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7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을 이기고 나서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우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 돌의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블레셋으로부터 승리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야 하겠습니다.
에벤에셀의 여호와 하나님(삼상 7:12-14)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주셔서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도착하면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당부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이는 신을 찾아 신앙을 헤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이었으며 통치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사사시대에는 타락이 극에 달하여 사사 말기에는 왕이 없음으로 자기들의 소견대로 행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왕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사사 엘리 시대에 말씀이 희귀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찾아보려고 해도 찾기가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왕을 왕으로 섬기지 않으니 하나님은 말씀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에 사무엘을 주셨고 사무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사 사무엘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이 풀어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나오기 전에 사무엘은 미스바 지역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 앞에 기도하겠다는 것입니다. 회개의 불을 지피기 위하여 기도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인 사사가 있어도 타락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있는 이방민족의 왕들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에게는 능력의 왕, 만왕의 왕, 평강의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계심에도 눈에 보이는 왕만 추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너무나 어리석은 신앙을 하고 있는데 사무엘이 미스바로 모이게 하여 회개를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블레셋 민족들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한다는 것을 듣고 공격해 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한 곳에 모여 있을 때에 몰살시켜버리려고 하는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사탄의 공격의 역사는 회개가 일어나고 기도할 때에 심해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탄의 공격이 심해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 번제의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블레셋 민족들을 멸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회복되고 영성이 회복되고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면 사탄은 공격하게 되어있습니다. 구원받는 것이 싫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께 기도하고 예배드리면 예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이 나오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에게서 승리하고 나서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만나고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에벤에셀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럼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진리는 무엇입니까?
첫째, 돌을 취하여 경계를 세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12절 바이카흐 쉐무엘 에벤 아하트 바야셈 벤 하미츠파 우벤 하센 바이크라 에트 쉐마흐 에벤 하아제르 바요마르 아드 헨나 아자라누 아도나이
삼상7: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사무엘은 블레셋 군대로부터 승리를 거두고 난 후에 돌을 취하게 됩니다. 이 돌을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서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와주셨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요? 사무엘이 돌을 취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돌’ (에벤 68) 돌, 보석,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바나 1129) 건축하다, 만들다, 복구시키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사무엘이 적으로부터 승리하고 난 후에 돌을 하나 집어 들었습니다. 원문에는 ‘에하드’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한 개의 돌을 집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우고 도와주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보이는 왕만 바라보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이런 신앙을 새롭게 하나님께서 건축하시고 만들어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도록 신앙을 복구시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돌은 보석과 같은 귀중한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개념에 돌은 하나님의 현현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벤’의 히브리적 의미는 힘의 근원 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시작하셔서 죄악 가운데 있던 자들을 십자가에서 사역하여 구원하시고 영원한 안식의 집에서 거주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시118:22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마21:4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시편 기자는 말씀하기를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는 돌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께서도 건축자들인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에게 버림을 받고 보잘것없는 초가집과 같은 머릿돌이 되어주셨습니다. 이들은 복을 받은 것입니다. 세상에서 미련하고 부족한 것들이 건축자가 버린 돌을 취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상에서나 환경에서나 상황에서나 영적으로 승리하고 나면 무엇을 취해야 합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재빨리 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으로 무너졌던 신앙을 바로 세우고 복구시키기 위하여 돌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자신을 높이지 않았습니다. 한 개의 돌을 취하였습니다. 우리도 유일하신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해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나타난 사무엘의 행동은 무엇입니까? 자신이 모여서 회개하라고 한 미스바와 센 중심에 이 돌을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미스바’ (미츠파 4709) 미스바,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차파 6822) 살피다, 감찰하다, 파수하다, 보살피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미스바에서 각성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살피시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회개하고 다시 여호와 신앙을 갖기로 각오하는 자들의 마음을 살피시고 감찰하시어 블레셋 민족들이 쳐들어 왔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레를 보내셨는데 이것은 큰 음성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때에 사람들이 블레셋 민족들을 두려워했던 것은 이미 신식무기를 소유하고 있고 철병거와 철 무기로 무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의 신무기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하나님은 보여주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드시 보살펴주신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돌을 세우고 난 후에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블레셋 민족들이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보살펴주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럼 우리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지경을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고 싶어도 지경이 없으면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야베스는 지경을 넓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자신의 지역을 확실하게 정해달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럼 이제 우리는 누구의 지경 안에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미스바에 돌을 세웠다는 것은 바로 도움을 구하는데 주님께 평생 간구하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주님 안에 있겠으니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보살펴주시기를 간절히 구하는 기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센’ (센 8129) 센,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샤난 8150) 연마하다, 가르치다, 날카롭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사무엘이 센의 지역 사이에 이 돌을 놓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적으로 가르쳐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과 믿음을 연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교육을 받지 않으면 영적 감각이 무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영적으로 날카로운 칼이 되어 확실한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군인이 평상시에 게을러서 칼을 갈아놓지 않으면 전쟁이 발발했을 때에 죽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열심히 칼을 갈아놓은 군인은 적을 단칼에 벨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신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율법의 말씀을 주시면서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부지런히 가르치는 단어가 ‘샤난’이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 능동형으로 가르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열심히 말씀을 가르쳐서 날카로운 칼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사탄과 싸워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럼 사무엘이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을 취하여 세운 영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세우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앞으로 블레셋과 같은 적들로부터 지켜주시고 이기게 해 주실 것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내 마음의 중심에 십자가가 있는 자들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것을 인정하고 블레셋과 같은 존재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하나님의 말씀을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씀의 교육과 훈련을 받아 날카롭게 연마하여 나의 믿음과 신앙과 영적 감각이 살아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좋은 칼일수록 많은 담금질과 불속에 들어가며 많이 두들겨 맞게 됩니다. 이것은 신앙의 훈련을 통하여 연마되고 말씀을 사모하여 들음으로 내가 하나님 앞에서 큰 칼과 같이 쓰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에벤에셀’ (에벤하에제르 72) 에벤에셀,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에벤 68) 돌, 보석, 이라는 뜻과 (에제르 5828) 도움, 호위하는 자,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사무엘은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놓고 이곳을 에벤에셀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블레셋과 같은 어려운 고통의 순간에서 건져내 주신 분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분은 나를 호위해 주시는 분이며 힘들 때에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저와 여러분 마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석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이 분만 계시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이 내 안에서 평강을 주시고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호위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히 함께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다시는 블레셋 민족들이 이스라엘 지역으로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13절 바이카니우 하펠리쉬팀 베로 야시푸 오드 라보 비게불 이스라엘 바테히 야드 아도나이 바펠리쉬팀 콜 이메 쉐무엘
삼상7:13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에벤에셀의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들을 굴복하게 만드시고 이스라엘 지역 안으로 절대 들어오지 못하도록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미스바에 세운 돌이 도움의 돌이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도와주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야샤프 3254 VQACZP 동사 칼(능동태) 완료 공성 3인칭 복수) 더하다, 증가되다, 많아지다, 라는 뜻입니다. 원문에는 있지만 번역이 안 된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민족들이 다시 더하여 계속해서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주신 것입니다. 블레셋 백성들이 아무리 강성해지고 숫자가 많아지고 신무기가 발전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막아주시니 절대 이스라엘 지역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고대 근동의 목자들은 항상 지팡이와 막대기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막대기로는 적을 물리치고 지팡이로는 양을 치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목자가 양들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면 양들은 열심히 풀을 뜯어먹으면서 한가롭게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이때에 목자는 자신의 지팡이를 한 곳에 막대기는 반대편 쪽에 두어 양들이 아무리 넓은 푸른 초장이 있다 하더라도 경계를 지어주게 됩니다. 이 경계를 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경계 밖에는 이리와 늑대들이 양들을 호심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양들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경계 안에 있기 때문에 목자가 계속해서 예의 주시하면서 양들을 보살피고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미스바의 돌은 바로 목자의 막대기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 막대기로 양을 잡아먹으려고 덤비는 자들의 머리통을 부숴버리는 것입니다. 센에 세워진 돌은 양들을 좋은 곳으로 인도하는 지팡이를 의미합니다. 지팡이는 양들을 가르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센의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르침을 받아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목자 되시는 예수님께서 나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고 마음껏 풀을 뜯어먹을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옆에 늑대가 있든지 이리가 있든지 나는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양이 할 일은 열심히 풀을 뜯어먹으면서 배고픔을 채우고 배가 부르면 평강을 누리면서 쉬는 것입니다. 양들의 습성이 배가 고프고 두려움이 찾아오면 절대 앉지 않는 습성이 있습니다. 자신을 지키는 목자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때부터 두려움을 느껴서 제대로 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진 예수 그리스도의 보석과 같은 돌이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항상 목자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어떠한 환란이 오더라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블레셋과 같은 존재들은 항상 내 옆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침범하지는 못합니다. 나의 목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보호하고 지켜주시고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목자 되신 예수님을 찬양하는 것이 양들의 몫입니다.
셋째,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땅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14절 바타쇼비나 헤아림 아세르 라키후 펠리쉬팀 메에트 이스라엘 리이스라엘 메에키론 비아드 가트 비에트 게불란 히칠 이스라엘 미야드 펠리쉬팀 바예히 샬롬 벤 이스라엘 우벤 하에모리
삼상7:14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겼던 땅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원래는 이스라엘 성읍이었는데 힘이 없어서 블레셋 민족들에게 빼앗겼던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도로 찾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지경을 확실히 정해주신 것입니다. 이곳으로는 절대 침범하지 말 것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신 땅은 에그론부터 가드까지입니다. 이것의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에그론’ (에크론 6138) 에그론,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아카르 6131) 뿌리를 뽑다, 힘줄을 자르다, 황폐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그론의 성읍을 주신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블레셋 민족의 교만과 악함을 뿌리째 뽑아버려 다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힘줄을 잘라버려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말의 힘줄을 잘라버리면 말이 힘을 쓰지 못하고 무술을 하는 사람들의 기를 막아버리면 다시는 무술을 할 수가 없는 것처럼 블레셋 민족들의 힘줄을 잘라버려 더 이상 신무기를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하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블레셋 민족들은 멸망당하여 황폐함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서 블레셋과 같은 존재들을 막아주시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뿌리를 뽑아버려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힘든 상황을 하나님은 알고 있습니다. 사탄의 역사가 아무리 강성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이 더 크기 때문에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블레셋은 이제 완전하게 소멸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드’ (가트 1661) 즙 짜는 틀,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나간 5059) 수금, 악기를 연주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드 성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즙 짜는 틀의 고통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뻐하고 악기를 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막14:32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예수님께서 감람산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에 마음이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십자가의 사역을 위해 가시는데 하나님께서는 묵묵부답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기도하던 장소가 즙 짜는 틀이라는 겟세마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고통이 없이는 절대 에그론과 가드를 회복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죄악의 고통에 있었던 자들이 하나님을 찾아 영광과 찬송을 드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우리도 죄악 가운데 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주셨던 땅을 사탄의 세력들에게 빼앗기고 살았습니다. 아담 이후로 모든 자들이 천국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올리브 산에서 기도하시면서 고통 가운데 괴로움을 당하시고 내가 천국의 기업을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땅이 회복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도움이며 주권인 것처럼 내가 구원을 받고 천국의 기업을 회복한 것도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주님의 능력이 아니면 절대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나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확실한 돌을 취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돌을 취하지 않고는 절대 도움이 올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돌을 세워서 지경을 확보해야 합니다. 내 안에 돌을 세워 영적인 지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도움을 요청하고 확실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을 세웠다는 것은 구원의 확신을 의미합니다. 나는 확실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돌을 통하여 구원받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하는 신앙의 고백을 상징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확실하게 구원받은 백성들은 블레셋과 같은 적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도와주시고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구원의 확신이 있다면 이제부터 두려운 신앙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평강의 주님이 나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면 하나님께서 천국을 기업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을 기업으로 받는 상속자가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에게 빼앗긴 땅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매 회복시켜주신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목이 터져라 주님을 찬양하고 영광만 돌리는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양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열심히 풀을 뜯어먹고 살이 찌고 병들지 않는 것 이것이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주님의 영광만 나타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에스겔 히브리어 성경말씀] 우상숭배의 본거지 산당 훼파 명령(겔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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