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3장에서 솔로몬은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리고 지혜를 구하게 된다. 하나님이 원하는 지혜를 구했더니 하나님은 솔로몬 왕이 구하지 않은 부귀영화도 함께 주었다. 성도가 구할 것이 무엇인가? 부귀영화가 아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잘 믿고 구원받는 것이다. 영혼이 구원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영혼이 구원받지 못하고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려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때가 되매 인간은 죽게 마련이다. 죽어서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데 영원한 심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야 한다. 오늘도 예수님 안에서 승리하는 하루가 되자.
지혜를 구한 솔로몬(왕상 3:5-15)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찾아오신 은혜로운 방문의 기록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방문 중에 그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사건은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재물과 권력이 솔로몬에게 준 것보다 더 큰 영광을 솔로몬에게 주었다.
Ⅰ. 이 방문의 주위 사정(5절).
1. 장소. 그곳은 기브온이었다. 즉 그 곳에 있는 대산당이었는데, 그 산당이 유일한 산당이었을 것이다. 거기에는 회막과 놋 제단이 있었기 때문이다(대하 1:3). 거기서 솔로몬은 중대한 자기의 제사를 드렸다. 하나님은 다른 어떤 곳보다도 거기서 드린 그의 제사를 인정해 주셨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 법칙에 더 가까이 가면 갈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의 표징을 더욱 크게 기대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은 자기의 이름을 기록하신 곳에서, 우리를 찾아오시고 축복하신다.
2. 시간. 때는 밤, 솔로몬이 풍성한 제사를 드린 후의 밤이었다(4절). 정적과 고독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도와준다.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방문은 종종 밤에 나타났다(시 12:3).
3. 방법. 솔로몬이 깊이 잠들어 의식이 닫힌 꿈에서였다. 꿈에서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다가서기가 자유롭고 보다 직접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은 선지자들과 이야기하시곤 했으며(민 12:6), 사람들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람들 귀에 속삭이곤 하신다(욥 33:15, 16). 이러한 신성한 꿈은 말할 것도 없이 여러 가지 헛된 것을 꾸는 꿈과는 분명히 다르다(전 5:7).
Ⅱ. 솔로몬이 선택하는 것은 무엇이든 주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제의(5절). 그는 하나님의 영광이 자기에게 비추인 것을 보았고,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이는 하나님이 그가 드린 제사로 인해 부채를 졌기 때문이 아니라, 이렇게 함으로써 그 제물을 받으셨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비록 솔로몬 자신이 부족함이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얼마나 큰 자비를 쌓아 두셨는가를 나타내고자 함이었다.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마음 자세를 시험해 보시고, 믿음의 기도에 영광을 부여하시고 싶었던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롭게 나타나셔서, 우리가 구하는 것은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심으로써, 이미 닦아져 있는 행복의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요 16:23; 요일 5:14). 우리가 더 무엇을 구하리요?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다.”
Ⅲ. 솔로몬이 여기서 하나님께 구한 경건한 요구. 그는 이러한 제의를 즉각적으로 했다. 우리가 왜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사 7:12)라고 말한 아하스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제의를 무시하겠는가? 솔로몬은 자면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도와주실 것을 기도했다. 그러나 실로 그것은 살아 있는 기도였다. 우리가 가장 간절하게 염려하고 있는 것, 우리가 깨어 있을 때 우리에게 가장 큰 인상을 주는 것은, 우리가 잠들고 있을 때에도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는 법이다. 그리고 때로는 꿈에 의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의 맥박이 어떻게 뛰는지를 알 수 있다. 플루타크(Plutarch)는 말하기를, 유덕한 꿈은 유덕하게 자라나고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그러나 솔로몬의 꿈은 더 높은 차원에 근원을 두고 있다. 솔로몬이 자면서도 이와 같이 지혜로운 선택을 했다는 사실과 또 이성(理性)의 힘이 거의 작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것이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나온 꿈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바로 솔로몬 속에서 이 은혜로운 욕망을 일으키고 있었다. 만일 “밤마다 심장이 교훈한다면”, 솔로몬은 “자기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하였음”이 틀림없다(시 16:7).
그러면 이제 그의 기도를 살펴보기로 하자.
1. 솔로몬은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자기 부친 다윗에게 나타났던 일을 시인했다(6절). 그는 “부친 다윗이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행하였다”고 하여, 부친의 경건성을 높이 평가함으로써 자기의 허물에 베일을 치고 있다. 자기들의 경건한 부모를 예찬하는 사람들은 역시 부모를 본받게 되리라고 바랄 수 있다.
그러나 솔로몬은 자기 부친에게 나타났던 하나님의 자비를 더욱 영예롭게 말했다. 즉 하나님이 생존시의 다윗에게 보여 준 자비, 즉 그를 진실하고 경건하게 하시고는 그의 진실성에 보상하셨던 자비, 그리고 다윗이 죽은 후에라도 그의 집안에 계속 은혜 베푸사, “그의 보좌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심”으로써 보여주신 커다란 인자하심을 높이 찬양했다. 자녀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의 부모에게 주신 자비,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사 55:3)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를 우리보다 앞서 간 사람들을 통해 물려받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자비는 더욱더 은혜롭게 된다. 상속이 영속되도록 하는 방법은 그 상속이 이와 같이 보존되게 되었음을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이다.
2. 그는 자기가 소명 받은 그 위대한 위탁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 자기 자신의 무능함을 고백했다(7, 8절). 여기서 지혜의 간청을 더욱 뒷받침해 주는 두 가지 근거를 보자.
(1) 그는 다윗의 후계자이므로, 그의 지휘 자체가 지혜를 요구했다(“나로 하여금 지혜롭고 의로운 다윗을 대신하여 왕을 삼으셨나이다. 주여, 나로 그가 행한 것을 지킬 수 있도록, 그리고 그가 시작한 것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옵소서”). 그리고 이제 또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주여, 나에게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저들은 수효가 많아서상당한 주의를 하지 않고는 다스릴 수 없사오며, 저들은 주께서 택하신 백성이므로 주를 위하여 잘 다스려야 하겠나이다. 저들을 지혜롭게 다스리면, 그만큼 더 주께 영광이 되겠나이다.”
(2) 그에게는 지혜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의 부족함을 통렬하게 의식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이렇게 탄원했다. “여호와여, 나는 작은 아이에 불과합니다(그의 부친은 그를 지혜로운 사람이라 하였으나[2:9], 그는 자기를 총명이 부족한 어린아이라고 불렀다). 나는 언제가 나의 출입할 때인지를 알지 못하고, 나라 살림의 통상업무조차 할 줄 모를 뿐만 아니라, 위급한 일이 닥치면 어쩔 줄 모르는 어린아이입니다”라고 했다. 공무를 수행하는 자들은 자기 자신의 일의 중량과 중요성, 심지어는 자기들의 무능함을 깨달을 줄 알아야 그런 다음에야 하나님의 교훈을 받아들일 자격을 갖추게 된다는 점을 기억하자.
바울의 질문(“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고후 2:16 후반)은 솔로몬이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까?”(9절) 하는 질문과 같다.
압살롬은 어리석으면서도 자기가 재판관이 되기를 바랐던 데 반해, 솔로몬은 지혜로우면서 자기가 이 일에 합당한가 여부를 놓고 두려워 떨며 자기를 의심했다. 사람이 아는 것이 많아 신중해지면 질수록 자기의 약점을 더 많이 알고, 자기 자신을 더욱 경계하게 된다.
3. 그는 하나님께 지혜를 주십사고 간청했다. “지혜로운 마음을 주의 종에게 주시옵소서”(9절). 그는 자기를 “하나님의 종”이라 칭하고, 하나님과의 그런 관계(시 116:16)를기뻐하면서, 그 사실을 근거로 탄원했다. “나는 주를 위하여 헌신하고 주를 위하여 쓰인 몸이오니, 주의 일을 수행함에 필요한 것을 주시옵소서.”
그의 의로운 부친도 시편 119편 125절에서 이렇게 기도했다. 즉 “나는 주의 종이오니, 내게 총명을 주옵소서.” 총명한 마음은 하나님의 은사다(잠 2:6). 우리는 그것을 달라고 기도해야 하며(약 1:5), 그 총명을 우리의 구체적인 직업 속에서 또 총명을 필요로 하는 많은 경우에 적용시킬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한다. 이와 같이 솔로몬도 자기 호기심을 기쁘게 하거나, 이웃 사람들을 신기하게 만드는 그러한 지혜가 아니라, “주의 백성을 재판할 총명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우리가 우리의 의무를 수행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총명이 가장 큰 지식이다. 그러한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선함과 악함, 의와 불의, 죄악과 의무, 그리고 진리와 거짓을 분간케 하는 지식이므로, 타인의 행동과 나 자신의 행동을 심판하는 데 거짓된 색안경을 쓰지 않게 하는 것이다.
4. 그의 간청에 대해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기도였다. “그 말이 주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마음에 맞았다)(10절). 하나님은 자기 백성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역사, 곧 자기가 불 붙인 욕망, 그의 성령이 드리는 기도를 기뻐하신다. 이것을 선택함으로써, 솔로몬은 자기가 위대하게 되는 것보다는 선하게 되기를, 자기의 출세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기를 원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인 셈이다. 육적인 것보다 영적인 축복을 더 바라고, 자기의 영예보다 자기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기를 기뻐하는 자를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의 기도는 이기는(응답받는) 기도였다. 또 그가 구한 것 이상의 응답을 받았다.
(1) 하나님은 그에게 지혜를 주셨다(12절). 하나님은 그를 부르신 그 위대한 일에 합당하도록 그를 채워 주셨고, 그가 재판할 때 의거해야 할 율법에 대한 바른 이해력(총명)과 그가 판정해야 할 소송 사건을 바로 보는 총명을 주셨다. 그래서 솔로몬은 명석한 두뇌, 굳은 판단력, 예민한 통찰력에서 따를 자가 없게 되었다. 일찍이 왕으로서 그러한 통찰력과 선견지명의 복을 받은 자는 없었다.
(2)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그가 구하지 않은 것을 덤으로 주었다. 즉 부와 영광을 주셨다(13절). 그리고 지혜에서는 물론이요 이러한 모든 점에 있어서도 그의 선왕들이나 그의 후계자들, 또는 이웃 사람들보다 훨씬 능가하게 되리라는 것을 약속해 주셨다. 이러한 부귀와 영화도 모두 하나님의 은사다. 이것들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자들에게 약속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들에게 한해서 그것은 좋은 것이다(마 6:33).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은 어떤 선택의 경우든 황금보다도 은혜를 택할 줄을 알라. 그 까닭은, “경건에는 금생의 약속이 있으나”(딤전 4:8 참조), “금생에는 경건의 약속”이 없기 때문이다.
지혜와 재물을 동시에 누리는 솔로몬이야말로 얼마나 완벽한 축복을 받고 있는가! 지혜와 은혜 없이 재물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는 그것 때문에 해를 끼칠 위험이 있고, 재물과 권력이 없이 지혜와 은혜만 소유한 자는 그 양자를 모두 겸비하고 있는 자처럼 선한 일을 할 능력을 지니지 못하게 된다. 지혜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재물이 동반되면 그만큼 더 좋은 것이다(전 7:11). 그러나 만일 우리가 지혜와 은혜를 확신하면, 그것들이 외적인 번영을 함께 가져오든가 그 외적인 번영이 없음도 달게 받게 해 줄 것이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부와 영광은 절대적으로 약속하셨으나, 장수만은 조건부로 약속하였다. “네가 만일 다윗의 행함과 같이 내 길로 행하면, 내가 네 날을 길게 해 주리라”(14절). 그는 이러한 조건을 이행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비록 부와 명예는 소유했으나, 그가 마땅히 누릴 천수를 다하지 못했다. 장수는 지혜의 우편에 있는 축복이요, 영생의 한 모형이다. 그러나 부귀가 있는 곳은 지혜의 좌편이다(잠 3:16). 여기서 알아볼 것이 있다.
① 영적 축복을 얻는 길은 솔로몬이 “꼭 필요한 것 하나”로서 지혜를 구한 것처럼, 그것을 강청하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과 씨름하는 것이다.
② 현세적인 복을 얻는 길은 거기에 냉담하면서 하나님께 맡겨 두는 것이다. 솔로몬이 지혜를 얻은 것은 그가 그것을 진실로 구했기 때문이며, 부를 얻은 것은 그가 부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5.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기쁨으로 찾아 주신 데 대해 솔로몬은 감사로 보답했다(15절). 그는 꿈에서 깨어났다. 아마 그는 기쁨에 도취되었으리라. 깨어 보니,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과 같이 “그의 잠이 그에게 달았다”(렘 31:26).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해졌으므로,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무엇을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기브온에 있는 산당에서 기도해 왔으며, 하나님은 거기서 자비롭게 그에게 찾아와 주셨다. 그런데 솔로몬은 “언약궤 앞에서” 감사를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왔다. 말하자면 그는 자기가, 하나님은 어디서든 자기를 만나신다는 사실을 의심하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있는 예루살렘에서 기도하지 않았음을 자책했던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허물을 간과해 주시며, 우리는 그것을 보고 그 허물을 고쳐야 한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1) 하나님께 큰 제사를 드렸다.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은사에 대해서, 그것이 비록 아직 완전히 성취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한다.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의 “역사”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찬양”하곤 했다(시 55:10; 특히 삼하 7:8). 그래서 솔로몬도 이제 다윗의 발자취를 따랐던 것이다.
(2) 솔로몬은 제물을 놓고 큰 잔치를 베풀어, 주위의 모든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를 같이 기뻐하게 했다.
[헬라어성경 누가복음 강해] 성령과 불로 세례 베푸시는 예수님(눅 3: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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