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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 창세기 성경공부] 노아의 방주와 공룡에 대한 질문과 대답

르호봇 2022. 9. 1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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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와 공룡에 대한 질문과 대답

 

1. 세계적인 홍수는 어느 정도 파괴적이었나? 재난이라는 이름이 붙어진 책의 저자 고드윈(John Godwin)은 대양으로부터 일어나는 한 가지 종류의 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놀라운 정보를 제공했다. 이는 "추나미"(Tsunami)또는 "죽음의 파도"(Killer Waves)라고 불리는데, 고드윈은 세 가지 예를 들었다.

(1) 19605월 시속 550마일로 달리는 100피트 높이의 파도가 하와이 힐로(Hilo) 해안을 강타했는데, 665명의 익사자를 내고 5천만 달라의 재산 피해를 냈다.

(2) 1755111, 70피트 높이의 파도가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강타했는데, 그때 65,000명이 익사했다.

(3) 1883520, 인도네시아의 크라카토아(Krakatoa)화산이 폭발했으며 이로 인하여 150피트의 파도가 해안으로 올라왔는데 33척의 유럽 선박들을 침몰시키는 한편 많은 섬들을 9피트 아래의 진흙 속에 묻어버렸으며 1,000개가 넘는 해안 도시들을 파괴했다. 그리고 이 무서운 파도의 여파로 50,000명의 사망자를 냈다.

세계적인 홍수가 몰고 온 재난의 개요를 가장 잘 묘사한 사람은 철학 박사며 수리학(물의 성질, 분포, 지하 수원을 다룸)의 전문가인 헨리 모리스 박사이다. 모리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그러면 온 세상에 걸쳐서 연달아 수주일 동안 전 세계가 물에 잠길 때까지 하늘로부터는 끊임없이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고 지구 표면으로부터는 계속적으로 물이 솟아오르며 그 위에 지각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마그마(Magma)와 거대한 땅의 이동, 사태, 대양으로부터 몰려오는 큰 물결, 폭발 등을 수반한 현 지구상에 벌어진 거대한 홍수의 격변을 상상해 보자.

조만간에 지상의 모든 동물들은 멸망했을 것이며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해양동물들도 멸망했을 것이다. 인간들은 헤엄치며 달리며 기어오르며 홍수를 피하려고 했을 것이고 그중 얼마는 보통 배와 달리 튼튼하고 방수되어 있는 대양 항해선들을 타고 홍수를 피하려고 했겠지만 결국은 모두 익사했거나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이유로 죽고 말았을 것이다.

땅은 곧 침식되었을 것이고 수목들은 뿌리가 뽑혀 홍수의 물결 위에 거대한 떼를 지어 바다로 떠내려갔을 것이다. 결국 언덕과 산들은 스스로 붕괴되어 거대한 산사태를 일으키며 급류에 휘말리고 혼탁한 물결을 이루었을 것이다. 바위 덩어리는 갈라져서 굴러 내리며 점차 둥근돌이 되고 자갈이 되고 모래가 되었을 것이다.

대양의 밑바닥에서는 침전물과 지하수 그리고 마그마들이 무척추동물 떼들의 무덤을 만들었을 것이며 물은 열과 염분으로 급격히 변화하여 비용해 물질을 형성하고 거대한 양의 화학물질이 용해되어 온 대양에 퍼졌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땅에서 흘러내린 물과 침전물은 대양의 해수와 침전물로 서로 혼합되었을 것이며 마지막에 가서 물결이 완만해 짐에 따라 침전물은 자리를 잡고, 용해된 화학물질이 시시로 응결되며 염분과 온도가 허용하는 곳에 위치하게 됨으로써 곧 바위로 굳어지고 거대한 침전물의 기반이 세계 도처에 형성되었을 것이다.

물론 위에 말씀드린 것은 이러한 격변에 수반되었던 대단히 많은 현상들에 대한 개요에 지나지 않는다(과학적 창조론, p.117-118).

2. 노아의 방주는 얼마나 큰가? 방주의 크기는 대략 길이 450피트, 너비 75피트, 높이 45피트 정도이다. 방주에는 총 97,900평방 피트의 갑판이 있었으며 그것은 20개의 표준 대학 농구장 넓이와 맞먹는 것이었다. 배의 총용적은 대략 1,500, 000 입방피트이며 총톤수는 약 14,000톤을 상회하는 것이었다(참조, 6:14-16). 기원후 1884년까지만 해도 이 거대한 배는 인간이 건조한 어떤 배들보다 더 큰 것이었다(이태리 선박 에투리아-Eturia-호가 건조되었을 때까지). 퀸 메리(Queen Mary) 호라는 대양 여객선의 길이는 1,018피트였다. 그러므로 방주의 크기는 이 배의 거의 반에 해당된다. 저술가 필바이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설계도에 의하면 방주는 길이가 300규빗, 너비가 30규빗, 높이가 30규빗인데, 이들 숫자의 비율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진보된 조선 기술을 반영하고 있다. 입방체로서 방주에 대하여 말하는 바벨론의 설명은 완전 무지를 드러낸다. 이런 배는 제자리에서 천천히 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비율은 더 말할 나위 없이 완전하다"(다시 생각해본 홍수, p. 90).

 

3. 노아는 무슨 방법으로 세계 도처의 먼 지역과 나라들로부터 모든 동물들을 모을 수 있었을까?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 자신이 이들 동물을 모았다는 말씀을 읽게 된다(7:8-9) 그리고 이에 추가하여 홍수 이전, 지구의 대륙들은 오늘날과 같이 방대한 대양에 의하여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

 

4. 노아는 어떻게 이 동물들을 방주에 실을 수가 있었을까? 먼저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었느냐 하는 질문을 할 수 있다. 백만이냐? 또는 수천만이냐? 미국의 저명한 체계적 분류학자 중의 한 사람 하디(Hardy)는 최신 분류학의 가장 정확한 추정에 따라 동물의 종류에 대한 숫자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포유동물------------------------3,500

조 류------------------------8,600

파충류 및 양서류-----------------5,500

곤 충 류-----------------------25,500

이 숫자를 고려하여 생각한다면, 양만큼 큰 (전체를 평균으로 따져) 포유동물 35,000 마리 정도를 방주에 실을 수 있다는 합리적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150량의 화차를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150량의 화차를 끄는 오늘날의 기차라면 이 동물들을 어렵지 않게 취급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방주는 520량분 이상의 가능한 선적량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말로 하면 방주에는 충분한 공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원하기만 했다면 갑판 위에서 원반 던지기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5. 노아는 어떻게 거의 11년 동안 이들 동물을 먹이고 또 보호할 수 있었을까? 물론 우리는 추정할 수밖에 없다. 가능한 해결책으로서 동면으로 알려진 동물의 생리기능에 대한 신비스럽고 특기할 만한 사실들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동면은 일반적으로 동물이 오랫동안의 완전 비활동 기간을 견디어 내기 위하여 그의 정상 기능을 정지하거나 또는 크게 감퇴시키는 특별한 생리적 상태로 정의되고 있다. 이 주장은 비합리적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동물은 둘씩 승선했고(정결한 짐승은 일곱씩) 그리고 같은 방법으로-토끼까지 포함해서-하선했기 때문이다.

 

6. 공룡들도 방주에 승선했었나? 아마 홍수에 관계된 질문 중 이 단 하나의 질문만큼 불가지론 자의 비웃음을 사고 신자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질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시람과 공룡이 실제로 이 지구상에서 같은 시대에 살았다는 증거가 너무나 많다.

(1) 로디지아의 동굴 벽에 그 동굴에서 기원전 1,500년에 떠났다고 알려진 부쉬인(Bushmen-총림 지대에 산 사람)이 그린 그림 중에는 뇌룡(brontosaurs)의 그림도 있다. 그들이 그린 미술의 특성에 따르면, 동굴 인간들은 그들이 실제로 본 것만을 그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뇌룡을 보고 그것을 그렸으리라.

(2) 홍수 이후에 발견된 거대한 파충류도 이에 대한 증거이다. 텍사스 그린로즈에서 공룡의 발자국이 발견된 지층에서 인간의 발자국도 발견되었다.

(3) 이 논쟁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 헨리 모르스 박사의 글을 다시 인용한다.

"욥기는 성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이며 홍수 이후 고대의 생활 상태를 반영하고 있다. 이 책의 절정은 욥 38,39,40,41장에서 하나님이 욥과 그의 친구들에게 직접 말씀하실 때이다. 하나님은 세상 만물을 창조하고 보존하심에 대한 그의 위대하신 능력에 대하여 주의를 불러일으키신다(바로 오늘날의 세상에 시급히 요청되는 메시지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동물 왕국에 있어서 그의 위대한 두 가지의 창조에 대하여 주의를 환기시키시는데, 그것은 소같이 풀을 먹는 하마(behemoth-욥40:15-21)와 악어(leviathan-욥41:1-34)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서학자들은 '베헤모스'(behemoth)가 코끼리나 하마 중의 하나일 것이며 레비아단(leviathan)은 악어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러나 실제적 묘사(하나님 자신의 입으로 나온 이 성서의 말씀은 분명히 실재한 동물들을 말씀하신 것이다)는 오늘날 우리들이 알고 있는 어떤 동물들에게도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성경말씀은 멸종된 동물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가장 합리적인 해석이 된다. 그래서 아마베헤모스는 육지에 살았던 공룡이고 레비아단은 바다에 살았던 공룡일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이 두 장에 있는 성경 말씀이 곧 살아있고 의미 있는 말씀이 된다. 이 거대한 동물들은 그 후에 멸종되었다 할지라도 욥의 시대에는 살아있었던 것이다.

베헤모스에 대한 하나님의 기록을 읽으면서 한 거대한 뇌룡을 마음속에 그려 볼 수 있는데, 그의 긴 목은 늪지대의 식물을 먹기 위하여 뻗고 그 식물들을 방대한 양의 물로 씻기 위하여 밖으로 돌출되어 있으며 또한 그의 힘센 다리와 꼬리는 상대방에게 압도적인 타격을 가함으로써 적들을 쉽게 격파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제 소 같이 풀을 먹는 하마를 볼찌어다…그 힘은 허리에 있고 그 세력은 배의 힘줄에 있고 그 꼬리 치는 것은 백향목이 흔들리는 것같고'(코끼리의 꼬리를 본 일이 있는가?) '그 뼈는 놋관 같이 강하고 그 가릿대는 철창같다'(그렇게 많은 공룡 뼈의 화석들이 오랫동안 보존된 것에 대하여 놀라지 말 것).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으뜸이라'(그러므로 이는 하나님이 창조한 것 중에서 가장 큰 동물이다). '그것을 지은 자가 칼을 주었고'(그러므로 사람은 공룡에게 해를 끼칠 수 없지만 하나님 자신은 공룡들을 멸하실 수 있다). '그것이 불어 그 입에 미칠찌라도 자약하니…갈고리로 그 코를 뀔 수 있겠느냐' (획기적인 지구 혹성의 탄생pp. 32-33).

그러므로 공룡이 방주에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서 공룡들이 홍수 이전에 사람과 같이 존재하고 있었음이 확실한 까닭에 아마 이 거대한 파충류의 젊은 한 쌍이 방주에 실려졌음이 분명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7. 방주가 착륙한 곳인 소아시아에서는 왜 동물화석을 발견하지 못했나? 불가지론자들과 지엽 홍수설 주장들은 범세계적 홍수설을 견지하는 사람들에게 종종 이 사실을 지적한다. 위톤(Wheaton)대학의 믹스터(Russell L. Mixter) 박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만약 캥거루가 방주에 있었고 아시아에 처음 땅을 밟게 되었다면 그들의 화석을 아시아에서 발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로머 씨에 의하면 캥거루의 화석이나 살아있는 캥거루가 있는 곳은 오스트레일리아뿐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까? 만약 화석이 증명하는 비가 아시아에는 캥거루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캥거루가 방주에도 없었거나 만약 있었다면 그들이 노아를 만나기 위해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급히 달려왔을 것이며 그리고 서는 재빨리 그들이 모국으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방주에 있지 않았고 홍수는 인간이 살고 있던 지역에서만 발생했다고 믿는 것이 쉽지 않겠는가?")창조와 진화, p. 15).

그러나 이 반대 이론은 화석이 비정상적인 상태 하에서만 형성되며, 만약 이러한 상태가 아니면 모든 죽은 동물은 급속하게 부패하며 소멸되고 만다는 사실로 쉽게 반박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더욱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다음의 예들에 유의하여 보자.

(1) 팔레스틴의 사자들에 관하여

팔레스틴에는 사자의 화석이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 그러나 구약성서는 이 땅에 한 때 이러한 동물들이 출몰했다고 전해준다(참조, 14:5; 삼상 17:34; 삼하 23:20; 왕상 13:24; 20:36; 왕하 17:25).

(2) 미국 서부에 있는 들소에 관하여

두 세대 전만 하여도 헤아릴 수 없이 들판에 늘려 있던 들소들의 시체들은 오늘날 그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들소들의 고기는 죽은 후 수시간 또는 수일 내에 여우나 독수리들이 삼켜 버렸고 그 잔해도 소멸되고 말았는데, 뼈들도 기후 탓으로 분해되고 가루가 되어 먼지로 화해버렸다"(칼 둔바의 역사적 지질학, p. 39).

 

8. 동물들이 어떻게 소아시아로부터 현재 위치로 이동하였는가? 버몬트 대학의 무디(Paul A. Moody) 교수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홍수 때, 큰 흙덩어리들과 서로 얽힌 초목(나무들을 포함하여) 들이 강가에서 떨어져 나가 바다로 떠내려갔을 것이다. 때때로 이 덩어리들은 육지에서 보이지 않는 대양까지, 아직도 무성하고 푸른 상태로 있는 20-30피트의 큰 종려나무들과 함께 우연히 떠내려가게 되었을 것이다. 육지의 동물들이 이러한 형태로 먼 지역까지 실려갔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마이어(Mayr)는 많은 열대 대양 해류는 적어도 2노트(Knots)의 속도로 움직인다고 기록했다. 이는 하루에 50마일, 3주간이면 1,000마일에 해당된다"(진화론 소개, p. 262).

"육지의 동물들은 때때로 상당한 거리의 물을 건너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육지에 옮겨간 것이 확실하다고 보여진다…아마존의 하구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떠 있는 초목의 덩어리가 이러한 형태의 이주를 가능케 한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하바드 대학 알프레드 로머의 척추동물 고생물학에서).

"세계지도를 살펴보면 베링해협의 좁은 간격을 제외하고 지구의 모든 대륙이 연결되어-오스트레일리아는 제외-있음을 알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현재의 동인도 제도가 남방 대륙에 대한 거의 연속적인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베링해협은 한때 아시아와 북미주를 연결하는 육지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입증한다" (프랭크 마쉬의 진화, 창조 그리고 과학에서).

 

9. 그 많은 홍수의 물이 어디로 갔나? 히브리 학자 윗콤(John witcomb)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홍수의 시작이 초자연적 힘의 간접으로 특징 지워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홍수의 마지막도 하나님의 엄청난 이적으로 끝났다. 이러한 하나님의 개입이 없었다면 육지는 영원히 물에 잠겨 버렸을 것이고 육지의 모든 것은 종말을 고했을 것이다.

구약성서 가운데 두 성서 구절이 이와 같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활동을 다루고 있다. 그 첫째는 창세기 8:2-3인데, 그것은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물이 땅에서 물러가 점점 물러가서'라는 말씀이다. 크고 깊은 샘들이 터져 대양의 수면을 상승시키기 때문에 이 샘들이 막힌 것은 이러한 작용의 반대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다. 한편 새롭고 보다 깊은 해저 분지가 홍수 이전 대기 확장으로 서로 갈라진 두 개의 바다(1:7)를 위한 거대한 저수지 역할을 하기 위해서 형성되었다. 이러한 침강의 자연적 결과는 '물이 땅에서 점점 물러가게'함으로써 마치 창조 3일째와 마찬가지로 대양으로부터 육지가 다시 드러나게 되었다. 홍수의 종국에 관하여 중요한 빛을 비춰 주는 두 번째 성서 구절은 시편 104:6-9이다.

'옷으로 덮음 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며 주의 우뢰 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주께서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104:6-9).

몇 가지 형태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만 이 성서 구절은 분명히 홍수에 관한 말씀으로서 역사적인 것이다. 유의해야 할 말씀을 예를 들면, 6절에 나오는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라는 말씀과 9절에 있는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라는 말씀이다. 후자는 분명히 다시 세계적인 홍수가 없을 것이라고 하나님이 인류에게 확약하긴 창세기 9장의 언약의 무지개를 가리키는 것이다(참조, 54:9).

이 성서 구절에서 우리가 목적하는 바에 대한 열쇠가 되는 말씀(104:8)8절 하반절에 있는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라고 한 말씀 가운데 있다. 우리는 이미 창세기 8:2에서 홍수의 마지막에 해저분지들이 낮아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 개념과 '골짜기는 내려갔다'는 말씀은 서로 일치되는 바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으로 지구 외각의 각 부분들을 낮아지게 하시고 이곳들로 물이 '도망하며' '빨리 가서' 주의 '정하신 처소'에서 지구가 존재할 때까지 머물도록 했으며 다시 육지를 덮지 못하게 하셨다(참고, 21:1) (멸망된 세계에서).

 

10. 아라랏 산에 방주가 정박한 후, 그것이 발견된 적이 있는가?

184062일 저녁, 한 무서운 지진이 터키에 있는 반호(Lake van)의 북쪽에 위치한 알메니안 평원의 가장 높은 산을 뒤흔들어 놓았다. 이 박살난 산의 이름은 아그리 다그(Aghri Dagh) 인데, 아라랏 산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발산된 힘은 수백 개의 원자탄보다 강한 것이었는데, 이 지진은 아호라라는 작은 마을과 성 야곱의 수도원을 완전히 휩쓸어 버렸다.

1840년 이후 나무가 없는 아라랏 산 정상에 손 연장으로 다듬은 목재로 된 방주 비슷한 구조물을 보았다는 몇몇 보도가 있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보다 앞서 이에 대한 고대의 많은 기사가 있었는데, 헤로도투스(그리이스 철학자), 요세푸스(유대인 역사가), 코란(이스람교의 경전), 그리고 마르코 폴로(유명한 유럽인 탐험가)등의 증언이 이에 포함된다.

1840년 이후 눈으로 확인한 기사의 요약은 참으로 흥미진진한 것이다. 이 증언들은 놀랍게도 방주와 유사한 점이 많다.

(1) 배는 부분적으로 메워진 호수에 반쯤 묻혀 있다.

(2) 그 위치는 해발 13,000피트이다.

(3) 방주의 내부는 나무 칸막이(가축 우리의 막대기 같은)로 가득 차 있다.

(4) 내외부는 진한 유약이나 칠로 발라져 있다.

(5) 나무는 매우 단단하고 거의 돌같이 굳게 되어 있다.

(6) 설치된 문이 있다.

증인들 자체가 매우 흥미 있는 사람들이다.

(7) 하지 이어맨(Haji Yearman, - 방주를 본 때는 1865).

그는 아라랏 산 산록에서 살았던 미국인인데 1916년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죽었다.

(8) 요셉(John Joseph).

그는 바벨론의 감독이며 기독교 네스토리우스파의 대감독이다. 요셉은 그가 본 사실을 1893년 시카고 만국 박람회에서 보고했다.

(9) 로스코비츠스키(W. Roskovitsky) 러시아의 항공사인 그는 1915년 세계 제 1 차 대전 중에 보았으며 그 후1917년에 150여명의 러시아 원정대가 보았다고 한다.

(10) 웰즈(Carveth Wells)로스앤젤레스에 있는 KFI의 유명한 라디오 해설자인 그는 1933년 방주의 나무를 보았다고 보도했다.

(11) 제 2 차 대전중의 여러 항공사들(소련 및 미국). 아라랏 산은 튀리지아에 있는 연합군 기지와 브리반에 있는 소련 기지 간의 직선 항공로 상에 있다. 방주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소련 사람들 중의 하나는 미스켈린 소령인데, 그는 전쟁 중 군사 위장대의 지휘관이었다(1941-1945).

(12) 레시트라는 쿠우루드의 한 농부, 그가 본 것은 194811월 13일자 한 이스탐불 신문에 보도되었다.

(13) 리드만(Donald M. Liedman)박사.

리드만 박사는 유태인 과학자이며 의사이다. 그는 선서로 증언하면서 제2차 대전 중 한 소련 공군 소령이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때 2회에 걸쳐 찍었다는 실제 사진들을 보여 주었다.

(14) 그린(George Jefferson Greene).

그린은 1953년 그의 동료를 찾기 위한 헬리콥터 탐사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는 아라랏산 위를 비행하고 있을 때 90피트 높이에서 이상한 물체를 발견하고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현상해 보았더니 나무로 된 큰 물체였다. 그 사진은 많은 사람들이 보았다. 그러나 그 후 그는 살해되고 사진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15) 버나드 나바라(Bernard Navarra)

이 프랑스 탐험가는 아라랏 산을 탐험하고 노아의 방주, 나는 그것을 만졌다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나바라가 아라랏 산의 한 물체에서 베어온 나무를 두 대학에서 탄소-14 시험을 받았다.

"이 화석화된 나무는 위대한 고대의 신기원에서 획득된 것이다"(보르도 대학의 공식 성명)

"우리들이 분석한 바로는 이 조각이 5,000년 전의 것이다"(마드리드에 있는 산림 연구소로부터).

결론

(16) 쿠어(Alexander A. Koor) 박사는 소련의 육군 대령이며 학자, 연구가, 저자, 역사가이고 또한 고대 언어에 관한 학자인데, 30대 때 아라랏 산 부근의 카라다 패스에서 고대 수메르 사람의 비문을 발견하고 이를 번역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은 세상의 씨를 물에 뿌렸다…위에 내려온 물은 땅에 차고…그의 자녀들은 산꼭대기로 올라와 피신했다."

(17) 아래의 인용문은 커밍(Viola Cumming)의 저서 노아의 방주, 우화냐 사실이냐?에서 따온 것이다.

"저 멀리 바위로 된 높은 언덕 마루를 타고 있는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예리하게 조각된 점잖게 균형 잡힌 족장의 머리 윤곽이 8-10 피트 정도 언덕 꼭대기에 솟아 올라 그 모습을 드러냈다. 어떤 이유로 그 고대 조각가는 수염이 길고 터어번을 감은 조상을 반반하게 깎아 그윽한 시선을 높이 아라랏 산의 정상을 향하게 했다. 얼마 멀지 않은 카라다 절벽의 대 홍수(The deluge on the Karada cliff)를 기록한 그 손이 아라랏 산의 정상을 향하고 있는 언덕 꼭대기의 위엄 있는 족장의 머리도 조각했는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아라랏 산의 불가사의 중 하나는 오후 북쪽 및 동북쪽 비탈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무지개이다."

 

11. 빙하시대가 있었는가?

저술가 레지날드 델리(Reginald Daly)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범세계적인 홍수 이후에는 빙하시대가 자동적으로 따라온다. 빙하 시대가 뒤따르지 않은 범세계적 홍수는 없었을 것이다. 홍수 이후 사막은 수세기 동안 흠뻑 젖어 있게 되며 도처에 호수가 있었을 것이다. 물의 증발로 습도는 100%를 유지했을 것이며, 그리고 북쪽 지방에는 매일같이 비가 내렸을 것이다. 바람은 습도가 많은 먹구름들을 캐나다 북쪽 지방과 스코틀랜드, 노르웨이, 스웨덴으로 몰고 갔을 것이며 그곳에는 11월부터 4월 말까지 매일 매시간마다 눈이 쏟아지고 그 눈은 첫겨울에 아마 500-1,000피트 정도 쌓였을 것이다. 그리고 500피트의 눈이 100년 동안의 습도찬 기후로 쌓이고 또 쌓여 50,000피트의 눈덩이를 만들었을 것이며, 이는 대략 5,000피트의 얼음으로 가라앉아 빙하시대를 이루었을 것이다. 1마일 이상의 높은 산들의 정상은 너무 한냉 하여 겨울은 물론 봄과 초가을에도 눈이 계속 쌓였을 것이며 7월부터 8월에 걸친 짧고 쌀쌀한 여름에만 소량의 눈이 녹았을 것이다. 7월에 있었던 소량의 눈이 녹아도 겨울 동안의 폭설로 인해 몇 배나 불어났을 것이다. 그래서 그 영향은 누적되었음에 틀림없다. 즉 산을 올라갈 수 록 기온은 더 떨어지고 여름은 더 짧아지며 더욱 많은 눈이 내리게 되었을 것이다. 1마일이나 2마일 정도 두께의 얼음 무게는 그것을 바깥쪽, 곧 발틱해 너머로 흘러내리게 했을 것이며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처럼 독일의 전 북쪽 평원에 표석(-Boulder)을 깔아 놓았을 것이다. 또한 더 아래로는 북미지역과 이리호(Lake Erie)까지 흘러내리며 퇴석과 빙퇴구와 표석들을 오하이오주와 미조리주 그리고 멀리 미조리 강 남쪽까지 남겨놓았다"(지구의 가장 놀라운 신비, p. 142).

수명의 다른 사람들이 기독교적인 견해에 입각하여 빙하시대를 폭넓게 다루었는데, 그중에서 패턴(Donald Patten)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맘모스는 마스토돈(mastodon ; 빙하 3l의 거대한 코끼리류임-역주)과 같이 코끼리족의 가장 큰 구성원이다. 그들은 두 가지 형태로 미이라가 되었는데, 이는 다 같이 격변과 돌변함을 암시한다. 알래스카와 시베리아에서 분명히 수백만의 맘모스가 미이라가 되었는데, 둘 다 얼음과 퇴적지층 속에서 미이라가 된 것이다. 어떤 지역에서는 그들이 물기 많은 무덤에 묻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다른 지역에서는 녹지 않고 남아 있는 얼음 속에 냉동되어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들의 매몰과 냉동은 너무나 완벽해서 알래스카와 시베리아에서는 맘모스의 시체로 맘모스의 고기는 페어뱅크에서 음식점의 메뉴로 인기를 얻기까지 했다.

시사하는 바 모든 것이 맘모스가 극도의 추위 속에서 그리고 많은 수가 갑자기 죽었음을 입증해 준다. 죽음이 너무나 갑작스러웠기 때문에 먹은 식물들이 그들의 위와 입에서 소화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빙하시대, p. 105).

 

12. 홍수 이후 그의 세 아들들에 대한 노아의 예언에는 어떤 내용이 포함되었나?

노아는 술을 마시고 그의 벌거벗은 몸을 함에게 드러내 보이게 되었다. 술이 깨어 함의 아들 가나안에게 저주를 내렸다. 그리고 그는 세 아들 함과 야벳에 대한 예언을 했다.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 오십년을 지내었고 향년이 구백 오십세에 죽었더라"(9:20-29).

(1) 이 무서운 죄가 무엇이길래 저주를 불러일으켰나?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관련된 죄가 동성연애라고 믿는다. 이러한 견해는 갖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히브리어가 그것을 암시해 준다.

9:22에 있는 "아비의 하체"란 말은 분명히 레위기 18장 및 20장의 성적 부도덕과 관련되어 있다.

함의 아들 가나안은 가나안 사람의 조상이며 가나안인은 그 후 가나안에 거주했고 그리고 그들은 무서운 변태 성욕의 습성으로 유명했다.

"가나안의 지경은 시돈에서부터 그랄을 지나 가사까지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미와 스보임을 지나 라사까지 였더라"(창 10:19).

"날이 저물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여 가로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찌기 일어나 갈길을 가소서 그들이 가로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경야하리라 롯이 간청하매 그제야 돌이켜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그들의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무론 노소하고 사방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롯이 문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치 말라 내게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컨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내리니 너희 눈에 좋은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 아무 짓도 하지 말라

그들이 가로되 너는 물러나라 또 가로되 이 놈이 들어와서 우거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나아와서 그 문을 깨치려 하는지라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으며

문밖의 무리로 무론 대소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곤비하였더라"(19:1-11).

"그 땅에 또 남색하는 자가 있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국민의 모든 가증한 일을 무리가 본받아 행하였더라"(왕상 14: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이시로다 아멘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1:24-27).

(2) "그 작은 아들" 함이 범죄를 교사한 것 같은데 왜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나(9:25)?

랑게는 그의 주석에서 "그 작은 아들"이란 구절은 "그 막내아들"이라고 번역되어야 하며 또한 실제로 노아의 막내 손자, 즉 가나안을 말한다고 지적했다. 이 말에 무게를 더하기 위하여 창세기 5:32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노아의 막내아들은 함이 아니고 야벳이다.

(3) 노아의 세 가지 예언에는 어떤 내용이 포함되어 있나?

함과 가나안에게 -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부정적인 견해 - 노아의 예언은 흑인들에 대한 특별한 저주가 아니었다. 함은 네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다음과 같다.

구스 - 에디오피아인의 조상

미스라임 - 애굽인의 조상

- 리비아와 아프리카인의 조상

가나안 - 가나안 인의 조상

저주는 붓(아프리카 나라들의 조상일 것으로 추정됨)에게가 아니고 특별히 가나안에게 내려졌다. 그러므로 노아의 저주에는 절대로 어떠한 인종적인 암시도 내포되지 않았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과 가나안 사람들의 피부색 바탕은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침공할 시에는 아마 비슷했을 것이다. 가나안 사람들에 관한 문제는 그들의 피부색이 아니고 그보다는 그들의 마음 상태가 문제였다.

긍정적인 견해 - 그러나 노아는 보다 멀리 내다보고, 함의 후손들이 어떤 방법으로든지 셈과 야벳의 후손들에게 예속되리라는 것을 정확히 예언했다는 것이다. 역사가 이를 증명해 준다. 기원전 1000년까지 여호수아, 다윗, 그리고 솔로몬이 그들을 정복했다.

기원전 331년 알렉산더 대왕(야벳의 후손)이 페니키아를 정복했다.

기원전 202년 제2 차 포에니 전쟁(Punic War) 때 자마(Zama)에서 로마(야벳의 후손) 가카르타고(기원전 850년에 함족 패니카아인들이 건국)의 한니발을 패배시켰다. 독일의 신학자 에릭 사우어(Eric Sauer)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함족의 세계 제국의 꿈은 니므롯에서 시작되어 한니발과 함께 끝나고, 로마의 빛나는 승리는 결정적으로 야벳족의 세계지배가 시작되는 장을 열었다.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라'. 자마의 전장에서 이렇게 기록된 대로 이루어졌다"(세계 구원의 예명. p. 80).

셈에게 -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이 말씀은 분명히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서 시작하여 베들레헴 말구유에 이르기까지 셈의 후손에게 주신 특별한 은총을 가리키는 것이다.

야벳에게-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17세기 후에 이 예언은 적중하기 시작했다. 이 기간 동안에 함족이 나일 계곡을 지배했고 셈족은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했다. 그러나 53810월 바사의 고레스(야벳의 후손)가 벨사살을 패배시킴으로써 결정적 시간이 왔으며(단 5장) 셈족의 자랑스러웠던 수도는 함락되고 말았다. 그 이후 어떤 셈과 함족도 야벳족의 세계 패권을 깨뜨리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 이후 얼마 되지 않아 고레스의 후계자 캄비세스(Cambyses)가 애굽을 정복함으로써 함족의 지배도 종식되고 말았다. 그 이후 기원후 732년 야벳의 후손 마르텔(Charles Martel)이 셈족과 함족의 연합군을 역사적으로 투어즈 전투에서 패배시켰다. 야벳에 관한 노아의 예언의 다음 부분인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에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바울은 후에 이 예언의 영광스러운 성취를 로마서 11;13-25에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나 구원하려 함이라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찌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히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가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 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11:13-25).

 

13. 노아의 세 아들의 후손들은 각기 인류에게 어떤 공헌을 했나?

널리 알려진 학자이며 인류학자인 커스탄스(Arther C.Custance)박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함과 그의 후손의 경우, 이들은 문명의 물질적 발전의 견지에서 볼 때 인류에게 엄청난 봉사를 하였다. 모든 중요한 초기 문명은 함족에 의하여 시작되고 고도의 기술적 수준에 의하여 시작되고 고도의 기술적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그들의 기여가 없는 기본적 기술의 발명은 거의 없다. 후에 알게 되겠지만 셈과 야벳 족은 문명의 기본적 발달에 이렇다 할 공헌을 하지 못했다. 이는 매우 대담한 단정이지만 그러나 사실을 무시하고 한 말은 아니다.

야벳의 공헌은 기술에 대한 철학의 응용이었으며 그리고 이에 따른 과학적 방법의 개발이었다. 함의 기술에 야벳의 철학을 응용함으로써 과학을 낳은 것같이 그의 철학을 셈의 종교적 통찰력에 적용함으로써 신학을 낳았다. 야벳의 철학적 영향을 받게 될 때까지 함족은 과학을 발달시키지 못했고 셈족은 신학을 발전시키지 못했다…우리들의 대부분은 인도 유럽어족인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발명의 재능이 있는 사람으로 믿고 자라왔다. 문화적으로 조건 지워진 편견을 벗어나 우리들의 기술적 업적의 기원을 객관적으로 새롭게 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의 매울 발달되고 복잡한 문명 즉 항공기, 종이, 직조, 야금술, 각종 동력기, 도료, 화약, 의술, 기계의 원리, 음식, 전기의 사용 등은 실질적으로 기술의 범주에 속하는 어떤 것이든 그 근본 원리의 발달에 대한 역사를 조사해 보면 분명히 함족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으며 야벳이나 셈족에 의해서 발달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셈이나 야벳이 기여한 기초적 발명은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일반적 의견과 상충되는 것으로 보이나 이는 1,000여 개의 권위 있는 자료에 의하여 고증되고 입증되는 바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여주려고 한 것은 역사의 발전이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각각 그 계통을 이어온 세 가문 사이의 상호 작용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인데, 하나님은 노아의 세 아들들에게 특별한 책임들을 내리시고 또한 그 책임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능력을 똑같이 배분해 주신 것 같이 보인다. 셈에게는 인간의 종교적이고 영적인 행복을 위한 책임을, 야벳에게는 인간의 정신적 평안에 대한 책임을, 함에게는 인간의 물질적 복지를 위한 책임을…진실한 것이든 또는 거짓된 것이든 세상의 위대한 종교의 근원은 셈의 가족이다. 그리고 모든 진정한 철학적 체계는 야벳의 가족에 그 근원을 두고 있으며, 세계의 전문적 기술의 그 근원을 두고 있으며, 세계의 전문적 기술의 발달은 함족의 공헌이다이 세 분야가 균형된 조화를 이루어 함께 나아갈 때 문명은 건전하게 발전한다.

문명의 발달을 위하여 이 세 분야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견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어느 한쪽 부분만 지나치게 강조하면 그 궁극적 영향은 유해한 것이 되고 만다. 어느 사회도 지나치게 물질적이거나, 지나치게 정신적이거나 지나치게 영적이면 그 사회는 번영하지 못한다"(노아의 세 아들들, pp. 26, 37, 263-264).

다른 책에서 커스탄스는 이렇게 기록했다.

"홍수가 옛 세상의 종말을 가져올 때까지,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지적 수준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듯이 물론 같지는 않겠지만 이 세 가지 능력이 아담과 그의 후손 각 개인에게 고르게 겸비되어 있다. 그러나 홍수 이후 각 사람이 소유했던 이 세 가지 잠재능력은 많이 줄어들었으며 종종 어느 하나의 방향을 지닌 능력에 주로 제한되게 되었다. 이 논제를 보다 상세하게 조사하는 작업이 있었는데, 과학은 철학(야벳의 업적)과 기술(함의 공헌)이 결합된 곳에서만 연유되는 것 같이 신학은 철학이 계시(이는 셈의 특별한 공헌임)에 기초한 영적 통찰력과 결합되는 곳에서 연유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발명의 재능을 가지고 있고 기계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철학적 생각을 가지기 어렵고 철학자들은 다소간 비현실적인 경향이 있다. 이 두 가지 능력이 어느 한 사람에게 나타나면 이는 과학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신앙의 문제인 영적 일에 대하여 무관심한 경향이 있다. 그리고 사람은 원래 영적인 피조물이기 때문에 과학은 종종 일방적이고 부적합하기 쉽고 때때로 무용하거나 위험한 것이 되기 쉽다. 왜냐하면 과학은 의심하는 태도를 길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각 사람이 그 자신 가운데 큰 발명의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의 발명에 대한 재능을 과학자들이 지난 6,000년 동안 발달되어온 기본적 기술을 최근에 발전시킨 것만큼 크게 확대시킬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를 상상해 보라. 만약 그랬다면 지난 100년 동안의 진보는 인류 역사의 차음 수세기에 걸쳐 이루어졌으리라. 그리고 아담의 손자는 도시 생활의 발달을 볼 수 있었을 것이며 매우 큰 건물의 건축과 여러 가지 종류의 음악을 포함한 예술의 출현 그리고 광범위한 금속 기계의 사용 또한 - 분명히 가인의 후손들이 한 것처럼 - 대규모 목장과 농장 시설을 목격했을 것이다(4:17-22).

그러나 통상 우리가 보아온 바와 같이 인간의 영적 능력은 그것을 쓰지 않거나 또는 부정하게 사용함으로써 시련을 초래하였으며, 인간의 악은 다른 능력들의 행사로 인하여 엄청난 악은 다른 능력들의 행사로 인하여 엄청난 정도에 이르기까지 매우 급속하게 그 강도를 더하게 되어 주님이 하늘에서 내려다보시기에 너무나 위험해서 그런 능력을 충분히 사람들에게 부여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홍수 이후 아담에게 겸비되어 있었던 것은 셈과 함과 야벳에게 분배되었다. 그러나 홍수 이전의 시대에 있어서 개인의 능력은 너무나 위대한 것이었기 때문에 문명의 발달이 크게 촉진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창세기와 초기 인간」, pp. 138-139).

 

14. 바벨탑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11:1-4).

창세기 11장의 성서 말씀은 초기의 인류가 하늘에 닿는 탑을 건축을 무모하게 시도하지 않았음을 가르쳐 준다. 특별히 유의할 것은 4절에 있는 "하늘에 닿게 하여"란 말이다. 이 말은 역자의 의도가 가미된 성서 번역이다. 히브리 원본은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사실 이 구절은 "탑의 꼭대기를 하늘에 있게 하여"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고고학적 증거는 바벨탑이 폐허 가운데 높이 153피트, 기초 400피트의 건물이 있는데, 이는 마른 벽돌로 건축되어 있고, 건축물과 알려진 별(혹성)과를 일치시키기 위해서 7층으로 만들었다. 가장 아래층은 토성의 색깔인 흑색, 다음은 목성의 색깔인 오렌지색, 3층은 화성의 색깔인 적색 등이다. 각층은 하나의 높은 탑 위에 놓여 있고 그 정상에는 12궁 표가 있었다. 반하우스(Barnhouse) 박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그것은 공개적으로 그리고 분명히 사탄에게로 얼굴을 돌린 것이며 마귀 숭배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왜 성서가 도처에서 해와 달과 별들을 숭배한 자들을 저주했는가에 대한 이유이다."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11;4).

이 사건의 수년 전에 세상의 첫 살인자 가인은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너는 땅에서 피하여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4:12). 이제 가인의 영적 자녀들이 같은 하나님을 반역했다. 그러나 그들은 가인의 운명을 따르지 않고 함께 남아 있기를 바라고 갈망했다.

독일의 신학자 사우어(Erich Sauer)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아담이 낙원에서 모든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 준 최초의 언어는 사실 그대로 온 자연이 정확하게 비친 거대한 거울이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이 거울을 산산이 부수어 버리셨고 각 사람은 그 조각만을 갖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큰 조각을, 다른 사람은 보다 작은 조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제 사람들은 전체 중 일부분만을 보며 전체를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다"(세계 구속의 여명, p. 82).

그러므로 오늘날 뉴욕에 있는 국제연합의 많은 통역실은 바벨의 일화를 담대하게 증거 한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11:9). 이 탑의 공사는 아마 니므롯 자신에 의하여 붙여졌을 것이다. 바벨의 문자적 의미는 "하나님의 문"이다. 그러므로 인류가 진정한 하나님을 거부했을 때에도 그들은 애매하고 비인격적으로 "우주의 대 건축가"를 인정함으로써 그들의 불안한 양심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바벨이란 말의 의미를 "혼잡"으로 바꾸어버리셨다.

 

15. 현대 인류의 분명한 인종적 특징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나? 헨리 모리스 박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바벨론으로부터 각 가족 및 부족 단위로 이주함에 따라서 그들은 각기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또한 각기 독특한 육체적 생물학적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들은 다만 그들 자신의 가계 단위의 구성원들 간에만 서로 교통 했기 때문에 다른 외부 혈통과 결혼할 가능성이 더 이상 없게 되었다. 그래서 적어도 수세대에 걸쳐서 매우 가까운 친척들로 구성되는 가계를 형성할 필요가 있게 되었다. 근친결혼을 적게 하는 집단에서는 변이가 빨리 이루어지고 근친결혼을 많이 하는 집단에서는 변이가 천천히 이루어진다는 것은 유전학적으로 잘 입증되는 바이다. 후자에 있어서 종에 따라 독특한 특징을 지닌 유전인자들이 한 인구 집단의 유전자 집합에 잠복해 있다고 할지라도 우성의 유전자만이 육체적 외부 특성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나 작은 인구 집단에 있어서 유전자들은 이러한 환경 아래서 공공연히 표현되고 더욱 우성이 잘 나타날 기회를 갖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근친결혼은 얼마 되지 않은 세대 동안에 피부색, , 머릿결, 얼굴 모양, 기질, 환경 등의 독특한 특성으로 특정한 부족이나 국가들과 연관성을 갖게 되었다"(창조 기록, p.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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