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히.헬라어 주석 강해

[출애굽기 10장 히브리어 강해] 애굽의 아홉째 흑암 재앙(출 10:21-29)

르호봇 2022. 9. 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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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의 아홉째 흑암 재앙(출 10:21-29)

 

하나님은 애굽에 아홉째 흑암 재앙을 내린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 하나님은 장자 재앙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할 수 있게 하셨다. 원죄에서의 해방을 의미한다. 바로 왕의 노예 생활에서 자유를 누리게 된다.

 

21절  바요메르 아도나이 엘 모세 니테 야디카 알 하샤마임 비히 호세크 알 에레츠 미츠라임 비야메쉬 호세크

성 경: [출20:21]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아홉번째 재앙-흑암]

󰃨 흑암이 있게 하라 - 아홉 번째 재앙은 흑암 재앙이었다. 이 재앙 역시 지금까지의 모든 재앙들과 마찬가지로 자연 현상을 통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이적이었다. 즉 흑암 재앙은 그 지방의 계절풍으로서 캄신(Khamsin-일명 '사막의 바람'으로 몹시 뜨거운 남풍)이라고 불리는 폭풍과 그리고 일식(日蝕)을 동반해 내려진 재앙인 듯하다. 이 폭풍은 보통 춘분을 전후해서 2-3일 동안 계속 부는 것이 관례인데 먼지와 가는 모래만이 온통 공중을 뒤덮고 있기 때문에 마치 검은 휘장을 하늘에 깔아 놓은 것과 같다(Lange), 따라서 태양빛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도무지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만이 온 지면을 덮을 뿐이었다. 따라서 이 바람이 지나고 나면 지면의 형태가 완전히 바뀜으로써 많은 혼란을 초래한다. 한편 거친 폭풍우와 칙칙한 습기로 인해 집안에 있는 불빛까지 꺼지게 되므로 사람들은 단지 깊은 골방에서 공포에 떨며 폭풍이 가라앉을 때까지 숨어 있어야 했다. 그러므로 이것은 곧 뒤따라 올 죽음의 밤을 예견케 하는 전조적 재앙이었다. 동시에 이 흑암 재앙은 애굽이 자랑하는 모든 신과 사상과 철학을 송두리째 흑암 속에 묻어버림으로써, 여호와만이 홀로 온 세상의 주관자 되심을 명백히 선포한 계시적 측면을 지니기도 한다. 분명 이 흑암 재앙은 3가지 측면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초자연적인 이적 사건이다. 첫째, 일부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 애굽에 미쳤다는 점. 둘째,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이 거주하는 곳에만 재앙이 미치지 않았다는 점. 셋째, 유사 이래 이만한 재앙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는 점 등이다.

󰃨 더듬을 만한 흑암(헤메쉬 호쉐크) - 직역하면 '충분히 느껴질 만큼 두꺼운 흑암', '붙잡아 느낄만할 흑암'으로서 어두움의 상태가 극에 달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는 자연 현상적인 어두움을 뛰어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재앙으로 내리신 절대적인 어두움을 가리킨다. 동시에 이 표현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마치 눈먼 소경처럼 더듬거리는 사람들의 모습도 연상시킨다. 그러므로 이는 영적인 어두움이 극에 달한 애굽인들의 심령 상태를 가시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22절 바예트 모세 에트 야도 알 하샤마임 바이히 호세크 아펠라 비콜 에레츠 미츠라임 쉴로세트 야밈

성 경: [출10:22]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아홉번째 재앙-흑암]

󰃨 캄캄한 흑암(호쉐크 아펠라) - '호쉐크'와 '아펠라'는 동의어로서 '어두움', '흑암'이란 뜻을 동시에 지닌다. 히브리어에서 동일한 두 단어 혹은 동의어를 결합시키면 그 의미를 아주 강하게 하는 효과를 준다. 따라서 이 구절은 극히 어두운 상태를 뜻한다. 이런 측면에서 KJV, RSV, 공동 번역은 모두 '짙은 어두움'(thick darkness)으로 번역하였다.

󰃨 삼일 동안 - 애굽 궁중에서는 매일 아침 솟아오르는 태양을 향하여 북을 치고 노래 부르며 경배 제사를 드렸다고 한다<32:1-6강해, 애굽의 종교>. 이러한 행위는 곧 태양이 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전능한 신(神) 임을 고백하는 것인 동시에 하루의 생활을 인도해 주실 것에 대한 기원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만일 제사를 소홀히 한다거나,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 날(구름으로 인해)이 발생할 경우 그들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태양신(Sun- god)은 그들 운명의 열쇠였다. 그러나 칠흑 같은 흑암이 33일 동안 애굽 전역에 계속됨으로써, 그들이 최고의 주신(主神)으로 숭상했던 태양신 ''(Ra)의 허구성이 여실히 파헤쳐졌으며, 반면에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 홀로 역사와 자연의 실질적인 주인이심이 확연히 드러났다.

23절 로 라우 이쉬 에트 아히브 비로 카무 이쉬 미타히타이브 쉴로세트 야밈 우리콜 비네 이스라엘 하야 오르 비모쉬보탐

성 경: [출10:23]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아홉번째 재앙-흑암]

󰃨 사람 사람이 서로 볼 수 없으며 - 흑암이 극심했음을 말해 주는 시적 표현이다.

󰃨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 처소로 번역된 히브리어 '모샤브''앉다', '거하다'를 뜻하는 '야샤브'에서 유래한 말로 곧 '자리', '거하는 곳'을 뜻한다. 그리고 '일어서다'로 번역된 '''일어서다', '서다'를 뜻한다. 그러나 문맥상으로 볼 때 이 구절의 뜻은 누워있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기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움직이거나 활동하지도 못하는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보는 편이 좋다. 따라서 공동 번역 '제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했으나'로 번역하였다.

󰃨 광명(오르) - '조명', '발광체', '' 등의 뜻으로 고센 지역에는 어두움의 흔적조차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애굽의 흑암을 조소하듯이 찬란한 해가 온누리에 비취고 있었음을 가리킨다. 따라서 헹스텐베르그(Hengstenberg)가 지적했듯이, 여기서 애굽의 흑암은 하나님의 진노를(16 : 10), 이스라엘의 광명은 그의 은총을 각기 상징한다(5:8).

24절 바이크라 파르오 엘 모세 바요메르 리쿠 이비두 에트 아도나이 라크 초니켐 우비카리켐 이차그 감 타피켐 옐레크 임마켐

성 경: [출10:24]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바로의 두번째 타협안]

󰃨 머물러 두고(야차그) - '두다', '공탁하다'는 뜻으로서, 돌아오겠다는 담보로 가축을 두고 갈 것을 의미한다. 양과 소를 귀중한 재산으로 여겼던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위의 말은 맨몸으로 떠나라는 의미와 같다. 결국 바로는 아무런 생계 대책 없이 떠날 테면 떠나 보라는 식의 얄팍한 계산에 따라 출애굽을 허락했던 것이다. 더욱이 그의 말은 여호와께 드릴 희생 제물마저 가져갈 수 없다는 의미로서 이스라엘의 출애굽 목적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발언이었다.

25절 바요메르 모세 감 아타 티텐 비야데누 지바힘 비올로트 비아시누 라아도나이 엘로헤누

성 경: [출10:25]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바로의 두번째 다협안]

󰃨 왕이라도... 주어야 하겠고 - 제물도 없이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라는 바로의 모순된 제안에, 모세는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 야훼께 드릴 제물과 번제물을 당신이 손수 마련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공동 번역)라고 반문함으로써, 바로의 간교한 술책을 일축해 버렸던 것이다.

26절 비감 미키네누 옐레크 임마누 로 티샤에르 파르사 키 미메누 니카흐 라아보드 에트 아도나이 엘로헤누 바아나흐누 로 네다 마 나아보드 에트 아도나이 아드 보에누 샤마

성 경: [출10:26]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바로의 두번째 타협안]

󰃨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 - 출애굽 운동의 궁극적 목적은 처음부터 여호와를 섬기는 데 있었다(3 : 12 ; 5 : 1 ; 7 : 16 ; 8 : 1 ; 9 : 1). 즉 하나님께 구속받은 백성이 하나님께 감사와 기쁨의 제사를 드리는 것, 이것이 바로 출애굽 운동의 요점이었다. 가시적인 예배나 모든 삶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그를 영화롭게 하는 데로 귀결된다. 오늘날 구원받은 성도들, 즉 영적 이스라엘의 최종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음을 늘 명심하자(고전 10:31).

󰃨 거기 - 출애굽에 대해 첫 약속이 주어졌던 시내 산을 가리킨다(3:12).

󰃨 알지 못함이니이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까지 하나님께로부터 제사 제도에 관한 지시(1-7)를 받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짐승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할지 알지 못했다. 이처럼 하나님의 계시에 의존하여 하나님의 규례대로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 다른 이방 종교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기독교의 특징이다. 한편 나아가 본절의 내면적인 의미는 가축 한 마리도 애굽에 남겨둠이 없이 다 가져가야 되겠다는 뜻을 다시 한번 완곡한 어조로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28절 바요메르 로 파르오 레크메알라이 히샤메르 리카 엘 토세프 리오트 파나이 키 비욤 리오티카 파나이 타무트

성 경: [출10:28]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바로의 두번째 타협안]

󰃨 나를 떠나가고... 삼가... 보지 말라 - 이는 일말의 겸손이나 회개라곤 전혀 찾을 길 없는 바로의 마지막 항거이자 추악한 몸부림이다. 그는 3중 명령(떠나가라, 삼가라, 보지 말라)을 통해 자신의 어리석은 고집과 그에 따른 멸망을 자기 스스로 확증하고 말았다. 즉 바로는 자신의 강퍅함으로 말미암아 아홉 번째 회개의 기회마저 상실하였던 것이다. 실로 보이는 현실적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비록 보이지는 않으나 인간에게 더욱 중요한 말씀에 대한 순종과 성실성이 없는 자는 마침내 자멸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29절 바요메르 모세 켄 디바리타 로 오시프 오드 리오트 파네카

성 경: [출10:29]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바로의 두번째 타협안]

󰃨 왕의 말씀이 옳으니이다 - 이 말은 돌이킬 수 없는 바로의 완악함에 대해 하나님의 전권 대사 모세가 그 권위로 바로에게 단호히 선포하는 결별 선언이다. 따라서 이는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이제 끝났습니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 다시는 왕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바로의 면전에서 계속 머무르면서 마지막 재앙에 대한 무서운 경고를 하게 된다(11 : 4). 반면 이것은 바로에게 주어진 회개에의 마지막 처절한 기회이기도 하다. 이로 볼 때 악인이 멸망받는 것은 회개할 기회가 모자라기 때문이 아니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도 아니다. 오직 자기 죄에 대한 억척스러운 고집 바로 그것 때문이다.

[히브리서 4장 헬라어 강해설교] 검보다 예리한 하나님 말씀(히 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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