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히브리어강해 설교

[창세기 30장 주일설교말씀] 야곱과 라헬 이야기(창 30:14-24)

르호봇 2023. 1. 1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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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0장에서는 야곱과 라헬과 레아의 이야기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라헬이 아이를 낳지 못하자 레아를 시기하게 됩니다. 르우벤이 들에 나가서 합환채를 얻었는데 라헬은 이것을 레아에게서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레아는 조건을 걸었는데 야곱과 동침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라헬은 야곱을 보내는 조건으로 합환채를 얻었습니다. 합환채를 얻었다고 라헬이 아이를 갖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라헬의 태를 닫았기 때문에 낳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라헬의 태를 열어주실 때 자녀를 낳을 수 있습니다.

 

야곱과 라헬 이야기(창 30:14-24)

 

남에게 아픔을 주는 자는 그 역시 상처를 입게 되고 속이는 자는 속임을 당합니다. 이것이 야곱의 인생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삶의 교훈입니다. 외삼촌 집에서 우거 하던 야곱은 그의 외삼촌의 목동으로 일하기로 하고 계약을 맺었습니다. 야곱은 7년을 일해주는 대가로 라반의 둘째 딸 라헬과 결혼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에 라반이 응락하자 야곱은 7년을 하루같이 봉사했습니다. 사랑의 힘은 대단한 것입니다. 사랑은 시공을 초월하는 매력을 가진 것입니다. 분명한 사랑의 목표가 있으니 또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으니 짧지 않은 7년의 머슴살이를 힘들지 않은 듯이 지났을 것입니다.

7년을 마치고 이제 혼례와 함께 7년간의 노고를 치하하는 잔치에서 주거니 받거니 포도주로 몸도 마음도 날듯이 솟구쳐 오르는 기쁨에 겨워 모든 피로가 다 사라졌을 것입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리따운 신부 라헬이 기다리는 신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야곱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7년간의 수고도 수일같이 여기는 그의 사랑은 참으로 대단한 것입니다. 누군가를 아낌없이 사랑해 본 사람이라면 야곱의 사랑의 수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밤 신방에서 야곱의 감격과 환희는 또 어떠했겠습니까? 7년간을 기다리던 사랑이었으니...참으로 저도 이 설교를 쓰면서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첫날밤을 짧은 듯이 지나고 중천에 떠오르는 햇살에 천막 안이 밝아진 것을 느끼며 늦게 일어난 야곱은 기분 좋은 피곤을 긴 하품으로 뱉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안으려 하니...아니 이게 누굽니까? 자기의 사랑 아리따운 라헬이 아니라 눈부신 햇살에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여인은 레아가 아닙니까? 레아는 시력이 좋지 않아 그 눈매가 그리 아름답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 순간 야곱의 모습과 그의 감정을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 자신이 야곱의 입장이 되어보십시오. 대경실색과 절망-그것이었습니다. ! 이럴 수가 있습니까? 비록 아버지의 지시를 따라 그 밤을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야곱을 본의 아니게 속였지만 레아도 아연해하는 야곱의 모습을 보면서 비굴하고 참담한 기분을 금치 못하였을 것입니다.

기쁨과 환희가 넘쳐야 할 신방의 첫날 아침은 실망과 놀람과 분노와 비굴하고 참담한 기분으로 뒤범벅이 되어 찜찜하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그런 분위기였을 것입니다. 저도 이 설교를 쓰다가 이 부분에 이르자 맥이 탁 빠지는 것 같고 더 이상 쓸 기분이 나지 않아서 잠시 서성거리다가 한참만에 다시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일이 아니라도 그렇지 이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한 일입니까? 7년간 애태우며 기다리던 일이었는데 이처럼 어처구니없이 속게 되다니 말입니. 야곱은 분노하여 그의 외삼촌 라반에게 항의했습니다.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께 봉사하지 아니하였나이?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찜이니이까?"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검정 묻은 개가 숯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을 생각했습니다. 순간적인 분노와 절망 가운데서 자신이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면서 까지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인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외삼촌 당신을 속이지 않고 성실하게 일해주었는데 나를 속이다니 될 말입니까? 내게 속은 사람은 나보다 어진 사람입니다. 내게 당한 사람은 나보다 강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저 당하고 아연실색하여 울었을 것입니다. 속인 사람은 자기가 속인 사람에게 복수를 당하지 않습니. 누군가를 상처 입힌 사람은 자신 때문에 아픔을 겪은 이에게 보복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을 의식적으로 피하고 또 그 사람을 만나면 보복당할 것을 생각하고 경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고 나는 자 위에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거짓은 거짓을 낳고 악은 악을 열매 맺고 선을 좇아 선이 난다는 것은 심은 대로 거두도록 만들어진 자연의 변할 수 없는 대원리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구를 속이고 상처를 입히면 나는 다른 사람에게 속임을 당하고 아픔을 겪기 마련인 것입니다. 완전범죄를 이루었다, 아무도 모른다. 그러므로 내가 범한대로 형벌을 받지 않게 되었다고 안도의 한숨을 쉴지 모르나 그 범인은 분명 그가 범한 악의 대가를 어디에서인가 받고 있을 것이며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기어이 그 대가를 받아내실 것입니다.

우리는 거짓을 회개하고 은밀하게 범한 범죄를 가슴 아파하며 나로 하여금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하는 못된 습관으로 인하여 애통해야 합니다. 악을 당연시하며 계속 답습하는 불의한 행동을 무감각하게 지나쳐 버리는 것은 내 인생의 앞 길에 덫을 놓는 것이며 내 머리에 심판의 불을 지피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그 아비 이삭과 에서를 속인 야곱은 그들에게는 보복을 당하지 않았습니. 앞으로 볼 것입니다만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만나게 된 에서에게는 미리 뇌물을 보내며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강요하며 떼를 쓰는 기도를 하여 약속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뿐입니까? 그러고서도 상봉하게 된 형 앞에서 일곱 번씩이나 절을 하며 땅에 기다시피 하며 나아오는 동생에게 어찌 분노와 보복의 감정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야곱은 자기가 전혀 해를 끼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를 성실하게 일해준 주인이자 타향에서 유일한 의지의 대상으로 믿고 있던 어머니의 형제요 외삼촌에게 속임을 당한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그들이 당하게 된 억울한 일들 앞에서 분노하며 상대방을 욕하고 비방하며 함께 싸웁니.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 앉아있는 우리들은 나를 억울하게 하고 괴롭힌 상대를 원망하지 맙시다. 하나님을 우러러봅시다. 나의 삶을 돌이켜 생각해 봅시다. 우리 한국사람은 불교적인 영향으로 흔히 말하기를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러나?"라고 탄식합니다. 우리는 그런 윤회설을 믿지 않습니다. 단지 나 인생의 어느 때엔가 내가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은 괴롭히거나 아프게 한 일을 없는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징계가 없는 자는 사생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치 아니하고 지나쳐버린 당신의 자녀들의 잘못을 들추어내어 회개케 하심으로 깨닫지 못할 때 깨달을 수 있도록 자극을 주시는 것입니다. 결코 파묻어 두고 악을 지닌 채 천국에로 들어오게 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를 아는 백성들은 환란난에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원망하기 전에 나를 일깨우려 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사람과 다투거나 보복을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선언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할 것입니다. 깨닫는 자녀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절묘한 사랑의 섭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 화가 변하여 복이 되는 전화위복과 역전승의 감격을 맛보게 될 것입니. 환란 가운데서 자신을 돌아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외삼촌 라반에게 항의하여 야곱은 그가 연모하던 여인 라헬을 얻게 되었습니다만 라반의 의도하던 바대로 라헬의 언니 레아까지 아내로 삼아 생각지도 않게 두 아내와 함께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 라반의 계교 때문에 다시 7년간을 머슴살이해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한 여자를 위14년간을 머슴살이하는 야곱을 보면 팔불출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만 짝 맞추기 어려웠을 뿐 아니라 남의 고장에 와서 머슴살이하는 나그네의 신세이니 그랬을 것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혹간 우리 남신도 가운데서는 이 말을 듣는 순간에 '! 나도 한번 그런 신세가 되어봤으면 좋겠다.'라고 할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게 그리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본문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야곱은 생각해 보면 원하지도 않던 레아 때문에 7년간의 머슴살이를 했으므로 준 것도 없이 밉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레아를 의무적으로 대하고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사랑받지 못하는 여인 레아를 불쌍히 여기시고 당신께서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가물에 콩 나듯 한 번이 들러주는 잠자리에서도 잉태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연속하여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네 아들을 낳았습니다. 레아는 29:31 이하에서 보는 데로 아들들의 이름에 사랑받지 못한 여인의 간절한 여망을 담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여 르우벤이라 하였고 여호와께서 나의 총이 없음을 들으셨도 다하며 시므온이라 이름 지었고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를 연합하리로다 하여 레위라 하였고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며 유다라고 이름 지었으니 야곱이 사랑하지도 않던 여인 레아를 통하여 아브라함과 이삭의 대를 이어 축복하신 만민이 축복받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약속을 이을 영적인 장자 유다가 태어난 것입니다. 이 유다 지파에서 다윗이 왕통이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는 바로 이 유다지파에 속한 것입니다.

남신도 중에서 혹시 내가 다른 여인과 결혼했다면 더 행복했을 텐데 내가 왜 그 여자와 결혼했을까 후회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후회하는 여자, 여러분의 아내를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의 계획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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