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히.헬라어 주석 강해

[열왕기상 17장 히브리어강해]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왕상 17:8-16)

르호봇 2021. 2. 9.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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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열왕기상 17장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에 대한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가뭄에 그릿 시냇가에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뭄이 지속되니 그릿 시냇물도 말라버렸습니다. 아침과 저녁에 까마귀가 떡과 고기로 엘리야를 먹였는데 더 이상 이것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나타나셔서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머물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과부를 준비하여 너에게 음식을 주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들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이방인이 구하는 것을 구하지 말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모두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했습니다. 이 시간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지정해 주시는 곳에 있을 때 하나님이 준비하신 사르밧 과부와 같은 여인을 만날 줄로 믿습니다.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왕상 17:8-16)

 

8절 바예히 데바르 아도나이 엘라이브 레모르입니다.

왕상 17:8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17:8

엘리야의 식수(食水)였던 그릿 시냇물(3)이 말라버리자 하나님께서는 이제 엘리야를 위하여 새로운 공궤지(供饋地)를 일러주신다. 그곳은 곧 사르밧(Zarephath)으로(9) 엘리야는 가뭄이 끝날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한편 엘리야가 그릿 시내에서 물을 찾아 사르밧으로 이동했다. 하나님은 때가 되매 살길을 열어주시고 하나님이 갈 곳을 지정하여 주신다. 우리도 때가 되매 하나님이 길을 인도하고 있음을 믿어야 한다.

9절은 쿰 레크 초르파타 아쎄르 레치돈 베야샤브타 솸 힌네 치비티 솸 이솨 알마나 레칼켈레카입니다.

왕상 17:9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17:9

사르밧 - '사르밧'(차르파트)은 '염색하다'는 뜻에서 온 명칭이다. 라서 사르밧은 두로와 시돈 등과 마찬가지로 베니게(Phoenicia)의 명물인 염료 생산지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성읍은 헬라어로는 '사렙다'로 불리는데(눅 4:26) 오늘날의 수라펜드(Surafend)로서 두로와 시돈 가운데쯤에 위치한 지중해 연안의 도시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I, p. 237). 그런데 이곳은 이세벨의 부친 시돈 왕 엣 바알이 다스리는 지역이다(16:31).

결국 이세벨이 여호와 신앙인들을 탄압하고 있을 때 정작 엘리야는 이세벨의 고향 깊숙이 숨어버린 셈이다. 이 점은 마치 바(Pharaoh)의 궁전에서 온전히 양육받은 모세를 방불케 하는 것으로서 대적자의 심장부가 도리어 하나님의 사람을 위한 피난처와 은신처가 된 기막힌 역설이다(2:10).

그곳 과부에게 명하여... 하였느니라 - 하나님의 종 엘리야의 은신처가 이방인, 것도 무력한 과부에게서 찾아졌다는 것은 선민(選民) 이스라엘의 크나큰 수치이다. 는 곧 당시 이스라엘이 얼마만큼 배교의 늪에 깊이 빠져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증거해 준다. 한편 고대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과부'(알마나)는 남편이 없으므로 인해 사회, 경제적 지위가 형편없는 존재였다(24:17).

그러나 하나님은 그처럼 약한 자를 들어 존귀하게 사용하셨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한 특징인바(고전 1:26-31) 누구든 하나님 앞에서 자랑치 못할 것이다(Matthew Henry).

공궤 하게 - '공궤'(供饋)란 문자 그대로 '음식을 제공함'(providing with food)말한다. 그런데 본절에서 '공궤 하게'에 해당하는 원어 '카르케레카'는 '간직하다'는 뜻에서 온 말이다. 즉 이는 단순한 음식 제공을 넘어서 '정성을 다해 보살핌'에 더 의미가 담긴 말이다. 피엘 강조 능동형을 사용하여 엘리야를 극진하게 가뭄에 대접하는 것을 말한다.

10절은 바야콤 바옐레크 초르파타 바야보 엘 페타흐 하이르 베힌네 솸 이솨 알마나 메코쎄쎄트 에침 바이크라 엘레이하 바요마르 케히 나 리 메아트 마임 바켈리 베에쉐테입니다.

왕상17:10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17:10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 이는 거리에 흩어져 있는 모든 나뭇가지를 주워 땔감을 삼을 수밖에 없는 과부의 극빈을 나타낸다. 만일 과부에게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면 종을 부려 땔감을 해오게 하였거나 아니면 시장에서 땔감을 구입하였을 것이다(Matthew Henry). 피엘 강조 능동을 사용하여 열심히 사르밧 과부가 땔감을 줍고 있는 것을 말한다.

물을... 나로 마시게 하라 - 아합 당시의 가뭄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팔레스틴 여러 지역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렇다면 물이 귀한 상황에서 낯선 나그네의 물 요구는 여간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비록 근동에서는 식수 대접이 거의 신성한 의무처럼 여겨졌다 하더라도 말이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이는 사르밧 과부가 넘어야 할 첫 번째 시험(test)이었다. 한편 엘리야가 물을 달라는 요구를 통해 자신을 대접할 과부를 식별하는 장면은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신붓감을 찾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24:17; 4:7).

11절은 바텔레크 라카하트 바이크라 엘레이하 바요마르 리케히 나 리 파트 레헴 베야데크입니다.

왕상 17:11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17:11

청컨대...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 앞서의 부탁을 거절치 않자 엘리야는 과부에게 이제 좀 더 당돌한 부탁을 한다. 즉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그렇잖아도 더욱 식량란 열악한 형편인 과부에게 떡을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엘리야의 다소 무리한 부탁은 자신을 공궤 할 과부가 누구인지 알아보자는 데 목적이 있었으니(9) 르밧 과부는 이 두 번째 시험마저도 통과하여야 했다(Bahr).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에게 명령법을 사용하여 떡 한 조각을 가지고 오라고 한다. 이것이 사르밧 과부에 대한 시험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하기 전에 이런 시험을 할 수 있다. 축복받을 그릇이 준비되어 있는지 하나님은 시험한다. 예수님은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도 보셨다.

12절은 바토메르 하이 아도나이 엘로헤이카 임 예쉬 리 마오그 키 임 멜로 카프 케마흐 바카드 우메아트 쎄멘 바차파하트 베힌네니 메코쎄쎄트 쉐나임 에침 우바티 바아시티후 리 베리베니 바아칼누후 바모트누입니다.

왕상 17:12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 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17:12

당신의 하나님 - 어떤 주석가들은 과부의 이 같은 말에서 그녀가 이미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는 자였다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Keil & Delitzsch, :ange). 그러나 도리어 이 말은 정반대의 의미를 내포한 것이다. 즉 우리는 그녀가 '나의 하나님'이 아닌 '당신의 하나님'이라 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Pulpit Commentary). 다시 말해 이스라엘과 전통적으로 교류가 많던 베니게의 한 여인으로서 이 과부는 엘리야가 이스라엘 사람인 것을 알고 단지 이스라엘의 민족 신을 호칭한 것뿐이다.

사실 이 과부가 여호와 신앙을 받아들이게 된 시점은 어디까지나 그녀가 엘리야의 말을 청종한 그 순간이다(14, 15). 아무튼 정작 선민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말씀에 청종치 않은 반면 이방인 과부는 선뜻 그 말씀을 받아들인 점이 주목된다. 그러기에 거기에서 엘리야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봉사자가 누군지 분명히 확인하였을 것이다.

나는...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 엘리야의 요청에 과부가 당황한 까닭은 그나마 남은 밀가루는 최후의 만찬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떡 하나를 요구한 엘리야의 한 마디는 그야말로 과부에게 자신의 전부를 요구하는 엄청난 요청이 아닐 수 없었다.

훗날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이 과부가 신앙의 표본으로 등장하게 된 이유도 바로 이처럼 생사(生死)의 갈림길에서 그녀가 순종의 길을 따랐기 때문이다(눅 4:24-26; 21:2).

한편 이스라엘이 바알 숭배에 몰두하는 동안 바알 숭배의 본 고장에서 한 과부가 바알 신앙을 포기했다는 점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아무리 캄캄한 흑암 속에서도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빛이 역사할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42:16; 4:16; 1:13).

13절은 바요메르 엘리에하 엘리야후 알 티르이 보이 아시 키드바레크 아크 아시 리 미솸 우가 케타나 바리쑈나 베호체트 리 베라크 베리베네크 타아시 바아하로나입니다.

왕상 17:13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17:13

두려워 말고 - '두려워'에 해당하는 '야레''무서워하다' 외에도 '존경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면 그것은 지혜의 토대로서 하나님께 대한 외경심이라는 이상적(理想的)인 것이 된다. 그러므로 사르밧 과부가 단순한 정서적 반응으로서의 두려움에서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으로 전환되는 것이 곧 믿음으로 이행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본절에서 엘리야가 지적하는 과부의 두려움은 불확실한 장래에 대한 불안으로서 부정적이고 극복되어야 할 어떤 것이다. 그런데 어떤 정서의 극복이란 이성이나 논리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다 차원이 높은 정서의 대체로서 완결된다. 즉 과부의 장래에 대한 두려움은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으로 대체될 때 비로소 온전히 해소될 수 있는 것이다.

먼저... 그 후에 - 장차에 대한 두려움에서 하나님에의 두려움으로 이행, 즉 믿음으로 가는 과정은 논리적인 순차 성을 따라 자연히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그 과정에는 의지적 선택에 의한 결단의 단계가 재게 된다. 엘리야의 말속에서 그러한 결단의 촉구가 드러나는 곳이 바로 이 부분이다. 즉 떡을 만들되 먼저 엘리야에게 가져오고 차후 자신과 아들을 위해 만들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먼저 엘리야에게 가져오기를 원하고 있다. 네가 떡을 만들어 가져오라고 한다. 그리하면 가뭄이 있는 날까지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하나님은 먼저 믿음을 보이기를 원하고 있다.

최후의 양식, 이것으로 마지막이라는 생각!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바치라 하신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의 특성은 모든 면에서 우선순위를 하나님과 그분의 영광에 두는 깃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6:33).

14절은 키 코 아마르 아도나이 엘로헤 이스라엘 카드 하케마흐 로 티켈라 베차파하트 하쎄멘 로 테흐사르 아드 욤 티텐 아도나이 게쎔 알 페네 하아다마입니다.

왕상 17:1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7:14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 - 이처럼 엘리야가 '너의 하나님'이 아닌 객관 서술형의 '이스라엘 하나님'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사르밧 과부가 이방인이며 적어도 아직까지는 개종한 자가 아님을 다시 한번 시사해 준다(Ham-mond). 병의 기름과 통의 밀가루가 없어지지 않는 것은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가뭄이 끝나는 날까지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복을 주실 것을 의미한다. 믿음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평생에 복을 주시는 분이다.

15절은 바텔레크 바타아세 키드바르 엘리야후 바토칼 후 바히 우베타흐 야밈입니다. 

왕상 17:15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17:15

저와 엘리야와 식구 - 12, 13절에 의하면 사르밧 과부에게는 가족이라곤 아들 하나밖에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본절에서 '식구'(바이트), 즉 권속()이란 말이 나온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들은 사르밧 과부에게 임한 축복의 소식을 듣고 온 그녀의 친척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Lange, Pulpit Commentary).

여러 날 - '여러 날'(야밈)은 며칠 정도가 아닌, 상당히 오랜 기간을 의미한다. 그런데 14절에 따르면 사르밧 과부의 집에 밀과 기름이 떨어지지 않은 시기는 다시 비가 내릴 때까지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기간은 적어도 2년 이상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시 가뭄은 36개월 간이나 지속되었으니(5:17) 그동안 엘리야가 그릿 시냇가에 머문 기간(2-7)을 빼더라도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2년 이상 공궤(供饋) 받았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상과 같이 사르밧 과부는 선지자 엘리야를 영접함으로써 선지자의 보상을 받음은 물론(10:41) 자신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온 가족에게까지 구원의 은총을 끼쳤다.

16절은 카드 하케마흐 로 칼라타 베차파하트 하쎄멘 로 하세르 키드바르 아도나이 아쎄르 디베르 베야드 엘리야후입니다.

왕상 17:16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17:16

통의 기루가...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 히브리어 로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강한 부정을 사용했다. 이것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하나님은 기적을 베풀어 주셔서 사르밧 과부의 집에 복을 주셨다. 혹자는 본절에 묘사된 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무익한 노릇이다. 왜냐하면 본절은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과 말씀을 확실히 이루심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지 현상 자체의 건조한 설명을 요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여하튼 본절의 기적은 엘리사가 가난한 과부에게 기름을 가득 채워주었던 기적(왕하 4:1-7)과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써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연상케 한다(6:41-43).

 

 

[열왕기상 17장 히브리어강해] 그릿 시냇가의 엘리야(왕상 17:1-7)

안녕하세요. 오늘은 열왕기상 17장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그릿 시냇가의 엘리야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합과 이세벨 시대에 북이스라엘은 최고로 영적 타락이 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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