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구약성경 말씀

[열왕기상 18장 성경말씀] 영적 예배를 회복하라(왕상 18:20-24)

르호봇 2022. 5. 1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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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8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타락하여 하나님께서 비와 이슬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엘리야의 말씀을 통해서 가뭄이 들었습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와 바알 제사장들이 한 판 대결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우리도 영적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정욕만을 따라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영적 예배를 회복하라(왕상 18:20-24)

 

들어가는 말

 

할렐루야!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예배를 회복하라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서 예배가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배는 무엇입니까? 예배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표시입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배를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표식이 있어야 합니다. 말로만 사랑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온전한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생각만으로 사랑한다고 한다면 그것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는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바로 헌신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게끔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타락되면서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찾지 않은 것입니다. 인간이 영적으로 회복되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만나 주시고 예배를 통해서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라고 하는 땅에 가십니다.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이 여인은 죄가 많은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은 날씨가 더워서 정오에 물을 뜨러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정오에 다른 사람이 없는 시간을 택하여 나온 것입니다. 남편이 여섯이나 있던 여자였습니다. 다른 사람 앞에 도저히 부끄러워서 나올 수 없어서 사람이 없는 시간을 택하여 나왔는데 그때에 예수님은 우물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여인은 예배에 대해서 말합니다.

 

(4:20-21)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사마리아인들은 북이스라엘로 올라가면서 그리심산이라는 곳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곳에 우상을 만들어 놓고 예배를 드렸던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공식화되었기 때문에 북이스라엘에 있었던 사람들은 이곳이 정통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남쪽 유다에 있었던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남쪽에 유다 백성들은 예루살렘이 정통이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은 헷갈린 것입니다. 정말 어느 것이 진짜 참 예배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그런데 예수님은 참 예배를 드리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럼 영과 진리는 무엇입니까? 바로 성령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예배에는 이 두 가지가 있어야 참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있고 복음이 없으면 안 되고, 복음은 있는데 성령의 역사가 없어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참 예배를 드리는 자들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남들이 오지 않은 시간에 물을 길어 왔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사람이 생각지 못한 시간에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배를 회복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결단을 해야 합니다.

 

예배는 결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에는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의 신과 하나님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전혀 무시하고 바알의 신들을 섬기는 우상숭배가 만연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스라엘 땅에 하나님께서 가뭄이라고 하는 심판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가 끊어지면 가뭄이 오는 것입니다. 어떤 가뭄입니까? 영적인 가뭄이 오는 것입니다. 은혜의 단비가 사라지게 됩니다. 목마름이 있는 것입니다. 물을 마시려고 해도 전혀 먹을 수가 없습니다. 답답함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목마른 자가 물을 마시지 못한다면 죽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결단을 해야 합니다.

 

(왕상 18: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오늘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결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언제까지 하나님과 우상 사이에서 머뭇거리겠느냐! 라고 단호하게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여호와가 너의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을 따르고 바알이 하나님이라면 바알을 따라라 그런데 백성들은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판단이 흐려진 것입니다. 하나님도 섬기지 못하고 바알도 섬기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판단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우리도 세상과 주님 사이에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의 부귀영화의 우상과 예수님 사이에서 머뭇거리면서 우왕좌왕하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확고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신앙은 중립적인 것은 없습니다.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재물이 얼마나 크면 하나님과 같은 동격으로 놓고 비교를 하고 있겠습니까? 인간에게 재물은 우상의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2. 새로운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무너진 제단을 새롭게 쌓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않아 제단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던 제단들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왕상 18:30-31)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엘리야가 돌 열두 개를 취하니 이 야곱은 옛적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엘리야는 무너졌던 여호와의 제단을 다시 쌓았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는 12개의 돌을 쌓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회복할 때에 기뻐하십니다. 예배를 통하여 영광 받으시고, 예배를 통하여 말씀을 하시고, 예배를 통하여 주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떠한 제단을 쌓아야 합니까?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의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동물로 제단을 쌓았지만 신약은 우리가 직접 거룩한 산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는 거룩하게 살려고 해야 합니다.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려고 해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무너뜨린 마음의 제단을 다시 새롭게 쌓아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사람이 상대방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기억하기 때문에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친근한 사람을 부르는 것입니다. 이름도 모르고 친하지 않으면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부르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생활을 하실 때에 아니면 차를 타실 때에 옆에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부를 수 있습니까?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부르지 못합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옆에 있는 사람의 이름을 알 수가 없고 만약에 이름을 안다고 해도 친하지 않으면 이름을 부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항상 생활을 같이 하고 친근하며 편안합니다. 그러면 이름을 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예수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친근하지 않으면 주의 이름을 부를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사람들도 예수님과 하나님의 이름을 압니다. 그러나 부를 수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친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0:9-11)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을 부르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여 부르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부르시는 이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여호와의 신을 불렀을 때에 하나님은 응답으로 불을 내려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을 부르고 하나님을 부르면 성령의 불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마음의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고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나의 심령에 생수의 강이 넘쳐흐르고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나의 영혼이 새롭게 태어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만 영광이 돌려지고 예수님이 증거 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예배를 통하여 성령님의 체험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여호와의 불로 제단의 제물을 불로 태워버렸던 것처럼 우리의 마음이 제단에 더러운 죄악들을 성령의 불로 태워지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나의 추악한 모습들이 불로 태워져야 합니다. 교만, 악독, 게으름, 태만, 거짓, 더러움, 불의, 부정, 불순종, 등이 오늘 이 시간 성령의 불로 완전히 소멸되고 새롭게 태어나는 이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께로, 복음으로 돌아오시기를 결단해야 합니다. 죄악 가운데서 성령으로 돌아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해서 결단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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