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성경인물 말씀

[신약성경인물 설교말씀] 마태-큰 잔치

르호봇 2021. 2. 8.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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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신약성경인물 설교말씀 중에서 마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마태는 세리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부정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부정한 자에게 찾아가셨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이하여 큰 잔치를 배설하고 있습니다. 다른 세리들과 함께 예수님이 앉아계셨습니다. 이것을 본 바리새인들은 주님을 욕했지만 주님은 이런 자들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도 부정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런 나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이제 내가 구원을 받고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마태는 주님께 큰 잔치를 배설했다면 나는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영광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마태-큰 잔치

 

1. 큰 잔치를 배설하는 마태

 

1) 잔치를 벌임 (눅 5:29, 눅 15:24)

눅 5: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눅 15: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예수님을 영접한 세리 마태는 예수님을 위해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동안 로마의 앞잡이로 세관에 앉아 세금을 징수하던 마태가 이제 주님을 위하여 잔치를 벌인 것입니다. 주님을 위한 마태의 잔치는 그가 결코 물질이 풍족하기 때문에 베풀어진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열정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제까지 갈등과 근심에 싸여 있었던 세리 마태가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게 되자 평안과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열정으로 가득 차게 된 것입니. 그리하여 잔치를 벌이게 된 것입니다.

2) 구원에 대한 감사 (25:35, 21:32, 11:28)

마 25: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마 21: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신앙은 입술에만 붙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은 고백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리인 마태를 불렀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마태는 죄인인 자신을 예수님께서 구원해 주셨다는 사실을 알고 그 구원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벌인 것입니. 열 명의 문둥 병자가 예수님께 고침을 받았으나 그중에 돌아와서 예수께 감사드린 문둥병자는 사마리아인 한 사람뿐이었습니다(참조, 눅 17:12-18). 감사하지 아니한 아홉 명에 대해서 예수님은 책망하셨습니다. 영원히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자신을 구속해 주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주님께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안 사도 바울은 무수한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주님의 구속해 주신 은혜를 늘 기억하면서 감사하였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위해 살았던 것입니다.

 

3) 가정을 구원함 (14:6, 10:33-34)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행 10: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행 10: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세리 마태는 구원에 감격하여 예수님을 초대하고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뿐만 아니라 가족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여 구원받게 하였습니다. 마태의 이러한 행동을 우리는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마태는 자기가 받은 구원의 감격을 즉시 주님을 위한 잔치로 드러내었고, 주님을 모시고 난 뒤 가족들도 주님을 영접하도록 하였습니다. 구원의 길을 먼저 가족에게 전하여 건전한 그리스도인 가정을 이룩하는 것은 성도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또한 주 예수를 믿는 행함 있는 믿음의 능력이 능히 가정 구원의 초석이 됨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리스도인 가정을 이루는 것을 근본 의무로 알 뿐만 아니라, 솔선하여 주 예수를 참되게 믿는 일에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2. 큰 잔치

 

1) 잔치의 주인공 (2:15, 9:10-11)

막 2:15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마 9: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마 9: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마태가 베푼 잔치의 주인공은 예수이십니다. 마태가 자신의 구원에 감사하여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베푼 것입니다. 따라서 그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은 주인공이 되시는 예수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이것을 알지 못한 바리새인들은 금식을 하면서 금식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을 비난하였습니다. 그들이 경배의 대상이 되시는 예수님을 보고 왜 주님은 금식하지 않느냐고 묻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생각하여 집에 돌아올 때 그 아버지는 지난날의 모든 죄를 용서함은 물론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죄인이 회개하고 구원의 감격에 겨워 베푼 잔치에 기뻐하는 것은 마땅합니다.

 

2) 참석한 사람들 (2:15, 9:10)

마태가 주님을 위해 베푼 잔치에는 세리와 죄인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세리는 당시 유대 민족을 배반한 반역자이었기에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의 눈에 비친 세리는 로마의 앞잡이로서 온갖 불법을 자행하는 악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러므로 세리는 죄인의 대명사가 되어 모든 사람들로부터 소외되고 멸시받게 된 것입니.

 

3) 죄인들과 교제하시는 주님 (눅 5:32, 눅 7:34)

눅 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눅 7:34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소외당하는 세리와 죄인들에게 있어서 주님의 관심과 사랑의 배려는 매우 큰 의미를 주었습니다. 죄인과 세리와 더불어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행위는 당시 의인으로 자처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는 매우 심각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은 죄인들과는 식사를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향해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라고 비난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3. 구원받는 자의 생활

1) 행함이 있어야 함 (2:26)

약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성도들 중의 상당수가 신앙과 생활이 일치하지 않음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이는 옳지 못한 일입니다. 성경은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리켜서 죽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행함이라는 생명의 언어로 고백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2) 말씀에 순종해야 함 (15:10)

요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사람은 누구나 어떤 기준에 따라서 행동하게 마련입니다. 성도가 좇아야 할 행동의 근거는 주의 행하심, 곧 그분의 말씀과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 죄인들과 식사를 함께한다고 비난했던 바리새인들의 판단과 행동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조상들의 유전이었습니다. 우리는 교회 헌법이나 제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야 합니다.

 

3) 형식주의를 버려야 함 (딛 1:16, 요일 1:6)

딛 1:16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요일 1: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내용이 없는 형식에 너무 얽매여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시는 것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입니다. 즉 겉모양이 아니라 속입니다. 우리는 형식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사람은 겉으로 나타나는 사실들에만 관심을 집중하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각 사람의 심령을 감찰하시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히브리어 주일설교] “방주는 마지막 구원선”(창 6:13-16)

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히브리어 주일설교 중에서 방주는 마지막 구원선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인간들이 타락하자 하나님은 이 세상을 심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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