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의 왕으로 오신 분은 예수님이다. 이 세상에 예수님처럼 겸손한 사람은 없다. 성도는 예수님의 겸손을 배워야 한다. 성경에는 겸손이라는 단어가 있다. 겸손이라는 단어를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통해서 하나님의 의도를 발견하고자 한다.
겸손(謙遜)에 관한 히브리어 말씀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다. 사회 속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존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사회라는 틀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관계가 중요하다. 사람끼리 예의범절을 지키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면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자신의 위치가 높다고 교만하여 함부로 사람들을 대하면 앞에서는 존경하는 척하지만 뒤에서는 모두가 욕을 한다. 그럼 교만의 반대말은 무엇인가? 겸손이다. 겸손의 정의는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존중하여 높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보통 우리가 아는 기본 정의다. 세상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겸손하게 행동하면 많은 사람들이 존경해 주고 그의 말을 경청하게 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겸손의 정의는 무엇일까? 인간들이 말하는 겸손과 하나님이 말씀하는 겸손은 다르다. 겸손의 왕은 예수그리스도다. 이 세상에서 겸손하다고 해도 예수그리스도의 겸손은 따라갈 수가 없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의 죄악 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죄인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이것이 겸손이다. 자신은 아무런 죄가 없지만 남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겸손이다. 이 세상에서 예수그리스도 외에는 이와 같이 겸손의 왕으로 오신 분이 없다. 가장 높은 자가 가장 낮은 자리에 내려갈 수 있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겸손이다.
이제 우리는 겸손을 헤브라이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구약에 나타난 겸손의 의미를 깨닫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겸손의 삶을 살아야 한다.
헤브라이즘 관점에서의 겸손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겸손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겸손의 차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고 했다. 나의 삶 가운데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겸손의 자세가 있어야 한다. 그럼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 앞에서 겸손의 삶을 살았던 사람을 통해서 우리가 겸손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민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모세가 이방 여인인 구스 여인을 취한 후에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하였다. 이방여인을 아내로 취한 것에 대하여 비난했지만 속뜻은 모세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들은 모세와만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냐고 했다. 자신들과도 말씀을 하셨는데 모세만 이스라엘의 영적지도자로 세워진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섞여서 구스 여인을 취한 것에 대하여 비방했다.
이 말씀이 끝난 후에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인정하였다. 모세는 예수그리스도의 모형이다. 모세를 통해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서 ‘온유함이’라는 단어가 (아나브 6035) 가난한, 고통 받는, 겸손한, 온유한, 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아나 6031) 고난당하다, 욕보이다, 학대받다, 괴로움 받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면서 많은 고난을 받은 사람이다. 자신은 이렇게 고난 받을 필요가 없는데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학대받고 욕보임을 받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고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는 겸손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고난당하고 모욕당하여 하나님의 뜻을 완수하는 것이 겸손이며 온유이다. 그래서 온유와 겸손은 일맥상통된다. 내가 사람 앞에서는 겸손하다고 존경을 받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겸손하지 못할 수가 있다. 사람 앞에 겸손한 것은 인간적인 생각으로 나를 낮추고 다른 사람을 높여주면 겸손한 사람이라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나를 존경해 주고 높여준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겸손한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하나님께 겸손한자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받고 고난을 받으며 모욕을 당했을 때에 이것이 겸손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했다.
그럼 예수그리스도는 어떠한가? 자신은 죄가 없지만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모욕을 당하시고 고난당했다. 예수님은 온유와 겸손의 왕이다.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자신에게 배우라고 말씀하셨다. 그리하면 우리의 마음이 쉼을 얻게 된다. 예수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겸손의 왕이며 온유의 왕이다.
여기에서 ‘온유’라는 단어가 (아나브)이다. 모세를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온유하다고 인정해 주었는데 예수그리스도는 실체로 오셔서 온유의 왕이 되셨다.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음으로 모세의 온유는 예수그리스도의 온유를 상징하고 있다. 이제 온유와 겸손은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한다면 이것이 온유이며 겸손이다. 내가 세상에서 예수그리스도 때문에 손해를 입었다면 하나님은 이것이 온유이며 겸손이라고 말씀한다.
만약에 회사나 학교나 사업체에서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손해를 입었다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이다.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자가 세상에서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내가 모욕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데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욕을 먹고 대신 짐을 짊어진다면 이것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겸손이다. 많은 정치인들이 크리스천인데 이런 자들이 국민과 나라를 위해서 자신이 손해를 보고 국정을 운영한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데는 발 빠르게 움직이고 국민과 나라를 위해서는 헌신하지 않으니 정치인들이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게 된다.
영적 지도자인 목사들은 어떠한가?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고 있다면 이것은 겸손한 자가 아니다. 자신의 지위와 권력과 통치를 위해서 교회를 이용하고 영혼을 위해서는 헌신하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이름이 알려지고 높은 지위를 가졌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겸손한 자가 아니다. 교인들은 어떠한가?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었다고 하면서 교회에서 봉사와 헌신은 하지 않으려고 하고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겸손한 척한다면 이것 또한 겸손한 자가 아니다. 내가 예수그리스도 때문에 나의 것을 포기한 것이 있는가? 생각해 보자. 나는 주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현재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서로 토론해 보자.
그럼 겸손한 자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가? 배부름의 복을 주신다. 사람이 배가 고프면 짜증이 난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영육으로 배부름의 복을 허락하신다.
시22:26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르게 될 것이라고 다윗은 말하고 있다. 여호와를 찾는 자는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고 그의 마음은 영원히 산다고 했다. 의에 주리고 배고픈 자들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충만히 채워주셔서 배부르게 하신다.
여기에서 ‘겸손한 자’라는 단어가 (아나브)이다.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당하고 괴롭힘을 당한 자들이 겸손한 자인데 이런 자들이 십자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으로 배부르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육적으로도 하나님은 축복하셔서 육신의 배고픔도 채워주신다. 사람은 육적인 삶을 살기 때문에 영육의 밸런스가 맞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가? 겸손의 삶을 살아야 한다.
잠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겸손한 사람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의 축복을 받는다. 이 땅에서 우리가 겸손하게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면서 살아야 한다.
여기에서 ‘겸손’이라는 단어가 (아나바 6038) 겸손, 온유함, 이라는 뜻이다.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 이렇게 하나님께 겸손한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사람 앞에서도 겸손하게 된다. 이 겸손은 나의 유익을 위한 겸손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위해서 겸손하고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손해를 입었을 때의 겸손이다. 이런 자는 하나님께서 재물의 복과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복과 생명의 축복받는 복을 받게 된다. 내가 구원받은 자라면 이제부터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제 헤브라이즘 관점에서 겸손을 배웠다면 신약의 헬레니즘 관점에서 겸손을 배워야 한다.
헬레니즘 관점에서의 겸손
신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겸손은 어떤 의미일까? 길들여지지 않은 동물을 유순하게 길들이는 것을 말한다. 사람에게는 난폭한 사람이 마음의 변화를 받아 친절하고 온순한 성격이 된 것이 헬레니즘 관점에서의 겸손이다.
마21: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겸손하여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원래 왕은 말을 타고 입성해야 한다. 하지만 가장 낮은 자의 자세를 가지고 섬기는 분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사역을 감당하신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겸손’이라는 단어가 (프라위스 4239) 온유한, 친절한, 겸손한, 동정심이 많은, 이라는 뜻이다. 헬라어적 개념의 겸손은 자신은 높은 위치에 있지만 자신을 낮추는 행동을 의미한다. 단지 나는 할 수 있는데 점잖은 것처럼 내가 할 수 없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이 단어가 예수그리스도에 관하여 사용될 때는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자리로 떨어졌다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은 가장 높은 하나님의 자리에 계시다가 가장 낮은 죄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이것이 예수그리스도의 겸손이다. 우리가 주님의 겸손을 배워야 한다. 내가 속으로는 하고 싶지만 일단은 점잖게 보이기 위해서 못한다고 말하고 나서 시키면 넙죽하는 이런 것은 겸손이 아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비천하게 된 자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
약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시는데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다. 하나님께 교만한 자는 예수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고 주님의 이름 때문에 핍박을 받지 않는 자다.
여기에서 ‘겸손한 자’라는 단어가 (타페이노스 5011) 낮은, 비천한, 겸손한, 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비천하고 낮은 신분을 나타낼 때도 사용한다. 겸손한 자는 이 땅에 낮고 낮은 신분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인정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부활하여 가장 높은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신 예수그리스도 때문에 비난받고 낮아진 자들을 의미한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더하여 주신다.
우리가 겸손이라는 단어를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겸손은 예수그리스도를 인정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 때문에 고난을 받고 있다면 이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사람이다. 내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핍박이 없다면 복을 받지 못한 자라고 했다. 예수님 때문에 내가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복을 받은 사람이다. 사람은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가지 않으려고 한다. 쉽고 편한 길만 가려고 한다. 이제 내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시편 72편 강해 하나님 말씀] 바른 판단력을 구함(시 7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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