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구약성경 말씀

[룻기 2장 주석 강해 설교말씀] 보아스의 밭으로 간 룻(룻 2:1-3)

르호봇 2022. 11. 2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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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2장에서는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가장 가까운 친족이 있었는데 보아스다. 나오미가 모압에서 돌아와서는 먹을 것이 없었다. 재산을 모두 잃고 룻과 함께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다. 룻은 보아스의 밭으로 가서 이삭을 줍게 되었다. 우연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보아스와 룻의 만남을 통해서 구속사의 대가 이어나가고 있다. 보아스와 룻을 통해서 오벳이 나오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게 된다. 다윗의 혈통을 통해서 예수님이 탄생한다.

 

보아스의 밭으로 간 룻(룻 2:1-3)

 

나오미는 이제 그녀의 옛 친구들이 살고 있는 베들레헴에 도착했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Ⅰ. 그녀의 부유한 친족 중에 보아스라는 유력한 자(1절)가 있었다. 시리아역은 이 구절을 “율법에 있어서의 유력자”라고 해석하고 있다. 만일 보아스가 재물과 성경에 있어 다 같이 유력한 자라면, 그것은 가장귀하고 훌륭한 결합이었다. 그런 자야말로 참으로 유력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보아스는 광야에 있을 때 유다 지파의 한 방백이었던 나손의 손자였고, 여리고의 기생 라합에게서 나온 살몬의(아마 둘째) 아들이었다. 그는 보아스, 곧 그 안에 힘이 있다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당시 몰락되어 비천해진 엘리멜렉의 가문에 속한 자였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보아스는 위대하고 부유한 사람이었으나 그는 가난한 친족들을 갖고 있었다. 모든 나뭇가지가 다 꼭대기 가지가 될 수는 없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위대한 사람일지라도 자기의 비천해 보잘것없는 친족을 부끄럽게 여겨서는 안 되며, 이들에게 거만하거나 경멸을 품거나 이들을 부당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2. 나오미는 가난하고 비천한 과부이긴 했지만 부유한 친족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뽐내지도 않았고, 그에게 부담을 끼치지도 않았으며, 고통을 당해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그에게 어떤 도움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지도 않았다. 자기들은 가난하나 부유한 친척을 가진 자들은, 서로 다르게 하시는 것이(우리는 그것을 묵인해야 한다) 현명하신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친족을 가진 것을 뽐내는 것은 커다란 죄이며, 그들을 의지하는 것은 크게 어리석은 일이다.

 

Ⅱ. 나오미에게는 룻이라는 가엾은 며느리가 있었다.

1. 룻의 형편은 매우 비천하고 가난했다. 그것이 유대교인으로 개종한 이 젊은 여자의 믿음과 지조에 큰 시련을 주었다. 베들레헴 사람들이 서로 번갈아 가며 나오미와 그 며느리를 좋은 집으로 초대했다면 좋았을 것이다(그것은 나이 많은 과부 나오미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며, 이 새로운 개종자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나안의 진미를 맛보기는커녕 이들은 필요한 식량을 얻기 위해 보이는 대로 이삭 같은 것들을 주워야 했으며, 이것마저 없다면 당장 굶어 죽을 지경이었다. “하나님이 세상의 가난한 자를 택하셨다”라는 사실을 유의하자(약 2:5). 그러나 비록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하셨다 하더라도 그들은 계속 가난하기가 일쑤다.

 

2. 이런 형편에 처했으면서도 룻의 성품은 매우 착했다(2절).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여기서는 궁핍해 살아갈 수가 없으니 나로 하여금 모압 땅에 다시 돌아가게 하옵소서. 여기에는 식량이 없으나 나의 아버지의 집에는 식량이 풍족히 있나이다”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룻은 “나온 바 본향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히 11:15).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이 바로 돌아가기에 알맞은 기회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녀의 하나님이었으며 비록 하나님이 룻을 죽인다 하더라도 그녀는 하나님을 의지할 것이고, 결코 그 분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요청이란 단지 “나도 밭에 가서 이삭을 줍게 하옵소서” 하는 것뿐이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곱게 자라난 자라도 나중에는 어떤 곤경에 처하게 될는지 또 식량을 얻기 위해 어떤 천한 일을 하게 될는지는 알 수 없는 법이다(애 4:5). 이렇게 우울한 상황에 처할 때에는 룻을 생각하자. 그녀는 다음과 같은 본을 보였다.

 

(1) 겸손의 본. 하나님이 그녀를 빈곤하게 했을 때, 룻은 “구걸하면서 이삭 줍는 것이 부끄럽습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비천한 생활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그녀의 운명에 순응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를 굽히고 구걸하기보다는 차라리 굶어 죽는 편을 택한다. 그러나 룻은 그렇지 않았다. 룻은 자기가 비천하게 자라나지 않았다는 말을 시어머니에게는 하지 않았다. 비록 그녀가 천하게 키워지지 않았지만 이제 그녀는 초라한 형편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해 불만을 느끼지 않았다. 그것은 나오미의 훈계 때문이 아니라, 룻 자신의 마음이 그랬기 때문이다. 젊은이에게 있어서 겸손은 가장 찬란한 장신구이며, 가장 좋은 전조라 할 수 있다. 룻을 영예롭게 한 것은 바로 이 겸손이었다. 이삭을 주우러 가려던 그녀가 얼마나 겸손한 말을 하고 있는지 주시해 보자.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룻은 “내가 가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그러나 아무도 내 자유를 막지 못할 것이옵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누군가 내게 이삭 주울 자유를 허락해 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내가 나아가 이삭을 줍겠나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빚을 독촉하듯이 남에게 친절을 강요해서는 안 되며 겸손하게 요구해야 한다. 또 극히 작은 친절이라도 그것을 호의로 받아들여야 한다. 가난한 사람은 간청하는 것이 좋다.

 

(2) 근면의 본. 그래서 그녀는 나오미에게 “내가 이 마을의 처녀들을 만나러 가게 해 주옵소서. 아니면 들에 나가 맑은 공기를 즐겁게 마시게 해 주옵소서. 나는 온종일 찌푸린 얼굴로 어머니와 함께 앉아 있을 수 없나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룻이 원하는 것은 오락이 아니라 일이었다. “나로 가서 이삭을 줍게 하옵소서.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하겠나이다”라는 것이었다. 룻은 정숙한 여자라 놀고먹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고하는 것을 즐겼다. 이것은 젊은 사람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젊은이는 늙기 전에 일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해야”(전 9:10) 한다. 부지런한 성품은 이 세상뿐만 아니라 저 세상을 위해서도 좋은 징조가 된다. 잠자는 것이나 오락이나 빈둥거리는 것을 삼가고 오직 일을 사랑하라. 이것은 또한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의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비록 천한 직업일지라도 정직하게 일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는 안 된다. “어떤 일도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다”. 죄악은 우리가 부끄럽게 여겨야 할 일이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은 어떤 것도 부끄럽게 여겨서는 안 된다.

 

(3) 시어머니를 존경하는 본. 비록 나오미는 그녀의 시어머니였지만, 이제 그녀의 남편은 죽었으므로 아내의 의무에서 해방되었다. 따라서 시어머니에 대한 의무도 또한 쉽게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룻은 충성스럽게 나오미를 보살폈다. 룻은 나오미에게 알리지 않거나 허락받지 않고 외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젊은이는 그의 부모와 어른에게 존경심을 가져야 하며, 이것이 마땅히 그들에게 표해야 할 공경이다. 룻은 “어머니, 만일 어머니가 나와 함께 간다면 나도 이삭 주우러 가겠나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어머니는 집에서 쉬시옵소서. 제가 가서 일하겠나이다”라고 말했다. 젊은이는 일해야 한다. 젊은이는 나이 든 사람들의 충고를 들어야 하며, 그들을 부려먹어서는 안 된다.

 

(4) 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본. 이것은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라는 룻의 말에 나타나 있다. 룻은 어디에 가야 할지 또 누구에게 물어보아야 할지 모르나 하나님께서 자기를 도울 사람을 보내 주시리라는 것을 믿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선한 생각을 늘 갖도록 노력해야 하며, 우리가 올바로 한 그것은 우리를 도우리라는 것을 항상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는 룻에게도 도움을 주셨다. 그래서 안내자나 동행인 없이 룻이 홀로 이삭 주우러 나갔을 때 “우연히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다”(3절). 그녀에게 이것은 우연한 일 같았다. 그녀는 이 밭이 누구의 것인지 몰랐고, 다른 사람들보다 유별난 목적을 갖고 그곳에 간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여기에 우연히라는 단어를 넣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가 그녀의 발걸음을 이 밭으로 인도해 주셨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까지 지혜롭게 명령하신다. 전혀 우연한 것처럼 보이는 일들도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백성의 선함을 나타내는 데 이바지한다. 우리에게는 우연인 것처럼 보이나 하나님의 섭리가 계획해 일어나게 하신 작은 일로부터 많은 중대한 일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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