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히브리어강해 설교

[창세기 히브리어 단어 성경공부] נחם(5162, 나함) 후회하다, 위로하다

르호봇 2022. 5. 21.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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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6장에서는 사람들이 번성하기 시작하면서 죄악이 이 세상에 만연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 소견대로 아내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일들을 자행했습니다. 그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을 보시면서 마음 아파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셨음을 한탄하셨습니다. 이것이 나함이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근심하셨습니다.

 

창6: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6절 바이나헴 아도나이 키 아사 에트 하아담 바아레츠 바이트아체브 엘 리보

נחם(5162, 나함) 후회하다, 위로하다

나함(동사)은 기본어근이며, '후회하다 repent, 위로하다 comfort'를 의미하며, '회개하다, 애석해하다, 유감으로 생각하다'라는 의미도 함축한다. 이 어근의 기원은 '깊이 숨 쉼' 따라서 사람의 감정, 주로 슬픔, 동정, 위로의 육체적 표출이라는 개념을 반영하는 것 같다. 이 어근은 우가릿어(UT 19: no 1230의 '위로하다'를 보라)에서 나타나며 느헤미야, 나훔, 므나헴과 같은 구약성경에 언급된 고유명에서 발견된다. 70인 역본은 나함을 메타노에오와 메타멜로마이로 번역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00회 이상 나오며, 니팔, 피엘, 푸알, 히트파엘형으로 사용되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가 '후회하다'라는 의미로 약 40회, '위로하다'라는 의미로 약 60회 이상 사용되었다.

(a)  나함은 '후회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니팔형으로 38회).
학자들은 이 단어를 성질의 변화, 마음의 변화, 목적의 변화, 또는 행위의 변화에 대한 강조와 연관시킴으로 말미암아 나함의 의미를 확인하려 한다.

'후회하다'라는 의미에서 대부분의 실례가 인간의 후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후회를 언급한다. 인간의 후회나 회개를 나타내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단어는 (죄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이키다(to turn)'를 뜻하는 슈브(שוב

7725)이다. 죄를 자각하여 진정한 후회와 비애를 느끼는 인간과 달리, 하나님은 죄에서 자유하신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후회하신다는 것(창 6:6-7, 출 32:14, 삿 2:18, 삼상 15:11 등), 즉 그는 자신의 주권적 목적에 따라서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거나 사람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말해준다. 표면상으로 볼 때 이런 언어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단언하는 어떤 구절들과 상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조화하지 않는 것 같이 보인다(참조: 삼상 15:11, 시 110:4).

그러나 나함이 하나님께 사용될 때 그 표현은 신인동형론적인 것이며 궁극적 긴장은 없다. 단지 인간의 제한되고 세상적이고 휴한한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뜻이 변화한 것 같이 보일 뿐이다. 그리하여 구약성경은 하나님께서 행하기로 작정하셨던 심판이나 재앙을 내리시기를 '후회하셨다', 즉 '돌이키셨다'고 말한다(대상 21:15, 렘 18:8, 렘 26:3, 렘 26:19, 암 7:3, 암 7:6, 욘 3:10). 확실히 렘 18:7-10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예언이 인간의 반응에 따라 조건부적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상기시켜 준다. 이와 관련하여 헤셀(A. J. Heschel)은 '어떠한 말씀도 하나님의 최종적인 말씀이 아니다. 인간의 행동이 변화하면 하나님의 심판도 변한다'라고 말하였다.

하나님의 후회에 대해 좀 더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창 6:6에서 하나님은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셨다. 이 구절에서 '후회하다'는 마음을 바꾸거나 뜻을 돌이키는 것을 함축한다. 하나님은 그가 이미 행한 일에 대해 사람처럼 후회하시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는 변화된 그 상황과 조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하셨다. 인간이 하나님과 맺은 관계를 변경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죄를 범할 때 하나님은 교제의 관계를 징계의 관계로 바꾸신다. 인간이 죄로부터 하나님께 돌아올 때 하나님은 교제의 관계를 회복시키신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인간과의 관계를 완전히 심판의 관계로 바꾸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후회하심, 곧 돌이키는 것이다. 하나님은 후회하시거나 뜻을 돌이키지만 인간과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의는 신실하게 유지되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마찬가지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repented, NASB는 'changed his mind'로 번역함)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때로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관련하여 시행하려고 계획했던 방침을 '돌이키신다'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repent)"(렘 18:8).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케 하리라 한 선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repent)"(렘 18:10).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repent) 재앙을 내리지 아니 하시나니"(욜 2:13). 다른 실례들에서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변경하신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분명히 인간이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 마음을 바꿀 때 하나님께서도 마음을 바꾸신다. 그러나 인간이 악한 행위를 계속할 경우 악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바뀔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행위는 변하지만 그 자신의 의로우심에 대한 신실하심은 영원불변하다.

어떤 상황에서는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기'(repenting)에 싫증을 내시는데(렘 15:6),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규정을 수행해야 할 점이 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행위의 실례로 사울에게 전한 사무엘의 말을 들 수 있다. 여기서 사무엘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의 왕권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repent)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 15:29).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인간의 악한 행위에 대한 참회와 중재의 기도로 말미암아 자신의 마음을 바라고 자신의 행위를 '돌이키신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위한 중보자로서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간청하였다.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repent)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출 32:12). 이 기원의 응답은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출 32:14)는 말씀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니느웨에 전한 말씀에서도 이 용례를 볼 수 있다.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turned)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repented of)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욘 3:10). 이러한 실례에서 하나님은 후회하시거나(repent) 그의 뜻을 돌이켜서(change his mind) 자신의 계획을 변경시키신다. 그러나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의는 신실하게 유지되는 것이다.

다른 구절들에서 인간들의 태도의 변화(혹은 이 변화의 부족)를 뜻하는 말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인간이 자신의 사악함을 회개하지 않을 때에 반역을 선택하여 벌하신다(렘 8:6). 종말론적인 의미에서 에브라임(이스라엘 북쪽 지파의 대표자) 지파가 회개(repent) 한다면(렘 31:19)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실 것이다(렘 31:20).

사람도 타인에게 회개를 표명할 수 있다. 베냐민은 부도덕한 죄를 범함으로써 심한 고통을 받았다(삿 19-20장). "이스라엘 자손이 그 형제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쳐(repented) 가로되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끊쳤도다"(삿 21:6, 삿 21:15 참조).

(b)  나함은 '위로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피엘형에서 '위로하다', 니팔, 푸알, 히트파엘형에서 '위로 받다'를 의미한다.

① 나함은 바벨론 유수에서 살아남은 모든 경건한 유대인에게 잘 알려져 있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이사야의 '위로의 책'의 서언인 '나하무 나하무 암미'(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사 40:1)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함'은 또한 '위로하다' (comfort)를 의미하기도 한다. 바벨론으로 망명한 자들은 생존자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도착했을 때 '위안을 받았다'(겔 14:23). 여기서 '위로하다'라는 말과 '후회하다(회개)'라는 말의 관계는 하나님이 자신의 말씀이 진실하다는 것에 대한 증거로서 예루살렘에 내린 재난에서 결과된 것이다.
동일한 단어가 시 23:4에도 나오는데, 여기에서 다윗은 그의 하늘의 목자에 대하여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말한다.

② 다윗은 밧세바의 죄 중에서 태어난 아이가 죽은 후에 그녀를 '위로하였다'(삼하 12:24). 이것은 그들의 부주의로 생긴 일에 대한 다윗의 후회를 지적하는 것 같다. 많은 구절들은 죽은 자들을 인하여 위로받는 것("조상하다")을 다룬다(삼하 10:2, 대상 19:2, 사 61:2, 램 16:7, 렘 31:15). 사람들은 유아(삼하 12:24), 10대의 아들(창 37:35), 어머니(창 24:67), 아내(창 38:12) 등으로 인하여 위로받았다.
어머니는 자기 자녀를 위로함 같이(사 66:13)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로하신다(시 71:21, 시 86:17, 시 119:82, 사 12:1, 사 49:13, 사 52:9).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나훔, 나함의 파생어)이 따뜻하고 포근하게 된다'(호 11:8).

③ 다른 한편 이 단어는 인도적인 감정에 나온 '위로'에 대해 사용되었다. 욥은 세 친구들에게 물었다 - "이러한 즉 너희의 위로가 헛되지 아니하냐 너희의 대답은 거짓뿐이니라"(욥 21:34, 욥이 뜻한 것은 그들의 태도는 잔인하고 무감각한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위로'(comfort)를 간구했다. "나를 더욱 창대하게 하시고 돌이키사 나를 위로하소서"(시 71:21).

④ 나함은 '애석해하다, 유감으로 생각하다, 동정하다'라는 의미도 나타난다(신 32:36 = 시 135: 14).
(참조: M. R. WILSON; NEDOT;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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