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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헬라어 설교말씀] “예수님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마 27:51-53)

르호봇 2021. 3. 23.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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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부활절 헬라어 설교말씀 중에서 예수님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고 끝나지 않았습니다. 무덤에 들어가신 지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었던 성도들도 예수님과 같은 몸으로 부활됩니다. 예수님이 부활되었을 때에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건이며 앞으로 성도들이 이렇게 될 것을 예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신화라고 생각하지 믿는 우리는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동시에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성도들이 부활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도 마지막 때에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성도가 부활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하는 의미가 없습니다. 이 세상이 끝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성도들이 무덤에서 일어난 것처럼 우리도 부활된다는 것을 믿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마 27:51-53)

 

예수님은 종려주일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따라 예수님은 성전 산의 골고다에서 죽으셔야 합니다. 선택받은 백성들의 모든 원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셔야 만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살릴 수가 있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죽으시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구원받을 인생은 한 명도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십자를 메시고 골고다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양손과 발에 대못이 박히시는 고통과 옆구리에 창이 찔리는 가시와 같은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이 고통을 통해서 나의 모든 원죄가 사라졌고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꼬리표가 달라지 않도록 떨어뜨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믿는 자들에게는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골고다에서 죽으실 때에 제자들은 모두 도망을 쳤습니다. 하지만 여인들은 주님의 십자가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주님의 운명을 함께 했던 자들은 주님의 곁에서 따라다녔던 제자들이 아니라 여인들이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신앙이 좋다고 하지만 마지막 환난의 날에 굳건한 여인들과 같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죽음에 동참할 수 있는 믿음이 있을 때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부활을 시켜주심으로 성도들에게도 부활에 대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으니 이제는 예수님과 함께 부활됩니다. 하늘로부터 거듭난 자들은 부활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영화의 몸으로 부활되어 천국에서 주님과 영원히 살게 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도 성도의 부활에 관하여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도 부활이 될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에 성도들도 부활되었기 때문입니다. 부활 절기를 통해서 우리의 삶이 부활이 되시고 마지막 날에 부활되어 썩지 않는 몸으로 부활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51절은 카이 이두 토 카타페타스마 투 나우 에스키스데 에이스 뒤오 아포 아노덴 헤오스 카토 카이 헤 게 에세이스데 카이 하이 페트라이 에스키스데산입니다.

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6시간의 고통을 인내하셨습니다. 유월절 어린양 되시는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하나님의 진노가 넘어갔습니다. 예수님이 운명하시고 나서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졌습니다.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찢어져’라는 단어는 (스키조 4977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단수, 3인칭) 쪼개다, 찢다, 나누다, 분리하다, 따로 떼어놓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운명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성소에 있는 휘장을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서 쪼갰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육체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던 휘장을 찢어주셔서 죄인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죄로 인해 따로 떼어짐을 당하고 분리되었던 인생들을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죽으실 때에 하나님은 성소의 휘장을 찢어버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역사적으로 실제 있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신화의 사건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성경은 확실히 있다고 말씀합니다. 직설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이미 계획하시고 준비하신 일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 휘장은 스스로 찢어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힘에 의하여 찢어졌습니다. 이렇게 성부 하나님은 예수님의 육체를 십자가에서 찢으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택받은 백성들을 위하여 어쩔 수없이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수동태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구원받은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찢어진 휘장을 통해서 대제사장만 들어갔던 지성소를 마음대로 들어가도 저주를 받지 않습니다. 수동태를 보면서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면 이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이신 이유는 바로 나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히브리어로는 קרע(카라 7167 동사, 닢알, 완료, 여성, 3인칭, 단수) 찢다, 잡아 째다, 찢어서 조각을 내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휘장을 하나님께서 찢어버렸다는 것은 하나님의 고통과 애통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야곱이 요셉이 죽었다고 했을 때에 자신의 옷을 찢어버렸습니다. 아버지의 슬픔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도 휘장이 찢어진 것이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완료 시제를 사용한 것은 완전히 찢어지게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누구나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34절은 바이크라 야아코브 쉬믈로타이브 바야셈 사크 베모트나이브 바이트아벨 알 베노 야밈 라빔입니다.

창37:34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야곱이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요셉을 위하여 애통했습니다. 여기에서 자기 옷을 찢었다는 단어가 קרע(카라)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이시고 하나님의 마음은 애통하셨습니다. 이것을 휘장이 찢어진 것으로 하나님은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찢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성소에서 나를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바위가 터지고’라는 단어는 (스키조 4977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복수, 3인칭) 쪼개다, 찢다, 나누다, 분리하다, 따로 떼어놓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운명하시고 나서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졌습니다. 바위들이 서로 분리가 되어 나누어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땅이 지진이 일어난 것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직설법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 실제로 바위가 터지는 일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에 땅이 지진이 나면서 바위가 터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을 상징하는 것이며 믿는 자들에게는 부활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바위가 터지면서 무덤들이 열리고 잠을 자던 성도의 몸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진 것은 스스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하여 되었습니다.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52절은 카이 타 므네메이아 아네오크데산 카이 폴라 소마타 톤 케코이메메논 하기온 에게르데입니다.

27: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고 무덤들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잠을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성도가 부활된 것은 예표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성도들이 이렇게 부활될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함입니다.

열리며’라는 단어는 (아노이고 455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복수, 3인칭) 열다, 장애물을 제거하다, 뜨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지게 하시면서 무덤들이 열리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죽었던 자들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무덤들이 열렸는데 실제로 열린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격도 했으며 이것은 역사적 사건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직설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부활시킬 것이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과거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열리는 시점은 현재인데 과거 시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무덤이 열린 것은 스스로 열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열어주셨기 때문에 열린 것입니다. 수동태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부활에 대한 소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택받은 자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부활이 될 수 있도록 잠자던 자들을 깨워주십니다.

 

자던’ ישן(야샨 3465) 오래된, 옛날의, 해묵은, 이라는 뜻이며 어근은 ישן(야셴 3462) 잠자다, 잠들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영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도들의 죽음은 잠을 자고 있는 것입니다. 잠을 자고 있다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함께 부활되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흙으로 빚어진 몸은 때가 되매 죽지만 잠을 자고 있다가 하나님의 역사로 부활의 몸으로 새롭게 됩니다.

 

헬라어로는 (코이마오 2837 동사, 분사, 완료, 중수디포, 소유격, 남성, 복수) 잠자다, 죽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죽었던 자들은 무덤에 잠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매 무덤이 열리고 하나님께서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확실히 잠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육체의 썩어진 몸은 사라졌지만 잠을 자던 상태에 있다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부활을 위하여 무덤이 열리고 잠에서 깨어나게 되었습니다. 완료 시제를 사용한 것은 잠자던 성도들이 무덤에서 완전히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 이들이 잠자면서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생명을 소유하고 있는 씨앗들은 몇 천 년이 흘러도 땅에 심으면 발아가 되어 새로운 모습으로 자라게 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씨앗을 품고 있으면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부활되어 자라게 됩니다. 하지만 내가 저주의 씨앗을 품고 있으면 때가 되매 저주의 생명으로 부활되어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잠자던 자들의 부활된 것은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씨앗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씨앗을 품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잠들어 있으면 반드시 생명의 씨앗이 발아되어 새로운 몸으로 탄생됩니다.

 

일어나되’라는 단어는 (에게이로 1453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단수, 3인칭) 일어나다, 일어서다, 죽은 자를 일으키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고 나서 땅을 진동시키고 무덤을 여시고 잠자던 성도의 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에는 죽은 몸이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잠자고 있던 성도의 몸을 부활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당시에 실제로 잠자던 자들이 부활되었던 몸이 실제로 있습니다. 직설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며 이미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성도들을 부활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의하여 성도의 몸이 부활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들도 썩을 육체가 죽고 잠자고 있으면 때가 되매 하나님께서 부활시켜 주십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아무 죄가 없고 썩지 않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시키셔서 영원히 살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신령한 몸을 소망해야 합니다. 이 몸은 썩지 않는 몸입니다. 우리가 부활될 때는 썩지 않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53절은 카이 엑셀돈테스 에크 톤 므네메이온 메타 텐 에게르신 아우투 에이셀돈 에이스 텐 하기안 폴린 카이 에네파니스데산 폴로이스입니다.

27:53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그런데 이들이 언제 무덤에서 나오게 됩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무덤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잠자던 성도들을 부활시켜주셨지만 아직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예수님보다 앞설 수가 없습니다. 무덤에서 나온다는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이 땅에 재림하실 때에 성도들과 함께 오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이들이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였습니다. 이것을 볼 때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것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실 때 부활도 믿어지게 됩니다.

14절은 에이 가르 피스튜오멘 호티 이에수스 아페다넨 카이 아네스테 후토스 카이 호 데오스 투스 코이메덴타스 디아 투 이에수 엑세이 쉰 아아투입니다.

살전 4: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들도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시고 예수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예수님과 함께 데리고 오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있을 때에 무덤에서 나와서 주님과 함께 오게 됩니다.

 

보이니라’라는 단어는 (엠파니조 1718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복수, 3인칭) 들어내다, 나타내다, 보이다, 계시하다, 알리다, 라는 뜻입니다. 잠자던 성도들이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거룩한 성은 첫째 예루살렘 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활시킨 자들이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도 교훈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계시를 보여주셔서 구원받은 자들도 반드시 부활이 있을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거룩한 성은 새 예루살렘을 의미합니다. 부활된 자들은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구원받고 부활되어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게 됩니다. 이렇게 거룩한 성에 들어가 자신들의 몸을 보여준 사건이 실제로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적 진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거짓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부활되어 보여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확실히 있었다고 증명하고 있습니다. 직설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렇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에 부활시킨 것은 하나님이 만세 전에 계획하신 일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을 부활시킬 것을 준비하시고 이때에 부활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거룩한 성의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는데 자신 스스로 보여주고 싶다고 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런데 주님 안에 있었던 자들은 부활된 영화의 몸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믿지 못했던 자들은 부활된 몸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눈을 닫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동태는 하나님이 보여주실 때에만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모습은 아무나 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된 자만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성도인 나도 부활이 된 것입니다. 부활된 모습을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눈을 열어 보여주시니 볼 수가 있습니다. 부활된 자들은 이 세상을 보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부활된 자들이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부활된 자신의 몸을 보여준 것처럼 우리들도 이 세상에서 부활의 삶을 살아가면서 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부활된 나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임하신 사건들을 증거하고 보여주어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내가 부활되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항상 주님과 연합하여 부활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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