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이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해서 설명(욥 9:1-10)
1절 바야안 이요브 바요마르
성 경: [욥9:1]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하나님 앞에서 불의한 인간]
본절에서부터 10:22까지는 빌닷의 변론(8장)에 대한 욥의 첫 번째 응답이다.
2절 아미남 야다이티 키 켄 우마 이치다크 에노쉬 임 엘
성 경: [욥9:2]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하나님 앞에서 불의한 인간]
그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 이는 욥이 지금까지 말한 빌닷의 논지 자체를 타당한 것으로 용인한다는 뜻이다. 빌닷은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의인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8:20)를 역설한 바 있는데, 이것은 욥 자신도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 본문은 4:17에 나타난 엘리바스의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서 다음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 인간이 하나님의 의(義)의 수준에 결코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욥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는 본질상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 있음을 직시하고 있었다. 둘째, 인간은 하나님과 견주어 볼 때 의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욥의 이러한 신(神)이해, 내지는 인간 이해는 계시가 발달하지 않은 당시의 시대 상황에 비추어 볼 때는 분명 탁월한 것이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교제,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미천한 인간과 교체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갖지는 못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그 자신의 행실로는 결코 의에 도달할 수는 없으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에 의지하여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닫지는 못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욥은 동방의 의인이라 불렸으되(1:1) 복음의 경륜이 개화(開花)하지 못한 율법 시대에 속한 사람이었다 하겠다.
3절 임 야히포츠 라리브 임모 로 야아네누 아하트 미니 알레프
성 경: [욥9:3]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하나님 앞에서 불의한 인간]
쟁변하려 할지라도 - `경쟁하려 할지라도'(Pulpit Commentary), `다툴지라도'(Lange)등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이 용어가 법률적인 용어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원고와 피고가 각각 누구를 지칭하는가에 대해서 원문상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어느 것을 취하든 간에 하나님은 사람과 쟁변(다툼, 경쟁)의 대상자가 될 수 없으며, 또한 그분은 사람과 더불어 쟁변 하시지도 않는다는 의미이다. 한편 하나님께서 사람과 쟁변하시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 때문이다. 즉, 인간은 유한하고 죄성을 가진 존재이나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한 분으로 완전한 의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이렇듯 욥이 인간과 하나님과의 `차이'를 철저히 인식한 것은 자신에게 닥친 시련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단절감과 괴리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판단 기준과 인간의 그것이 상이(相異)하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절대적으로 의로운 것처럼 인간에게도 온전한 성결과 의를 요구하신다. 만약 이 요구를 온전히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에는 그에 합당한 희생을 요구하신다. 구약 시대의 희생제가 바로 그것이다.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도 하나님의 이러한 기준은 변개(變改)되지 않았다. 즉,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 까지 이르리니'(엡 4:13)라는 말이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벧전 1:16),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는 말 들이 모두 이런 측면에서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기준은 이러한 하나님의 기준에 다다르지 못하며, 결코 다다를 수도 없다. 즉, 인간은 자력으로는 하나님의 절대적 의와 성결에 부합될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령한 은혜로 말미암아 이 기준에 다다를 수 있다. 이러한 복음의 비밀에 접해 보지 못한 욥으로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넘을 수 없는 차이를 더더욱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4절 하캄 레바브 비아미츠 코아흐 미 히키샤 엘라이브 바이쉴람
성 경: [욥9:4]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한 설명]
하나님은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니 - 욥의 신(神) 이해, 곧 여호와께 대한 인식이 잘 드러나는 구절이다. 지금껏 욥은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힘든 모진 시련을 겪어왔고, 또 현재 겪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본절과 같은 신앙 고백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앙의 근저가 아직도 든든하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요컨대 그는 뼈아픈 고난 중에 격한 감정을 토로하며, 때로 하나님께 대한 불평불만을 쏟아 놓았으나, 하나님 존재 자체를 거부하거나 그분의 품성을 왜곡하는 등의 비신앙적 형태로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비범한 신앙 인격자로서의 욥의 위대성이 있는 것이다.
5절 하마이티크 하림 비로 야다우 아세르 하파캄 비아포
성 경: [욥9:5]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한 설명]
그가 진노하심으로 산을 무너뜨리시며 옮기실지라도 - 본문은 다음과 같은 자연 현상을 묘사한 것으로 추측된다. (1) 지진에 의해 산이 갈라지거나 암석 등이 아래로 굴로 떨어지는 모습, (2) 폭풍우에 의해 산이 깎여 내리는 모습, (3) 급류에 의해 산이 깎이고 주변의 암반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 등이다. 상기(上記)의 현상들은 고대 팔레스틴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것인 바, 본문은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를 가리킨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본문을 통해서 욥은 자연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전능성을 드러내고 그러한 하나님에 비견해 볼 때 미천하기 그지없는 자신, 특히 현재 극심한 고난 중에 처해 있는 자신의 나약한 심경을 대비하여 드러내고자 한다.
산이 깨닫지 못하며 - 본문은 산이 지진, 폭풍우, 급류 등에 의해 옮겨질 때(민16: 32; 왕상19;11; 시 104:32; 암 1:1; 슥 14:4, 5; 마 24:7), 그 과정이 매우 급속히 전개된다는 뜻이다. 의인법이 사용된 구절이다(시 35:8; 렘 50:24).
6절 하마리기즈 에레츠 미미코마흐 비아무데하 이트팔라춘
성 경: [욥9:6]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한 설명]
본문은 지진 현상을 가리키는 것 같다. 고대 근동 지역, 특히 시리아와 팔레스틴에 인접한 나라에 있어서 지진은 그렇게 드문 현상이 아니었다(시 104:32). 성경에도 지진에 관한 언급이 여러 번 나타나는데(민 16:32; 왕상 19:11; 암 1:1; 슥 14:4, 5) 대부분 초월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 기둥 - 이 용어는 고대인들의 우주관에 비추어 해석되어야 한다. 그들은 지구(땅)가 커다란 기둥들(pillars)에 의해 떠받쳐져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38:6; 삼상 2:8; 시 104:5). 또한 그들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 산이라고 보았다(26:11). 즉, 땅에서 우뚝 솟아난 거대한 산이 하늘을 지탱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7절 하오메르 라헤레스 비로 이지라흐 우비아드 코카빔 야히톰
성 경: [욥9:7]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한 설명]
해를 명하여 뜨지 못하게 하시며 - 이것은 다음과 같은 자연 현상을 염두에 두고 한 표현인 듯하다. (1) 일식(日蝕) :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일식은 천지를 순식간에 어둡게 한다. (2) 자연현상에 의한 해 가림 : 갑자기 찾아오는 먹구름, 모래를 동반한 폭풍 등은 하늘을 짙게 가려 해를 보지 못하게 한다. 이러한 현상은 대부분 모래사막과 건조한 기후로 이루어진 팔레스틴 지역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 (3) 지진 : 지진이 일어나면 건물이 무너지며, 산과 계곡의 암석과 나무들이 쏟아짐으로 인해 먼지가 발생한다. 이로 인해 사람의 시야가 가려 햇빛을 보지 못한다. (4) 화산폭발 : 화산 폭발로 인한 화산재와 연기는 햇빛을 가려 시야를 어둡게 한다.
8절 노테 샤마임 리바도 비도레크 알 바마테 얌
성 경: [욥9:8]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한 설명]
그가 홀로 하늘을 펴시며 - 고대 히브리인들은 하늘에 대량의 물이 축적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이 물을 지탱하기 위해서 하늘은 단단한 판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즉, 궁창은 단단하고 고정되어 있는 땅의 천장 혹은 지붕(잠 8;27)으로 이해되었다. 한편 이러한 하늘을 펼쳐 편다는 것은 창조자의 능력을 가장 강력하게 증거해 주는 증거로 인식되었다. 성경에서도 이러한 일을 하나님의 전능성을 나타내 주는 독특한 증거로 보고 있다(사 42:5; 45:12; 51:13; 렘 10:12). 한편 본문에서 `홀로'(레바도)라는 말은 욥의 신(神) 인식, 곧 여호와 하나님을 유일신 하나님으로 인식했음을 잘 드러내 준다. 많은 학자들은 욥기에 신화적인 요소가 농후하며 따라서 욥 역시 이러한 요소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을 다신론적(多神論的) 견지에서 이해했다고 주장한다(Pope, p, 70). 그러나 본문은 그가 창조의 주체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며, 그만이 참된 능력을 지닌 하나님임을 확신했음을 잘 증거해 준다.
바다 물결을 밟으시며 - 격랑에 의해 마치 산더미처럼 높이 솟아오른 파도를 하나님께서 밝고 계신다는 표현은 피조물에 대한 당신의 철저한 주권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자연계를 지배하고 계신다는 뜻이다. 한편,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을 `땅의 높은 데(즉, 산)를 밝히는 자'로 묘사한 아모스(암 4:13), 미가(미 1:3)의 표현과 매우 유사한 일면을 지닌다(신 33;29; 시 18:33; 사 58:14; 합 3:19 등).
9절 오세 아쉬 키실 비키마 비하디레 테만
성 경: [욥9:9]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한 설명]
북두성 - 히브리어 `아쉬'(38:32)로서 오늘날의 `큰 곰자리로'로 이해된다.
삼성 - 히브리 원어로는 `키실'로서 `오만한'의 뜻이며 오리온(Orion)별자리를 가리킨다. 그런데 `삼성'이란 별자리 명칭은 그리스인들에 의해 붙여진 것으로 추측된다.
묘성 - 히브리어로 `키마'로서 `더미', `떼'라는 뜻이며 `시리우스'를 포함한 일군(一群)의 별자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짐작된다.
남방의 밀실 - 갈대아인들은 12궁의 별자리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러나 욥은 남쪽 지평선 위에 떠있는 무수한 별자리를 두고 이러한 표현을 한 것 같다.
10절 오세 기돌로트 아드 엔 헤케르 비니필라오트 아드 엔 미시파르
성 경: [욥9:10]
주제1: [빌닷에 대한 욥의 항변]
주제2: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한 설명]
5:9에 나타난 엘리바스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 것처럼 보인다(5:9 주석 참조).
[누가복음 6장 원어성경말씀]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라(눅 6:3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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