치하시며 지배하고 계심을 시사한다(1:13,16,20). 한편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 역시 그리스도께서 교회들을 사랑하고, 능력 가운데 교회에 임재하고 계심을 암시한다(Mounce, Johnson, Clarke).
2절 오이다 타 에르가 수 카이 톤 코폰 수 카이 텐 휘포모넨 수 카이 호티 우 뒤네 바스타사이 카쿠스 카이 에페이라소 투스 파스콘타스 에이나이 아포스톨루스 카이 우크 에이신 카이 휴레스 아우투스 프슈데이스
계 2: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2: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 '행위'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르가'는 포괄적인 의미로 전체적인 삶의 모습을 말하며(요 3:19,20; 5:36; 요일 3:8), '수고'의 헬라어 '코폰'은 단순한 노력의 차원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노동을 동반할 최선의 삶을 가리키고(롬 16:12; 고전 15:10), '인내'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포모넨'은 '아래'를 의미하는 '휘포'와 '머물다'를 의미하는 '메노'의 합성어로 어떤 어려움도 개의치 않고 적극적으로 극복해 나가는 확보 부동함을 나타낸다(약 1:3, Lenski, Morris).
이러한 '행위'와 '수고'와 '인내'의 항목에 대해 혹자는 살전 1장과 연결시켜 '믿음의 행위',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로 해석하여 각각 독립적인 덕목이라고 주장하며(Rist), 혹자는 '수고'와 '인내'를 '행위'의 내용으로 해석한다(Mounce, Johnson, Charles, Moffatt, Plummer). 두 가지 견해 중 헬라어 구문상 후자가 더 타당하다. 한편 '알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이다'는 단순히 경험적으로 아는 것을 나타내는 '기노스코'('알다')와는 달리 직관적으로 아는 생득적(生得的) 지식을 가리킨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가 행하는 수고와 인내를 모두 알고 계심을 나타내므로 그리스도의 전능성을 시사한다(9,13절; 3:1,8,15, Sweete).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 본문은 에베소 교회가 가졌던 고상한 영적 분별력을 말한다. 여기서 '악한 자들'(카쿠스)은 관사 없는 복수 명사로 문자적으로 '악한 것들'을 뜻한다. 이 말이 정확하게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으나 대체적으로 에베소에 있던 거짓 사도 혹은 거짓 교사들을 가리키는 듯하다(Mounce, Johnson, Ladd, Greijdanus).
이들은 자칭 사도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인가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주의자들로 본다(고후 11:13-23, Spitta).
(2) 혹자는 바울의 제자들로 간주한다(Holtzmann). (3) 혹자는 '니골라당'으로 본다(Bousset, Charles), 이 중 세 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6절에 에베소 교회가 미워하던 거짓된 자들인 니골라당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행 20:28-30; 고후 11:13; 갈 1:8,9).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은 예수를 부인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주장하는 교리나 확신을 통해서 이익을 추구하였다(고후 11:13,15; 12:11). 교회는 자칭 사도라 하는 이러한 거짓된 자들의 거짓을 구별할 필요성이 있었고, 에베소 교회는 훌륭한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의 열매'를 통해(마 7:20) 거짓을 분별하고 모든 사람들이 알도록 그들의 거짓을 드러냈다(고전 14:29; 살전 5:21; 요일 4:1; Johnson, Mounce).
3절 카이 에바스타사스 카이 휘포모넨 에케이스 카이 디아 토 오노마 무 케코피아카스 카이 우 케크메카스
계 2: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2: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 본절은 앞절에 나타난 사실을 반복하여 더욱 강조함과 동시에 에베소 교회의 신앙의 정절을 나타낸다. 당시 교회는 황제 숭배 강요 때문에 심한 박해 가운데 있었고,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이단들의 내적 도전들이 많았으나 에베소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잡고 복음에 확고히 서서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들의 신앙을 굳게 지켰다.
4절 알르 에코 카타 수 호티 텐 아가펜 수 텐 프로텐 아페카스
계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 본절은 에베소 교회에 대한 책망을 나타낸다. '처음 사랑'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에베소 교인들이 가졌던 기독교적인 사랑 즉 형제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행 20:35; 엡 1:15, Vincent, Plummer, Charles, Moffatt, Rist, Kiddle). (2) 혹자는 처음 그리스도를 영접하면서 가졌던 그리스도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Scott). 에베소 교인들은 자신들의 교회에 있던 거짓 사도들을 분별하느라고 형제를 의심하고 엄격하게 구별함으로 형제에 대한 사랑이 식어졌다(Barclay, Mounce, Ladd).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형제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막 12:29 ff., Beasley-Murray, Johnson).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은 형제 사랑을 동반하기 때문에 진정한 기독교적 사랑은 어느 하나라도 무시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한편 '버렸느니라'에 해당하는 '아페카스'는 부정 과거로 단회적 행동을 나타내어 에베소 교인들이 그들이 가졌던 처음 사랑과 완전히 단절되었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본문은 에베소 교회가 교리적(敎理的)으로 칭찬할 사실이 있다 할지라도 생명 없는 형식주의로 전락하여 사랑을 상실했음을 단호하게 책망하고 있다(Alford, Johnson).
5절 므네모뉴에 운 포덴 에크페프토카스 카이 메타노에손 카이 타 프로타 에르가 포이에손 에이 데 메 엘코마이 소이 타케이 카이 키네소 텐 뤼크니안 수 에크 투 포푸 아우테스 에안 메 메타노에세스
계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2:5
본문은 에베소 교회의 책망을 돌이킬 수 있는 방법 세 가지를 명령어를 사용하여 제시한다. 이러한 세 가지 명령은 에베소 교인들을 보호하시려는 그리스도의 단호한 명령이며 권고이다.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 이것은 죄의 원인을 깊이 생각하되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생각하라는 명령이다. 여기서 '생각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므네모뉴에'는 현재 능동태 명령형으로 '계속하여 생각하고 회상하라'는 의미이다.(눅 15:17-22). 에베소 교인들은 잃어버린 처음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그것을 어디에서 무엇으로 인해서 상실하게 되었는가를 상고해야만 한다.
회개하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타노에손'은 부정 과거 명령형으로 단번에 결정적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이다(마 3:2; 눅 15:20).
처음 행위를 가지라. - 에베소 교인들은 특별히 회개하여 돌아가되 무분별한 사랑이 아닌 그들이 가졌던 처음의 사랑으로 돌아가야 한다(Kiddle, Moffatt). 여기서 '가지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이에손'은 '행하다'는 의미를 가진 '포이에오'의 부정 과거 능동태 명령형으로 '지금 즉시 행하라'는 말이다(마 3:8, Robertson, Johnson, Mounce). 에베소 교인들은 지금 즉시 처음에 그리스도에 대해 가졌던 사랑으로 형제들에게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 본문은 그리스도의 권면을 외면했을 때 초래할 결과에 대한 진술이다. '내가 네게 임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르코마이 소이'는 미래적인 현재 능동태로 예언적인 사실의 확실성을 나타낸다(22:20; 요 14:13; 요일 2: 18).
그러기에 혹자가 주장하는 대로 '그리스도의 재림'때의 사건으로 해석하는 것보다는(Clarke), 오히려 회개치 않을 경우 맞게 될 현재적 심판을 선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Morris, Charles, Alford, Plummer). 한편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에베소 교회가 다른 곳으로 옮겨지게 될 것이라고 해석한다(Ramsay). (2) 혹자는 당장 있게 될 지금의 심판을 말하는 것으로 에베소에서 교회가 없어지고 그 도시 전체가 황폐화할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요 15:6; 엡1:22, Mounce, Greijdanus, Charles). 두 가지 해석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문맥상 현재에 임할 그리스도의 심판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6절 알라 투토 에케이스 호티 미세이스 타 에르가 톤 미콜라이톤 하 카고 미소
계 2: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2: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 '니골라당'에 관해서는 본서 이외에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이것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차원에서 이해된다. (1) 역사적으로 이는 사도행전에 언급된(행 6:5)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인 니골라가 타락하여 만든 이단이라고 추측한다(Irenaeus, Tertullian, Alford). (2) 언어적으로 '니골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니콜라이톤'은 '백성'을 뜻하는 '라오스'와 '없애다' 혹은 '정복하다'를 의미하는 '니카오'의 합성어로 구약성경에 기록된(민 22:12) '발람'('백성을 이긴')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발람의 행위와 동일시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파괴하는 거짓 무리들로 추측한다(Bousset,Cha-rles, Trench, Ewald).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는 바와 같이 니골라당은 발람의 교훈을 따른 자들로 이해된다(14,15절).
7절 호 에콘 우스 아쿠사토 티 토 프뉴마 레게이 타이스 에클레시아이스 토 니콘티 도소 아우토 파게인 에크 투 크쉴루 테스 조에스 호 에스틴 엔 메소 투 파라데이수 투 데우
계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본문은 예수께서 지상 사역 중 반복해서 내리신 명령이며(마 11:15; 13:9,43; 막 4:9,23; 눅 8:8; 14:35), 본서에서 일곱 교회를 향한 서신의 결론적 어구로 반복된다(11,17,29절; 3:6,13,22), '귀 있는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에콘 우스'는 개교회 전체에 속한 청중들 모두를 가리키는 것으로(11,17,29절; 3:6,13,22) 여기서 '귀'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통역하시는(Swete) 그리스도의 영이요(Beckwith) 예언의 영인(Kiddle) 성령의 권면을 들을 수 있는 귀를 나타낸다.
한편 '교회들에게'(타이스 에클레시아이스)는 복수로 각 교회들에게 보내진 서신 맨 끝에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문구이다. 이는 이 편지들이 특정한 한 지역 교회에 보내진 것이 아니라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보편적인 교회를 향해 보내진 것임을 시사한다(Le-nski, Hughes).
이기는 그에게는. - 본문은 그리스도의 권면대로 행하여 승리한 자들에게 주어진 약속이다. '이기는 그에게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 니콘티'는 관사가 있는 현재 능동태 분사로 계속해서 이기는 자를 가리키며 본서와 복음서에서 여러 번 반복되는 문구이다(17,26절; 3:5,12,21; 5:5; 12:11; 15:2; 17:14; 요 16:33; 요일 2:13). 또한 이 말은 군사적인 용어로 그리스도와 사단의 타협 없는 대결상을 잘 묘사한다. 즉 사단과 대결하여 끝까지 그리스도에게 충성한 자를 나타낸다(Mounce).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 '낙원'의 헬라어 '토 파라데이소'는 페르시아에서 유래된 말로 일차적으로는 인류 최초의 거주지였던 에덴동산을 암시하며(창 2:8-10) 궁극적으로는 구원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될 하나님 나라 자체를 의미한다(22:1-4,14; 눅 23:43, Morris, Robertson, Johnson).
한편 '생명나무의 과실'은 죽음과 고난이 존재하지 않는(22:2) 영생(永生)을 상징한다(Johnson, Mounce, Ladd, Beasley-Murray). 그리스도의 권면대로 회개하여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에베소 교인들은 첫 창조 때에 에덴동산이라 했으며 종말론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할 예루살렘 즉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게 되며,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접근조차 할 수 없었던 생명나무 즉 영생을 영원히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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