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베드로 성경인물 설교말씀 중에서 용서에 대한 교훈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베드로는 형제가 자신에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를 해야 하냐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일곱 번까지 용서를 해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까지라도 해야 할 것을 말씀했습니다. 우리도 용서에 대해서 주님의 말씀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우리도 남에게 상처를 줄 때는 관대하면서도 남이 나에게 상처를 주면 못 견디는 성향이 있습니다. 남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도 남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제목 : 용서에 대한 교훈
1. 자기 부인의 도리를 배움
1) 자기중심의 생각에서 벗어남(요일 4:10, 롬 13:8, 벧전 2:11)
베드로가 예수께 나아와 형제를 용서하는 데 있어서 얼마만 한 인내가 필요한가를 질문했던 사건은 당시의 문화적이고 전통적인 배경 하에서 이해되어야만 하는 사건입니다. 즉 당시 유대인들은 적어도 형제를 세 번 정도만 용서하면 참으로 아량이 넓고 신앙심이 돈독한 고상한 인격자로 취급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배경 하에서 사도 베드로가 감히 일곱 번의 용서를 거론한 것은 상당한 발전이요, 파격적인 주장이라 아니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베드로는 이러한 질문을 통하여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인격자인가를 넌지시 자랑하고자 했음이 분명합니다.
물론 예수께서는 무한한 사랑과 용서와 이해를 가르치심으로써 이러한 베드로의 자아도취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완전히 깨쳐 주셨습니다. 실로 용서와 사랑은 우리 인간에게 의의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용서와 사랑은 인간에게 자랑 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들은 모두 이미 크고 초월한 사랑과 용서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2) 그릇된 가르침에서 벗어남(엡 4:14, 골 2:7, 벧전 1:15)
베드로가 이처럼 일곱 번의 용서가 과연 합당한가 하며 질문했을 때, 그는 당시 유대 지도자들 특히 랍비들의 교훈을 염두에 두었음이 분명합니다. 당시 랍비들은 형제의 허물에 대해 오직 3번만 용서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참된 사랑은 단지 시간을 정해 놓고, 자기 나름대로의 한계를 정해 놓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끊임없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용서의 한계를 정해 두고 그 안에서만 용서하겠다는 것은 이미 형제를 진정으로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생각이라 하겠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예수의 끝없는 용서의 교훈을 통해 그릇된 가르침에서 해방되어 자유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2. 끝없는 용서를 배움
1) 전인적 용서가 필요함(사 44:22, 사 1:18)
사람들은 흔히 이웃의 허물을 용서한다고 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과거의 추한 기억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생활하곤 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한번 형제가 잘못을 범하거나 혹은 형제가 자기를 섭섭하게 대하는 날이면 지체하지 않고 그 추한 기억들을 새롭게 꺼내어 그때의 허물을 지적하며 비방하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용서는 이처럼 용서했다가 다시 그 내용을 번복하여 형제의 잘못을 추궁하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하고도 철저한 잊어버림이 그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주홍같이 붉은 우리들의 죄악을 흰 눈 같이 말끔히 씻어 주시고, 마치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그 죄악을 완전히 잊어버려 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2) 용서에는 한계가 없음(마 6:14, 골 3:13)
일곱 번의 용서가 합당한 것인가를 물은 베드로의 질문에 대해 예수께서는 '일곱 번뿐만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말씀은 수치상으로는 490번 정도의 용서를 하라는 교훈이 아닙니다. 완전하고도 철저한 용서, 횟수를 정해 두지 않는 끝없는 용서를 하라는 아름다운 교훈을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확인하듯 용서란 시간이나 횟수나 그 질에 있어서 한계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셨던 그 넓고 큰 용서와 사랑을 본받아 무한한 용서의 사람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3) 이웃의 아픔에 동참함(마 18:35, 막 11:25)
용서란 단순히 이웃의 허물을 없었던 것처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말과 생각만의 용서는 어쩌면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인지 모릅니다. 참된 용서는 말과 생각만으로 써 뿐 아니라 행동으로써 형제의 유익을 구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이웃의 아픔에 진정으로 동참하고 그 아픈 부위를 싸매어 주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사랑과 긍휼의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3. 십자가의 사랑을 배움
1) 인간은 끝없이 용서받아야 함(히 4:15, 요일 1:9)
예수께서 일곱 번뿐만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의 용서를 하라는 명령 속에는 참으로 인간의 나약함을 깊이 간파하신 주님의 세밀한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실로 예수께서는 인간들이 늘 죄를 범하고 죄아래 머물 수밖에 없는 한계가 분명하고 늘 넘어지기 쉬운 존재임을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만약 이처럼 매 순간 죄와 허물 아래 머물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인간에게 끝없는 용서가 없다면 인간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인간을 넉넉히 체휼 하신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이 사실을 이미 아시고 우리 각자에게 끝없는 용서를 가르치셨을 뿐 아니라 당신 자신도 우리에게 끊임없는 사랑과 용서를 보여 주고 계신 것입니다.
2) 주님은 친히 용서를 가르쳐 주심(요 21:17, 마 18:22)
회복시키시는 주 예수께서는 단순히 입술로써만 이러한 끝없는 용서의 교훈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놓으시면서 그 용서와 긍휼과 사랑의 교훈을 깊이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특히 예수께서는 사랑하는 당신의 제자 베드로가 세 번씩이나 당신을 부인했을지라도 그를 책망하거나 징계하시지 않고 그의 상하고 낙담한 마음을 어루만지시며 위로하시고 새롭게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더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참된 용서란 단지 입술로써만 아니라 온몸으로, 그리고 상대로 하여금 더 이상 아픈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새롭게 설 수 있도록 힘을 더하는 데까지 용서하고 격려해 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3) 용서는 참 사랑의 표현임(엡 4:32)
참된 용서는 결코 자기 자랑이나 자기 의의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참된 용서란 사랑이 그 밑바탕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형제의 영혼에 대한 깊은 애정과 상대의 약한 부분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밑바탕이 될 때 비로소 우리는 형제를 진정으로 이해하며 용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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