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4장에서는 아브라함이 엘리에셀에게 이삭의 아내를 구하러 가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밧단 아람의 브두엘의 집에 가서 리브가를 데려 오라고 했습니다. 구속사 관점에서 엘리에셀은 성령 하나님의 모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원어를 통해서 이삭의 아내를 데리러 가는 엘리에셀을 통해서 성령 하나님의 모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엘리에셀에 나타난 성령 하나님의 모형(창 24:1-9)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내인 사라가 죽고 장사 지낸 후에 엘리에셀을 불러 자신의 아들인 이삭을 위해 아내를 자신의 친족에게 가서 데리고 오라고 명령을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가나안 땅으로 왔지만 이 땅은 우상을 섬기는 족속으로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이방민족이기 때문에 그래서 자신의 족속에서 이삭의 아내를 구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여기에서 아브라함이 엘리에셀을 통하여 이삭의 아내를 구하러 가는 모습과 맹세하는 모습을 통하여 영적 진리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은 성부 하나님의 모형이고 이삭은 성자 예수님의 모형이며 엘리에셀은 성령님의 모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도 성부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선택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엘리에셀과 같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신부인 나와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 성령님을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내가 바로 신부인 리브가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리브가는 하나님으로부터 선택함을 받았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영적 진리는 무엇입니까?
첫째, 아브라함이 엘리에셀을 통하여 맹세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창24:2-4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 허벅지 밑에 네 손을 넣으라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아브라함은 자기 집에 있는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말하면서 자신의 허벅지 밑에 손을 넣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자신이 살고 있는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자신의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자신의 고향 족속에게로 가서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굳은 의지가 있는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은 절대 우상 숭배하는 자들과 자신의 아들을 결혼시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15: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라함의 종은 엘리에셀입니다. 자신이 아들이 없을 때에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으려고 했을 정도로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에셀’ (엘리에제르 461) 엘리에셀,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엘 410) 하나님과 (에제르 5828) 조력자, 호위하는 자,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엘리에셀은 옆에서 도와주시는 성령님의 모형입니다. 이 엘리에셀이 아브라함의 명령을 받고 밧단아람으로 가서 리브가를 데려오는 것입니다.
‘허벅지’ (야레크 3409) 허벅지, 밑판, 이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엘리에셀의 손을 자신의 허벅지에 넣으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맹세를 다짐하는 행위였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놓고 맹세하는 행위입니다. 이 정도로 중요한 행위를 통하여 절대 가나안 족속의 딸을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일 수 없다는 강력한 요구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행위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단어는 성전에서 사용하는 등대의 밑판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성전에서 등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밑판은 금등대가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엘리에셀의 맹세는 절대 흔들릴 수 없는 확고부동한 맹세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확실한 믿음의 맹세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신부를 맞이하기 위하여 우상을 섬기는 자들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실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죄가 씻김 받은 자들을 선택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절대 하나님께 선택받을 수가 없습니다.
엡1:4-5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는 이미 나를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지금 아브라함도 자신의 족속의 딸에서 선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를 택하사’ (바하르 977 VQAMZS 동사 칼(능동태) 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선택하다, 고르다, 기뻐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여 고르시고 후회하지 않으며 선택된 나를 보시고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택한 것에 대하여 취소하거나 후회하지 않습니다. 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엘리에셀에게 이렇게 자신의 아들을 위하여 자신의 족속에서 우상을 섬기지 않는 딸을 데리고 오라고 맹세한 것입니다.
둘째, 신부가 따라오지 않으면 절대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가지 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창24:5-6 종이 이르되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엘리에셀이 이삭의 신부를 데리러 갔을 때에 가나안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않으면 이삭을 데리고 밧단아람으로 돌아갈 것을 요청했지만 아브라함은 단 번에 거부하고 있습니다.
‘오려고 하지’ (아바 14 VQIFZS 동사 칼(능동태) 미완료 여성 3인칭 단수) 기뻐하다, 순종하다, 청종하다, 라는 뜻입니다. 엘리에셀이 리브가를 찾아가서 이삭을 남편으로 맞이하여 살도록 이야기했을 때에 이삭을 신랑으로 맞이하는 것을 기뻐하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으며 길을 나서지 않으면 절대 신랑인 이삭을 그 땅으로 데리고 가지 말라고 아브라함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이것을 통해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오셔서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 주시는데도 아직도 율법에 매여 자신의 의로 나가려고 하는 자들은 절대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막2:19-20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언제 인생 가운데 고통이 찾아옵니까? 영혼의 안식이 언제 없습니까? 바로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떠날 때입니다. 이 날에는 금식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자들은 금식이 필요 없고 먹고 마시면서 기뻐하며 즐기는 것입니다. 엘리에셀은 말합니다. 신부에게 찾아가서 아브라함이 너를 자신의 아들 이삭과 함께 혼인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을 때에 자신은 기꺼이 기뻐서 길을 따라나선다면 복이 있는 사람이지만 그렇지 않고 불평하며 순종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선택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보혜사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임하여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주시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모두 생각나게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면 절대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할 수 없습니다. 엘리에셀을 통하여 리브가와 이삭이 만나는 것처럼 보혜사 성령님께서 신랑 되시는 예수님과 나를 연결시켜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절대 이삭을 자신의 족속의 땅으로 데리고 가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선택받지 못한 백성들은 절대 하나님께로 올 수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6:37-39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님께 주시는 자는 모두 주님께로 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절대 내쫓지 않으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 함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자는 절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부활시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들은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며 그분 앞으로 오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게 되고 죄 사함 받아 주님을 신랑으로 맞이하는 것을 기뻐하면서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성령님께서 찾아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실 때에 기쁨으로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셋째, 선택받은 자가 따라오지 않으면 아브라함의 맹세는 무효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창24:7-9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그 종이 이에 그의 주인 아브라함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이 일에 대하여 그에게 맹세하였더라
아브라함은 엘리에셀을 보내며 하나님이 맹세하신 것이 내 고향의 땅에서 떠나오면서 말씀하신 것이 나의 씨에서 나오는 자에게 가나안 땅을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너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셔서 이미 이삭의 신부를 준비해 놓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택받은 여자가 너를 따라오지 않으려고 하면 이 맹세는 너와 상관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삭을 데리고 그 땅으로 가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세전에 선택받은 백성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만약에 엘리에셀을 따라나서지 않는다면 이것은 이삭을 데리고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자신이 의로운 자로서 구원받았다고 착각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라고 교만하여 성령님의 감동과 뜻을 어기는 자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선택받은 자들은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감사하여 따라나선다는 것입니다. 바로 리브가처럼 자신의 고향과 친척과 부모를 놔두고 먼 길을 따라나서는 것입니다.
창24:58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자신의 부모가 리브가를 불러 엘리에셀을 따라갈 것이냐고 물었을 때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가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선택받은 신부들의 모습입니다.
‘리브가’ (리브카 7259) 리브가,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라바크) 묶다, 매다, 꽉 죄다, 라는 어근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사용하지 않는 어근입니다. 어근 사전에만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 리브가는 이제부터 이삭을 신랑으로 삼아 한 몸으로 묶이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버리고 이제는 이삭과 하나가 되어 꽉 매이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리브가는 지금까지 부모와 친척과 살았지만 미련 없이 보지도 못한 이삭을 믿음으로 따라나서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의 것을 미련 없이 버리고 영적인 주님을 따라나서는 삶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적 신부의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계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마지막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리브가는 이제 신랑 되신 이삭을 맞이할 준비가 된 것입니다. 세상에는 미련이 없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삶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신랑 되시는 예수님과 이제 하나로 묶여 어디를 가든지 주님과 함께 가면서 그분의 통치하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부의 삶입니다. 통제받는다고 해서 주인과 종의 신분이 아닙니다. 신랑과 신부는 동등한 위치에서 신부가 신랑을 섬기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신랑을 만나러 따라나서지 않습니다. 신랑이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눅17:32 롯의 처를 기억하라
창19: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주님께서는 마지막 종말을 말씀하시면서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롯의 신부는 소돔과 고모라 성이 유황불로 심판을 받을 때에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는데도 뒤를 돌아봄으로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기억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롯의 신부는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고 묶여 있었기 때문에 그곳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세상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소금 기둥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반면에 리브가는 세상과 묶인 것이 아니라 주님과 묶인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택함 받은 신부와 그렇지 못한 신부의 차이가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 이삭의 신부를 데리러 오기 위하여 엘리에셀과 맹세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오직 자신의 족속으로 가서 우상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아는 자신의 씨에서 신부를 데리고 오라는 명령입니다. 그리고 이 명령을 받아 이삭의 아내를 데리고 오는 엘리에셀을 통하여 성령님의 모형을 보았습니다. 또한 리브가는 현재까지 살고 있는 자신의 고향과 친척과 부모를 놔두고 기꺼이 즐거워하면서 엘리에셀을 따라나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선택받은 자들의 신앙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리브가처럼 주님 앞에서는 신부입니다. 리브가는 이삭이 자신의 어머니를 잃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게 되며 이삭은 리브가를 통해 위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어떠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리브가처럼 주님과 하나로 묶여 어디든지 함께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삭이 리브가를 통해 위로를 받은 것처럼 주님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에 제자들에게 기도를 요청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주님의 기쁨이 되어야 하고 위로 자가 되어야 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깨닫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서 주님의 뜻대로 행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무엘상 원어 설교문] 도우시는 에벤에셀의 하나님(삼상 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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