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3장에서는 아브라함과 롯과 헤어지는 장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애굽에 내려갔다가 아브라함은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사라도 애굽 왕에게 빼앗길 뻔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아브라함을 지켰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가나안 땅으로 올라왔는데 종들이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우물 때문에 싸우고 먹을 것 때문에 싸우고 있습니다. 서로 동거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롯은 아브라함을 떠나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네가 먼저 갈 곳을 정하라고 했습니다. 롯은 소돔 땅을 선택했습니다. 요단 지역이 눈에 보기에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이곳은 멸망의 길로 갔습니다. 롯이 떠난 후에 아브라함은 헤브론에 장막을 치고 거주하게 됩니다. 이곳은 눈에 보기에는 척박한 땅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장소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장소에 있어야 합니다.
헤브론에 장막을 치는 아브라함(창 13:14-18)
아브람과 롯은 갈대아 우르에서 함께 나왔으며 하란에 있을 때에 데라는 가나안 땅에 갈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명령했습니다. 아브람이 가나안 땅으로 나올 때 롯도 함께 나왔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기근이 심해지자 점점 남방으로 가서 애굽까지 들어가게 됩니다. 애굽에서 다시 올라왔을 때 롯은 요단 지역을 바라보게 됩니다. 요단 지역은 살기에 좋고 물이 넉넉한 장소입니다.
아브람과 롯은 함께 동거하기가 힘들어지게 됩니다. 사상이 맞지 않았기 때문에 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 편에서 영적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지만 롯은 육적인 사람으로서 눈에 보이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아브람의 생각과는 정반대입니다. 사람은 사상이 맞지 않으면 헤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면서 사상이 맞지 않으면 헤어집니다. 상황과 환경이 어렵다고 해서 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이 서로 다르면 헤어지게 됩니다. 환경과 상황이 힘들어도 사상이 맞으면 함께 헤쳐나가면서 이겨낼 수 있습니다.
결국 롯은 요단 지역의 물이 넉넉한 곳을 선택했습니다. 그곳은 애굽과 같고 여호와의 동산 같은 곳입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이런 곳입니다. 아브람은 가나안 땅을 선택하였고 롯은 요단 지역을 선택하여 소돔까지 들어가 살게 됩니다. 소돔 지역은 여호와 앞에서 악하며 큰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육신의 정욕을 따라 소돔까지 롯이 들어갔습니다. 우리도 육신의 안목을 따라 인생을 살면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이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잘되는 것만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세상의 정욕과 이생의 안목을 따라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비전을 따라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창13: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본문의 말씀을 보면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합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현재 아브람은 자식과 같은 조카 롯이 떠나고 마음이 찹찹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재 네가 서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육적으로 모든 것이 끊어졌을 때 비전을 주고 있습니다.
‘떠난’ 파라드 6504 동사, 닢알, 부정사연계형. 분리하다, 어그러지다, 끊다라는 뜻입니다. 아브람과 롯은 서로 분리될 수밖에 없는 상황과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롯은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고 아브람은 영의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서로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서로 마음이 어그러졌기 때문에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끊어지게 되어 롯은 소돔으로 갔고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남게 되었습니다. 닢알 수동태를 사용한 것은 롯이 아브람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생각과 상황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만나면 헤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연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필연 가운데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상황이 왔다면 이제 하나님이 주신 비전의 약속을 붙잡아야 합니다.
창13: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준다고 약속합니다. 이 땅은 영원히 이르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육적인 땅일 수도 있지만 영원한 천국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이 영원한 천국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살면 천국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천국의 비전을 보여주셔도 세상의 것이 크기 때문에 천국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지금은 작고 미약한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창대하게 커집니다. 롯은 이 세상이 더 커 보이고 좋고 기름진 땅을 선택하여 갔습니다. 현실적인 눈으로 보면 그것이 더 좋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은 가나안 땅을 선택하여 남았습니다. 육신적인 안목으로 보면 보잘것없는 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브람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땅은 살아있는 땅이 됩니다.
창13: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약속합니다.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한다고 합니다.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 것인데 네 자손도 셀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하리니’ 숨 7760 와우접속사. 동사, 칼, 완료, 공성, 1인칭, 단수. 두다, 지명하다, 놓다, 정하다, 확립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의 자손을 티끌같이 많게 하시겠다고 지명했습니다. 완전히 하나님이 마음을 정하셨기 때문에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아브람의 자손을 많게 하셔서 가나안 땅을 허락하시고 자손에게도 확실하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가나안 땅에 아브람의 후손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계속해서 관여하시고 자손이 많아지게 하시겠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와우접속사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천국을 허락하셔서 내가 들어갈 때까지 계속해서 주관하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확실합니다.
창13: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고 합니다. 내가 그 땅을 너에게 주시겠다고 합니다.
‘두루 다녀 보라’ 할라크 1980 동사, 히트파엘, 명령법, 남성, 2인칭, 단수. 걷다, 행동하다, 동행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너는 일어나 하나님이 주신 땅을 종과 횡으로 걸어보라고 합니다. 눈으로 본 땅을 이제는 직접 걸어서 실제로 너의 땅이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만 혼자 걸어가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동행하여 걷겠다고 말합니다. 아브람이 가나안 땅을 종과 횡으로 걸을 때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그 땅을 허락해주시겠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히트파엘 강조 재귀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명령법을 사용한 것은 너는 반드시 일어나 내가 허락한 땅을 종과 횡으로 돌아다녀보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눈으로 보았다면 천국을 직접 소유하여 체험하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의 확신입니다. 말씀만 듣고 비전만 세웠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일어나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가나안 땅이 육신의 눈으로 볼 때는 척박한 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동행하여 주시니 축복이 오게 됩니다. 현재 나의 모습을 보면 척박한 상태입니다. 육신의 안목으로는 살아갈 소망과 비전이 없습니다. 앞뒤로 꽉 막혀 있어서 물질의 길도 열리지 않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나와 함께해 주시고 비전의 말씀과 축복을 준비해 주셔서 이제는 일어나 그것을 밟아보라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믿음으로 이 땅을 주님과 함께 밟아야 합니다.
창13: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하나님이 종과 횡으로 땅을 밟아보라고 한 후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거주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게 됩니다. 헤브론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가 됩니다. 이곳은 하나님이 도피성으로 지정하게 되고 다윗은 헤브론에서 7년 반 동안 유다를 통치하게 됩니다. 아브람이 머물렀던 이 장소는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장소가 됩니다.
‘헤브론’ 헤브론 2275 연합, 동맹이라는 뜻입니다. 헤브론은 주님과의 연합을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우리도 주님과 연합하고 동맹을 맺어야 합니다. 롯은 소돔으로 갔지만 아브람은 헤브론에 거주하면서 주님과 연합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연합하여 복음 말씀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복음을 떠나면 힘들어집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헤브론에 있을 때 큰 복을 줍니다. 헤브론은 해발 800m의 고지대에 세워진 도시로서 척박한 땅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가병 318명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가병을 운영했다는 것은 큰 복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람이 복을 받게 된 것은 하나님과의 연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는 누구와 연합하고 있습니까? 세상과 연합하여 롯처럼 소돔에 거주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브람처럼 비전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천국의 땅을 발로 밟으면서 주님과 연합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헤브론과 같은 장소에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나의 가정이 될 수도 있고 사업이 될 수도 있고 교회가 될 수도 있고 학교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장소에 있어야 하나님의 복이 옵니다. 내 생각대로 요단 지역을 선택하여 가서 소돔에 앉아있으면 저주가 임하게 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비전의 땅을 발로 밟으면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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