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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히브리어 설교] “욥의 딸 여미마, 긋시아, 게렌합북 축복”(욥 42:10-16)

르호봇 2021. 5. 2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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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욥기 히브리어 설교 중에서 욥의 딸 여미마, 긋시아, 게렌합북 축복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욥은 아브라함과 같은 동시대의 족장시대에 있었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깨달아야 할 것은 욥은 선택받은 사람인데 성화적 삶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아직 구원받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욥은 나중에 42장에 갔을 때 주님을 귀로만 들었는데 이제는 직접 본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았다고 자부하면서 자랑했지만 하나님께서 질문했을 때 아무것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욥을 통해서 경건하게 사는 것은 좋지만 그것을 자랑하거나 구원의 확신도 없이 경건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욥을 구원시키기 위해서 사탄의 시험을 허용하셨습니다. 사탄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시험할 수가 없습니다. 욥은 사탄의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제대로 깨달았고 하나님이 욥을 끝까지 지키고 보호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욥이 고난을 이겼기 때문에 갑절의 복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 구원받지 못한 경건의 삶에서 돌아서서 구원받은 복음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갑절의 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고난을 이겨내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얼마든지 합니다. 고난을 이겼다고 해서 하나님이 갑절의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적인 눈을 열여서 복음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봄으로써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구원받았으니 욥처럼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먼저는 구원받는 것이 우선이고 그다음은 경건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구원받았으니 하나님 앞에서 경건의 삶을 살아가므로 갑절의 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욥의 딸 여미마, 긋시아, 게렌합북 축복”(욥 42:10-16)

 

우리가 욥기를 대할 때 의인도 고난을 받게 되는 것일까?라는 질문입니다. 욥은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었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욥에게 어려움이 닥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욥처럼 세상에서 부정하지 않고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하는데 문제가 생길 때가 있습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일도 잘 풀리고 돈도 많이 버는데 나는 왜 이렇게 하는 일마다 되지 않고 고난이 오는 것일까?라는 질문이 나오게 됩니다. 욥기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주고 있는 책입니다. 욥이 말년에 갑절의 복을 받게 되는데 사람들은 육적인 갑절의 복만 생각합니다. 욥은 육적인 축복을 받아서 갑절의 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고난을 이겼다고 해서 하나님이 갑절의 복을 허락해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 시간 우리는 욥이 받은 갑절의 복을 받아야 하는데 이 복이 어떤 복인지를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욥의 첫 번째 복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입니다.

1절 이쉬 하야 베에레츠 우츠 이요브 쉐모 베하야 하이쉬 하후 탐 베야샤르 비레 엘로힘 베사르 메라

1:1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욥은 우스 땅에서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으면서 살았던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온전했다는 것은 부정함이 없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욥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부정하게 살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정직했다는 것은 곧은 길로 걸어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생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는 신앙을 가지고 올바르게 살았던 사람임을 말합니다. 욥의 신앙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악에서 떠난 사람인데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았던 사람을 말합니다. 욥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의인이었습니다. 그럼 어떤 의인이었을까요? 겉 사람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의인이었음을 말합니다. 성화적 구원을 이루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가서 성화 구원만 이루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보기에 거룩하고 흠 없이 살아가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성화적 의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성화적 의인에게도 축복해 주십니다.

3절 바예히 미크네후 쉬브아트 알페 촌 우쉐로쎄트 알페 게말림 바하메쉬 메오트 체메드 바카르 바하메쉬 메오트 아토노트 바아부다 라바 메오드 바예히 하이쉬 하후 가돌 미콜 베네 케뎀

1:3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마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

욥이 소유한 것을 보면 양이 7천 마리 낙타가 3천 마리 소가 5백 마리 암나귀가 5백 마리이며 종도 많았습니다. 욥의 신앙을 보면 처음에는 성화적 의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거룩하게 살려고 하니 하나님이 육적인 축복을 허락해주고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사람도 성화적 의인의 삶을 살아가면 하나님이 육적인 복은 주십니다. 그러나 성화적 의인의 복은 완전한 복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사라질 수 있는 복이기 때문입니다.

5절 바예히 키 히키푸 예메 하메쉐테 바이쉘라흐 이요브 바예카드솀 베히쉐킴 바보케르 베헤엘라 올로트 미세파르 쿨람 키 아마르 이요브 울라이 호트우 바나이 우베라쿠 엘로힘 빌바밤 카카 야아세 이요브 콜 하야밈

1:5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은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주변 사람들의 죄를 위해서 제사를 드립니다. 욥이 제사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고대 근동의 족장 시대를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욥은 아들들의 죄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고 있습니다. 지금으로 보면 매일같이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리게 했던 것입니다. 성화적 의인은 겉 사람의 죄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살려고 하니 하나님이 복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화적 의인의 복은 완전한 복이 아닙니다. 겉 사람은 깨끗하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속사람은 깨끗하지 않기 때문에 구원의 복은 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겉 사람의 복만 받는 것도 완전한 복이 아닙니다. 속사람의 복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겉 사람의 복만 받으면 욥의 첫 신앙과 같은 복입니다. 욥의 첫 신앙의 태도가 하나님 앞에서 어떠했을까요?

1절 아하레 켄 파타흐 이요브 에트 피후 바예칼렐 에트 요모

3:1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열어 저주하니라

 

욥이 사탄의 시험을 받고 자신의 재산과 자식과 종들과 아내가 사라지고 자신의 몸에 악창이 나서 고통을 당할 때 욥이 입을 열어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고 있습니다. 성화적 의인은 이 세상의 시험과 고통이 닥치면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저주했다는 것은 칼랄(7043 CW.VPIMZS 와우접속사. 동사, 피엘,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하찮다, 보잘것없다, 가볍다) ‘칼랄이 말하는 저주는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보잘것없이 생각하고 하찮게 깔보는 것을 말합니다. 성화적 의인이었던 욥이 인생이 잘 풀리고 부자였을 때는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산다고 했는데 모든 재산이 사라지고 망하고 난 후에 자신의 몸에 악창이 나니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생일을 완전히 부인하고 자신의 생명조차 하찮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화적 의인의 복은 완전한 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피엘 강조 능동을 사용했다는 것은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면서 아주 싫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신앙생활하면서 성화적 의인의 복을 받으려고 노력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겉으로 깨끗하고 흠 없게 살려고 하며 열심히 예배의 제단을 쌓으면서 삽니다. 세상에서 욥처럼 큰 재산을 모으고 가정이 화평하고 자녀들이 잘되는 복을 받아 누리면서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속사람의 구원적 의인의 복은 받지 못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한편으로 쏠린 복만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온전한 구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구원은 구원과 성화가 함께 가는 구원의 복을 원하고 있습니다. 욥이 현재 닥치고 있는 고난은 욥에게 유익을 주기 위한 고난입니다. 지금은 이유 없이 고난이 닥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느니라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욥과 같은 시련의 시기를 겪을 수 있습니다. 현재 육신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는 복이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고난을 주신 이유는 장차 나타날 영광의 복을 주시려고 고난을 주셨습니다. 욥이 성화적 의인에서 복음적 의인으로 돌아선 계기가 무엇입니까? 복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했는데 (8254, 샤칼)  무게를 달다, 무게를 달아주다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내세의 것과는 무게를 달아 줄 수도 없는 엄청난 복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을 믿으면서 당하는 고난은 장차 천국에 엄청난 축복의 상급으로 받게 됩니다. 무게로도 잴 수가 없습니다.

5절 레셰마 오젠 쉐마에티카 베아타 에니 라아트카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은 성화적 의인의 삶에서 복음적 의인의 삶으로 바뀌게 됩니다. 욥이 열심히 거룩하고 흠 없는 삶을 살았지만 완전한 구원이 아닙니다. 겉 사람만 구원받은 성화적 구원입니다. 이렇게 인생을 살다 보니 고난이 찾아오니 하나님을 원망하고 생일을 저주하게 됩니다. 내가 열심히 교회에 나오고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봉사하고 헌신했는데 왜 나에게 하필 이런 고난의 시련을 주시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욥은 하나님을 귀로만 듣고 있었습니다. 성화적 의인은 하나님을 막연하게 생각하고 귀로만 듣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복음적 의인은 하나님을 이제 눈으로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삶에서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막연한 하나님에서 구원을 체험하는 신앙으로 바뀌었습니다.

고전 13: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우리의 신앙도 성화적 믿음에서 복음적 믿음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성화적 믿음의 의인은 주님을 볼 때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합니다. 욥이 이런 신앙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귀로만 듣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주님을 보는데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보니 확실히 주님을 알게 됩니다. 내가 성경을 부분적으로 알고 깨닫지 못했지만 성경을 온전히 알게 되니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욥의 신앙을 바꾸어 주시기 위해서 고난을 주셨던 것입니다. 나에게 왜 고난이 올까요? 성화적 의인에서 복음적 의인으로 바꾸어 주셔서 갑절의 복을 주시려고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유 없는 고난은 없습니다. 원인 없는 결과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모두가 이유가 있습니다. 단지 사람이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6절 알 켄 에므아스 베니하메티 알 아파르 바에페르

42: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욥이 성화적 믿음에 있을 때는 매일같이 번제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회개를 했습니다. 성화적 믿음은 매일 같이 회개를 해야 합니다. 겉 사람은 항상 하나님께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욥의 신앙은 겉 사람이 깨끗해지는 성화 구원을 이룬 것입니다. 속사람의 구원은 아직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눈으로 목격하고 체험하면서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고 있습니다. 이 회개는 속사람이 단회적으로 회개하는 복음적 믿음 안에서의 회개입니다. 속사람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복음이 필요합니다. 복음이 없으면 절대 속사람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욥이 성화적 의인에 있을 때는 하나님이 대면하여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복음적 의인이 되게 하려고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셔서 복음을 통해서 의인되게 해 주셨습니다. 욥이 받은 갑절의 복이 무엇일까요?

10절 바아도나이 솨브 에트 쉐비트 이요브 베히트팔렐로 베아드 레에후 바요세프 아도나이 에트 콜 아쎄르 레이요브 레미쉐네

42: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우리가 욥이 받은 갑절의 축복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육체의 고난을 이겨냈더니 하나님이 갑절로 복을 주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욥이 갑절의 복을 받은 것은 온전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구원이 무엇입니까? 속사람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속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복음적 의인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겉 사람이 받는 성화적 의인이 되게 합니다. 성화적 의인에 있을 때 받았던 모든 재산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복음적 의인이 된 후에 성화적 의인의 삶을 살아가니 갑절의 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에게는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겉 사람만 구원받는 것도 온전한 구원이 아니고 속사람만 구원받는 것도 온전한 구원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속 사람이 먼저 구원을 받게 하시고 성화 구원을 주셔서 갑절의 복을 허락해주시는 것입니다.

11절 바야보우 엘라이브 콜 에하이브 베콜 아흐요타이브 베콜 요드아이브 레파님 바요켈루 임모 레헴 베베이토 바야누두 로 바예나하무 오토 알 콜 하라아 아쎄르 헤비 아도나이 알라이브 바이트누 로 이쉬 케시타 에하트 베이쉬 네젬 자하브 에하드

42:11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이들이 다 와서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주었더라

 

욥이 복음적 의인이 되니 성화적 의인의 삶이 더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고난이 있을 때는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사람이 오지도 않았습니다. 이제 하나님께 영육으로 복을 받으니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우리도 고난을 받을 때는 주변의 사람들이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욕하면서 돌아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큰 복을 받고 나면 사람들이 몰려오게 됩니다. 친척들도 몰려와서 도움을 받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육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7: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우리에게 마지막 때가 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셔서 나의 눈에 흘렸던 모든 눈물을 씻겨 주시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이 성화적 의인의 삶을 살고 있다면 복음적 의인의 삶으로 바뀌어지면 갑절의 복을 받게 됩니다. 영혼은 영원한 구원을 받게 되고 겉 사람은 성화 구원을 이루면서 하나님께 영광된 삶을 살게 됩니다. 주님이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신다고 했는데 피엘 강조 능동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떠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계속해서 생명수 샘들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반드시 저와 여러분들을 천국의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십니다.

12절 바아도나이 베라크 에트 아하리트 이요브 메레쉬토 바예히 로 아르바아 아사르 엘레프 촌 베셰쎄트 알라핌 게말림 베엘레프 체메드 바카르 베엘레프 아토노트

42:12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욥이 복음적 의인이 되고 나니 하나님이 욥의 말년에 복을 주셨는데 처음 성화적 의인의 복보다 더 큰 복을 주셨습니다. 육적인 재산도 두 배로 주셨습니다. 욥이 속사람이 구원받고 난 후에는 성화 구원을 더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속사람이 받는 구원은 단회적 구원이지만 겉 사람이 받는 성화 구원은 반복적입니다. 복음을 깨닫고 난 후에는 욥이 처음 성화적 의인 때보다 더 열심히 주님을 섬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속사람이 구원받고 난 후에 성화 구원의 삶을 열심히 살면 하나님은 갑절의 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영혼만 구원받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화의 삶을 반드시 살아갈 때 갑절의 복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과 행위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욥이 갑절의 복을 받았는데 어떤 복을 받았는지 딸들의 이름을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4절 바이크라 솀 하아하트 예미마 베솀 하셰니트 케치아 베솀 하쉘리쉬트 케렌하푸크

42:14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니

 

첫째 딸의 이름은 여미마입니다. 예미마(3224) 비둘기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비둘기는 정조의 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욥이 첫째 딸을 여미마라고 이름을 지은 것은 이제부터 나는 하나님께 정조의 삶을 살겠다는 의미입니다. 욥은 성화적 의인으로 있을 때 정조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고난이 오니 자신의 생일을 저주했고 계속해서 자신은 의로운데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느냐고 하나님께 원망 불평했습니다. 복음적 의인이 되니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도 비둘기처럼 정조를 지키면서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욥의 다짐을 말합니다.

둘째 딸은 긋시아입니다. 케치아(7103) 계피라는 뜻입니다. 계피는 성소에서 사용하던 향 기름을 만들 때 사용하던 것입니다. 더러운 냄새를 잡고 성소에 향기로운 냄새가 나게 만들었습니다. 욥이 지금까지 성화적 의인의 삶에서는 온전한 향기를 하나님께 내지 못했습니다. 환경과 상황에 휘둘리면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복음적 의인이 되었을 때는 자신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계피와 같은 향냄새를 내어 온전한 신앙이 되겠다는 다짐을 말합니다.

 

셋째 딸은 게렌합북입니다. 케렌합부크(7163) 눈꺼풀에 바르는 화장품의 뿔이라는 뜻입니다. 여자가 화장하는 화장품을 담은 통을 의미합니다. 욥이 성화적 의인에 있을 때는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보다는 사람을 의식하여 거룩하게 살려고 하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하지만 복음적 의인이 되고 난 후에는 복음을 통해서 항상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고 주님의 신부로서 화장하여 오직 주님만을 위해 성화적 삶을 살아가는 신앙으로 바뀐 것을 말합니다. 욥이 온전한 신앙의 신부가 되고 난 후에 신랑 되신 주님만을 위해서 치장하고 아름답게 꾸미면서 살아가는 신앙이 되겠다는 다짐을 말합니다. 욥은 하나님께 갑절의 복을 받고 140년을 장수하다가 복을 누리고 죽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도 하나님께 갑절의 축복을 받아 누려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먼저 속사람이 복음적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속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상황과 환경에 따라 불평을 늘어놓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먼저 속사람이 하늘로부터 거듭나서 영혼이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복음적 의인이 된 사람은 성화적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적 의인만으로는 온전한 구원이 안 됩니다. 우리가 우편 강도를 온전한 구원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고넬료가 베드로를 만나기 전의 신앙을 온전한 구원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고넬료가 온전한 신앙이 된 것은 베드로를 통해서 복음을 깨닫고 온전해졌습니다. 성화적 의인에서 복음적 의인으로 바뀌어 고넬료는 갑절의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복음적 의인이 되었으니 성화적 의인이 되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갑절의 복을 받아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강림주일 히브리어 설교] “보혜사 성령 임할 때까지”(눅24:44-49)

안녕하세요. 오늘은 성령강림 주일 히브리어 주일설교 중에서 보혜사 성령이 임할 때까지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에서 죽고 삼일 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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