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성령강림 주일 히브리어 주일설교 중에서 보혜사 성령이 임할 때까지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에서 죽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시고 제자들과 40일 동안 함께 있다고 승천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가시면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이 복음의 증인이 될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성령의 권능이 임할 때까지 예루살렘 성을 떠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성령이 임하기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찬송하면서 성전에 모이기에 힘을 썼습니다. 우리도 보혜사 성령님이 임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내 안에 성령의 충만한 은혜가 임하기를 원해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가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아 세상에 복음을 증거 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보혜사 성령이 임할 때까지”(눅 24:44-49)
예수님께서는 성경대로 오셔서 성경대로 이루시고 성경대로 오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은 특별 은총을 주시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구속의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성경을 나에게 주셨습니다. 원죄에 빠진 죄인들은 성경 속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하면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길을 성경 하나로 집합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행위로 나갈 수 있는 길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가 없이는 절대 하나님 앞에 나갈 자가 이 세상에 한 명도 없습니다. 세상의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나 큰 회사의 임직원이나 유명한 대학의 교수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죄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구속의 피가 없이는 절대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내가 세상에서 큰 회사의 임직원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만났고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엄청난 축복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복음의 능력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 복음을 깨닫고 이 복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라는 말씀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마지막으로 복음을 깨닫고 전파하라는 부탁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너희들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내 힘으로 깨닫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조명을 받아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성령으로 기록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경에 흐르는 구속의 맥을 깨닫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아 성경을 깨닫고 배우서 복음을 제대로 가르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눅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예수님은 부활하신 이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놀라고 두려워하고 있을 때에 말씀을 선포하시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말씀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한 말이 이것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재림입니다. 우리는 성경 66권을 통해서 예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듣고 선포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깨닫고 알아서 구원의 은혜를 받고자 함입니다. 내가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영적 맹인과 같습니다. 진리의 빛을 받아서 영적 맹인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유대인의 성경은 תנך(타나크)라고 합니다. 모세의 율법인 תורה(토라)이며 예언서인 נביאים(네비임)이며 성문서인 כתובים(케투빔)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구약 성경 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 모든 말씀이 예수님에게로 집대성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에 예언되신 대로 오셔서 예언되신 대로 부활하셨고 예언되신 대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과 신약에 흐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맥을 관통하여 복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축자 된 영감이기 때문에 단어 하나에도 하나님의 구속의 영감이 숨어 있습니다. 구약 성경 39권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있고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신약 성경이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편지를 쓰면서 그것이 복음이 되었고 성경이 되었습니다.
45절 토테 디에노익센 아우톤 톤 눈 투 쉬니에나이 타스 그라파스
눅 24: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구약 성경의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성경을 풀어서 해석해 주시지 않았다면 마음이 눈이 열리지 않고 영적인 눈이 열려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성경 말씀을 들을 때 영적인 눈이 열려서 영적 맹인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말씀을 전파해야 하고 들어야 합니다.
‘열어’라는 단어는 (디아노이고 1272 VIAAS3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단수, 3인칭) 열리다, 설명하다, 해석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δια(디아 1223) ~을 통하여, ~ 때문에, 라는 뜻과 ανοιγω(아노이고 455) 열리다, 밝아지다, 펴놓다,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해주시고 있습니다.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는 것은 성경의 말씀을 해석하여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제자들은 구속의 눈이 열렸습니다. 빛 되시는 예수님을 깨닫게 되었고 눈이 밝아진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성경이 열리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복음의 말씀이 펴 놓여 있습니다. 이 복음을 깨닫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알 수가 있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확신하고 믿어질 때에 구속의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눈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신 일이 실제로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현재 복음의 눈이 열린 것은 주님께서 열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선택받은 자들에게 주님께서 복음의 눈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도 말씀을 들으면서 복음을 깨닫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눈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직설법을 사용했다는 것은 실제로 눈이 열렸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과거 시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창세전에 선택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영적인 눈을 열어주셔서 주님을 믿고 볼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주님의 은혜입니다.
눅24: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고난을’이라는 단어는 (아나 6031 VUIMZS 동사, 푸알,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고난당하다, 욕보이다, 괴로움을 받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고난을 받았다고 직접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욕보임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이 고난은 사람으로서는 절대 이겨내기 힘든 모욕과 수치를 당하셨고 괴롭힘을 당하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푸알 강조 수동으로 고난을 당하셨으며 미완료로 계속해서 이 고난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엄청난 모욕감과 수치가 십자가에서 있었습니다. 이것은 나를 위한 수치이며 괴롭힘을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외부의 압박감과 고통과 괴로움과 심적인 중압감에 휩싸였습니다. 이런 고난을 받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는 우리도 주님의 고난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미완료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주님을 믿을 때 고난도 함께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받고’(가자르 1504 VNAMZS 동사, 닢알, 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자르다, 가르다, 끊어버리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신 것은 몸이 절단되는 듯한 고통과 괴로움에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신 이유는 나의 원죄를 완전하게 끊어버리기 위해서 수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죄악의 끈을 끊어버리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원죄의 죽음의 사슬을 스스로 끊어버릴 자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십자가에 오르셔서 나의 원죄를 잘라 주셨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잘라주시고 생명으로 옮겨주신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은 것은 수동태입니다. 우리의 죄가 완전히 끊어지는 것도 수동태입니다. 능동태로 스스로 끊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율법을 지켜서 우리가 능동으로 구원받을 수가 있을까요? 전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나의 원죄와 자 범죄를 끊어주셨기 때문에 나의 죄가 사라진 것입니다.
구원받은 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심으로 나의 원죄를 끊어주셨기 때문에 살아난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공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읽으면서 이것을 깨닫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바로 나의 죄를 잘라버리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다시 이 땅에 나를 데리러 오신 주님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눅 24: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예수님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라는 단어는 (예루살라임 3389) 예루살렘이며 이 단어는 ירואל(예루엘 3385) ‘하나님께서 세우신’을 의미하며 שלם(샬람 7999) 완전하다, 완성하다, 온전하다,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골고다 십자가에 세우시고 구속을 완성하셨으며 온전하신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평화의 터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평화의 복음을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시작하여’라는 단어는 (할랄 2490 VHNA 동사, 히필, 부정사 절대형) 꿰뚫다, 꿰찌르다, 더럽히다, 시작하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된 주님의 고난의 복음이 모든 이방 민족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원죄에 빠진 자들을 위해 옆구리에 창을 찔림 받았습니다. 나를 대신하여 수치를 당하시고 더럽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의로운 분인데 나의 부정하고 추악한 죄 때문에 이렇게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예루살렘의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대 못에 꿰뚫림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 고난의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될 것을 주님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이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의 이방민족들에게 전파하여 은혜의 해를 선포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원죄의 노예에서 해방시킬 구원자라는 것을 전해야 합니다. 이미 구약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실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구약을 읽을 때에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복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깨달아지지 않으면 우리는 율법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가 임하게 되면 담대히 복음을 전파하게 됩니다.
고후3:14-15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우리가 구약을 읽을 때에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이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없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 안에 매여 있으면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마음을 덮어서 주님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완고하다고 했는데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마음을 올바르게 먹으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그들에게 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구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의 은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구약을 읽을 때 수건이 벗겨지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것도 푸알(강조수동)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수건이 눈을 완전히 가려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율법주의 신앙을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율법의 수건이 눈을 가렸기 때문에 구원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율법의 수건을 모두 벗겨주셨기 때문에 진리의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율법의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고 했는데 호팔(사역수동)을 사용했습니다. 미완료 시제를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은 율법의 수건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 지명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선택받은 백성은 율법의 수건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라진다는 말입니다. 미완료이니 다시 율법주의 신앙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눅 24: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증인은 직접 사건을 목격한 사람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직접 목격한 자들입니다. 구원의 복음을 체험한 것입니다.
‘증인이라’이라는 단어는 (에드 5707) 증인, 이라는 뜻이며 עוד(우드 5749) 증언하다, 반복하다, 권고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또한 헬라어로 증인은 μαρτυς(마르튀스 3144) 증인, 순교자,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복음의 증인이 되어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증인의 삶은 실제로 내가 본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백성들에게 복음으로 권면하여 죄악에서 의로 돌아오게 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복음을 전파하다가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증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것도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들도 이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계속해서 선포해야 합니다.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내가 체험하고 만나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확신도 없이 전하는 것은 위증입니다.
눅 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깨닫고 선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모여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고 난 후에 퍼져나가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도 떠나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야고보를 순교하게 하셔서 각 지역으로 퍼져나가게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먼저는 성령으로 덧입혀져야 합니다. 그리고 때가 되매 하나님께서 세상으로 나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강림절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때까지 열심히 예루살렘 성에 머물러 계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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