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신명기 28장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하나님의 축복 선포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면 하나님이 축복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토지소산이 복을 받고 짐승들도 복을 받게 됩니다. 떡 반죽 그릇도 복을 받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구원받은 백성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이제부터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면서 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유에 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축복 선포(신 28:1-6)
히브리어 성경을 보겠습니다. 1절은 베하야 임 솨모아 티쉐마 베콜 아도나이 엘로헤이카 리쉐모르 라아쇼트 에트 콜 미츠보타이브 아쎄르 아노키 메차베카 하욤 우네타네카 아도나이 엘로헤이카 엘욘 알 콜 고예이 하아레츠입니다.
신 28: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8:1
삼가 듣고 - 원문상 이는 '경청하다'는 뜻의 '솨마'가 반복된 문장으로, 직역하면 '듣고 듣다'이다. 그러나 '솨마'란 단어가 중복되어 쓰일 때에는 대개 '주의하여 경청하다'(carefully listen)는 관용적 의미를 지닌다(출 23:22). 그러므로 KJV는 본절을 '성실하게 듣다'(hearken diligently)로 번역하였다.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여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함을 말한다.
지켜 행하면 -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전제 조건으로 무엇보다 '순종'이 제시되고 있다. 사실 인간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총에 의한 무조건적이고 단독적인 역사이지만, 한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은 자신들이 행한 모든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하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의 순종과 불순종에 대해 반드시 보응하신다(욥 34:11; 잠 24:12; 롬 2:6).
2절은 우바우 알레이카 콜 하베라코트 하엘레 베히시구카 키 티쉐마 베콜 아도나이 엘로헤이카입니다.
신 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28:2
순종하면... 미치리니 -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자에게는 따로 특별히 복(福)을 구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주어질 것임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후일 예수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말씀하신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아무튼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여부와 그에 따르는 축복은 유기적인 함수 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복이 미친다는 말씀이다.
복(베라카) - 기본 동사 '바라크'는 '무릎을 꿇다'(kneel)란 뜻이다. 이것은 곧 복(福)의 기원을 말하는 바, 모든 복은 위로부터 임하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을 꿇는 '순종의 상태'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한편, 성경을 주의 깊게 고찰해 보면 복(福)에는 두 가지 차원(次元)의 복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차원의 복이요 둘째는, 영적이고 내세적인 차원의 복이다. 전자가 부차적(副次的)이고 상대적이며 일시적인 복이라면, 후자는 근원적이고 절대적이며 영원한 복이다. 계시(啓示)가 발전되어 있지 않은 구약 시대에는 복의 개념이 주로 외형적이고 물질적인 측면으로 강조되었지만, 하나님의 뜻이 완전 계시된 신약 시대에는 내적이고 영적인 측면으로 강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신구약 시대를 막론하고 복에 대한 성경의 근본 개념은 동일하다. 곧 참된 복은 인간이 추구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인데, 이것은 곧 순종에 기반을 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올바른 관계 성립'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다. 즉 복이란 단순히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베푸시는 어떤 유익의 단계를 넘어 바로 하나님 자신이 참된 복의 근원이요, 복 그 자체란 뜻이다(창 15:1; 요 15:5).
따라서 말씀에 대한 순종은 복을 받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복이 되어 주신 데 대한 의무이다. 이런 관점에서 진정 성도가 추구하여야 할 복은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삼는 영적이고 내세적인 복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산상 수훈의 8 복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마 5:3-12). 따라서 오늘날 개인의 장수, 부귀, 명예, 득남(得男)등이 복의 전부인 양 착각하고 끊임없이 개인의 물질적 축복만을 비는 기복 신앙(祈福信仰)이나 또는 '신앙=물질적 축복'의 복사상은 마땅히 지양되어야 한다.
그러한 부차적인 복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 때로 주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거두시기도 하시며(삼상 2:7), 오히려 어떤 때는 사랑하는 자에게 그 신앙의 유익을 위하여 물질적 궁핍이나 역경을 일부러 허락하시기도 하시기 때문이다(히 12:5-13). 그러므로 성도는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축복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전적으로 맡기고, 매일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참되고 복된 생활을 추구하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3절은 바루크 아타 바이르 우바루크 아타 바사데입니다.
신 28: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28:3
성읍에서도...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 '성읍'은 항상 많은 사람들이 붐비며 각종 사건과 소문이 빠르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곳이다. 따라서 그러한 곳에서 복을 받는다는 것은 뭇사람들이 역력히 알 수 있는 공개적이고도 큰 축복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들'은 사람이 매우 드문 한적한 장소이다. 따라서 그러한 곳에서 복을 받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할지라도 사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여기서 '성읍'과 '들'은 인간이 직면할 수 있는 모든 환경과 장소를 뜻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어디에 있든, 그리고 어디를 가든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입게 되리라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Delitzsch, Lange). 바라크라는 단어인데 분사 수동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때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4절은 바루크 페리 비트네카 우페리 아드모트카 우페리 베헤메테카 쉐가르 알라페이카 베아쉐트로트 촌카입니다.
신 28:4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28:4
네 짐승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 가축의 증산(增産)이 원활히 이루어져 그 수효가 크게 번성하리라는 것을 가리킨다. 유목(遊牧) 민족에게 있어서 이는 실로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7:13).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짐승의 숫자도 늘어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에 복을 주신다.
5절은 바루크 나테아크 우미쉐아르테카입니다.
신 28:5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28:5
광주리 - 땅에서 거둔 곡식과 과실, 그 밖의 모든 토지소산(所産)을 담아 두거나 저장해 두는 데 쓰이는 각종 용기(容器)를 가리킨다.
떡 반죽 그릇 - '부풀다'는 뜻의 '솨아르'에서 파생된 말로 곧 반죽을 부풀리는 '반죽 통'을 가리킨다. 히브리인의 주식은 밀가루로 만든 빵이었으므로, 곧 이는 포괄적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데 사용되는 모든 그릇'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Pulpit Commentary). 한편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 광야에서 지내는 동안 주식으로 삼은 것은 만나였다(출 16장). 그러나 가나안 정착 후에는 '떡 반죽 그릇'에도 복이 임하리라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식생활을 만족시켜 주사, 가나안에서는 개개인의 구미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 먹도록 하시었다는 의미를 지닌다(수 5:10-12).
6절은 바루크 아타 베보에카 우바루크 아타 베체테카입니다.
신 28: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28:6
들어와도 복을 받고 - 일을 마치고 귀가하거나 또는 휴식을 취하러 집으로 들어올 때에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축복을 입을 것이란 뜻이다.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위하여 일터로 나가는 길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사, 그의 하는 모든 일이 형통케 되게끔 도와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본절 역시 3절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자들은 언제, 어느 곳에 있든지 그리고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그가 처한 모든 상황에서 형통케 될 것이란 의미임을 알 수 있다. 우리도 항상 복음의 말씀대로 살아서 하나님께 영육으로 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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